[2017년 6월호] [영화이야기] 피부색이나 성별 말고, 능력으로 판단하라고요
등록 2017.06.2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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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_04.jpg 그들은 ‘흑인’ ‘여성’이다
40세의 캐서린(타라지 P. 헨슨)은 미 우주항공국(NASA) 랭글리연구센터 임시직 전산원이다. 캐서린은 초등학교 때 고등교육으로 월반할 만큼 수학 천재였으며, 대학원을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한 이력도 갖고 있다. 물리학과 수학 석사학위를 갖고 있는 메리(자넬 모네) 역시 미 우주항공국의 임시직 전산원이다. 캐서린과 메리를 포함해서 20여 명의 임시직 전산원들을 관리하는 도로시(옥타비아 스펜서)는 공석 중인 관리자의 일을 1년 가까이 하고 있지만 관리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녀 역시 임시직이다. 이들 전산원들은 나사의 로켓 궤적 계산을 포함한 만만치 않은 수학 연산을 해내는 실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능력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임시직에 머물러야 하는데, 이유는 흑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이기 때문이다.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테오도어 멜피 감독, 2016)는 캐서린 메리 도로시라는 세 명의 흑인 여성이 어떻게 나사에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1961년 현재 버지니아주 햄프턴에 위치한 나사 랭글리연구센터 내부에서 공고히 작동해왔던 인종차별 성차별 제도가 이들로 인해서 어떻게 변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흑인 여성은 엔지니어가 될 수 없는 현실에 굴복하지 말고 도전하라며 폴란드계 유태인 책임연구원은 메리를 자극한다. 용기를 가지고 엔지니어에 응모하지만, 나사 측은 백인만 다닐 수 있는 특정 대학 기술 강좌 이수라는 응모 조건을 들어 보이며 탈락시킨다. 수업 참석 탄원 재판을 신청한 메리는 재판장에서 판사를 설득한다. 항공엔지니어인 자신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만약 판사가 인종차별을 용인하는 버지니아 주법에 예외를 허용하여 백인학교 수업 참석을 허락해주면 훗날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를 만들어낸 최초의 판사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는 게 골자이다. 판사는 야간 수업 참석을 허락하고 메리는 강좌를 이수하여 마침내 나사의 엔지니어 자격 요건을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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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업무를 보고 있지만 수학에 천재적인 도로시는 나사가 전자 연산 대형 컴퓨터 IBM을 들여오자 수작업을 하던 전산원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임을 감지한다. 그녀는 컴퓨터 작동 원리를 빠르게 독학으로 익힌다. 개인의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동료들인 전산원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시킨다.

 

백인 남성 직원들이 쩔쩔매던 IBM을 제대로 작동시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도로시는 임시직이긴 하지만 IBM 작동 업무를 제안받는다. 그러나 혼자만 IBM 컴퓨터실로 이동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전산원들이 모두 컴퓨터를 다루는 훈련이 되어있으니 모두를 이동시켜 주지 않으면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승부수를 띄운다. IBM 작동 인력이 부족했던 상황은 그녀의 조건을 받아들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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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IBM 컴퓨터실 관리자로 임명된다. 흑인에게는 영구 관리직을 주지 않던 나사의 규칙은 깨졌다. 도로시는 마침내 나사 최초의 흑인 관리자가 된 것이다. 


이 영화 서사의 중심에는 수학 천재 캐서린이 있다. 영화는 꼬마 수학천재에 대한 선생님들과 부모의 잔잔하지만 확신에 찬 기대로 문을 연다. 이어지는 장면은 35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1961년 출근길 도로에서 멈춰 선 고물 자동차 안의 캐서린의 표정이다. 창밖을 바라보는 희망 없는 표정에서 수학 천재에 대한 선생님들과 부모의 기대는 현실의 벽 앞에서 처참히 무너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캐서린은 메리와 도로시의 자동차로 카풀하면서 나사의 임시직 전산원으로 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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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캐서린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우주 임무를 총괄하는 알 해리슨 본부장(케빈 코스트너)이 유인 우주선의 탄도 진출입 궤도를 계산해낼 해석기하학 전문가를 급히 구하면서 캐서린은 우주임무팀에 합류한다. 30명 가까운 우주임무팀에는 본부장의 사무 비서를 맡은 루스를 제외하면 여자는 캐서린이 유일하다. 흑인도 유일하다. 러시아가 유인 우주선을 성공시키면서 우주 지배력이 러시아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은 나사의 유인 우주선 성공을 압박했다.

 

이런 비상 상황에서 캐서린이 매일 여러 차례에 걸쳐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운다는 것을 인지한 본부장은 캐서린을 야단친다. 캐서린은 본부장의 질책에 절규한다. 흑인 전용 화장실이 800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며, 복장 규정이 있어서 힐을 신고 치마를 입어야 하므로 자전거를 탈 수 없고 걸어서 오가야 한다는 점. 커피 포트도 흑인 전용으로 별도로 마련하는 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울분을 토하고는 자리를 뜬다. 


본부장은 커피포트에 붙어있는 ‘유색인 용’이라는 종이조각을 뜯어버리고, 이어서 800미터 떨어져 있는 유색인 여성화장실의 푯말도 망치로 쳐서 떼어낸다. 나사는 피부색과 상관없이 가까운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서 이전의 규칙을 깬다. 국방성 보고회에 여성은 참석할 수 없다는 규칙 역시 궤적 계산에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던 캐서린의 동석 요청을 본부장이 들어주면서 깨어진다. 캐서린은 IBM도 정교하게 산출해내지 못한 미국 최초 유인 우주선 머큐리의 지구 귀환 궤도를 계산해내면서 나사의 우주임무팀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능력이 있어 가능했나, 라는 느낌을 주는 아쉬움
영화 <히든 피겨스>의 감독은 최소한 세 번은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중 하나가 캐서린의 절규이다. 우주임무팀이 있는 건물에는 백인 여성 비서가 규정하는 것처럼 우리 (백인) 화장실만 있고 ‘너희 화장실’은 없어서 800미터 떨어져 있는 ‘유색인 화장실’을 뛰어서 오가고 밤낮없이 개처럼 열심히 일하지만 급여는 엄청나게 적어서 복장 규정에서 말하는 ‘수수한 진주 목걸이’ 착용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고 캐서린이 감정을 폭발시킬 때, 인종차별과 성차별로 인해 그녀가 받았을 고통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도로시가 교섭을 통해서 전산원 모두를 재배치 받게 한 후 새로운 일자리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이들의 표정, 공간의 위치, 경로의 색감은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들의 감정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지하 사무실 공간으로부터 나와서 회색 벽과 복도를 지나 건물 밖으로 나온 이들에게 햇살은 하얗게 부서진다. 이어 컴퓨터실이 있는 기술동으로 진입할 때 하얀 틀의 출입문이 선명하게 강조되고, 이어서 지상에 위치한 하얀색 톤의 건물 안을 경유해서 컴퓨터실로 들어가는 성취의 장면이다.


그런데 좀 아쉽다. 무엇보다 캐서린, 메리, 도로시의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이다. 인종과 성 차별에 익숙해 있는 듯 영화 전편에서 그들이 차별에 고민, 갈등, 분노, 좌절하는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사회 구조의 모순에 대해서는 시대적 배경 사건으로 산만하게, 양적으로도 미흡하게 제시되고 있어서 차별의 해소를 능력 있는 개인의 경우로 환원·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렇기에 캐서린이 발탁되고 메리가 자격을 갖추고 도로시가 영구 관리직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특출 난 능력의 흑인 여성들이 마침 미국 전체가 우주 경쟁에서 러시아에 패배할 수 있다는 공포심으로 떨고 있는 특수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한다.

 

그리고 차별과 관련해서 반드시 언급하고 싶은 캐릭터는 해리슨 본부장이다. 캐서린의 절규를 듣고 유색인 여성화장실의 팻말을 때려 부수는 본부장은 성 차별 인종차별을 선도적으로 없앤 멋있는 인물로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다. 캐서린이 당연히 받았을 차별들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결과적으로는 타인의 고통에 무지했던, 그러므로 무책임하다고 비난받아야 하는 인물이지 싶다.


염찬희 회원·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