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호] [책이야기] 손석희 저널리즘
등록 2017.03.31 20:03
조회 329

2019_0331-02.jpg

버스 운전을 할 때 나는 늘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었다. 2004년 즈음 당시 한나라당 당 대표였던 박근혜가 출연했다. 손 앵커는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얻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경제회생론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박근혜는 “여당이 못한다면 야당이라도 나서서 해야 되지 않느냐”는 엉뚱한 대답을 내 놨다. 


하지만 손 앵커는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거대 여당의 위치에 있을 때 IMF 환란이 빚어진 것은 어떻게 설명하겠냐”고 재차 물었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은 새롭게 거듭나는 정당”이라고 교과서 같은 답변을 했고, 손 앵커는 “유권자들은 과거를 보고 판단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당황한 박근혜는 “저하고 싸움하시자는 거예요” 하고 발끈했다. 손 앵커는 즉각 “그렇진 않습니다.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하고 마무리했다. 


그때 든 세 가지 생각. 첫째, ‘박근혜 참 무식하다.’ 둘째, 그때 만일 내가 손석희였다면 “저하고 싸움하시자는 거예요”라는 대답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셋째, 손석희라는 사람 참 순발력 있고 믿을 만한 언론인이라는 생각이었다.


손석희는 나뿐만이 아니라 한국인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이었다. 그런 이가 중앙일보 종편 JTBC로 간다고 했을 때 나는 실망을 했다. 손석희가 “JTBC가 공정하고 균형 잡힌 정론으로서 역할을 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큰 보람”이라고 했고, 그에게 전권이 위임됐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사주가 삼성 계열 자본인데 아무리 손석희라도 JTBC가 삼성그룹을 비판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어찌 나뿐만이겠는가. 그 당시 진보 진영에서는 실망감과 배신감을 드러냈다.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강성남은 “손석희 교수의 JTBC행에 대해 딱히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좋은 조건에 직장을 옮긴 것이고, 이 조건이 손석희 교수에겐 MBC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컸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KBS 출신으로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뉴스타파>로 옮긴 기자 최경영은 트위터에 “손 교수의 제이티비시 보도 사장 취임은 개인적으론 어떤 소망을 이룬 것이겠지만 대중들에겐 ‘모두가 투항한다. 너희도 포기하라’는 낙담의 메시지를 선사한다”고 썼다. 


그런데 가끔 보는 JTBC 뉴스 논조가 괜찮았다. 그러다가 2013년 10월쯤, <뉴스9>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입수한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문건 내용을 헤드라인 뉴스를 봤다. 그리고 이어 삼성전자에서 전자제품 AS 유상 수리에 해당되는 부품이 중고를 새것으로 속여 팔았다는 뉴스도 봤다. 그 두 가지 보도를 보면서 나는 JTBC에 믿음이 쌓이기 시작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로는 JTBC 뉴스만 보게 됐다. 손석희 앵커는 5일 동안 팽목항 현지에서 뉴스를 진행했다. 무엇보다 실종자 가족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방송들은 세월호 참사 소식이 사라졌지만 JTBC <뉴스9>에서는 90여 일 동안 거의 항상 첫 꼭지가 팽목항 소식이었다. 그 뒤로 텔레비전 뉴스는 JTBC만 보게 됐다. 이제는 명절날 친척 집에 가서도 MBC뉴스를 보고 있으면 JTBC로 채널을 틀라고 요구한다.


『손석희 현상』이라는 책이 나왔다. 온갖 자료를 가지고 날카로운 인물 비평을 하는 강준만 교수가 쓴 책이다. 저자는 ‘손석희 현상’이라는 뜻을 이렇게 밝혔다. 


“한 언론인이 12년 연속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 10년 연속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1위를 차지한 것만을 놓고도 ‘손석희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손석희가 지휘하는 JTBC가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는 데에 앞장섬으로써 대중의 박수와 환호를 받는 것도 ‘손석희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보자면, 손석희가 이른바 ‘종합편성채널(종편)’의 대반전을 상징하는 기수가 됨으로써 언론계의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는 것도 ‘손석희 현상’으로 볼 수 있겠다.”


강준만 교수는 손석희를 가리켜, 송건호 언론상 심사위원회의 심사평을 빌려 “한평생 언론인의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던 송건호 선생의 자세를 견지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었다”고 칭찬했다. 이 책은 그런 인물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언론을 들여다보게 한다.


JTBC 손석희는 태블릿PC 보도를 시작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려 결국 이재용을 구속한 일등 공신이 됐다. 삼성 계열 JTBC가 삼성전자 총수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시키는 데 일등 공신이라니, 그리고 박근혜 탄핵까지 가게 됐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모든 언론, 모든 언론인이 그랬더라면 이 세상은 벌써 바뀌었을 텐데.


안건모 웹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