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KBS와 MBC는 철저하게 권력에 장악되어 정권 홍보방송으로 전락했다.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을 탄핵할 때 이들 양 공영방송도 시민들에게 함께 탄핵당했다. KBS와 MBC는 국정농단의 부역자였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3일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이 발족했다. 발족식을 마치고 성재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아래 사진 오른쪽)과 김연국 전국언론노조동조합 MBC본부장을 좌담에 초대했다. 영화 <공범자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난 9년 동안 양심적인 언론 노동자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공영방송 언론 노동자들의 대표인 성재호, 김연국 위원장은 ‘공영방송을 지키지 못해서 시민들에게 무척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다시 한번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시민들에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마봉춘과 고봉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김연국과 성재호. 이들이 시민들에게 간절하게 바라는 요청, 그리고 다짐을 정리했다.
경영진과 일부 이사, 공영방송 적폐 인사들을 쫓아내야
김언경_ KBS와 MBC의 현재 상황을 먼저 알려달라. 내부에서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그리고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말해달라.
성재호_ 오늘 시민행동 발족식에 많은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참여해 주셔서 뭉클했다. 죄송한 마음도 컸다. 우선 우리, KBS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정상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은 훨씬 높은 수준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정상화의 시작은 이른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내내 공영방송을 농락해 온 ‘방송장악 대리인’들을 공영방송 안에서 뿌리 뽑는 작업이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 즉, 박근혜가 임명한 사장과 이사를 쫓아내야 한다. 그들을 그대로 둔 채로 내부에서 기자와 피디들이 싸워봤자 한계가 있다.
어제(7월 12일) <추적60분>에서 유성기업을 다뤘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10년인가 11년인가 KBS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정부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청와대 스피커 역할을 하면서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현재 고대영 사장은 굉장히 불안해 하고 눈치를 보고 있다. 작년과는 다르게 KBS는 조금씩 제대로 된 보도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고대영 사장을 비롯해 방송장악의 대리인들을 쫓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서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출근길에 피켓도 들고, 퇴근 시간을 기다려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4주째 얼굴도 못 보고 있다. 명색이 공영방송 사장이라는 자가 직원들 앞에 나서지를 못한다. 고대영 사장은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퇴근한 적도 있다.
예전 KBS 국정감사에서 고대영 사장이 보인 모습 때문에 강한 캐릭터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 고대영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권력 앞에 한없이 약한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의 뒤를 봐주던 박근혜 권력이 무너져버렸다. 그래서 고양이 피해 도망다니는 생쥐처럼 도망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KBS 이사회도 문제가 크다. 사장 거수기 노릇을 하는 이사회다. KBS 구성원들은 ‘이인호 이사장 체제’라고 부른다. 박근혜가 임명한 이사들이 자진 사퇴를 하지 않을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에 해임이라도 요청할 계획이다. 방통위는 과거 KBS 이사를 해임한 적도 있다. 그리고 전임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도 KBS 이사를 불러 사표를 쓰게 한 적도 있다. 물론, 정치 권력이 공영방송 이사회를 주무르라는 뜻이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새롭게 구성되면 부적격 이사를 걸러내는 작업을 국민과 함께 요구할 생각이다.
김언경_이사회와 경영진 전체의 사퇴를 말하는가?
성재호_ 그렇다. 현재 여의도 KBS 본관 주변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시민단체와 KBS의 직능단체, 역대 노조 집행부들도 현수막을 걸었다. 오늘은 ‘고대영 퇴진’, ‘이인호 퇴진’이라고 적은 스티커를 사내 곳곳에 부착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고대영 사장과 이인호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데, 끝까지 버틴다면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김언경_MBC 상황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김연국_ 많은 시민이 김장경 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김장겸 씨가 보도국 기자 선배인데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이전에는 존재감이 별로 없던 사람이다. 그래서 김장겸 사장에 대해 취재를 해봤다. 지금 하는 말이 다소 명예를 훼손하는 평가가 될 수 있지만, 일단 나는 들은 말을 그냥 옮기는 것이다. 같이 일한 MBC 구성원들의 평가는 이렇다. ‘게으르다’, ‘제대로 일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 기자는 아니다’, ‘사내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정치부에 그렇게 가고 싶어 했고, 정치부에 보내주지 않으면 일을 안 했다’, ‘정치부에서는 취재 보다 정치인을 만나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이명박근혜’ 시절에 사장이 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장겸 씨가 처음 보직을 맡은 해가 이명박 정권 집권 첫해인 2008년이다. 당시 그는 국제팀장을 맡고 있었다. 그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가 사상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시차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 수락 연설을 마친 직후 아침 편집회의가 열렸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의 당선과 이후 한미 관계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할 때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주요 뉴스 아이템으로 배치해야 했다. 그런데 당시 김장겸 국제팀장이 5꼭지만 한다고 발제했다.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편집부장을 비롯해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다섯 꼭지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보도국장이 나머지는 어떤 아이템을 다룰 것인지를 질문했다. 김장겸 국제팀장의 답이 걸작이었다. ‘아니, 오바마 많이 할 것 있습니까? 노무현과 똑같은 놈 아닙니까. 인터넷으로 젊은 애들 선동이나 하고.’ 편집회의에는 한동안 침묵만 흘렀다.
김연국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
물론 그날 MBC <뉴스데스크>는 물론이고 다른 지상파 뉴스 모두 20꼭지 이상 오바마 당선을 다뤘다. 이 사건을 전해 듣고 ‘정말 비뚤어진 생각을 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뉴스를 뉴스 가치로 판단하지 않고, 개인의 왜곡된 정치의식을 기준으로 사사롭게 판단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하나의 해프닝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도 이 사람이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을 거쳐 MBC 사장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 시기는 이명박 정권이 광우병 우려를 보도한 <PD수첩>을 타겟으로 해 MBC를 장악하려던 때였다. 이때부터 김장겸 씨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먼저 2011년 2월에 정치부장으로 승진한다.
1년 전인 2010년 김재철 사장이 들어와서 망가지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은 이에 맞서 39일 동안 파업을 벌였지만, 해고자 2명을 포함해 수많은 징계를 당하고 패배했다. 김장겸 씨가 정치부장이 된 후 MBC 뉴스가 본격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한다. 주요 사건이 몇 개 기억난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한미FTA 재협상, 장관 인사청문회 관련 검증 보도를 모두 누락시킨다. 첫날에는 보도하지 않는다. 둘째 날에도 침묵한다. 셋째 날에 마치 처음 보도하는 것처럼 여야 공방으로 한 꼭지 처리하고 만다. 민언련이 더 잘 알겠지만, 전형적인 수법이다.
1년 전 39일 파업에 패배한 후 내상을 입은 조합원들이었지만 더는 참지 못했다. 뉴스를 이렇게 망가지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2012년이 되자마자 기자협회에서 총회를 소집하고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 불신임 투표를 했다. 그런데 핵심은 ‘김장겸 정치부장을 인사 조처하라’는 것이었다. 김장겸 정치부장이 있는 한 MBC 뉴스가 계속 망가진다는 우려였다. 그런데 당시 보도국장이 비공식적으로 ‘나는 그 인사 못 한다. 내가 그만두겠다’라고까지 말했다. 이미 김장겸 정치부장은 보도국의 실세였다.
그리고 2012년 170일 파업을 벌였다. 김장겸 씨는 170일 파업을 촉발한 장본인이었다. 보도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세월호 유족은 깡패’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애정이나 연민, 연대의식과 같은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오히려 적대감을 가진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MBC 보도를 책임지고 있을까. MBC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사장까지 됐다. 박근혜 탄핵 국면에 ‘알박기’로 3년 임기의 사장이 된 것이다. 김장겸 사장을 쫓아내지 않으면 MBC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김장겸 씨와 함께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김장겸을 사장으로 임명한 당사자다. 고영주 씨는 2013년 이른바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막말을 했다. 이 발언이 나온 맥락을 살펴보면 이 사람이 과거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고 씨는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부림사건의 수사검사였다. 이 사건은 용공 조작 사건인데, 대법원에서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영주 씨는 군사독재 시절 벌어진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된 공안검사 출신이다. 적폐 중의 적폐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박근혜 정권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장 자리에 앉혔다. 대법원에서 재심으로 무죄 판결이 난 사건의 수사검사였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오히려 적반하장격으로 ‘내가 그 사건을 수사했는데 그 사람들 공산주의자가 맞다, 그들을 변호한 노무현, 문재인도 공산주의자’라고 한 것이다. 사법부의 판결조차도 무시해 버리는 처사다. 그러면서 당시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대한민국 적화된다’라고까지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 여전히 방문진 이사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이런 말도 했다. ‘제대로 보도하는 언론은 MBC밖에 없다’며 ‘모든 국민이 MBC를 칭찬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장겸 사장과 고영주 이사장을 내쫓지 않고서는 공영방송 MBC가 예전의 기능, 공영방송으로서의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는 나 혼자의 생각이 아니다. MBC 구성원 전체의 판단이다. 지난 6월에 전체 직원 3,09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2,096명이 응답을 했는데 95.4%가 김장겸 사장 퇴진, 95.9%가 고영주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직원 95%가 그만두라고 하는 사장과 이사장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시작되자 더욱 뉴스를 사유화하고 자신의 선전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쫓아내야 한다.
성재호_ KBS도 마찬가지다. 설문조사 결과 고대영 사장 퇴진 요구가 88%, 이인호 이사장 퇴진 요구는 89%로 나타났다. 직원 10명 중 9명이 그만두라고 하고 있다.
김언경_고대영 사장은 국정감사장에서의 ‘답변하지 마’라고 말한 장면이 강렬했다. 고영주 이사장도 국회에서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에게 ‘빨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우상호 의원은 빨갱이가 아니다, 내가 입증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고영주 이사장의 발언 때문에 회의가 멈췄다가 다시 속개되어서 고영주 이사장에게 다시 질문했는데 해맑게 웃으면서 ‘빨갱이가 맞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 이 사람은 빨간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성재호_ 고영주 이사장의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에 지지 의사를 밝힌 KBS 이사가 있다. 조우석 이사다. <뉴스타파>에서 조 이사에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해당 보도에서 조우석 이사가 너무나 당당하게 ‘그럼’이라고 대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이념 편향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 공영방송 이사인 상황이다.
김연국_ 공영방송은 한 사회의 다양한 여론을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 사회의 여론과 건전한 교양을 위해 공정한 보도를 하라고 시민들에게 일정한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다. 공영방송 종사자들은 이를 위해 일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에 임명된 일부 공영방송 이사 중에 우리 사회 일반 시민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지난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마지막까지 박근혜를 지지했던 약 4% 정도 되는 가장 오른쪽에 치우친 극우파 인사들이다. 김장겸 사장도 고영주 이사장도, KBS의 일부 이사들도 똑같다. 공영방송 이사들이 사상과 여론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극우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이들이 공영방송을 일부 극우파의 선전 매체로 전락시켰다. 당장 물러나게 해야 한다.
성재호_ 87년 6월 항쟁 이후 이른바 형식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조금씩 확대되었다. 언론사들도 조금씩 표현의 자유를 획득했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는 이를 얻어내기 위해 싸워 온 사람들만이 누리는 가치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같이 누려야 한다. 그런데 언론 중에서는 조중동만 표현의 자유를 만끽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고영주나 조우석 같은 극우파 인사들만이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예를 들어 ‘성폭행 위험이 있으니 화장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일까?
김언경_ 표현의 자유라고 보기 어렵다. 혐오 발언이기 때문이다.
성재호_ 맞다. 지금 고영주나 조우석 같은 일부 공영방송 이사의 발언은 혐오를 조장하는 범죄행위다. 사실 우리나라가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범죄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이 막말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말과 글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이들이 이른바 말과 글이 생명인 공영방송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로 있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그래서 방송통신위원회가 문제 있는 이사들에게 해임 등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김언경_ 시민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강혁 언론위원장이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 보장 발언에 대해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재호_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 보장. 3년이라는 임기를 줬으면 임기를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런데 9년 전 정연주 사장이 쫓겨날 때는 왜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았는지 반문하고 싶다. 원론적으로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 보장은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임기를 보장하는 목적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누구로부터의 임기를 보장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공영방송 사장이나 이사의 임기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정치 권력이나 자본 권력과 같은 부당한 권력의 개입으로부터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공영방송의 핵심적이며 기본적인 가치를 지키라는 의미다. 그런데 현재 상황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권력이 물러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과 내부 구성원들이 물러나라고 하는 것이다.
임기가 보장되어 있으니까,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임기도 보장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도 제 역할을 못하면 물러나는 마당에 국민과 내부 구성원들이 물러나라는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를 보장해 줄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그들은 공영방송의 가치를 훼손하고 망쳐 온 사람들이다. 시청자만족도 평가지수만 보더라도 KBS와 MBC 모두 바닥을 치고 있다. 모든 지수가 작년 10월을 기준으로 JTBC 밑으로 하락했다.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이유를 제대로 살펴야 한다.
김연국_ 방송사 사장의 이상적인 본보기가 있다. 사장은 경영을 책임지는 동시에 공정 보도와 공정방송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도 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기자와 피디, 아나운서, 엔지니어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역할이다. 이것이 공영방송 사장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황우석 사건을 모델로 한 영화 <제보자>에서 담당 피디가 사장이 탄 승용차를 막고 방송강령을 외우는 장면이 있다.
성재호_ <PD수첩>에서 황우석 사건을 다룰 때 실제로 그랬는가?
김연국_ 실제로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성재호_ 한학수 피디가 광우병 관련 프로그램을 낼 때 진짜 그랬나 궁금했다.
김연국_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사장이 차를 멈추고 돌아와 ‘방송하라, 집에 가서 보겠다’고 말한다. 임기를 보장받아야 하는 사장은 바로 이런 사장이다. 권력이나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구성원들이 제대로 방송할 수 있게, 마음껏 자기 끼를 펼칠 수 있도록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줘야 한다. 임기 보장은 이러한 역할을 사장이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난 9년 동안 MBC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사장은 내부 구성원들이 공정방송을 하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았다. 정치 권력과 추악하게 결탁해 특정 이념집단의 사적인 뉴스로 전파를 낭비했다. 이런 사장에게 임기 보장? 아무런 의미가 없다. 쫓아내야 한다.
그리고 언론자유는 방송사 경영진의 방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언론자유를 좁혀서 바라봐도 언론 종사자들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복무하는 데 필요한 자유를 의미한다. 방송법과 방송강령이 언론인들에게 부과한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언론자유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가? 지난 9년 동안 기자와 피디를 해고하고 쫓아냈다. 정권이 바뀐 후 MBC 노동탄압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이 시작되었다. MBC 경영진은 ‘언론자유 침해’, ‘방송장악’ 운운하며 <뉴스데스크>를 도배했다. 특별근로감독을 받게 된 이유 등은 전혀 말하지 않는다. 얼마 전 MBC 예능 피디들이 성명을 냈다. ‘사장 당신이 너무 웃겨서 우리 일을 못 하겠다’. 얼마나 기가 찼으면 예능 피디들이 이런 성명을 냈겠는가.
성재호_ KBS도 드라마 피디들이 현수막을 걸었다.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막장 사장 나가달라’고. 드라마나 예능하는 사람들이 재치가 있다.
김연국_ 방송통신위원회는 법적으로 KBS 이사에 대한 임명 추천권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의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영방송 관리·감독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던 이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성재호_ 방송통신위원회가 새롭게 구성이 된 후에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일이 방송에 개입하는 것으로 비칠지 모른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공영방송을 노골적으로 자기 손안에 두려고 했다. 그런데 공영방송 이사들에게 방송법 위반 의혹과 혐의가 드러났다. 그러면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했던 방송통신위원회가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방송통신위원회에 KBS의 부동산 매각이 의안으로 올라갔다. 방송법에 따르면 KBS의 자산 매각은 KBS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그러면 이사들이 들고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회사가 정관과 방송법을 위반했으니까. 일부 이사들이 문제를 제기하니까 구 여당 추천 이사들이 머릿수로 문제가 없다며 이를 덮었다. 이들 이사도 방송법 위반에 동조한 것이다. 이런 지점을 엄중하게 문제 삼아야 한다. MBC도 비슷한 사례가 많을 것이다.
공영방송 내 금지어 세월호, 친일, 탄핵…
성재호_ KBS에는 금지어가 있다. MBC의 금지어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친일’은 KBS에서 금지어다. 이인호 이사장이 오기 전부터 친일을 다루는 것은 금기였다.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가짜 보수 세력들의 이론적인 기반을 뉴라이트가 제공했다.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도 아닌데 소위 ‘대안 교과서’를 펴내기도 한 세력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이승만 찬양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방영되었다. 원래 5부작으로 편성한 것을 내부에서 싸워서 3부작으로 줄였다.
그리고 대표적인 친일파이며, 간도특설대 대원이었던 백선엽 찬양 다큐멘터리도 나갔다. 뉴라이트의 대모라고 불리는 이인호 이사장이 부임한 후에 <친일과 훈장>이라는 친일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결국 불방되었다. 2015년 6월 KBS <뉴스9>에서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이 일본에도 망명 의사를 타진했던 사실을 보도했다. 그 보도로 국장 2명과 부장 1명이 직위해제를 당했다. 보도에서 사소한 부분이 틀렸다는 이유였다.
성재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
2019년은 임시정부 100년, 대한민국 100년이 되는 해다. 이 정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해라면 보통 5년 전부터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내부에서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해도 전혀 진행되지 않는다. 일부 이념 편향 세력이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김연국_ MBC는 금지어가 너무 많다. 그래서 허용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 박근혜 탄핵 국면이 한창일 때 탄핵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제작을 진행한 피디가 있다.
그런데 김장겸 사장 취임식 당일 본부장이 갑자기 이 다큐는 안된다며 불방 통보를 했다. 그리고 담당 피디를 MBC 3대 유배지 중 한 곳인 구로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보냈다. 일단 탄핵은 금지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6월 항쟁 30주년 기념 다큐를 준비하던 피디가 있다. 그런데 김장겸 사장 취임식 당일에 똑같이 불방 조치가 되었다. 그리고 담당 피디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인사위에 부친 이유는 허가 없이 예산을 미리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는 MBC에서 가장 큰 금지어 중 하나다. 김장겸 사장은 보도국장 시절 ‘세월호 유족이 깡패’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건 당일 ‘전원 구조’라는 초대형 오보를 가장 먼저 날린 곳이 MBC다. 백번 천번 양보해서 오보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끝까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올해 5월에 세월호를 인양할 때 <시사매거진 2580>에서 세월호 인양을 보도했다. 당시 기자가 국장에게 온갖 시시콜콜한 간섭을 들었다. 정말 놀라웠던 건 기사에서 ‘진실’, ‘책임규명’이라는 말을 빼라는 것이었다.
세월호를 다루면서 진실과 책임규명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니. 세월호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사례가 너무 많아 모두 열거하기는 힘들지만 이런 아이템을 다룬 담당 피디와 기자는 대부분 인사위에 회부되거나, 유배를 갔다. 기사에 특정 단어를 넣었거나, 특정 아이템을 발제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지난 9년 동안 MBC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금지어가 있다. 바로 ‘김장겸’이다. 김장겸 사장이 취임할 때 노동조합에서 성명도 내고, 집회를 열고 했다. 포털사이트에서 ‘김장겸’을 검색하면 부정적인 기사들이 먼저 노출된다. 그래서 홍보팀에서 특이한 지시를 한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런칭 등을 포함해 MBC에서 배포하는 모든 보도자료에 ‘문화방송(대표이사 김장겸)’을 반드시 넣도록 한 것이다. 이른바 포털에서 기사 밀어내기를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포털에서 ‘김장겸’을 검색하면 부정적인 기사가 훨씬 많다.
김언경_ 혹시 KBS에서 ‘고대영’은 금지어가 아닌가?
성재호_ ‘고대영’은 금지어는 아니다. KBS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고대영 찾기 운동을 해야 할 판이다. 직원들이 사장 얼굴 보기가 너무 어렵다. 사장을 만나야 문제를 해결할 텐데 말이다.
김언경_ 고대영 사장이 출근을 하긴 하는 건가?
성재호_ 출근을 하는 것 같은데 얼굴 보기가 어렵다. 엊그제에 집행부와 중앙위원들이 오후 5시 반에 사장 전용차에 몰려들었다. ‘얼굴 좀 봅시다’하고. 그런데 결국 다른 곳으로 퇴근했다. 다음 날 인사부에서 노동조합 상근자가 아닌 중앙위원들에게 문서를 보냈다. 퇴근 시간 전에 피켓 시위를 했으니까 근태처리를 하겠다고 말이다.
김연국_ MBC 노조에서 김재철 사장을 찾으러 다닐 때 쌓은 노하우를 전해줘야 할 것 같다. 2012년에 김재철 사장 찾는 일을 170일 동안 했다. 파업 기간 내내 회사에 나타나질 않아서 노동조합에서 ‘김재철 수배령’까지 내렸다.
성재호_ 김재철 사장이 파업에 동참한 건 아닌가?
김연국_ 아, 그런가? 집에서 파업에 동참했던 걸까? 김재철 사장이 두 번 목격된 적이 있다. 한 번은 <시사인> 기자가 왠지 낯이 익은 사람이 있어서 ‘혹시 MBC 김재철 사장 아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김재철 사장이 ‘사람 잘 못 봤다’며 세 번을 부인했다. 그래서 기사가 크게 난 적이 있다.
또 한 번은 한겨레신문사 맞은편에 있는 사우나에서 <한겨레> 기자와 마주쳤다. 그래서 <한겨레> 토요판 특집으로 인물기사가 크게 실렸다. 고대영 사장을 만나려면 공원과 사우나를 뒤져보셔야 할 것 같다.
김언경_ 김장겸과 고대영 사장도 문제지만 일부 이사들도 문제가 심각한 사람들이 있다.
성재호_ 그렇다. KBS 조우석 이사는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이다. 표현이 ‘일베’ 수준이다.
김언경_ MBC에 궁금한 내용이 있다. 안광한 전임 사장에 대한 예우가 무척 대단하다고 들었다. 예전부터 그런 예우가 있었나? 국민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김연국_ 예전부터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퇴임한 사장에 대한 예우는 노동조합에서 확인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김재철 사장부터였다. 정확하게는 김재철 사장부터 적용할 수 있도록 엄기영 사장 시절,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재철 사장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로부터 해임을 당해 예우를 챙기지 못했다. 김재철 사장이 예우 관련 규정대로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에서 해임되었기 때문에 안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성재호_ KBS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KBS 이사는 모두 비상임 이사다. 그런데 이인호 이사장에게 차량이 지급되고 있다.
김언경_ 상근하지 않는 이사장에게 차량을 지급한다는 건가?
성재호_ 그렇다. 이 차량이 매일 운행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전용차와 전용기사가 배치되어 있다. 이는 낭비다. 비용의 낭비도 문제지만, 이사의 자질을 좀 엄격하게 정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사의 결격사유가 추상적인 부분도 있고, 이사 선임 후 문제를 일으켰을 때 이를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했다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김언경_ 민언련 활동가들이 20대 후반, 30대 초반으로 젊다. 청소년 시절은 TV를 볼 시간이 없었고, 스무 살이 지난 후에는 이미 김재철 같은 사람이 공영방송 사장으로 있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활동가들이 KBS와 MBC에 대한 좋은 추억이 없다. 손석희 사장도 갑자기 나타난 뉴페이스같다고 생각할 정도다. 뉴스는 JTBC를, 드라마와 예능은 tvN을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민들에게 공영방송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재호_ 기사 한 줄이 우리 사회의 흐름 자체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훌륭한 보도로 꼽는 기사가 <세계일보>의 ‘기록이 없는 나라’라는 탐사 보도였다. 보도가 나왔을 때는 참여정부가 막 출범했을 때다. 당시에는 기록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 보도를 계기로 참여정부가 가장 많은 기록물을 남기는 정부로 탈바꿈했다. 보도 하나, 방송 하나가 세상을 바꾸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KBS와 MBC가 제정신만 차리고 있었으면 박근혜는 아예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거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KBS가 이른바 ‘십알단’ 특종을 했다. 그런데 특종을 하고도 더 키우지를 못했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국정원 직원의 ‘셀프 감금’ 사건을 공영방송이 집중적으로 파헤쳤다면,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을 때 경찰이 완료하지도 않은 설익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정 후보의 편을 들었다.
사드 배치 논란, 세월호 진상규명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도 하곤 한다. 그동안 공영방송의 책임을 내버려 둬왔던 사례를 정리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겠다고 하면 어떨까. 이 과정이 먼저 되어야 시민들이 ‘공영방송이 이런 역할을 해야지, 공영방송이 이래서 필요하지’에 대해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공영방송에 많은 분들이 화가 나 있다. 그리고 세상이 바뀐 지금, 이 시기에도 공영방송이 제대로 바뀌지 않고 있어서 더욱 화가 나실 것이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시민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시민들이 채찍질이든, 몽둥이질이라도 좋으니 관심을 기울여주셨으면 한다. 공영방송은 우리 사회의 큰 자산이다. 그래서 더욱 버릴 수는 없다. 지금은 쓸모가 없더라도 잘 고쳐서 써야 한다. 그리고 현장에는 아직도 괜찮은 기자와 피디들 많이 남아 있다. 그런 좋은 기자와 피디들이 현장으로 돌아와 제대로 보도할 수 있게 시민들이 도와주면 좋겠다.
지금 공영방송에는 수많은 ‘손석희’들이 깨어나고 있다
김연국_ 1997년 12월에 MBC 기자로 입사했다. 입사할 때는 몰랐는데 언론인을 지망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입사하고 싶은 언론사 부동의 1위가 MBC였다고 한다. 앞에서 tvN과 JTBC 말씀했는데, tvN과 JTBC의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과 뉴스를 만드는 이들이 모두 MBC와 KBS 출신이다.
MBC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 국장책임제다. 국장이 책임을 지고 일선에 있는 기자와 피디의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그들의 권한을 인정해주는 문화가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그래서 예능과 드라마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시도할 수 있었다.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문화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성재호 본부장께서 지난 9년 동안의 ‘자기 반성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89년에 이미 있었다. 군사독재 시절 MBC가 행했던 수 많은 잘못된 보도를 반성하는 1시간 분량의 다큐를 만들어서 방영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88년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만들어진 때였지만, 대통령은 여전히 노태우였다. 군인이 대통령이던 시절이던, 이때부터 5월 광주 다큐멘터리가 전파를 탔고, 우루과이라운드와 쌀 수입 개방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도 방영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방영하기까지 공영방송 내부에서는 수많은 투쟁이 있었다. 방송이 그냥 나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89년에 방영한 프로그램 해설을 손석희 아나운서가 했다. 누군가는 손석희를 비롯해 당시에 방송에 종사하던 모두가 부역 언론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군사독재 시절의 잘못을 처절하게 반성했고, 파업을 비롯한 여러 투쟁으로 공영방송에 필요한 장치를 하나씩 마련해 왔다. 방송 구성원들은 양심에 따라 방송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해야 좋은 방송을 만들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아직 MBC 구성원들의 DNA에 그러한 문화가 남아 있다고 믿는다. 비록 시간이 조금 걸릴지는 몰라도 시청자들이, 시민들이 MBC를 포기하지 않고 채찍질하고 독려해준다면 좋은 방송을 만들었던 DNA를 깨워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재철 사장 이후 안광한, 김장겸 사장까지 경영진은 MBC의 이러한 문화를 파괴하려고 했다. 2012년 170일 파업 기간 시용기자를 50명가량 채용했다. 그 이후 보도국에서만 100명 가까운 기자를 쫓아내고 경력 기자로 채워 넣었다. 물론 경력 기자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동안 이들이 쓴 기사는 철저하게 기록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불공정 왜곡 편파 보도를 반복해 온 이들은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영방송의 신뢰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자, 피디, 아나운서들이 현업에서 쫓겨나 스케이트장을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지난 5년 동안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싸우면서 지치기도 했지만, 노동조합을 지켜냈다. 그 기간 언론인으로서 때를 기다리며 의지를 불태우고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다시 펜을 잡으면, 내가 다시 마이크를 잡으면 정말 제대로 된 뉴스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가득할 것이다.
지금의 손석희를 만들어 낸 군사독재 시절처럼, 지금 MBC에는 100명의 잠재적인 손석희가 있다. 그래서 낙관한다. MBC에 각인된 공정방송이라는 정신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 그동안 공영방송을 망친 책임을 묻는 것도 정확하게 할 것이다. 쫓겨났던 기자와 피디 모두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다. 공영방송다운 MBC로 만들어 낼 것이다.
김언경_ 마지막 질문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고난의 시절을 보냈다. 내부 구성원들이 이를 극복하고 다시 공영방송으로 되돌릴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진단해 달라.
김연국_ MBC 금지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파업’이다. 2012년 170일 동안 김재철 쫓아내고 공영방송을 복원하기 위한 파업을 벌였는데 패배했다. 처절하게 패배했다. 해고와 중징계, 부당 전보, 대체인력 투입까지 회사가 망가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다시 싸울 수 있을까, 다시 파업을 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다. 파업하자는 말 꺼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결정적인 계기는 촛불의 힘이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아직 민주주의에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도 다시 싸우자는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전략적으로 봤을 때 파업 없이 승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김장겸과 고영주를 쫓아내는 그 날 MBC는 파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MBC 구성원들은 시청자, 시민의 응원을 등에 없고 지난 시절을 치유하는 과정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성재호_ 같은 생각이다. 시민들이 함께 해야 KBS 고대영 사장과 이인호 이사장 같은 공영방송의 적폐를 걷어낼 수 있다.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 정말 간절하다.
진행 김언경 사무처장 글·사진 박제선 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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