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호] [여는글] 종편 감시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등록 2017.06.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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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_02.jpg “바퀴벌레처럼 숨어있다 눈치 보며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어느 정치 세력에 대 막말만이 아니다. 종편의 얘기이기도 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TV조선 등 3개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사를 재승인했다. 심사 점수에 미달한 TV조선에는 생방송 시사 프로그램 축소, 1년 동안 법정 제재 3번 받을 경우 프로그램 폐지, 다른 종편에서 제재받은 진행자·출연자 출연 배제 등 방송의 공정성·공익성·공적 책임을 위해 스스로 제출한 계획들을 준수하라는 얼핏 까다로워 보이는 조건이 붙었다.

 

또한, 6개월 이내에 재승인 조건에 대한 이행실적 중간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재승인 조건을 반복해서 위반하면, 업무 정지, 청문, 재승인 취소 등의 절차를 밟겠다”고 엄포도 놓았다. TV조선은 “올해 새롭게 태어나는 원년으로 삼겠다”며 바짝 엎드리는 체했다. 진정성은 매우 의심스럽다. 지난 2014년 심사에서도 TV조선은 공적 책임·공정성 확보방안 마련 등을 조건으로 재승인을 받았지만, 오보·막말·편파보도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 


시민들은 새 정부의 정책과 국정에 큰 기대를 걸며 희망에 부풀어있다. 지긋지긋한 국정 농단 세력들이 물러나고 반듯한 시대로 나아가는 현실을 지켜보며 긴장을 풀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새 시대는 느리게 조금씩 오고 있을 뿐 여전히 곳곳에는 적폐가 쌓여있다. 이미 요소요소를 점거하고 있는 적폐 세력의 저항은 끈질기다. 조그만 틈만 보이면 언제든 반격의 빌미만 노린다. 종편이 시민들의 민심을 이간질하고 왜곡하여 개혁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이번에 재승인 심사를 통해 단단히 경고를 하였으니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지 모른다. 조건부라는 코뚜레를 해서 고삐를 조여 놓았으니 여차하면 붙잡아맬 수 있지 않겠느냐고 여길 수도 있다. 게다가 정권교체로 규제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구성도 바뀔 테니 더 이상 함부로 준동하지 못할 것이라며 마음을 놓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그러한 바람은 어그러졌다. 재승인이 되자마자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다짐은 버려졌다. 3년 뒤에는 또 재승인 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아직 먼 훗날의 일일 뿐이다. TV조선 등은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를 흠집 내고 불리한 의제를 부각하는데 앞장섰다. 10년 전 북한 인권 결의안, 문 후보 아들 취업 관련 사안들을 부풀려서 안보가 불안하다거나 정직하지 않은 이미지를 덧씌웠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도 국정 개혁 발목 잡기는 여전하다. 적폐 청산과 개혁은 과거를 지우기 위한 정치적 보복으로 몰고 간다.

 

우리 단체의 모니터에 따르면 TV조선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관련 국방부 허위 보고 사태 조사 지시’를 ‘이명박·박근혜 정권 지우기’로 규정했다. 국방부는 별 잘못이 없는데 정부가 정략적인 의도로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이라는 의심을 퍼뜨리는 것이다. ‘4대강 사업 재점검’은 ‘MB 죽이기’의 일환이라는 의미를 구성한다.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정치보복을 하는 치졸한 정권’이라는 프레임을 만든다. 적폐 청산은 촛불 민심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탄압이라는 틀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종편들은 국정개혁을 방해하고 수구세력과 국정 농단의 잔존 세력들을 결집시키는 주장과 관점을 보급하는 무기고다. 종편이 만들어낸 정보와 해석들이 수구 세력 주장의 모티브로 재가공되고 살과 뼈가 더해지면서 퍼져나간다. 혐오와 저주로 가득 찬 가짜 뉴스를 만드는 원형질이 되기도 한다. 언론보도에 가장 민감한 대선도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종편에 대한 시름은 조금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정작 공정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은 이제부터다. 어쩌면 정권을 창출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이해가 얽히고 여전히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있는 현실적 조건에서 높아진 시민의 기대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혁 실현의 동력인 시민들의 지지와 참여를 형성하고 이끌어내는 것은 공정하고 깊이 있는 언론 보도다. 


그런데 언론계는 여전히 엄혹한 시절을 벗어나지 못했다. MBC와 KBS에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낙하산들이 이사회와 사장 및 주요 간부와 요직에 박혀있고 보도와 프로그램의 편향성은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다. 수구세력과 한통속이 되어 왜곡된 의제를 설정하고 보수적 논리와 주장을 퍼뜨리던 모습 그대로다. 종편은 그 맨 앞에 서있는 전위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행정규제기관이 나서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수세력은 언론장악과 탄압이라고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를 할 게 뻔하다. 벌써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언론장악시도저지 TF’를 만들겠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결국 시민이 감시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시민 언론주권의 실현이기도 하다. 그동안 민언련의 모니터 활동은 종편들의 실체와 폐해를 생생히 시민들에게 알렸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어떤 사안을 왜곡하고 여론을 교란했는지 ‘깨알 감시’를 해왔다. 종편의 독성이 여론마당에 퍼지지 못하도록 방어막이자 해독제 구실을 했다. 


요즘 진보언론의 보도태도를 둘러싼 논란이 걱정스럽다. 진보언론에 대한 그동안의 서운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개혁 진보진영을 다 합쳐도 힘이 모자랄 판이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기득권을 쥐고 있는 적폐 세력의 힘은 강고하다. 분열은 촛불 혁명으로 분출된 시민적 열망에 대한 배신이 될지도 모른다. 조금만 틈을 주면 종편이 앞장서 개혁진영을 찢어놓으려 할 것이다. 종편이 반동의 여론을 획책하지 못하도록 감시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조일 때이다.

 

정연우 이사·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