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에 ‘청춘이기를 포기하고 사는 우리 세대를 위한 공감 에세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책은 성공을 자랑하기 바쁜 세태 속에서 작은 위로를 전해준다. 저자 유정아 회원님은 현재 ‘팟빵’에서 근무하고 있다. 자신을 ‘출근길 지하철에서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그 머리에 그 옷을 입고 그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소개하지만, 평범함 속에서도 빛나는 사람이다. 민언련과는 7년 째 연을 맺고 있다. 책 이야기와 민언련 활동, 그리고 삶을 고민하는 2030세대의 이야기를 나눴다.
망한 이야기를 소리 내서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엄재희: 인터뷰 준비하려고 책을 읽어봤는데요,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자기계발서들이 쏟아지는 서점가에서 보기 드믄 책이었는데요, 쓰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유정아: 써야겠다고 해서 썼던 책은 아니었고요, 작년 초에 페이스북에 ‘소비에 실패할 여유’라는 글 하나를 올렸어요. 사실 회사에서 일하기 싫어서 썼는데(웃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해주셨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3천이였나?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그게 많이 커졌어요. 제가 자세를 잡고 썼던 건 아닌데. 힘 빼고 써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랬던 건지. 어느 출판사 편집자가 그 글을 보고 연락을 주셨어요. 에세이집을 써볼 생각이 없냐고. 그래서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못할 것도 없지”라며 승낙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웃음) 그렇게 1년 정도 준비해서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엄재희: 책을 읽어 보면 실패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꺼내놓기 어렵지 않았나요?
유정아: 사실 그 얘기를 해 보자고 시작한 책이니까요. 제가 무딘 편인지, 원래 그런 얘기를 하는 걸 크게 어려워하는 성격은 아니었고요. 또 성공이냐 실패냐 물으면 물론 실패담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제가 살아온 과정 중 하나니까 그걸 전부 지워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워낙 많이 망해서(웃음) 한 걸 다 지우면 몇 년 안 남아요.거기다, '소비에 실패할 여유'가 처음 여기저기 퍼질 때 제가 받은 피드백의 대부분이 '내 이야기 같다' '공감된다' 같은 내용이었거든요. 생각보다 저 같은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렇다면 이런 망한 이야기(웃음)를 좀 소리 내서 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죠. 그런데 아무도 그런 걸 얘기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총대(?)를 메는 심정으로…
앞으로 계속 탄탄대로를 달리며 살 수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는 않을 거잖아요. 성공할 때도 있지만 망할 때도 있겠죠. 어떤 식으로든 안 망할 수는 없어요. 그 때 잘 버티려면 망하는 것에도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엄재희: 우리 세대에 정아 씨 책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요즘도 하는 고민이 있으신가요?
유정아: 제가 30대 초반인데, 요즘 친구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면 부쩍 자주 나오는 주제가 있어요. 앞으로 최소한 4-5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출퇴근만 반복하면서 ‘일 집 잠’ ‘일 집 잠’만 하면서 사는 건 정말 못할 것 같다, 사는 데에 일 말고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그게 뭘까. 어떻게 해야 균형 있게 살 수 있을까. 그런 거요.
엄재희: 글을 전업으로 쓰시는 것도 생각해보셨어요?
유정아: 그건 배가 고플 것 같아요.(웃음)
엄재희: 책을 내고 나서 변화가 있었나요?
유정아: 일단 연락이 끊긴 사람한테서 연락이 오더라고요(웃음) 서점에서 봤다, 이게 네 책이냐, 하면서 연락이 와서,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요. 많이 달라졌죠. 회사에서 하는 일 말고 내 것이 하나 생긴 것이니. 판매량이랑 관계없이 좋은 선물을 받은 거 같아요.
엄재희: 후속작을 쓰실 계획은 있나요?
유정아: 지금 준비하고 있는 건 없고요. 혼자 생각해보기로는 나중에, 4,50대가 되어서 지금 우리 부모님 나이쯤 되었을 때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와 비슷한 책을 써 보면 재밌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생각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해서.
엄재희: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유정아: 본인도 그랬다고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굉장히 감사하고요. 한편으로는 이게 대부분 분명히 제가 힘들었을 때의 이야기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이렇게 슬프게 살았다' '이렇게 불쌍했다' 이런 걸 보여드리려고 쓴 것은 아니니까 마냥 슬프고 가엾은 얘기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때,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쓰려고 시작한 건 아니거든요. 정말 평범하고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일상도 이야기가 된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 책을 보시는 분들이 각자의 일상을 하나하나의 '이야기'로 인식하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각자 자기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요.
제 책도 뭔가 결론 난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꼭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살아가다 중간에 쓴 이야기고, 아직 끝난 것도 아니니까 어떻게 끝날지도 모르죠(웃음) 뭐가 맞는지도 모르고요.그냥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나랑 이런 건 비슷하구나, 정도로 보아주시면 그게 제일 감사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만들어서 방송할 수 있는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
엄재희: 지금 팟빵에서 일한다고 들었어요. 팟빵이라는 회사 소개 좀 해주세요?
유정아: 팟캐스트 많이 듣는 분들은 아실텥데요. 팟빵은 팟캐스트, 오디오 콘텐츠 전문 플랫폼입니다. 오디오 플랫폼으로는 국내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요. 가끔 어떤 분들은 팟빵 자체를 방송국 같은 매체로 생각하시기도 하는데, 저희 성격은 그보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가깝죠.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어 올릴 수 있는 오픈 플랫폼입니다.
저는 팟빵에서 소셜마케팅을 담당하고 있고요. 그 중에서도 팟빵 내에 있는 좋은 팟캐스트들을 발굴해서 외부 채널에 홍보하는 업무를 주로 맡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앱 내에도 제가 관리하는 팟캐스트 큐레이팅 서비스가 생겨서, 그것도 담당하고 있어요.
엄재희: 팟빵에서 일해보시니 어떤가요?
유정아: 단순히 ‘우리 회사’라는 것 이상의 자부심이 있죠. 규모가 작은 회사인데도 파급력 있는 오디오 콘텐츠를 이만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일단 굉장한 의미가 있고요. 또 기존의 방송에서는 들을 수 없는, 오로지 '팟빵'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니까, 팟빵에 올라오는 팟캐스트들이 다루는 주제를 보면 현재 제도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들에 비해 이야기가 진전되는 속도도 빠르고, 또 엄청나게 다양한 시각들이 쏟아져요. 트렌드에도 민감한 편이고요. 그 가운데서 일하고 있으니 정신없지만 재미도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뿌리를 둔 각 분야의 유명 인사들을 보면 또 기분이 좋기도 하고요.
엄재희: 팟캐스트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해보셨나요?
유정아: 팀 사람하고는 해볼까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막상 하려고 하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요. 만날 때마다 해보자 해보자하지만 실제로 해본 적은 없고요.(아이디어는?) 회사 다니는 친구들과 익명으로 모여서 회사 사연만 받아서 까는 걸 해보자. 근데 실제로 그런 방송들이 몇 개 있기도 하고. 회사원들은 약간 화가 있어서 (웃음)
엄재희: 민언련과 팟빵의 차이를 느끼시나요?
유정아: 많이 다르죠. 아무래도 민언련은 시민단체니까 기업인 팟빵에 비하면 좀 더 가치중심적이라고 해야 할까, 가치 지향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죠. 공익성이 더 강하기도 하고요.
반면 팟빵은 사기업이고 또 플랫폼이니까, 특정한 가치를 지향한다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모여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좋은 판을 깔아주는 걸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 1만 3천 개 정도의 채널이 있는데, 팟빵 하면 대부분 정치 시사 팟캐스트를 많이 생각하시지만 그 외에도 정말 다양한 주제의 방송들이 모여 있거든요. 저희는 그 분들이 불편함 없이 하고 싶은 방송을 하시고, 또 청취자들이 듣고 싶은 방송을 무리 없이 찾아 들을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게 최우선이에요. 그게 저희의 가치라면 가치겠네
민언련을 만나기 전과 후, 많이 달라졌어요
엄재희: 민언련 활동을 오래 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계기로 인연을 맺었나요?
유정아: 2011년 가을 학교에 언론 학교 포스터가 붙었어요. 재미있어 보여서, 그 자리에서 전화로 등록했죠. 언론학교 수업을 듣고 나서, 유민지 활동가가 신문분과가 있는데 한번 해볼 생각 있냐 하셨거든요. 제가 그때 언론사 준비를 하던 터라, 활동을 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엄재희: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유정아: 분과 활동이 제일 많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6개월 정도 분과장을 했었는데, 그때가 사람도 많고 다들 이렇게 으쌰으쌰 해보자는 분위기였거든요. 신문도 다양하게 읽고 보고서도 쓰고 한 반년에서 1년 정도 재밌게 했어요. 나중에 2014년에는 선거 보도 모니터링을 했었는데, 그때 세월호가 터지는 바람에 그때부터 세월호 보도 모니터링도 했었죠. (쓰신 보고서 중 하나만 꼽자면?) 제가 썼던 것은 아닌데, 2012년 올림픽 시즌에 스포츠 국가주의 관련 보도를 모니터링해서 보고서를 냈거든요. 태극전사 투혼 무슨 전쟁처럼 이야기하는 표현을 지적했어요. 그게 재밌었어요. 지금도 그런 표현은 많지만요.
엄재희: 그때 함께 활동하던 분들과 요즘도 만나시나요?
유정아: 가끔 만나요. 요새는 다들 직장이 있고 사람이 많다 보니 한 번에 다 모이는 건 힘든데, 일 년에 두 번 정도? 만나요.
엄재희: 유정아 씨에게 민언련은 어떤 의미인가요?
유정아: 진짜로 이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웃음) 민언련을 알게 된 이후 제 진로가 달라졌어요. 원래 신문기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하게만 하고 있었는데, 아마 여기 오지 않았으면 무난하게 본 전공대로 취업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 제가 언론사에 있는 건 아니지만, 언론사 인턴도 해보기도 했고요.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 여러 가지 일을 했죠. 민언련에 오지 않았다면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유정아 회원은 민언련의 미디어위원회의 신입 위원으로 합류하게 된다. 민언련 미디어위원회는 기존 편집위원회의 새로운 이름이다. 지난 3월 총회에서 기존 <e-시민과 언론>, <날자꾸나 민언련>만을 중심으로 논의하던 편집위원회에 민언련 팟캐스트 <미디어탈곡기>와 다양하게 발표하는 동영상까지 아울러 논의하고 기획하자는 취지에서 미디어위원회로 바뀌었다. 유정아 회원이 왜 민언련 미디어위원회에 합류하는 것은 어찌보면 정말 딱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어린’ 미디어위원이 된 유정하 회원이 민언련에서 많은 아이디어로 변화의 바람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인터뷰‧작성 엄재희 활동가, 사진 이병국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