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호] [여는글] 기무사와 대법원 문건과 언론
등록 2018.08.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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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너무 무덥습니다. 피서지가 아니라 에어컨이 완비된 실내에서 피서를 해야 할 정도가 됐습니다. 기무사의 계엄 문건과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문건도 더위에 한 몫하는 것 같습니다. 계엄과 사찰, 재판 거래라는 민주주의의와 헌법의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기무사 해체와 대법원 개혁의 요구가 높습니다.
 
 지난해 탄핵 정국에서 계엄을 검토한 문건들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인 기무사 해체 또는 개편이 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기무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인터넷 댓글 공작을 했고 박근혜 정권에서는 세월호 유가족 등을 사찰했습니다. 기무사의 사찰과 여론조작, 계엄 계획 구상의 행적을 보니, 2011년에 개봉한 영화 [모비딕]이 생각납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1990년 10월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였는데, 아시다시피 [모비딕]은 당시 보안사 요원들이 민간인 사찰을 목적으로 운영했던 위장 카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윤석양 이병 사건은 윤 이병이 조직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보안사에 연행된 뒤, 민간인 사찰에 동원됐고 이 과정에서 취득한 1303명에 대한 사찰 자료를 폭로한 사건이었습니다. 단순한 민간인 사찰이 아니라 1989년 노태우정권이 공안정국을 조성한 직후 수립한 ‘청명계획’의 일환으로 친위쿠데타를 위한 비상계엄이 발동할 경우, 위험한 민간인을 체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국군보안사령부는 국군기무사령부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기무사가 계엄문건을 들고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이번 계엄문건에는 예비 검속을 위한 민간인 사찰 자료는 없는 모양입니다. 공개된 계엄문건에는 비상계엄시 ‘전국 단일 방송(KBS TV와 라디오) 체제로 전환’과 같은 극단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상계엄 선포시에 적용한다는 ‘보도매체 및 SNS 통제방안’을 보면 SNS 통제를 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건에서 매체별 보도검열단 및 언론대책반의 규모를 따져보면 인터넷 포털과 SNS 검열·통제하기 위한 사이버 대책반(유언비어 대응반) 인원이 19명으로 방송반 12명 보다 많습니다. 해외 군사쿠데타(계엄) 경험을 참고하고 미디어환경 변화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계엄 문건은 2016년 터키 군부 쿠데타에서 계엄군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 접촉을 차단한 것을 사례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30년 전, 오홍근 기자의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란 칼럼에 불만을 가진 국군정보사령부 일부 군인들이 오 기자를 테러한 바 있었습니다. 오 전 기자는 최근 출간된 [펜의 자리, 칼의 자리]에 수록된 좌담회에서 군사문화가 병영 밖으로 탈영하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군사문화가 적폐에 이르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게 보수 정당과 정치검찰도 있지만 언론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해서 상고 법원 추진을 위해 박근혜 정부 등과 재판 거래한 정황등를 담은 문건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언론사와 기자를 전방위적으로 접촉하고 보도방향을 제시한 문건들도 드러났습니다.
 
 문건에는 언론을 통해 상고법원 추진의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려는 정황은 물론이고 조선일보 등을 통한 설문조사와 좌담회, 칼럼 등을 이용한 홍보 제안이 여러 문건에 담겨 있습니다. 문건에는 광고비 지급계획도 담겨 있었습니다. 일부 문건에는 부정적인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 설문조사 결과를 정해 놓고 문항을 설계하고 기간을 조정하는 식으로 상고법원에 대한 여론조작을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법원행정처의 활동이 일반적인 정부기관의 정책홍보 영역인지를 따져 볼 수 있겠지요. 상고원의 도입 목적이 사법정의를 위한 정당한 것인지, 호의적인 여론 조성을 위해 부도덕한 여론조작이 추진됐는지를 판단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문건에 따르면 대법관을 증원할 경우 진보세력이 진출할 수 있는 만큼 상고법원을 대안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도입 목적으로 판단됩니다. 언론과 접촉과정에서 최근 거론되고 있는 재판 거래 정황이 사실이라면 정부기관의 정책홍보를 넘어서는 여론조작이자 법원과 언론의 불법적인 결탁일 것입니다.
 
 양승태 대법원 문건은 사법권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흔드는 심각한 사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민언론단체의 시각에서 이 문건들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문건들에서 언론과 홍보의 영역이 이젠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호침투가 심각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기관이 정의롭지 않은 목적을 위해 언론보도의 방향과 여론조사의 내용을 기획해서 언론에 반영하고 여론의 흐름을 바꾸며 그들의 갖고 있는 권력을 언론과 교환하여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려고 한 정황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문건에서 이렇게 기획된 전통매체의 언론보도가 상고법원에 대한 여론의 흐름을 바꿨다고 보는 법원행정처의 평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대법원이 아니라 대기업이 막강한 광고비로 ‘순수한(?)’ 경제적 목적을 위해 언론을 통해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면 이런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 언론은 얼마나 될까요. 양승태 대법원의 체계적인 상고법원 홍보방안은 사법적폐의 문제뿐 아니라 우리사회 언론의 역할과 여론 형성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용성(한서대 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