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흔히 여기저기에서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라고 말하겠지만, 저는 ‘희망찬’이라는 수식어가 참 조심스럽습니다. 지난해를 돌아보면, 세상은 고통으로, 그리고 고통 받는 자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찬 듯 합니다. 올해도 쉽게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듯합니다.
2018년 내내 많은 여성들이 용감하게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이야기했으나, 이 중 많은 사람들은 ‘꽃뱀’이라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예멘 난민 500명이 찾아왔지만, 한국 사람들은 “예멘 난민은 우리의 사회적 지원을 뺏어가고 사회 불안을 조장한다”면서 반대집회까지 열었습니다.
이 세계에 승자는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청년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고, 차별 받던 여성들이 예멘 난민을 혐오합니다. 저마다 자신의 고통이 더 크니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공평하다고, 너의 고통은 중요하지 않거나 가짜라고 주장하는 지금, 우리는 대체 어떻게 희망을 찾아야 할까요?
“연민은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제가 나누고 싶은 책은 <타인의 고통>입니다. 전쟁을 둘러싼 이미지를 분석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성찰한 책이랍니다. (딱 감이 오지요? 술술 읽히는 책은 절대 아닙니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전쟁의 이미지도 점점 사실적이고 잔혹한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전쟁은 사실 그 자체로 잔혹하니까요. 이러한 이미지들은 즉각적으로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충격 효과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스펙타클한 이미지를 전시하는 데 그치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강렬한 이미지에 금세 무디어집니다. 특히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욱 자극적인 이미지를 찾게 되고, 평범한(?) 이미지에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심지어 “가짜”라고 비난하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즐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연민이나 분노를 느끼죠. 그러나 손택은 이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고통 받는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라고요. 그래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가 제안하는 태도는 이러한 것입니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손택의 말대로 한번 이렇게 생각을 해볼까요? 내가 지금 누리는 당연한 것들이 예멘 난민의 고통을 수반한 특권이라고. 너무 억지 아니냐고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에 따르면, 한국산 무기가 예멘 내전에 사용됐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예멘 내전 사진에 한국산 무기들이 여러 번 발견됐거든요. (국방부에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하게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예멘 사람들을 죽인 무기 중 일부가 한국의 GDP를 높였습니다. 그로 인한 세금은 저에게도 조금은 혜택으로 돌아왔을 겁니다. 어쩌면 오늘 친구를 만나러 나온 길에 두껍게 쌓인 눈을 치우는 데 사용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돌아본 뒤 예멘 난민을 생각한다면, 제 감정은 연민이나 분노와는 조금 다를 듯합니다. 예멘 난민의 고통은 저와 전혀 상관없는 문제가 아니라 제가 조금은 연루된 고통이니까요. 예멘 난민은 이제 타자가 아니라, 각각의 이름과 얼굴은 몰라도 저와 고통으로 연결된 사람이니까요.
희망은 1/n, 다 함께 나눠서 만드는 것
올 한해도 미디어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글과 이미지가 쏟아질 겁니다. 많은 소수자들이 등장해서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할 테고, 그와 관련된 혐오 분위기도 계속될 거예요. 물론 이 모든 이슈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명확한 입장을 정할 수는 없겠지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다만 신문이나 방송을 볼 때 타인의 이야기와 이미지가 어떻게 다뤄지는지, 내가 어떻게 반응하며 그 감정 속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마주할 때는 내가 이 고통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도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당장 결론을 내리거나 바로 실행에 옮기지 않아도 됩니다. 원래 성찰과 고민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요. 이렇게 꾸준한 각자 나름의 고민, 그리고 그에 따른 조그마한 변화. 이런 것들이, 말하자면 일종의 ‘희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희망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1/n을 다하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여력이 되면 다른 사람의 몫까지 조금 더 해주시면 더 좋고요.) 모두모두 해피 뉴 이어!!!
글 권박효원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