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자식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이형석 외 6인 씀, 깊은나무)라는 책 개정판이 나왔다. 현대사 속 독재자 10명과 그 자식들의 삶을 추적한 이 책은, 2012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그때는 박근혜를 따로 다루지 않았다. 이번 개정판에는 박근혜와 김정은을 목차에 넣었다. 대표 저자 이형석은 책 서문에서 이렇게 소개한다.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장은 현대사에서 파시즘의 출현, 공산주의 체제의 성립 및 강화 시대를 배경으로 등장했던 독재자들과 그 자식들의 삶을 다뤘다. 두 번째는 식민지 시대와 냉전 체제의 사이에서 집권한 통치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세 번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정치의 전면에 나선 자식들의 사례를 담았다.”
책을 쓴 저자는 모두 여섯 명이다. 대표 저자인 이형석은 <헤럴드 경제> 기자다. 이형석은 ‘베니토 무솔리니의 맏딸 에다 치아노’, ‘사담 후세인의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 ‘박정희의 맏딸 박근혜’,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을 다뤘다. 이형석은 “대한민국에서 부녀대통령은 결코 ‘가문의 영광’이 될 수 없었다”고 판단한다. 박근혜 개인을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박근혜가 평생을 ‘사인’으로 남는 길이 가장 바람직했는데 “박근혜가 정치계로 나서는 순간 비극은 예비됐고, 결국 그를 아는 모두가 최소 4년의 불행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어떤가. 어떻게 독재자인 아버지 김정일의 실패를 딛고 국제무대로 나올 수 있었을까.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랐다. 김정은은 문 대통령과 세 차례 만났고, 6.25전쟁 이후 첫 북미 정상회담을 열고 미국 대통령 트럼프를 만났다. 저자는, 김정은이 “아버지인 김정일이 외부 세계에 대한 극도의 피해 의식 속에 사실상 국제 사회에서의 ‘무대공포증’을 갖고 있었던 것과는 상반된다.”고 평가한다. “10대 때 스위스로 유학을 갔고 일본과 유럽 등을 두루 다녔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개방된 세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11살부터 27세까지 청와대에서 ‘영애’로, 어머니를 대신한 ‘퍼스트레이디’로 살다가 권력을 잡았던 박근혜와는 달랐다.
그 밖에 다른 독재자의 자식들이 살았던 과정도 흥미진진하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잔인한 독재자는 누굴까. 언뜻 히틀러가 떠오르는데 제주대 사회학교 교수 서영표는 스탈린도 그에 못지않은 독재자라고 평가한다. 스탈린의 자식들도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의 딸 스베틀라나는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자살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불신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버지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서방세계로 망명하지만 서방세계는 스베틀라나를 소련을 비난하는 선전도구로 이용했다. 스탈린의 아들 야코프도 스베틀라나처럼 아버지를 부정했고 결국은 자살로 끝났다. 저자는 이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이 “권력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인권 탄압과 학살에 앞장섰던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야코프와 스베틀라나를 동정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아버지를 부정하고 서방세계에 이용당하는 또 다른 ‘독재자’의 자식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독재자’는 평가가 엇갈리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다. 카스트로는 특히 미국이 독재자라고 규정했는데, 그 이유는 쿠바가 친미 독재정권 때 카스트로가 혁명에 성공한 뒤 국유화 과정에서 재산을 축적한 ‘미국 시민권자들’에게 대부분의 재산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미국에 저항하는 ‘도덕적·혁명적 영도자’라는 평가도 많다. 그런 아버지를 부정하는 카스트로의 자식은 숨겨진 딸 알리나 페르난데즈이다. 그녀도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처럼 미국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CNN방송 쿠바 전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녀는 “카스트로의 딸일 때만이 자신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있다.
이 책은 독재자의 자식들은 모두 불행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의 망각은 독재를 재생산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독재와 부패의 결정판’을 보여 준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17년 동안 피의 학살’을 저질렀던 칠레의 피노체트, 그의 자식들은 아직도 그 독재자들을 추종하는 우매한 일부 국민들을 이끌고(?) ‘아버지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다시 정치를 하고 있다. 마치 박근혜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를 보는 것 같다. 결말은 희극 같은 비극으로 끝날 것이다.
강준만 교수는 “12편의 흥미진진한 역사 드라마가 펼쳐져 있”다고 하면서 “평범한 아버지를 둔 자식들에게도 이 책은 아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고 이 책을 추천했다. 정지영 영화감독은 “역사는 종종 순진한 믿음과 때 이른 망각에 엄혹한 대가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흥미진진한 책”이라고 추천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한 번 읽어야 할 책이다.
글 안건모 작은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