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민언련에 가입하여 3년째 ‘회원 캠프’에 개근한 가족이 있다. 바로 박정자 회원 가족이다. 건실한 두 아들 모두 민언련 활동가를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온 가족이 ‘민언련 가족’이다. 먼 길을 마다하고 회원 캠프에 참석하는 원동력은 뭘까. 김언경 사무처장은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부산에 사는 이 가족을 이달의 회원 인터뷰 대상자로 선택했다.
일이 점점 커졌다. 이왕 부산까지 간 김에 부산지역 회원과 ‘번개 술자리’를 갖기로 했다. 통상적으로 회원 인터뷰는 자신이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장소에서 한다고 설명하니 부부는 상의 끝에 봉하마을에 가자고 했다. 결국 회원 부부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 봉하마을도 가기로 했다. 끝이 아니다. 부부가 열심히 활동하는 ‘노무현 재단 사하지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김언경 처장이 짧은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까지 왔다. 이렇게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박정자 회원 가족과의 1박 2일’이 기획되었다. ‘시크’한 매력의 큰 아들(중3), 해맑고 장난기 넘치는 둘째 아들(초5), 따뜻한 사람들과의 만남, 맛있는 음식과 술자리, 찰나의 부산 여행까지, 곳곳에서 민언련을 향한 ‘일상적 애정’이 묻어났다.
인터뷰보다는 ‘부산 여행’
10월 5일 오후 3시경, 김언경 사무처장과 나는 부산역에 도착했다. 박정자 회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9월 있었던 회원 캠프 이후 딱 한 달 만의 재회다. 서울과 부산의 거리감을 생각하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모순적이지만 마치 어제 본 형제자매 같은 친근감도 겹쳤다.
인터뷰는 사하구에 있는 자택까지 향하는 차 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형호 회원은 대뜸 “제가 재작년 회원 캠프에서 딴 ‘처장님과의 식사권’을 지금 쓰는 게 아닙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형호 회원은 2016 년 회원 캠프에서 추첨으로 ‘김언경 처장과의 식사권’을 받았다. 무려 ‘1등 경품’이었다.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이 경품은 기간 제한이 없다. 김 처장도 이 경품을 아직 드리지 못해 미안하던 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형호 회원은 거듭 자신의 ‘룰’을 강조했다. “그건 우리가 서울로 가서 쓸래요. 오늘은 그냥 재밌게 놀다 가세요” 유쾌한 옥신각신 끝에 어쨌든 ‘식사권’은 다음에 쓰기로 했다.
2018년 민언련 회원 캠프, 일단 합격!
사하구 자택에 앉아 본격적으로 ‘입담 회포’를 풀었다. 부부가 ‘최애’하는 회원 캠프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어떻게 가족이 참가하게 되었는지, ‘3년 개근의 원 동력’은 무엇인지 물었다.
이형호 처음엔(2016년) 사실 족구하러 갔어요. 족구가 있었는데 작년이랑 올해 족구가 없어져서 너무 아쉬워요. 뭐 그래도 다른 종목들을 워낙 재밌게 잘 꾸미셔서 괜찮지만요. 사실 나는 운동회하려고 캠프에 가요. 이번엔 내가 제기를 너무 못 찼어. 아휴 참, 그게 너무 아쉬워.
박정자 처음 갈 때는 사실 좀 망설이기도 했어요. 애들도 처음에는 가기 싫다 그랬는데, 한번 가보니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갔다 오면 또 가고 싶다고 해요. 가족 방을 따로 마련해주고 저녁엔 애들도 봐주고, 그렇게 가족을 위한 배려를 잘 해주셔서 그런 것 같아요. 아이들끼리도 잘 어울리다 보니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오더라고요. 캠프 갔다 온 다음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연락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이제 뭐 엄마아빠 때문이 아니라 애들 때문에 가야할 판이에요.
이형호 사실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처음 안내 문자 받았을 때, 우리 가족 다 가면 왕복 교통비 10만 원에 참가비까지 내면 20만 원이 훌쩍 넘게 들어요. 그런 것도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런 망설임이 점점 없어지더라고요. 이번에 올라갈 때는 부산에서 양평까지 우리 식구와 우리와 함께 가입하신 최종성 형님까지 다섯 명이 차 한 대로 다섯 시간을 운전해서 간 거잖아요. 새벽부터 준비해서 아침 7시에 출발했고 다섯 시간이 걸렸는데 난 정말 한 시간 같았어요. 거짓말 안 하고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고 마냥 기대감에 즐겁기만 하더라고요.
민언련이 앞으로 회원 캠프를 홍보할 때 두 회원에게 자문을 구하면 될 듯싶다. 안전을 고려해 대폭 축소 한 캠프의 운동회도 일단은 합격점이란다. 그래도 혈기가 넘치는 이형호 회원과 두 아들은 족구가 없어진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회원들에게 회원 가입서를 주세요”
이형호 회원은 민언련 회원이 대폭 늘지 않는 현실에 상당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회원 캠프자문’은 자연스럽게 ‘민언련 홍보 컨설팅’으로 이어졌다. 분위기가 자못 진지해졌다.
이형호 사실 작년에 부산에서 더 많이 회원을 가입시켜서 올해는 봉고차 한 대 다 채워서 올라오겠다고 말했는데, 올해 내가 그걸 실천을 못했잖아요. 그래서 속이 좀 속이 상했는데요. 이번 캠프에서 강창수 회원께서 회원 한 명당 100명씩 회원 가입을 시켜야 한다면서, 민언련 회원 가입서를 늘 가지고 다닌다고 하셨는데,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했어요. 나도 앞으로 그래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대목에서 두 활동가는 꾸중을 들었다. 부산까지 내려오면서도 왜 회원 가입서를 가지고 오지 않았냐는, 안타까운 마음이 표정에 나타났다.
이형호 다음에 부산이나 다른 지역 가실 때 꼭 회원 가입서 많이 갖고 가셔서 회원들에게 나눠주세요. 다음 캠프 때는 제가 꼭 봉고차 대절해서 10명 넘게 데리고 갈게요. 다음부터는 회원 모임 가실 때 꼭 회원 가입서를 많이 가지고 가세요. 우리도 직접 주변에 민언련을 알리고 회원 가입 받아 올게요.
민언련이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잘 하기 위해서는 인력도 더 필요한데 결국엔 돈이에요. 반드시 회원을 더 많이 유치해서 참여연대, 노무현 재단 수준으로 되어야 해요. 특히 처장님께서 실무적인 부분들을 활동가들한테 일임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홍보에 집중하셔야 해요. 민언련의 영향력을 확대해야 해요.
김언경 그 뜻은 잘 알겠는데요. 저희 입장에서 지금도 아직 안정되지도 않았고, 성과도 부족한데 자꾸 돈만 더 달라는 것 같아서 회원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이형호 아니죠. 오히려 지금 너무 일만 열심히 하니까 그런 겁니다. 실무는 줄이시고 홍보를 잘 하셔야 해요. 지금 회원들한테 주변 지인들 회원 가입 시켜달라고 하고, 회비도 올려달라고 하세요. 여유 있는 회원들은 말만 하면 다 그렇게 해줄 겁니다. 방송도 더 많이 나가세요. 지금도 민언련은 충분히 잘 하고 계셔서 괜찮아요.
역시 ‘열혈 회원’은 다르다. 민언련의 현실적인 고민을 마치 함께 일하는 활동가처럼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김언경 처장은 회원들께서 만족하실 정도로 임무들을 잘 해내는 것이 먼저 아닐까 주저했다.
이형호 그럼 회원들한테 직접 어떤 사업을 원하는지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다음달 소식지에 설문지를 하나 넣어서 물어보세요. 저 같은 회원들은 다 써서 보내줄 거예요. 이형호 회원이 제안한 ‘회원 설문’을 실제로 조직강화 특별위원회에서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곧 진행될 예정이다. 이쯤되면 회원 인터뷰가 아니라 ‘자문위원회’라 할 만하다.
“민언련이 우리의 첫 시민단체”
김언경 자, 이제 진짜 인터뷰를 해봅시다. 민언련 가입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거예요?
인터뷰가 이미 한창 진행됐다는 걸 김언경 처장이 몰랐던 게 아니다. 단지 ‘회원 인터뷰’의 고정 질문들이 아직도 나오지 않았음을 뒤늦게 감지했을 뿐이다.
박정자 사실 그 전에는 회사 다니고 결혼해서 아이 키우느라 정치에 관심도 없었어요. 하지만 뭔가 언론 보도들이 좀 이상하다 생각했고, 특히 세월호 참사에서 충격을 받았지요. 아이들이 이런 것도 알아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016년 3·1절 행사에 갔거든요. 그곳에서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놀랐고 감동을 받았어요. 그동안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되니 부끄럽기도 하고 눈이 떠지는 느낌이더라고요. 행사 이후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통해 민언련을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답답했던 점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곳이 있구나 싶어서 바로 가입을 했어요. 그게 우리의 첫 후원이었어요. 그리고 노무현재단, 고발뉴스로 후원을 늘렸어요.
뜻밖이었다. 부부는 노무현재단의 회원이기도 하다. 특히 노무현재단 부산 사하지회는 결속력 높고, 회원 모임도 활발한 곳이라서 부부의 애정이 각별해보였다. 두 분이 평소 여러 시민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다가 민언련을 알게 되었으리라 짐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이었다니. 이 대목에서 이형호 회원의 ‘기승전 회원배가설’이 다시 나왔다.
이형호 뭐든지 처음이 엄청 각별하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나는 민언련이 정말 좋고, 그래서 더 커졌으면 좋겠어요. 회원배가 해야 해요. 더 큰 일을 해야 해요.
박정자 저는 민언련이나 노무현재단 행사나 촛불집회 같은 곳에 아이들과 함께 가요. 제가 오랫동안 몰랐으니 아이들은 처음부터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꼭 뭘 주입식으로 가르치려는 건 아니에요. 그냥 함께 참여해 놀기만 해도,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도 티는 안 내지만 분명 나름 가치관이 생겼을 거예요.
지난해 말 민언련이 한창 힘을 쏟았던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은 전국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그때 부산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형호 회원은 ‘인증샷’을 보 내주기도 했다.
이형호 아니 실제로 얼마 전에는 동길(첫째)이가 학교 발표 대회에서 1등 했다고 선생님께서 알려주기도 했거든요. 우리 동길이가 별로 말을 많이 하는 아이가 아니에요. 그래도 뭔가 자기 생각이 생겼고, 할 말이 생겼고 그것을 말하는 것 아니겠어요.
이런 가족이 민언련을 응원해주시다니, 감동이다. 두 아들은 나를 형이라고 부른다. 더 뿌듯하다. 3·1절 행사에서 시작된 세상에 대한 관심은 팟캐스트로, 또 민언련으로 이어졌다. 그 인연은 이렇게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떡 파는 할머니’ 감사합니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오후에 김언경 처장 강연을 마련했으니 인사도 할겸 함께 앉아 있던 김대영 노무현재단 사하지구 지회장도 이 질문에는 귀를 쫑긋했다.
박정자 우리가 굉장히 늦게 만나서 둘 다 늦게 결혼했어요. 내가 회사를 다녔는데 우리 사무실에 떡 파는 할머니가 자주 오셨어요. 아이 손을 잡고 업고 떡을 이고 팔러 다니셨거든요.
김대영 뭐야. 장미희 할머니야? 똑 사세요?
박정자 아무튼 할머니가 그렇게 힘들게 다니시니 우리 사무실에서 자주 떡을 사드렸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에게 계속 사람을 만나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한번 만나봤는데 사람이 참 착해 보이더라고요. 난 그거 하나가 맘에 들었어요.
김언경 그런데 두 분이 정말 신기하게 참 닮았어요.
박정자 맞아요. 우리집에서 처음 만나봤을 때, 다들 둘이 닮았다고,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이형호 나도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엄마 아빠랑 닮았고, 아이들이 또 쌍둥이처럼 닮아서 가족이 모두 다 닮았다고요.
아이들이야 당연히 부모를 닮기 마련이라지만, 부부는 정말 닮았다. 그들과 또 닮은 건실한 아이들까지,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주신 ‘떡 파는 할머니’께 감사 할 따름이다. ‘러브 스토리’가 오가던 와중에 작년부터 회원가입을 해서 회원캠프도 같이 오신 최종성 회원이 오셨다. 행사 준비하러 가야 한다면서, 갑자기 김언경 처장을 위한 선물을 꺼내들었다. 본인이 직접 캘리그라피로 쓰신 액자와 책 등을 주셨다. 그 정성과 섬세함에 감동하던 찰나, 당장 민언련 ‘굿즈’를 최종성 회원께 부탁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활동가로서의 ‘직업병’이다.
이렇게 인터뷰인지 수다인지 모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노무현재단 사하지구 분들과 만날 시간이 다 되었다. 집을 나서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도 점점 궂어지고, 그날은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일이기도 했다. 몇 분 오시지 못하리라 생각했지만, 모임에는 20여 분이 오셔서 김언경 처장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어 부산지역 회원이 기다리고 있는 ‘번개 술자리’ 장소로 모두 함께 이동했다.
최종성 체육대회를 하는데 이만한 광주리를 들고 서서 저쪽에서 휙 신발을 던지면 받아야 하거든. 그런데 사람들이 하도 못해서 내가 할 수 없이 참다 참다 턱 나섰지.
노무현 재단 회원과 민언련 회원이 함께 한 술자리에 서도 민언련 회원 캠프가 안주로 올랐다. 최종성 회원은 캠프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옆에서 민언련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설명하는 이형호 회원의 모습까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김언경 처장이 주로 노무현 재단 분들과 어울려 ‘셀럽 역할’을 하는 사이, 나는 부산 지역 회원분들과 술을 주고받았다. 평소 번개를 하면 회비를 걷고 음식을 시키고 뭔가 접대를 하느라 바빴지만, 이번에는 박정자 회원이 이런 일을 도맡아 해주셔서 더 편하게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민언련 회원들은 지역 모임이 더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톡방’이라도 개설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회원과 함께 한 부산 민주공원
다음 날 아침, 부산은 정말 요란스러웠다. 밤새 휘몰아치던 비바람이 정점이었다. 도저히 봉하마을은 갈 수 없었다. 박정자 회원이 만들어주신 정갈한 아침밥을 먹었다. 전날 인터뷰도 함께 해주시고 봉하마을도 함께 가기로 했었던 김대영 지회장도 오셨다. 도란도란 또 수다가 이어졌다. 아이들 교육 이야기, 공동체 이야기, 언론 이야기가 오갔다.
그 사이 비가 그쳤고 우리는 계획에 없던 부산 여행을 나서기로 했다. 가까운 부산 민주공원과 초량동 산복도로를 관광하기로 했다. 부산 민주공원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우거진 녹음에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김언경 서울에도 이런 공원은 없는 것 같아요.
이형호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 정도 민주공원은 부산에만 있을 겁니다.
이형호 회원의 말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주민들이 느끼는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은 역시 지자체가 만드는 것이다. 민주공원은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들꽃나무들, 원형극장 등 공원 시설에서 여가를 즐기다보면 어느새 부마항쟁의 역사 한 가운데 서 있게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 1항이 장엄하게 맞이하는 민주 항쟁기념관에는 6월 항쟁, 전태일 열사 등 민주화 운동 일체가 기록되어 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 민주투사들이 옥고를 치렀던 형무소 감방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박정자 부산에 오셨는데 회도 하나 못 먹고 가시네.
이형호 기차 타기 전에 물회라도 한 그릇 먹고 가시죠.
오후 2시로 예정된 기차 시간이 다가오자 모두가 마음이 급하다. 박정자 회원 부부는 아무래도 부산 먹거리를 함께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아쉬운 마음에 열차에 오르는 우리에게 ‘부산 오뎅’을 사서 손에 쥐어주셨다.
“다음에 또 만나요!”
박정자 밥도 못 먹고 가서 어떡해. 고생만 하다 가시는 것 같아요.
이봉우 다음에 와서 봉하마을 같이 가요.
이형호 조금만 기다리시면 제가 서울 가서 식사권 쓸게요.
김언경 12월 19일 수요일 민언련 창립기념회와 송년회예요. 이날 무조건 오세요.
이형호 예! 난 갈 거예요. 그때 봐요!
이번 여행의 처음과 끝은 결국 ‘김언경 처장 식사권’이다. 이런 여행, 이런 만남이라면 ‘식사권’ 100개라도 드릴 수 있다. 부부는 기차 승강장까지 함께 걸었다. 열차 문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인사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1박 2일의 짧은 만남, 잠깐의 회포였지만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기분은 아니다. 아무래도 박정자 회원 부부의 일상이 민언련이고, 민언련 활동가들의 일상에도 늘 그들이 함께 하기 때문인가 보다. 너무 상투적이지만 가족 같다는 표현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이형호 다음 캠프 때는 정말 동네방네 다 소문내서 봉고차 대절해서 데리고 갈게요. 다음엔 꼭 회원 가입서 갖고 내려오세요.
이형호 회원의 말이 상경하는 기차 안에서도 귓가에 맴돈다. 부산의 한 민언련 가족이 온 동네를 민언련 회원으로 유치하려 한다. 회원 가입서 뿐 아니라 금일봉이라도 드려야 하는 건 아닐까. 이렇게 고마운 우리 민언련 회원들, 언제 다 만나나. 행복한 고민 결에 잠이 든다.
서울에 도착하니 “다음엔 더 즐거운 시간을 가져요”라는 이형호 회원의 문자가 왔다. 일주일 뒤, 김언경 처장에게는 인터뷰 당시 만났던 노무현 재단 지인들과 집에서 술 한잔 기울였다며 사진을 보내주셨다. 사진을 보니 그날의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가 어디 가서 이렇게 따뜻한 환대를 받을 수 있겠나, 너무 고맙고, 더 잘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래도 격려해주시니 힘이 난다고 했다.
“회원 여러분, 민언련 활동가는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불러만 주십쇼!”
인터뷰·사진 이봉우 모니터팀장 동행 김언경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