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 [회원인터뷰] 곁가지를 떼어 버리고 남은 알맹이로 민언련에 스며든다 (김현식 회원)
등록 2019.03.0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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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회원인터뷰 대상자가 김현식 이사라는 걸 듣고,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7년 10월에 22기 언론학교를 수강하면서 민언련과 연을 맺은 이후, 이번이 세 번째 ‘회원인터뷰’라고 했다. 내가 민언련에 들어오기도 전부터 이미 민언련에 깊이 스며있는 사람이었다. 2001부터 2012년까지 열렸던 퍼블릭 액세스 시민영상제의 단골 사회자였고, 민언련 후원주점과 30주년 행사 등의 기획을 맡아 활동가를 넘는 역량을 쏟아내며 활동했던 사람을 ‘이 사람을 소개합니다’라는 주제로 전하기도 마땅치 않게 느껴졌다.

이런 저런 고민을 안고, 아직 추위가 채 풀리지 않은 2월 중순 아침에 김현식 이사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대뜸 표지 사진부터 찍자며 사무실 밖 골목길을 찾았다. “골목길을 걸어오며 반갑게 인사를 전하는 모습이 김현식 이사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이미지”라며 사진 담당 이병국 이사가 추천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골목 끝에서 손을 흔들며 걸어오는데, 정말 평소의 김현식 이사다. 누구보다 반갑게, 누구보다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그 모습 그대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민언련으로 한걸음을 더 내딛었던 회원이 있었을 것이다. 그 웃음에 엉클어진 마음을 위로받은 회원도, 다시 어깨를 툭툭 털어낸 활동가도 있었을 것이다. 그 모습이 인터뷰에 그대로 담겨 회원들에게 전해진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다는 바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곁가지를 쳐내고, 알맹이를 찾는 일

“요즘 가장 가슴에 새기는 말은 ‘관심의 중심. 곧 일상생활에서 곁가지들을 떼어 버리고 남은 알맹이를 찾는 일’이라는 헬렌니어링의 말이에요. 나이 오십을 앞뒀는데도 아직까지도 내가 어떤 걸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지 정확히 모르겠어요. 늘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있죠. 이런 걸 곁가지와 알맹이로 정리해나가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좌우명 있으세요?’ 가볍게 던진 첫 질문부터 묵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프리랜서 PD로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김현식 이사에겐 다소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 답변이기도 했다.

“사실 전 보기와 다르게 내성적이고 사람들 속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고 어려워하는 사람이에요. 사회적 관계에서 노력하면서 적극적이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여전히 사람관계는 어려워요. 정말 가까운 지인들은 저에 대해 말할 때 ‘사색이 강하다’, ‘예민하다’, ‘차갑다’고 얘기하기도 해요.”

의외의 이야기를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그 말속에 비친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어떤 공간에서도 활기찬 모습으로, 기분 좋은 상태로 있으려는 노력이 어느 순간 강박이 돼 나를 짓누르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가면’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계에 연연하거나, 늘 착한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욕심에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거죠.”

15년 전부터 다양한 형태로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는데, 돌아보니 ‘사람 관계’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늘 새로운 사람을 찾게 되고, 질리지 않게 여러 모임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나와 멀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봐왔던 사람들에게 잘하자는 생각이 들어요. 그 사람들에게만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라요. 어려웠던 사람 관계에서도 곁가지를 쳐내고 알맹이를 모아내는 일을 훈련하고 있어요. 예전과 다르게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걸 이제는 부담 갖지 않고, 죄책감 없이 해요. 아무 때나 한다는 것은 아니고요.(웃음)”

자신을 객관화 시키는 일은 참 고역이다. 실망스러운 나의 본 모습과 여러 순간 마주하기 때문이다. 김현식 이사는 기록을 통해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중구난방 식으로라도 삶을 기록하면서 하루하루 모든 순간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어요. 사실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팩트’는 다 잊게 되잖아요. 그런데 일기에는 다 남아있어요. 사소했던 감정들까지…. 지나고 나서 그 흔적들을 찾아보면 삶이 윤기 있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 내가 아주 후진사람은 아니었구나’, ‘이런 시간을 버텨 왔구나’하는 자부심 같은 것도 생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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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벌, 물방울…‘다름’에 대하여

김현식 이사의 페이스북에는 만난 사람이야기, 영화이야기도 많지만, 자연을 담은 사진을 자주 올린다고 한다.

“꽃과 물방울, 꿀벌 사진을 좋아해요. 처음 스마트폰을 들고 계절마다 피는 꽃을 찍고, 물방울을 찍고, 꿀벌을 찍고 다녔어요. 사람들이 왜 할머니들이 좋아할만한 사진만 찍느냐고 이상하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 후 김현식 이사의 페이스북을 살펴보니, 정말 꽃과 꽃 주위를 떠도는 꿀벌 사진이 적지 않았다.

“청계천, 덕수궁, 정동에 가면 어느 자리에 어떤 꽃이 있다는 저만의 구역이 있어요. ‘샤샤’라고 이름을 붙여준 꿀벌도 있죠. 보기에 아름답고 날마다 변해서 좋아요. 꿀벌은 관찰하다보면 정말 열심히 사는 게 보여요. 날갯짓을 수 만 번해서 화분을 모아 꽃을 피우게 만들죠. 핵폭탄이 터져서 지구가 멸망하는 것보다 꿀벌이 멸종해서 지구가 멸망하는 게 더 빠르다는 말도 있어요. 수정이 안돼서 열매가 안 맺히면 식량난 때문에 인류가 죽을 거라는 거죠.”

갑작스럽게 등장한 ‘꿀벌’ 이야기에 어떻게 호응해야할지 감이 안 온다.

“40대 남자가 이런 사진을 올리는 게 일상적이 않다고 보죠. 그래도 올려요. 김현식이라는 사람이 이런 걸 계속 올려서 보다보니 그동안 못 봤던 자연의 한 면을 보게 되더라하는 사람도 있어요. 세상엔 다양한 모양이 많이 있는데, 우린 삶의 다름을 잘 인정하지 않아요. 가까운 관계의 사람도 ‘일반 범주’에서 살짝만 어긋나도 이질감을 느끼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죠. 거기서부터 차별과 혐오가 빚어진다고 생각해요.”

맞는 말이다. 내 속에 똬리 튼 ‘일반 범주’라는 프레임이 ‘다름’을 그대로 받아드리기보단, ‘거리두기’와 ‘분리하기’를 먼저 선택하는 순간들이 있다. 분명하게 드러나진 않더라도, 그 순간 나는 차별과 혐오에 벽에 단단한 돌멩이 하나를 하나 더 올려놓은 셈이다.

“김경실 전 부이사장에게 많은 힘을 얻고 있어요. 가끔 엽서나 메모를 주는 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두 가지에요. 하나는 가족은 어떤 존재인가, 너무 가까이도 하지 말며, 그렇다고 멀리 가지도 말라는 메모였는데, 가족 뿐 아니라 가까운 관계에 대해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얘기로 받아드렸어요. 또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부질없는 생각이 미래에 대한 걱정이다’라는 글귄데,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내가 생각해서 크게 만드는 것도 많이 있잖아요. 이 말들이 나를 독려했어요. 내가 삶을 이상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니라고요.”

 

 9년간 410편 영화관람…김현식의 영화이야기

민언련 소식지를 꼼꼼히 읽는 회원이라면, 분기별로 ‘영화이야기’ 꼭지를 통해 김현식 이사를 만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영화를 소개하며 영화세계로 초대하는 호스트다.

“지금까지 날자꾸나 민언련에 ‘영화이야기’를 가장 많이 기고한 사람이 저라고 알고 있어요. 2015년 1월에 유민지 활동가가 ‘영화이야기’ 원고를 제안했어요. 그동안 ‘영화이야기’가 평론가 수준으로 영화를 비평하는 건데, 내가 어떻게 영화의 매 컷마다 의미를 찾고 전하겠어요. 그건 제가 쓸 수 있는 글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안했던 게 ‘김현식의 영화이야기’에요. 「44살에 뽑은 21세기 영화 베스트 44!」. 9번을 쪼개서 연재로 나갔어요. 한 영화마다 5~6줄의 이야기를 쓰는 건데, 어떤 긴장감이 있냐면, 사람들이 내 글을 봤을 때 나도 이 영화가 궁금하다는 호기심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어요. 영화를 보며 느낀 감정을 적으면서 주인공이 뱉은 대사나 OST를 근거로 제공하는 방식이었죠. 그때 1위는 동독 정보기관의 주인공의 삶을 다룬 <타인의 삶>이었습니다.”

2015년 2월부터 2019년 2월까지 4년간 17번 글을 연재했다. ‘Best 44!’ 이후에도 테마가 있는 영화이야기를 꾸준히 연재하고 있다. 김현식 이사의 페이스북에는 얼마 전 ‘48살에 뽑은 1970년 이후 개봉작 BEST 48!’이 꼽혀있다. 어떻게 꾸준히 순위를 매기고 기록할 수 있을까.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영화관에서 본 영화를 정리했더니 410편이었어요. 2010년에만 122편을 봤더라고요. 종로3가 서울극장이랑 시네큐브를 자주 가는데, 혼자 가서 봐요. 영화를 본 후 영화를 본 날짜와 장소, 느낌을 적고, 평점까지 매겨요. 이런 일이 저에게 굉장히 에너지 넘치는 일이에요. 좋았던 느낌과 슬펐던 이야기를 되새길 수 있어서 좋아요. 저만의 리스트가 만들어진다는 것도요.”

가방에서 파일철을 꺼내는데, 앞서 언급한 관람 영화 리스트다. 파일철을 보여주는 김현식 이사의 손이 분주하다. 좋아하는 영화의 엽서와 사진을 모아 냉장고에 붙여뒀다는 말을 할 때의 표정에서는 생기가 돈다.

“얼마 전에 <시인할매>라는 영화를 봤거든요. 시작한지 5분 만에 울었어요. 다큐영환데, 7-80대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면서 처음 글을 쓰는 과정을 다룬 거예요. 한 할머니가 ‘꽃상여’ 그림을 그렸어요. 왜 그렸나 했더니 이분이 시집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젖먹이가 울고 보채는 통에 상여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해요. 어머니의 이승 떠나는 길을 배웅하지 못해 애통한 심정을 ‘엄마 미안해’라고 적으며 응어리를 풀었죠. 나이 팔십이 돼서야 친정엄마와 진짜 이별을 한 겁니다. 제 옆에서 50대 후반의 남자가 내내 펑펑 울더라고요. 엄마가 보고싶다면서요.”

<시인할매>이야기를 하며 눈가가 물기가 어린다. 지금도 영화를 생각하면 감정이 울컥한다고 했다. 어떤 장르의 영화이건, 이러한 감정 이입은 자신을 치유하는 시간이 된다고 했다. 민언련 소식지가 개편을 하면 살아남을지는 모르겠지만, 청탁이 들어올 때까지 할 수 있는 한 〔영화이야기〕기고를 계속 해보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몇 년동안 잘리지 않은 거 보면,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해요. 15~17매의 원고를 쓰기 위해 영화를 다시 보고, 자료를 다시 찾아봐요. 글에도 알맹이가 중요한데요, 메시지를 놓치면 글이 길든 짧든 실패에요. 지금까지 기고한 17번 글 중에 반은 괜찮았고, 반은 부족했어요. 더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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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친구 민언련…머리 아파도 괜찮아

97년 언론학교 수강 후, 민언련에 발을 들여놓은 지 올해로 22년이다. 지금은 사라진 민언련 영화분과 ‘민씨네’ 활동을 하던 26살의 청년이 이제 쉰을 바라보고 있다.

“항상 민언련과 같이 있었다고들 기억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기복이 있었죠. 몇 년 동안은 사회 생활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어떤 행사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때가 있었고, 또 어떤 때는 활동가 수준으로 밀착해서 무언가를 도모한 적도 있었죠. 매너리즘에 빠져서 그저 익숙한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 온 적도 있었고요.”

김현식 이사에게 민언련은 오래된 친구라고 했다.

“예전에는 나의 가치관을 지탱해주고,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고마운 조직이라고 많이 생각했는데, 지금은 가족처럼 오래되니까 감정이 없어요. 예전에는 아이디어도 내고, 뭔가 만들면서 재미를 찾았는데, 지금은 할 만한 것들은 많이 했어요.”

위치의 변화도 있다. 김현식 이사는 오랜 회원활동을 하고 2014년부터 민언련 이사가 됐다. 현재 미디어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현재 이사를 하고 위원회를 하고 하다보니 가슴이 뛰는 일보다 머리 아픈 일들이 많아요. 그래서 재미보단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나에게 오랜 친구이기 때문에 억지로 생각할 필요없이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돼요. 분명히 저보다 먼저 활동하신 분들도 이런 고민을 했겠죠. 지금 부딪힌 상황을 잘 해결 할 수 있는 매뉴얼 같은 걸 만드는 게 제 과제가 아닐까 싶어요.”

 

주머니에 동전하나 없어도 올 수 있는 곳

올해가 민언련 창립 35주년이다. 김현식 이사는 민언련의 특별한 기념행사 때마다 제 역할을 해왔다.

“15주년 때 첫 직장에 들어와서 일 년간 못 오고 행사 참석만 했어요. 2004년 20주년 때는 일일호프랑 연말 시상식도 했는데, 제가 사회를 봤죠. KBS 올해의 프로그램상 받은 개그맨들도 왔는데, 그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사회를 잘 봤다는 자화자찬을 덧붙이겠습니다.(웃음)”

25주년과 30주년 때도 거의 사무실에 상주하며 행사를 준비했고, 30주년에 만든 화보집을 바탕으로 2019년 처음 선보인 ‘민언련 달력’을 만드는 일도 함께 했다. 35주년 행사에 대한 바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35주년은 철저하게 회원들의 삶과 일상이 반영된 행사로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들이대는 것 같지만, 중구난방 회원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기획은 어떨까 해요. 민언련 회원은 많이 늘어났는데, 사무실이나 행사 때 오는 회원은 많지 않아요. 물론 시대가 변하고, 오프라인이 중심이냐 온라인이 중심이냐는 과도기에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회원들이 얼굴 맞대는 일에 ‘공백’이 너무 커진 게 아닌가 싶어요.”

프리랜서 PD로서 가장 고민하는 게 ‘미디어환경이 변화했다’는 문장이라면서 말을 덧붙였따.

“뉴미디어로 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지만, 그럼에도 어떤 것들은 여전히 길게 얘기하고 전통적이고 고루한 방식으로 다뤄지는 게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 교육에 관한 일, 우리가 하는 시민운동도 그런 측면이 강하다고 봅니다.”

다시 ‘알맹이’를 찾는 일을 모색해야한다고 했다.

“시민과 함께 언론개혁을 같이 하자는 곳이 민언련입니다. 지금 시기에 ‘시민과’, ‘함께’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자유로운 소통방식이 뭔지 저도 모르겠어요. ‘회원 100명, 200명 모이면 좋은가?’ 저는 무조건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그 방법을 계속해야하는 가는 토론이 필요하겠죠. 그러나 민언련이 회원들의 인식에 ‘너무 점잖은 조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편하게 백팩 메고, 주머니에 동전하나 없이도 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22년간 제가 그렇게 오갔잖아요. 그게 민언련의 장점이지요. 그런 매력들이 더 많은 회원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회원 활동을 하다가 어느새 이사가 됐어요. 민언련의 무엇을 결정하는 사람이 된 거죠. 그런데 나조차도 회원들에게 민언련을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데 소홀했던 거 같아요. 고민하고 있어요. 아직은 정리가 안됐는데, 5년 후에 또 회원인터뷰를 하는 기회가 온다면, 고민한 결론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번째 회원인터뷰 기록세우는 건가요?”

특유의 밝은 미소와 유머로 분위기를 바꾼다. 회원사업을 담당하는 활동가로서 김현식 이사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많았다. 2019년 달력을 만들 때도, 이번 3월 5일에 진행하는 언론자유토크쇼 <민언련구석1열>을 기획하면서도 냉큼 전화를 걸어 역할을 좀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런 순간마다 손 잡아준 김현식 이사 덕에 더 알차게 준비할 수 있었다. 민언련에 소중한 ‘알맹이’, 김현식 이사의 고민이 민언련 곳곳에 더 깊숙이 스며들기 바란다.

 

유민지 운영팀장. 사진 이병국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