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세상 만들려는 민중의 촛불 같은 삶과 고통 담아
“더 나은 조국을 만들고자 지난 100년에 걸쳐 민중이 사랑하고 싸움해 온 결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 아닐까.”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손석춘(59) 씨가 3·1절에 맞춰 낸 장편 역사소설 《100년 촛불》(다섯수레)에 등장하는 ‘한민주’의 말이다. 민중이 곧 역사의 주인이자 동력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는 ‘3·1혁명부터 촛불혁명까지’라는 부제의 이 소설에서 저자가 얘기하고자 한 고갱이일 것이다.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자 동력
저자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지난 100년 동안 밝은 희망의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스스로를 태웠던 선각자와 민중에 관한 사료와 기록들을 샅샅이 살펴서 뼈대를 세우고 살과 피를 붙여 탄탄한 이야기로 되살려냈다. 소설 속 화자(話者)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 함께 참여한 시아버지 한민주에게서 3·1혁명 당시부터 잘 알려진 역사 속 인물․ 사건들과 촘촘하게 얽힌 남편 집안의 4대에 걸친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역사를 추적한다.
대표적인 선각자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의형제이자 천도교 지도자이며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의 우두머리로서 3·1혁명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와 대한제국시대 언론의 상징이자 민족사관을 수립한 사학자이며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한 독립운동가로서 풍찬노숙의 삶을 살다 뤼순형무소에서 옥사한 단재 신채호다. ‘100년 촛불’이란 제목을 생각할 때 민중들이 1919년에도 촛불을 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저자는 동학인들이 전국에 기도소를 설치해 1919년 1월 5일부터 촛불을 켜고 49일 특별기도에 들어가 3·1혁명의 성공을 기원했음을 주지시킨다. 단재 역시 ‘민중의 촛불’로 불렸다고 한다.
3·1혁명 이후 독립운동과 역사적 사건에 피와 살 붙여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이라고 칭하는 이유도 어림할 수 있다. 저자는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인용해 1919년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전국 곳곳에서 만세시위 1542회, 참여자 205만 1448명,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만 5850명에 이르렀음을 전한다. 이를 단순하게 ‘운동’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3·1독립선언서〉에 담긴 대로 조선이 독립국이고 조선 사람은 자주적 민중이라는 자각과 인류 평등의 세상을 향한 염원이 민중의 정신과 의식 변화를 불러 온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과 옥중의 아들에게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낸 어머니 조마리아, 3·1독립선언서를 인쇄해 전국에 배포한 묵암 이종일, 백암 박은식, 약산 김원봉, 심산 김창숙, 여운형, 박헌영 등도 비중 있게 다룬다.
친일 세력 탓에 선각자와 민중의 삶 제대로 조명받지 못해
소설을 읽다 보면 고통 속에 스러져간 선각자와 민중이 역사적으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 형제와 후손의 가난 속 혹독한 삶과 죽음도 가슴 아프다. 반면 저 혼자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민족을 배반해 친일에 앞장선 세력의 청산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광복 이후 줄곧 권력을 잡은 이승만을 비롯한 친일 또는 친미 세력들이 독립운동과 역사를 왜곡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친일잔재 청산은, 친일은 반성해야 할 일이고, 독립운동은 예우받아야 할 일이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한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100년 동안 민중의 피와 희생 없었다면 촛불혁명도 없었을 것
소설은 광복 이후 6·25 전쟁, 4·19 혁명, YH 사건, 인혁당 사건, 남민전 사건,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전태일 분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사건, 백남기 농민 사망 등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문제적 사건들을 두루 재조명한다. 역사적 인물로는 ‘언론의 사표’ 청암 송건호를 손병희와 신채호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룬다. 이는 박정희 시대 때부터 자유언론실천과 언론독립, 현대사 연구에 앞장선 송건호의 고통과 성취에 대한 헌사이다. 기자는 역사의 기록자로서의 본분을 잊으면 안 된다는 뜻을 담았을 것이다. 물론 막바지는 2016년 10월부터 서울 등 도심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박근혜 탄핵 촛불혁명이다. 한민주는 이렇게 되뇐다. “그 촛불은 21세기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100년을 흘러온 피의 강이 없었다면 불의 강은 흐를 수 없었다.”
저자의 소설적 성취는 놀랍다. 그동안 몇 편의 소설을 내면서 내공이 깊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그 많은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 주요 사건의 진실을 추려낸 뒤 소설로 창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손병희와 신채호의 부인 주옥경(산월)과 박자혜의 만남을 첫머리로 끌어와 소설적 흥미를 높인 점도 눈길을 끈다. 주옥경은 산월이라는 이름의 기생 출신, 박자혜는 간호사 출신이다. 손병희와 산월, 신채호와 박자혜의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사랑과 일제의 사찰로 겪은 고통은 눈물겹다.
뛰어난 소설적 성취… 역사 인식의 심화와 확장 기대
혹자는 소설이 미감이 부족하다거나, 새로운 것도 없이 편향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저자는 ‘나가는 말’을 통해 “문학을 사회구성과 변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독자적인 사회적 실천으로 인식하는 창작 흐름에 더하여, 소설을 미감이나 쾌감 추구보다는 인식의 심화와 확장을 이끄는 문학 장르로 보는 인지주의 미학이론도 짚어볼 만하다”고 반박한다. 나아가 루카치가 낸 《역사소설론》을 인용해 “중요한 것은 선행한 발전 가운데 가치 있던 모든 것을 우리 것으로 동화시키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화자의 시아버지인 기자 출신 한민주 교수를 보노라면 저자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청년층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고 신채호를 비롯한 근현대 100년의 인물과 역사를 다시 조명하고 역사 교육도 새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저자로서는 더 바랄 게 없을 듯하다.
글 황진선 논객닷컴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