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_책이야기|『삶을 위한 정치혁명』
선거 제도를 바꾼다는 것, 삶을 위한 정치혁명의 첫걸음
왜 한국 사회는 부자들이 갑질하는 후진 나라가 됐을까. 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사회로 바뀌지 않을까. 하승수가 쓴 <삶을 위한 정치혁명>(한티재, 2016)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한국. 1980년~1990년대에 공동체를 파괴하고 모두를 ‘각자도생’으로 이끈 신자유주의 흐름을 주도하거나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나라들이다. 이 나라들의 정치제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선거제도가 소선거구제다. 한 표라도 많이 받은 후보만 당선되고 나머지는 떨어지는 승자독식의 제도이다. 소선거구제는 필연코 세력이 큰 두 당이 번갈아 정권을 잡는 양당제를 낳는다. <삶을 위한 정치혁명>(한티재, 2016)의 저자 하승수는 이 양당제 국가는 “제1야당도 보수적인 성향을 띄기 쉽다”고 설명한다. “정치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 속에서 이른바 ‘중도층’을 놓고 경쟁하려면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유혹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본 편을 드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하승수는 또한 양당제하에서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쪽이 정권을 잡을지라도 정부의 정책 기조가 대단히 진보적이기도 어렵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그 사례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을 드는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현재도 마찬가지다. 재벌개혁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고, 상여금과 식비, 교통비 등의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한 최저임금 정책만 보더라도 여전히 재벌의 눈치만 보는 보수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승수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비교적 시민들의 삶이 지켜지고 있는 나라들을 주목한다. 독일과 북유럽의 국가들이다. 영국의 EIU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가 20위 국가들의 정치 시스템과 선거제도를 보면 거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고 있다. 이들 20개 국가 중에 다당제 국가가 무려 15개 국가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스웨덴, 뉴질랜드, 덴마크, 스위스 등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복지 국가다. 이들 국가가 지도자 한 명이 정치를 잘하거나, 자원이 많아서 복지국가가 된 게 아니라 선거제도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양당제냐 다당제냐 하는 것은 단지 정치 시스템의 문제를 떠나, 우리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문제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다당제 국가로 변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소선거구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경우에는 1등만 뽑기 때문에 사표 심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유권자가 녹색당이나 정의당을 찍고 싶어 그쪽으로 표를 주면, 혹시 한국당이 1등이 될까 봐 민주당이 마음에 썩 들지 않는데도 찍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소수 정당이 국회에 진입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가 될 수밖에 없다.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의석수를 배정하는 제도로, 지역구 의원 수가 배정된 의석수보다 적으면 그 차이만큼 비례대표 의석으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다당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소수 정당들이 얻은 정당득표율을 합치면 20퍼센트에 달하지만, 광역지방의회에서 2.3퍼센트의 의석, 기초지방의회에서 3.66퍼센트의 의석을 얻는데 그쳤다. 한국당도 진작 선거제도를 고치는 데 동의했다면 36.73퍼센트 정당 득표율만큼의 의석을 얻었을 텐데 12.77퍼센트 밖에 얻지 못했다.(거대정당한테만 유리한 선거제도가 자기 발등을 찍을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을까? 한편으로 고소하다.) 이런 결과는 현행 선거제도가 유권자의 뜻을 왜곡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승수는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해 다당제 국가가 된 대표적인 사례로 뉴질랜드를 든다. 뉴질랜드는 1980년 양당제하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됐다. 이런 불만이 정치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로 모아지면서 국민투표를 거쳐 1994년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전환하게 됐다. 뉴질랜드는 그 이후 다당제 국가로 바뀌었고, 녹색당 같은 정당이 국회에서 제 3당의 자리를 잡을 정도가 됐다. 그리고 1999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제1당이 됐지만, 단독 집권이 불가능해졌다. 노동당은 소수정당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고 소수 정당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노조의 지위를 강화하는 고용관계법이 제정됐다.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인상됐고, 고소득층에게는 소득세 최고 세율을 33퍼센트에서 무려 39퍼센트로 올리는 증세를 단행했다.
한국에서 다음 총선 때 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당이 완전 몰락하고 민주당만으로 국회의석 과반수를 넘는다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는 법을 제정할까?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래서 하승수는 선거제도가 바뀌는 것이 ‘삶을 위한 정치혁명’이라고 단언한다. 지금 비례민주주의 연대 단체(https://www.myvote.or.kr/)에 가입해서 후원금을 내는 작은 행동, 그것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혁명이 아닐까.
글 안건모 미디어위원·월간 <작은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