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하고 협동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연대를 이끌어내고 협동을 만들어내고자 애쓰는 사람들로부터 듣곤 하는 말이다. 함께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고 할 때, 그런 세상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런 삶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데, 혹은 할 의향이 있는데, 남들은 안하는 것 같아…”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안할 수도 있지만, 못할 수도 있다. 그 행위 보다는 그 이유에 다가가고 싶어하는 영화들이 더러 있다. <마이 리틀 히어로>(2013, 김성훈 감독)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차별하는 인간’을 추하지 않게 재현해내는 리얼리티
사실, 이 영화, 특별한 플롯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크게 색다른 이야기라 할 수도 없고, 형식미가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감동적이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편견들과 구조적 불평등 같은 사회적 문제들이 이야기 속에 녹아있고, 무엇보다 구분짓고 차별하는 사람들을 추하지 않게 재현함으로써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장점도 갖는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주제를 서로 간섭시키면서 나아간다. 필리핀 엄마의 검은 피부색을 물려받은 어린 영광(지대한)이가 뮤지컬에서 정조 역할을 할 배우 오디션에 도전하는 것, 그리고 실패한 음악감독의 꼬리표를 달고 있던 유일한(김래원)이 브로드웨이로 진출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표정과 대사, 에피소드를 통해 유일한의 가식과 탐욕은 영광의 순수와 참 때문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유일한은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 JM이 투자하고 주요 지상파방송사에서 편성한 뮤지컬 ‘조선의 왕’의 정조 역할 오디션 프로그램의 음악감독 다섯 명에 가까스로 합류한다. 목소리만 듣고 선택한 영광이와 원치않았지만 한 팀이 되었을 때 유일한은 프로그램 조연출인 나성희(조안)를 찾아가 따진다. “이상하지 않아요? 누가 저애를 조선사람으로 보겠냐구.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는데 이건 차별, 뭐 이런 차원이 아니구, 리얼리티의 문제예요.” 오디션에서 탈락시키려는 음모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영광이와 짝이 된 것에 대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브로드웨이에 가야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오디션에 음악감독으로 나가야했고 승리를 해야 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줄 짝이 필요했던 그에게 영광이는 브로드웨이행의 좌절을 의미하는, 말하자면 성공에 방해꾼일 뿐이다.
영광이는 탁월한 목소리 말고는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장점이 없다. 뮤지컬의 기본기도 없다. 주어진 시간은 1주일. 그는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영광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 때문이다. 발레 동작 턴을 1주일 만에 배우라고 영광에게 주문하고 그것에 부응한 영광이의 발은 다 까진다. 1단계를 통과한 후 네티즌들이 영광에게 보내는 응원 글을 읽은 유일한은 그들의 구미에 맞는 가식에 찬 인터뷰를 한다. “마음이 아프다.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이 무대에서라도 자유롭게 날게. 비슷한 처지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꿈을….”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훌륭한 감독으로 방송에서 자신을 규정한다. 1단계의 성공을 영광이를 배제하고 독식한다. 2단계를 준비하면서 영광이에게 공중 연기를 위해 다섯 시간 이상 와이어를 타는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기본기를 갖춘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그 방법 밖에 없다면 영광이를 위한다는 명분을 갖지만 사실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다.
엉덩이 피부가 다 까져서 연습하기가 힘든데도 불구하고 연습하는 것 그 자체가 좋다고 하는 영광이를 보면서, 음악을, 그리고 영광이를 성공의 수단으로 삼는 자신들을 돌아보게 된 극단대표 희석(이성민)은 일한에게 나직하게 일침을 가한다. “난 뭐냐?… 넌 뭐냐?”
순수함이 가짜를 변화시키다
어떤 부분 하나 거짓없이 순수한 영광이로 인해 가짜 삶을 살던 일한은 서서히 변한다. 영광의 순수와 일한의 진짜가 합치된 공연이 만들어진다. 일한은 스스로 가짜를 벗어던지고 진짜로 탈바꿈한 것이다. 무대 객석에서 조연출인 나성희와 나란히 앉아 2차 오디션 준비 무대를 본 극단대표 강희석(이성민)의 입에서 나직이 새어나온 “야아! 좋다~”는 영광이의 영향을 받아 변하는 유일한을 지켜봐온 우리 관객들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런 반응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 “야아! 좋군”의 감정은 완벽하게 영화 관객에게 이입된다. 그것은 진짜이기에 빛나는 예술을 경험할 때 머릿속 저 깊은 곳으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온 표현이다. 그렇게 준비된 무대는 오디션에서도 인정받는다.
영화는 유일한의 과거를 스토리에 담는 방식을 써서 그의 캐릭터에 순수하고 착한 특성도 있다는 정보를 흘린다. 그는 예고를 졸업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맨하탄 음대에서 입학 허가를 받을 만큼 실력이 있었지만, 가난하여 둥록금을 못 내고 입학을 유예한다. 1년 내내 그 대학의 청소부로 일하지만 그 돈으로는 턱없이 비싼 등록금이었다. 일하는 중에도 강의를 몰래 녹음해서 일과 후에 듣고 작곡을 공부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미국에서 경험한 막막한 상황을 그린 곡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 곡을 들은 뮤지컬극단 대표 강희석이 같이 일하자고 제안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맨하탄 음대 출신으로 오해를 받지만 그는 정정하지 않는다. 맨하탄 음대 출신으로 오해받게 된 계기는 그가 청소부로 일하던 중 우연히 주워서 돌려주지 못하고 차게된 라스폰 트라얀교수의 시계때문이었다.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이라고 스토리를 만들어내었지만, 영화 속에서 스승의 이름을 말하는 두 번 모두 우물쭈물 얼버무린다. 거짓임을 알리는 장치인 동시에 일한이 사악한 인물은 아님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학력 오해를 방조한 이후 일한은 맨하탄 음대 출신이어서 자신을 사회적으로 인정한다고 생각하면서 그에 걸맞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허세를 덧입히고 우쭐거리면서 실력을 다지려는 노력은 뒤로한 채 가짜가 되어 살아온 것이다.
영광을 만난 것은 일한이 처음에 생각한 것처럼 재수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가짜에게 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란 행운이다. 2번째 오디션 무대의 성공 이후 일한은 자신의 진정성을 담는 곡을 만드는 데 더욱 매진하고 그와 동시에 영광이와도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가까워진다. 그러자 일한의 실력을 인정한 프로그램 투자자가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윗사람들이 싫어한다”면서 영광이를 배제시키라고 압력을 넣는다. 그는 압력에 저항한다. 부당함에 저항하게 되고, 정의를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매일 매일 미디어를 통해 중계받는 세상에 절망하고 있다가 이런 영화를 통해서 착한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다시 갖게 될 수 있다면, 그래서 함께 살고픈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갖게 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하게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