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_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스토리펀딩에 참여: 후원 마감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후원은 마감했습니다.
1월 16일(월) 오후 8시 종로3가 내 서울극장 내 인디스페이스에서 민언련 회원 공동 상영회를 엽니다.
공동 상영회 안내는 별도로 안내하겠습니다.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후원에 참여한 회원과 시민들에게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YTN, MBC 언론인 대량 해직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 2017년 1월 12일 개봉합니다.
정권에 의해 진행된 언론장악의 구체적인 과정과 그로 인해 붕괴된 저널리즘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습니다.
민언련 회원들이 모아주신 소중한 후원금은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의 스토리펀딩에 전액 후원합니다.
신청하신 후, 신한은행 110-467-937446(유민지)로 입금해 주세요.
·후원해주신 회원분들은 1월 16일(월) 저녁 8시, 서울(정확한 장소는 미정) 시내 CGV 극장에서 민언련 회원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실수 있습니다.
·지역에 계시거나 개인사정으로 개별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은 다음 스토리펀딩,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1886을 통해 직접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후원하신 분들의 성함은 영화 엔딩크레딧 '민주언론시민연합' 단체 명 뒤에 함께 기재합니다.
“우리 이대로 잠자코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들이 없는 7년, 3,000일, 3,001일, 3,002일…
2016년 12월 21일, 상암동 롯데시네마.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이날은 노종면, 현덕수, 조승호, 우장균, 권석재, 정유신 선배가 해직된 지 삼천일 되는 날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추스를 새도 없이 노종면 선배의 딸 해민이 얼굴 위로 핀 조명이 떨어졌다. “아빠, 편지를 썼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내가 너무 철없는 말만 써놓은 것 같아서 못 읽겠어….” 올해 수능을 본 해민이는 노 선배 해직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나는 입사한지 1년도 안 된 신입 기자였다.
2008년 초여름, 사장이 바뀐다는 말을 들었다. 구본홍 씨라고, 이명박 캠프에서 언론특보를 하던 사람이란다. 아직 수습 티를 못 벗은 우리도 두셋 모이면 수군댔다. “우리, 이대로 잠자코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냐?”
선배들은, YTN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공채 기수들의 ‘낙하산 반대’ 성명이 쏟아졌고, 현덕수 선배가 단식농성에 나섰다. 사장 선임이 이뤄지던 7월, 주총장에서는 몸싸움이 벌어졌다. 고소하겠다고 소리치는 이선아 선배, “제대로 뉴스 해보자고 한 게 이런 겁니까, 제 젊음을 다 바쳤습니다, 이 회사에” 최기훈 선배의 오열,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펑펑 눈물을 흘리는 홍주예 선배….
2008년은 폭풍처럼 흘러갔다. 남대문 사옥 앞에 텐트를 친 채 여름을 났다. 6명이 해직되던 10월, 보도국에서 열린 사원총회는 너무 생생해서 요즘도 가끔 꿈에 나온다. 전두환 정권 이후 처음 있는 언론인 대량 해고였다. 그래도 우리는 물러설 줄 몰랐다. 이틀 뒤, 앵커들이 ‘상복’을 뜻하는 검은 옷을 입고 앵커석에 앉는 ‘블랙 투쟁'을 했다. 그리고 12월, 최시중 씨가 위원장으로 있던 방송통신위원회가 YTN의 재승인 심사를 보류하며 회사 목을 졸랐다. 사내에서 침묵하던 사람들이 이제 그만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2009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촛불도 다 꺼진 그해 겨울은 유독 추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칼바람 불던 회사 뒷문, 사장실 앞 복도에서 주먹밥을 먹으며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가던 날들. 그 아침 집회 중의 하루, 복도에 놓인 TV는 불길이 이글대는 용산의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그 고립된 건물처럼, 우리의 매일은 춥고, 뜨거웠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른 채 이따금 물었다. “YTN 사태는 이제 끝난 건가요?” “거긴 이제 조용하죠?”
우리는 지금껏 두 차례 파업을 했다. 첫 번째 파업은 2009년 3월. 파업 전날 선배 4명이 체포됐다. 이 중 노종면 선배는 구속됐다. 파업은 11일 만에 끝났고, 인질로 잡혔던 노 선배는 파업이 끝나던 날 풀려났다. 두 번째 파업은 2012년 언론노조 총파업 때였다. 비 내리던 여의도 공원과 텐트에서 1박 2일을 농성을 벌이던 밤들. KBS, MBC와 함께 있다는 위안과 곧 지긋지긋한 이명박 정부가 끝나간다는 기대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박진수 선배의 '복직 송' 춤이다. ‘Yes 복직’ 팻말을 흔들며 몸부림치는 선배 모습에 사람들은 배꼽을 잡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지. 늘 한결같이 절실했던 선배의 마음이 전해져, 지금도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운다.
2008년부터 이제 다시 한해가 지나 2017년까지. 그 긴 시간 동안, 해직된 선배들의 시계도 느리지만 바쁘게 흘러갔다. 뉴스타파, 천안함 언론검증위, 국민TV, 기자협회, 책 출간, 미디어 피폭지 국토 순례…. 선배들의 기사를 보면 ‘기쁘지만 슬픈’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선배들의 기사가 좋아서 기쁘다, 하지만 같이 일하면 좋을 텐데, 아니 같이 일하자는 말로 우리가 발목을 잡는 것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무색하게 선배들은 끈질기게 복직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리한 시간을 거쳐, 대법원 판결이 난 지금까지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마음을 놓은 적이 없다.
그 마음의 깊이를, 그 사적인 시계를 나는 모른다. 회사 출입증을 빼앗겼기 때문에 노조 사무실에만 머물렀던 시간. 그마저도 어색해져 발길을 점점 줄여왔던 선배들의 시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내가 아프던 시간, 아이가 태어났던, 어린 아이가 성인으로 자라난 시간. ‘공정방송’을 등에 써 붙인 채 컴컴한 길을 달리고 또 달렸던 시간들.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은 “우리, 이대로 잠자코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YTN, MBC 사람들을 대신해 짐을 짊어진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언론사의 폐허, 그렇게 폐허가 된 언론을 가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앞에서 묘사한 장면은 우리가 지난 삼천일 동안 행사 때마다 마르고 닳도록 틀고 보아 와서 이제는 머릿속에 박혀버린 장면들이다. 이 영상들이 번듯하게 극장에 걸렸다. 이제 그 영상 속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고 주먹을 쥐고 그러다가 웃기도 했던 사람들 중에 많은 이가 YTN에 없다. ‘언론 민영화’를 외치며 다양한 종편을 탄생시킨 이명박 정부 이후의 언론 지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직 사태가 없었다면 회사를 떠나지 않았을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사람들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짙게 남았다. 이 영상들이 우리끼리의 추억으로만 남지 않고 극장에 걸릴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고맙다. 우리 이렇게 싸웠노라고, 그리고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고 늘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는 실패했다. 지난 삼천일은 끊임없이 그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참히 실패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더욱 깨닫는다. 우리의 싸움이 옳았다고. 우리가 싸운 상대는 교묘하게 포장했지만 악이 맞았다고. 그리고 이 실패를 곱씹으며 앞으로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2008년 촛불의 학습으로 정부와 언론의 ‘폭력 프레임’ 빌미를 주지 않았던 2016년 촛불처럼. 옳으면서, 더 강할 것이다.
글 장아영 Y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