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모니터_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들이 잡힌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2024년 9월 수상자] 딥페이크 성범죄 심각성을 공론화한 MBC 이승지‧류현준‧송정훈 기자
등록 2024.10.15 09:34
조회 252

1.jpg

△ 딥페이크 성범죄의 심각성을 공론화환 MBC ‘인하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연속보도’ (출처 : MBC)


‘서울대 N번방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5월, MBC 제보창에 인하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제보가 들어왔다. 충격적인 내용에 이승지 기자는 곧바로 제보자와 통화했다. 인하대에 집중된 피해 취재를 위해 인천지역 담당 김지성 기자가 합류했다. 피해자 한 명 한 명을 만나 설득하며 어떤 피해를 겪었는지 알아보고 지난한 수사과정을 취재했다. 두려움과 불안감에 시달려온 피해자에게 “부디 자책하지 말고 반짝거리는 삶을 사시라”고 응원을 건넸다. 그새 3개월이 훌쩍 지났다.

 

MBC ‘인하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연속보도’는 인하대학교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 벌어지는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를 공론화하고 플랫폼사업자 텔레그램의 무책임, 미흡한 가해자 처벌 등 구조적 문제까지 짚어 정부와 수사기관의 적극 대응을 이끌어낸 점을 평가받아 2024년 9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받았다. 피해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 딥페이크 성범죄 심각성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이승지‧류현준‧송정훈 기자를 만났다.

 

2.jpg

△ 딥페이크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린 MBC 이승지‧류현준‧송정훈 기자 ⓒ민주언론시민연합


텔레그램 장벽에 가로막힌 수사의지

다수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확인과정이 불가피했을 텐데 협박, 조롱 등을 접할 때 어땠는지.

이승지 : 보도에서는 ‘협박, 조롱, 입에 담기 힘든 말’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 보면 그냥 욕이다. 한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어떤 메시지는 제목부터 그렇게 적혀 있고 대화방에서 오가는 말들도 그런 식이다. 이런 내용을 보는 게 힘들었다. 피해자가 용기 내 제보해주셨고, 언론은 제대로 보도할 의무가 있으니 맡은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취재를 이어갔다.

 

피해자들이 호소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이승지 : 신고하려면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속 피해 합성사진을 인쇄하고, 그 안에서 오간 조롱 섞인 얘기를 직접 타이핑해서 가져가야 한다. 그런데 가족과 사는 집에서 인쇄하다 보니 부모님이 인쇄물을 보시고 피해사실을 알게 된 경우도 있다. 일반인이 경찰서 가는 것 자체가 쉬운 게 아니지 않나. 그런데 피해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어렵게 가져가도 ‘수사가 안 된다’, ‘못 잡는다’, ‘해외 SNS는 미성년자 성착취물이 아니면 신고가 안 된다’ 등 말을 듣고 정말 허무했다고 한다.

 

피해자가 모은 증거를 토대로 일부 가해자를 검거했는데, 경찰이 수사의지가 있긴 한가 싶더라.

송정훈 : 피해자들도 그렇게 느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직접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 들어가 증거를 수집하고 경찰에 전달했겠나. 경찰의 수사의지를 언급하는 건 조심스럽다. 경찰은 그동안 텔레그램이 수사에 비협조적이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보도들이 나오면서 정부는 물론 텔레그램 자체가 전향적인 태도로 입장이 변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보도 의미가 크지 않나 싶다.

 

이승지 : 피해자 입장에서는 수사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허무하지 않겠나. 그런데 제도상 경찰의 수사의지를 잃게 하는 지점이 분명 있다. 위장수사는 쉽지 않고, 사건이 접수되니 수사를 이어나가야 하지만 수사협조는 안 되는 상황이 다반사다. 경찰의 의지 부족만으로 볼 수 없고 복합적 문제로 봐야 한다.

 

장기대책보다 즉각 피해 멈출 대책 시급

일반여성 얼굴에 음란물을 조악하게 합성해 퍼뜨리는 디지털성범죄가 진화한 원인은.

류현준 : 공적 영역의 소극적 대처, 안일한 사회의식이 딥페이크 성범죄 진화와 피해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올해 상반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딥페이크 성착취물 관련 수사를 의뢰한 게 한 건도 없다. 적극 대처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물리적인 성폭력이 아니라는 이유로 딥페이크 성범죄가 한 명의 인생을 얼마나 곪아가게 할 수 있는지 체감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본선에서 참가자들에게 “딥페이크 속 내가 더 매력적이라면, 진짜 나와의 갭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는데 비판 보도가 쏟아졌다. 예전이라면 얼마나 비판보도가 나왔을까. 지금은 MBC뿐 아니라 많은 언론이 딥페이크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보도하고 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게 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보도 이후 수사기관과 정부 당국이 적극 대응에 나섰는데.

송정훈 : 201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성범죄가 시작됐다지만 일반여성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만들어 유포하는 행위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수사기관은 딥페이크 성범죄 심각성을 알았을 수 있지만 종합적으로 분석할 역량은 없었을 것이다. 이번 보도가 수사기관과 정부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정부는 허위영상물 제작‧유포자 처벌형량을 높이고 허위영상물을 시청‧소지한 사람을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곧장 대책마련에 나선 것도 긍정적으로 보고 실효성도 기대하고 있다. 다만, 딥페이크 성범죄 파장에 따른 반짝 대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실제 법안 제정과 시행으로 이어질지, 수사기관이 적극 수사에 임할지 언론이 계속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일이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대책은 무엇인가.

이승지 : 당국에서는 일단 처벌 형량을 올리는 방안을 언급했는데 피해자들 시각은 다르다. 형량을 올리든 말든 가해자를 못 잡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가해자 검거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사회 문제로 대두됐지만 가해자들은 여전히 피해자들을 조롱하며 검거되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다. 이런 가해자 인식을 바로잡을 대책이 급선무다. 취재기자를 대상으로 텔레그램 합성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당국은 장기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지금 피해를 즉각 멈출 방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온상이 된 해외 SNS, 특히 텔레그램 문제가 대두됐는데.

류현준 : 딥페이크 성범죄 보도에서 해외 SNS에 대한 문제 제기는 꼭 필요했다. 가해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텔레그램에서는 절대 안 잡힌다’, ‘안전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공유돼 있더라. 텔레그램은 해외 플랫폼사업자라서 국내에서 아무리 파장이 커도 영향력이 미치지 못해왔다. MBC 보도 후 다른 언론도 텔레그램 문제점을 비판했다. 그 결과 텔레그램이 사과까지 했다.

 

텔레그램을 이용한 딥페이크 성범죄를 막기 위한 시급한 대책은?

이승지 : 최근 텔레그램이 각국 정부의 정당한 법적 요청이 있으면 사용자 아이피(IP), 전화번호 등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국내 수사기관과 텔레그램이 협력해 사건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게 필요하다. 가해자들이 텔레그램에서 활동해도 잡힐 수 있다는 걸 실제 피해자들에게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피해자들, 자책 말고 반짝거리는 삶 사셔라

제보자들이 보도된 후 더 힘들어하진 않았나.

이승지 : 사전에 보도 되더라도 댓글을 안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보시더라. 특히 대학교 커뮤니티가 있다 보니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나. 우려하던 대로 피해자들이 보도 이후 2차 가해성 댓글로 힘들어했다. 그럴수록 그런 주장은 주류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렸다. 오히려 ‘용기를 내서 잘한 거다’, ‘주변 사람들도 당신의 용기 덕분에 좀 더 행동하고 신고하려고 애쓰고 있다’ 등 피해자를 응원하는 댓글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취재에 응하고도 두려움에 떠는 피해자들이 많은데 해주고 싶은 말은.

이승지 : 피해자들에게 계속 했던 말인데,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자신을 탓할 가능성이 높다. ‘왜 내가 SNS에 사진을 올렸지’, ‘공개 계정이라서 범죄를 당한 건가’ 식으로 자책할 수 있다. 부디 자책하지 말고 반짝거리는 삶을 그대로 사셨으면 한다.

 

송정훈 : 수사기관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그래도 수사기관을 믿고 찾아가 수사를 의뢰하고, 고소하고, 적극 나서주시면 또 다른 추가 피해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류현준 : 피해자들은 ‘나의 문제 제기로 내 집단이 망가지고 있다’거나 ‘내 주변이 좀 달라진 것 같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피해자 탓이 아니라는 말을 가장 먼저 해주고 싶다.

 

‘SNS을 이용한 게 잘못 아니냐’ 등 피해자를 비난하는 주장을 어떻게 보는가.

류현준 : 소수에 불과한 주장이지만 피해자들에게 상처일 수 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오히려 이런 주장을 질타하는 반응을 통해 위로받으시더라. ‘피해자들이 잘못’이라는 댓글에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누군가 비판하면 위로받는 거다. 그런 의미 있는 댓글이나 반응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송정훈 : 피해자를 탓하는 사람들에겐 별로 반응하고 싶지 않다. 다만, 딥페이크 성범죄는 심정적으로 피해자들의 고통이 너무나 큰 범죄다. 일반인이 불법합성물의 대상이 되어 이렇게 피해를 당하는 건 피해자들의 삶을 좀 먹게 하는 범죄다. 피해자를 탓하는 사람들이 부디 그분들의 고통을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승지 : 보도에서는 ‘피해자’라고 표현했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내 동료가 될 수도 있다. 내 옆에서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 이런 피해를 당한 것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사람들의 고통이 어땠을지 헤아리는 게 먼저다.

 

계획 중인 후속보도도 궁금하다.

류현준 : 경찰이 8월 28일부터 7개월간 딥페이크 성범죄 특별 집중단속에 나섰다. 통계를 보면 이전보다 단속건수가 확연히 늘어났다. 집중단속 종료 후 범죄자들이 얼마나 잡혔고 어떤 수사를 통해 효과를 거뒀는지, 단속건수가 늘어날 수 있던 이유 등을 검증하는 보도를 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동안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들의 말씀에 집중하는 보도를 했다면, 아이디어 차원이지만 가해자들을 만나 가해행위 배경 등을 짚어보는 취재를 구상하고 있다.

 

3.jpg

△ MBC ‘인하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연속보도’가 2024년 9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