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_
편파·왜곡 보도에 맞설 현명한 유권자의 실천이 필요하다
김서중(성공회대학교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
등록 2024.02.27 16:59
조회 975

편파·왜곡 만연한 한국 언론의 선거보도

 

1992 선감연.jpeg

▲ 1992년 2월 20일 민언협(민언련의 전신) 등 언론 관련 5개 단체가 결성한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 기자회견 현장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중요한 기제는 선거다. 주권자인 시민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와 지식이 필요하다. 이를 도와주는 언론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언론은 그런 책무를 잘 수행하고 있을까?

 

1987년 민주화운동의 힘으로 이뤄낸 대통령 직선제 쟁취, 이어진 1987년 대통령 선거는 군부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는 중요한 교두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당시 여당 후보였던 노태우의 당선이었다. 조선일보가 편파보도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지는 선거마다 언론의 선정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는 민주주의 꽃인 선거 결과를 왜곡시켰다. 이에 1992년부터 민주언론시민연합(당시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을 중심으로 구성된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가 대응에 나섰다.

 

선거보도 모니터 결과 언론의 편파왜곡보도는 다양했다. 확대·축소·은폐 등의 수법을 통한 편파보도는 물론, 후보자의 당선 가능성에만 집중하는 경마중계식 보도, 본질은 제쳐두고 흥밋거리에 집중한 가십성 보도, 선거의 중요한 쟁점은 비껴가는 피상적 보도, 원인은 없이 결과만 강조하는 폭로성 보도 등등. 유권자의 신중한 주권 행사를 돕기는커녕 선거를 혼탁하게 만들뿐이었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가장 중요한 선거제도와 관련한 언론 보도는 어땠을까?

 

2020년 선거 직전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완전한 연동형은 아니지만 그나마 표의 등가성을 실현하기 위한 개혁이었다. 특정 정당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의 표는 대부분 지지 후보가 탈락하면서 사표가 된다. 표의 등가성 원칙에 맞춰 이러한 사표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한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위성정당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의미가 퇴색할 가능성이 있으면 그 방지장치를 마련하는 노력과 주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언론의 바람직한 보도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연동형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병립형이 누구에게 유리할까만 따지는 보도 태도를 견지했다. 본질은 사라지고 유불리만 따지는 언론이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을 도우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거 앞두고 여론전 나선 대통령, 적극 돕는 KBS

 

민생토론회 충남.jpeg

▲ 2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충남 서산비행장에서 개최한 열다섯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현장 ©대통령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선심성 전국 순회가 이어지고 있다. 설 연휴를 마치고 전국을 돌면서 민생토론회를 연다고 했고 그 말을 실천 중이다. 오비이락이라는 말이 있으니 선거를 앞두고 자제해야 마땅하지만, 국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는데 누구든 시비를 걸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민생토론회라면 의견 청취의 장이어야 한다. 선심성 정책을 홍보하는 장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발표는 전달하는 반면 현장 시민들의 의견을 기사로 접할 수는 없다. 정부의 정책 발표 내용에 관련된 이해당사자의 찬반 의견 전달도 보기 어렵다. 언론도 정부 정책의 홍보 매체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여당을 지지해줄 것을 바란다는 말을 한 것이 탄핵의 주된 이유였다. 선거 중립성 위반이라는 이유다. 그것을 취재 보도 비판했던 언론들이라면 선거를 앞두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정부의 선심성 정책 남발을 중립성 위반의 관점에서 보도해야 마땅하다. 그런 언론을 몇이나 볼 수 있을까?

 

MBC 파우치 대담 자막.jpeg

▲ KBS의 윤석열 대통령 대담 중 앵커의 ‘파우치’ 발언 논란을 전하는 MBC 보도 갈무리 ©MBC

 

대표 공영방송을 자부하던 KBS는 대통령 대담 녹화방송을 내보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그동안 굴곡은 있었지만, 대통령과 언론의 만남은 좀 더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향으로 진전됐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일방적으로 폐기한 이후 올해 신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다. 점점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예정된 질문과 답, 사후 편집까지 가능한 녹화 방송으로 대체했다. 정제된 발언으로 신뢰할 수 있는 대통령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전달하자는 의도였으리라 애써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국민들이 궁금한 점을 대신하여야 할 대담자는 날카로운 질문은 하지 않았고, 심지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과 관련하여 “외국 회사의 조그마한 백”이라 칭하며 사소한 일로 치부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대통령은 억울함만을 호소했다. 대통령 홍보 대담이 되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도 KBS는 시청률이 높았다는 이유로 설날 재방송까지 했다. 이 정도면 대통령의 선거 개입을 KBS가 도왔다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좋은 보도를 찾는 현명한 유권자, 유권자 의제 주목하는 언론의 시너지

 

총선-칼럼-1화-삽입-이미지-001.png

▲ 2022년 지방선거 당시 KBS제주의 기획보도 유튜브 썸네일 갈무리 ©KBS

 

민생토론회라는 일방적 정책 발표, 대통령 홍보성 대담, 후보 검증 없는 공천 파동 집중 보도 등 총선을 앞두고 앞으로 언론의 선거보도가 편파·왜곡 보도, 선정적 보도 그리고 경마중계식 당선 가능성 보도가 대세를 이룰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언론은 선거보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정책·후보 검증 보도에 집중할 수는 없는 것인가?

 

2022년 KBS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책 관련 집중 기획보도를 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기획보도 기사를 접속한 이용자는 소위 경마중계식 보도 이용자의 10%에도 못 미쳤다고 한다. 좋은 기사를 생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좋은 기사는 좋은 수용자에 상응한다. 언론에서 좋은 기사를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좋은 언론인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려면 좋은 기사가 더 많이 수용되고 그만큼 더 많은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현명한 유권자가 필요한 이유다.

 

선거 기간 정책·후보 검증 보도는 기본이다. 대부분의 선거에서는 후보자나 정당이 선거용 정책을 남발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으로 누구에게 이해득실이 발생하는지 즉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좋은 정책이라도 현실 가능성이 있는지, 정당이나 후보자가 정말 그런 정책을 실행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지 등을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정당이나 후보자의 관점에서 선전하기 좋은 의제일 뿐이다.

 

선거 기간은 유권자가 강력한 주권을 행사하고, 원하는 정책을 관철하는 중요한 시기다. 유권자가 진정 필요로 하는 정책, 즉 유권자 의제를 드러내고 후보자가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언론이 필요하다. 정당이나 후보자 뒤를 쫓는 언론이 아니라, 유권자의 민심을 읽는 언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에게 이를 기대하기는 사실 어렵다. 더군다나 유튜브나 SNS에 만연한 정파적이고 상업적인 편파 왜곡 콘텐츠에 익숙한 지금의 소통 환경에서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을 돕는 선거보도, 선거 관련 콘텐츠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서길 바라는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과 실천만이 대안이다. 드물지만 좋은 언론, 좋은 언론이 생산한 좋은 콘텐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그러한 콘텐츠만을 수용하기에도 시간은 모자란다. 현명한 콘텐츠 소비로 좋은 콘텐츠 생산을 격려하고 진작시키는 적극적인 유권자의 실천이 절실하다. 더불어 유권자가 자신의 생각을 적극 드러내려는 실천이 필요하다. 부당한 기사, 콘텐츠들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일까? 현명한 유권자가 모이면 유권자가 바위이고, 왜곡된 언론이 계란일 뿐이다.

 

민언련 총선 특별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맞아 선거 전후 언론보도와 사회 의제를 짚어보는 총선 특별칼럼을 마련했습니다. 시민이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얻어 현명한 주권자로서 선거에 참여하길 바라며, 첫 번째로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해당 칼럼은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