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칼럼_
방송장악! 저항과 동시에 방송법 개정안 조속 처리해야
김서중(민언련 이사·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등록 2023.08.2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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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장 축출 시도로 시작된 방송장악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독립성이 생명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원장을 ‘대통령 국정 철학과 맞지 않은 사람이니 사퇴해야 한다’는 반민주적이고 해괴한 논리로 공격하더니, 방송장악의 선봉에 섰던 사람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국정 철학은 방송장악인가?

 

다수결 원리 악용한 공영방송 침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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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8월 29일 기준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구성 현황 ©민주언론시민연합

 

지난 1년여간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연속해서 벌어졌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 의문의 끝을 쫓아가다 보면 총선에 이른다. 감사원, 검찰을 동원해 방송통신위원장을 기소하고, 대통령은 기소 사실을 빌미로 한상혁 전 위원장을 면직시켰다. 그리고 야당이 법적 절차에 따라 추천한 방송통신위원 후보 임명을 미뤘다. 후보의 법적 결격 사유가 명백하지는 않지만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것인데, 법제처는 수개월째 유권해석을 미루고 있다. 반면 여권 성향의 위원은 임기가 다하자 그 후임을 즉각 임명했다. 그리고 그사이 다수가 된 여권 성향 방송통신위원들이 다수결의 횡포를 벌였다.

 

5인 정원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몇 개월째 3인 비정상 체제를 고수하며 2인의 찬성만으로, 공영방송 이사장들을 비롯한 이사들을 해임하고 여권 성향의 이사들로 교체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에 따라 재적 위원 다수결로 의결했다니 문제가 없다지만, 3인 위원 체제를 수 개월간 방치하며 비상 체제의 장기화라는 방송통신위원회 초유의 위기 상황을 만들어 놓고 이를 악용한 것이다. 면직과 임명 거부로 이어지는 방송통신위원회 위기 상황을 방치한 대통령과 여당은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악용했다. 공영방송 이사진을 여권에 유리하게 변경하려는 게 목표였음은 명백하다. 왜 그랬을까?

 

이제 곧 벌어질 공영방송 사장 해임 시도에 그 답이 있다. KBS 이사회의 사장 해임 의결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떠돈다. 개편된 이사진이 해임 요구를 하고 나섰으니 곧 현실이 될 것이다. MBC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추가 해임하고 이사진 구성을 변경하여 사장 해임을 시도할 것이다. 사실 이명박 정권 당시 경험한 일이다. 상식적인 시민이라면 그 의도를 알아챌 것이다.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불리한 것이 자명한 공영방송 침탈이라는 반민주적인 행위를 왜 강행하려 할까?

 

총선 겨냥한 방송장악과 저항권 행사

 

아무리 생각해도 총선을 배제하고 설명할 수는 없다. 사장을 교체하고, 보도·제작진을 유리하게 개편해 비판을 억제하고 우호적인 보도를 강요할 것이다.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발판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그런데 공영방송 침탈을 기억하는 시민들의 기억이 희미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시가 급한 모양이다. 임기가 몇 개월 남지 않은 방송통신위원장을 억지로 면직하고, 3인 비정상 체제에서 공영방송 이사 교체라는 중차대한 일을 전격적으로 감행한 이유다. 3인의 비정상 체제가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전격적으로 해촉한 일도 같은 맥락에 있다. 현 정권의 방송장악 1차 목표는 총선에서 유리한 국면을 차지하는 데 있다.

 

방송법은 1조에서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을, 4조에서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음’을 명시했다. 따라서 방송통신위원장에서 시작해 공영방송 사장 그리고 간부진을 교체하여 방송 내용에 부당하게 간섭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위법한 것이다. 악용된 다수결의 원칙도 민주주의 원칙이라 강변한다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체의 행위에 저항하여 민주주의를 지키는 저항권 또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방송 자유와 독립을 믿는 공영방송 구성원이라면, 공영방송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저항에 나서리라 의심치 않는다. 그러면 공영방송 침탈로 궁극적인 피해 당사자가 될 시민 역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공영방송 지키기에 나설 것이다. 반민주세력에게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면 커다란 저항에 직면함을 보여주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공영방송 독립성 보장할 방송법 개정안 조속 처리해야

 

하지만 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현 정권이 공영방송 장악을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후견주의가 아직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법은 어디에도 정치권이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지 않았다. 하지만 관행적으로 대통령과 여야가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에 간접적으로 그러나 강력하게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정치적 후견주의다.

 

정치적 후견주의의 악순환을 끊는 것은 공영방송 구성원은 물론 학계의 숙원이다. 지금껏 다양한 개선안이 나왔다. 정치권이 아예 공식적으로 공영방송 이사진을 구성하게 하는 반면 어느 일방이 사장 선임과 같은 주요 결정 사항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2/3 찬성과 같은 특별다수제를 도입하자는 안, 방송통신위원회와 국회가 공영방송 이사 구성을 분점하는 안(단, 국회 추천 안에 방송통신위원회가 거부권 행사 가능), 시민의 직접 참여로 공영방송 이사를 선출하는 안. 다양한 제안들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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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법 개정안 주요 내용 갈무리 ©민주언론시민연합

 

지금 국회 본회의에는 정당이 공영방송 이사를 일부 추천하지만 이사 구성 추천 주체를 다변화하여 정치적 후견주의를 무력화하는 안이 회부되어 있다. 이 법안 46조에 따르면 공영방송 이사진은 국회가 교섭단체 비율에 따라 5인,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 추천 6인, 시청자위원회 추천 4인, 방송 전문가 대표 직능단체 추천 6인 등 21인으로 구성하도록 한다. 정치권의 5인 이사 추천권을 공식화하는 아쉬움은 여전하지만, 이사 추천 주체를 다변화하고 정치권 추천 이사들이 소수가 되게 한 방안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또 방송법안에는 이사 추천의 다변화와 더불어 사장 선출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방송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장치다. 문제는 제안자인 민주당이 8월 국회에서 방송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은 것이다.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법 개정은 한시가 급하다. 애초 이 법안을 반대한 국민의힘이야 그 의도가 명백하니 말할 나위 없지만, 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늦추는 것에 기본적인 책임이 있다. 일각에서 대통령 거부권을 우려한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방송장악 방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방송장악 선봉자를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한 행태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정치적 후폭풍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독립 행정기관 수준으로 격상해야 할 방송통신 정책기구

 

공영방송 장악 방지를 위한 법 개정도 필요하지만, 정부의 방송통신위원회 장악 과정을 고려하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지금의 방송통신위원회를 대체할 새로운 방송·통신 규제기구를 법제화하는 것이다. 지금의 방송통신위원회를 ‘방송장악위원회’로 변질시킨 정부 여당의 행태에서 보듯, 방송통신위원회는 독립성을 보장해야 마땅하지만, 정권의 악의에 따라 휘둘릴 수 있다. 독립성에서 취약하다. 방송통신위원회를 국가인권위원회 수준의 독립기구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2018년 국회 헌법개정 특별위원회는 가칭 언론통신위원회, 즉 미디어 정책기구(거버넌스)는 헌법상 혹은 법률상 독립기관으로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행정권(대통령 등 권력의)의 비대화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으므로,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영역에서 헌법, 또는 법률상의 행정권 분점 즉 독립적인 행정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국회가 민주주의의 본질인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방송·통신 정책 규제기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헌법 개정 또는 법률 제·개정을 심도 있게 논의해서 구현해야 한다. 권력의 횡포를 막기 위한 제도의 변화는 끝이 없는 것이다.

 

* 민언련 특별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 탄압과 언론장악 실태를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특별칼럼’을 마련했습니다. 네 번째로 김서중 민언련 이사·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해당 칼럼은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