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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행 잼버리 뒷북 비판하던 언론, ‘유종의 미’ 호들갑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8월 11일 폐영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1,117억 원 넘는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야영지의 기반·편의시설은 형편없었고, 폭염과 태풍, 해충 문제까지 더해지며 준비부실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태풍 ‘카눈’의 북상을 앞두고 새만금 부지에서 조기 철수 결정이 내려지자, 대원들은 아쉬운 발길을 옮겨야만 했습니다. 새로운 모험과 교류라는 잼버리 본연의 취지가 무색하게 대원들은 국가별로 뿔뿔이 흩어져 견학과 관광의 일정을 보내다 서울 상암에서 K팝 콘서트와 함께 대장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국제 망신’ 오명을 안겨준 잼버리는 일부 국가의 조기 퇴영부터 새만금 부지 철수 이후 ‘국가총동원령’에 준하는 정부의 징발행위까지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잼버리 대회는 끝을 맺었지만. 파행으로 끝난 잼버리 조사는 이제 시작인데요. 언론의 잼버리 관련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보수·경제지 앞다퉈 ‘유종의 미’ 강조
폐영식과 K팝 콘서트로 세계 잼버리가 마무리된 다음 날인 8월 12일, 잼버리를 보도하는 언론의 온도 차가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보수·경제지가 유종의 미를 강조하며 전 국민이 힘을 합쳐 폐영식을 무사히 마쳤다고 부각했다면, 진보언론은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를 질타하며 잼버리 파행 책임 규명을 강조했습니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한숨으로 시작해 환호로 끝났다>(김승현·김은중·조재현 기자)를 실어 잼버리가 초반 부실에도 정부·기업·종교계·시민의 총력 지원으로 우여곡절 끝에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3면 전체를 할애해 잼버리의 긍정적인 면모를 부각하며 지방정부 책임론을 제기했는데요. <응원봉도 지원한 기업, 통역 봉사자…다 함께 ‘코리아 잼버리’ 치렀다>(구아모·박혜연 기자·지가영 인턴기자)에서는 방학을 맞은 전국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문화사절단으로 맹활약했다며 “잼버리가 폭염·태풍으로 파행 위기를 맞자 기업과 지자체, 공공기관은 물론 학생들까지 나서서 ‘코리아 잼버리’를 치렀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 역시 <다시 하나된 잼버리, K팝 환호속 피날레>(8월 12일 이지윤·주현우·이채완 기자)에서 콘서트를 즐기는 대원들의 긍정적인 소감과 함께 정부의 폐영식 총력 관리를 강조했는데요. 매일경제·한국경제도 잼버리가 악재를 딛고 무사히 대장정을 마무리했다고 평가하며, K팝 공연을 즐기는 대원들의 모습을 부각했습니다.
△ 잼버리 대회 ‘유종의 미’ 강조한 조선일보, 파행 책임 규명의 필요성 강조한 경향신문(1면, 8/12)
반면, 경향신문 <‘관광·K팝 잼버리’로 막 내려…‘파행 책임 규명’ 여진 불가피>(김지환 기자)는 “이번 잼버리는 ‘유쾌한 잔치’라는 어원과 달리 ‘생존 게임’이 됐다는 평가”가 초기부터 이어졌다며 “파행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여진’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겨레 <‘파행’ 잼버리 책임론에도...조직위 끝까지 폭염·태풍탓>(채윤태·김미나 기자)도 폐영식 영상에 조직위가 “‘뜻하지 않은 시련, 한반도를 덮친 폭염과 태풍’이라는 자막을 달며”,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으로 대원들이 겪은 어려움을 자연재해 탓으로” 돌리고 한덕수 국무총리도 “정부 대처를 자찬했다”고 비판했는데요. 초반부터 파행을 겪은 잼버리의 부실 운영의 성토가 잇따랐다며 책임 규명을 둘러싼 충돌이 예고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방정부에 책임 떠넘긴 조선·중앙
잼버리의 준비 부족과 부실 운영을 두고 조선일보는 지방정부 책임론 제기에 앞장섰습니다. <SOC 예산 2조 챙기고선...문제 터지자 또 손 벌린 지방정부>(8월 12일 김정엽 기자)는 잼버리로 “지방자치 행정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성공적인 대회 개최보다는 사회간접자본(SOC)예산만 챙기고, 정작 문제가 터지자 중앙정부에 다시 손을 벌리는 등 한계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는데요. 잼버리가 “화장실과 샤워장 위생도 관리하지 못해 파행을 빚었다가 정부가 69억원을 긴급 투입해 겨우 안정을 찾았”다며 지방정부의 관리 부실을 정부가 해결한 듯 보도했습니다.
전북에서 치러지는 행사인 만큼 지역 공무원이 많이 배정될 수밖에 없는 사안에서도 조선일보 <문제된 잼버리 시설, 관리자 모두 지방공무원>(8월 14일 박수찬·최종석 기자)은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지방정부 ‘탓’을 정조준했는데요. “조직위 사무국 인원 115명 가운데 53명(46%)이 전북도청과 전북 각지 시군에서 파견된 공무원”이고, “불만이 폭주했던 화장실·샤워장 관리, 그리고 상하수도 및 배수 시설을 담당하는 사무국 산하 시설관리본부 직원 8명 역시 모두 전북도 등에서 파견된 지방 공무원”이라며 지역 공무원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조직위 정관상 집행위가 승인권을 갖고 있어 “형식적으로는 조직위 책임”처럼 보이지만, “실질적 권한은 전북도가 쥐고 있”기 때문에 “시설관리 부실의 1차 책임도 전북도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주장했는데요. “사실상 대회 준비는 전북도가 주도했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행안부 관계자의 발언까지 덧붙였습니다.
중앙일보는 <잼버리 끝난 뒤 준공 전북 이상한 계약서>(8월 14일 김준영·김기정 기자)에서 잼버리 파행 원인으로 “기반시설 미비가 지목되는 가운데, 전북도가 계약 단계부터 느슨한 일정의 사업자 선정으로 문제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습니다. 입찰 작업부터 뒤늦게 착수한 “전북도가 지역 소규모 기업으로 입찰 대상기업을 한정하고” 국제행사 경험이 전무한 “기업을 사업대상자로 선정”해 “잼버리 초반의 참사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는데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모두 시설 운영 책임은 전북도에 있다며 잼버리 파행의 원인이 지방정부라고 주장했습니다.
잼버리지원특별법, 정부 고위 관료 책임 명시
하지만 일방적인 전북도 책임론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지원특별법>은 잼버리 ‘조직위원회’가 여성가족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설립되며,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11명의 각 부처 장관이 포함된 ‘정부지원위원회’가 잼버리의 주요 정책을 심의·조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책임 있는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은 정부 고위관료 대신 ‘실질적 권한’을 언급하거나 지방자치 회의론을 꺼내 들며 지방정부를 비난했습니다.
한겨레 <‘잼버리’ 1171억 어디에 누가 썼지…폭염 예산은 2억뿐인데>(8월 14일 오세진 기자)는 “여권에선 ‘주무 책임기관은 집행위원장을 맡은 전북도’라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총사업비 1171억원 가운데 절반가량인 617억원은 올해 집행”됐으며 조직위가 870억원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는데요. 조직위가 인건비 등을 제외한 “656억 원은 야영 및 프로그램 운영 사업비로 썼다고 주장하”지만, “잼버리 개최 직전까지 진행된 정부의 안전 점검에서 나왔던 내용들이 왜 개선되지 않았는지 등도 정확히 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체 75% 조직위 예산, 시설비도 직접 집행
게다가 잼버리 예산의 75%는 지방정부가 아닌 잼버리 조직위에서 사용했는데요. 세계일보 <‘잼버리 사태’ 여가부·행안부·문체부 등 공동위원장 5명…예산 75%, 조직위가 사용>(8월 14일 김현주 기자)는 1171억원의 예산에서 조직위원회가 사용한 예산은 870억원(75%)으로 “기반시설 조성, 프로그램 운영, 전시 및 웰컴센터 운영, 참가자 수송, 급식 지원, 안전 대책 등”에 쓰였으며 “전북도가 265억원(22%), 부안군이 36억원(3%)을 각각 집행”했다”고 전했습니다.
△잼버리 사업비 세부 내역(서울신문)
경향신문 <잼버리 파행 ‘책임’ 가린다>(8월 14일 조해람 기자)도 조직위가 “시설비(야영장 조성, 화장실·샤워실·급수대 등)로 130억원을 썼고, 전북도는 기반시설 조성(상하수도, 덩굴터널 등)과 대집회장·강제배수시설 조성 등에 265억원을 사용”했다며 “미흡한 준비 탓에 수습 비용도 추가로 들어갔다고 설명했는데요. 조선일보의 보도와는 달리 대원들의 불만이 가장 컸던 화장실·샤워장은 전북도가 아닌 조직위에서 관련 예산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추가 조사가 필요합니다.
파행 뒷북 보도, 언론은 1년 전 뭐했나?
2022년 10월 25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잼버리가 세계적 대회인 만큼 “폭염이나 폭우 대책, 비산 먼지 대책, 해충 방역과 감염 대책”을 철저히 준비하고 ‘관광객 편의시설, 영내·외 프로그램, 기반시설’을 점검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당시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태풍·폭염에 대한 대책도 다 세워놨다”고 응수했는데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한 결과, 당시 여가위 국정감사를 보도한 기사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적었습니다. 2022년 10월 25~26일까지 뉴스핌·국민일보·뉴스1 등 총 13건의 기사만이 부실한 잼버리 준비 상황을 지적한 국정감사 내용을 보도했는데요.
잼버리 대책을 다 세웠다며 호언장담하던 김현숙 장관의 발언은 잼버리가 파행 운영되고 나서야 뒤늦게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습니다.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언론의 무관심 속에 잼버리의 부실한 준비는 개선되지 않은 것입니다. 언론이 ‘프레잼버리 취소’ 이유를 자세히 살피고, 세계 잼버리 준비 상황에 대해 취재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파행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세계 잼버리가 국제 망신이란 오명을 쓴 이유는 자명합니다. 안일한 준비에도 문제의식조차 없었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관계된 모든 기관이 이름만 올렸을 뿐 맡은 바 임무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수년을 기다리며 잼버리 축제를 준비한 대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잘못한 사람을 색출하기 전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감사원에서 잼버리 대회 전반을 살펴보는 감사 준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책임지는 사람 없이 안일하게 운영된 잼버리가 파행을 빚었다는 것뿐입니다. 언론이 할 일은 한쪽 편에 서서 다른 쪽만 비판하는 편파적 보도가 아닙니다. 적극적 취재로 파행의 원인을 밝혀내고, 부끄러운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정부가 제대로 진상을 규명하는지 날카로운 감시가 필요합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8월 11~1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 2022년 10월 25일~26일, 2023년 8월 11~14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잼버리’로 검색한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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