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칼럼_
‘Again 방송장악’과 ‘진짜 국민의 힘’
신태섭 (민언련 정책자문위원·전 동의대 교수)
등록 2023.08.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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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방송장악

 

지난해 5월 10일 임기를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은 한 달여 만인 6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국무회의 참석에서 제외하고 사퇴 압박을 가하며 방송장악을 예고했다. 곧이어 감사원이 방송통신위원회 감사에 착수했다. 국민의힘은 9월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MBC와 TBS에 대해 ‘봐주기 심의’를 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올해 1월 국무조정실과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유시춘 EBS 이사장 선임 과정 의혹으로 방송통신위원회 감찰에 착수했다.

 

3월 검찰은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불법적으로 수정해 낮게 주도록 사주했다며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검찰은 5월 한 위원장을 불구속 기소했고, 윤 대통령은 이를 빌미로 즉각 한 위원장을 해임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7월 28일 이동관 대외협력특보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지명했다. 이를 계기로 윤석열 정부의 방송장악은 그 완성을 향해 곧바로 직진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8월 9일에는 윤 정권에 장악된 방통위가 여권 위원 두 사람만으로 KBS 이사에 과거 삼성에 의한 관리 받은 판사로 지목되던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을 추천하고,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에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는 특조위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해 유족들로부터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당했던 차기환 변호사를 임명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8월 14일 방통위는 KBS 남영진 이사장과 정미정 EBS 이사에 대한 해임을 의결했다.

 

8월 17일에는 정연주 방심위원장과 이광복 부위원장에 대한 해촉 건의를 재가했다. 해촉 사유는 업무시간 미준수와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이다. 앞서 방통위는 3주에 걸쳐 방심위에 대해 회계 검사를 벌였는데, 정 위원장 등 상임위원들이 9시 이후 출근해 6시 이전 퇴근하는 등 업무 시간을 지키지 않았고, 업무추진비 규정도 어겼다는 이유에서이다.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의 해임 의결도 임박한 상태이다.

 

여기까지 오면, KBS MBC 이사회의 여야 구도는 6 대 5(KBS), 5 대 4(방문진)로 뒤집히고, 방심위 내 정치 구도는 기존 여야 3 대 6에서, 5 대 4 여권 우위로 바뀌게 된다. 다음 단계는 사장 교체, 방송사 직제 개악과 줄세우기 간부 인사, 구성원들에 대한 감별과 징계, 보도·시사 프로그램의 축소와 정권 나팔수화다.

 

이동관 지명자는 이명박 정부 방송장악 실행 책임자

 

이동관 지명자는 과거 이명박 정권 시절 청와대 대변인(2008년 2월~2009년 8월)과 홍보수석비서관(~2010년 7월)으로 재직하며 기자들을 사찰하고 노동조합·언론인·프로그램에 ‘좌편향’ 딱지를 붙여 퇴출시키고 언론장악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 2017년 11월 국정원 정치사찰과 국정개입 농단을 혁파하는 개혁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검찰은 국정원의 불법사찰에 대한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당시 수사 지휘자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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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7년 공개된 국정원의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 중 일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이 보고서에는 국정원이 청와대 홍보수석실(당시 홍보수석이 현재 이동관 지명자)의 요청으로 방송사에 대한 직간접적 영향력 행사 목적의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2009년 12월 24일),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 실태 및 고려사항’(2010년 1월 13일),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 쇄신 추진방안’(2010년 6월 3일) 등 언론장악 관련 문건을 집중적으로 생산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문건들은 ‘경영진의 주의 환기’, ‘공정보도 분위기 조성을 위한 계도 요청’, ‘건전보도 유도의 필요성’ 등 명목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보도 사전 차단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MBC 시사프로그램 ‘시선집중’과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폐지하고 진행자(손석희·김미화)를 퇴출하라는 등 구체적 지시사항까지 적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사팀은 소결에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국정원을 통해 MBC에 청와대의 지시를 잘 따르는 경영진을 구축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방송을 제작하는 기자, PD, 간부진을 모두 퇴출하고, MBC의 프로그램 제작환경을 경영진이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방송사 장악의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었다. 이 수사의 지휘자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이동관 지명자의 결격사유, 윤 대통령의 현실 인식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운영의 독립성과 위원의 중립성 확보가 생명인 조직이다. 방송통신위원회법 1조는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적 운영’ 보장을 법의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동관 지명자는 이명박 정부 당시 참혹했던 방송장악과 언론자유 탄압에 깊이 개입돼 막중한 책임이 있는 인물이다. 윤 대통령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원장 지명은 방송통신위원회법 1조에 어긋난다.

 

또한 그는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고문이었고, 취임 이후 지금껏 대통령 특별보좌관이었다. 이는 ‘정당 당원과 대통령직인수위 위원의 신분을 상실한 날부터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등은 방송통신위원이 될 수 없다’고 적시한 방송통신위원회법 10조의 결격사유에 해당한다. 인수위 ‘고문’은 결격사유로 적시된 ‘위원’보다 대통령 당선자와 더 가깝고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다.

 

이동관 지명자가 방송통신위원장으로서 치명적인 결격사유를 갖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알만한 윤 대통령이 이 지명자를 고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따져봐야 한다. 하나는 그의 현실 인식,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다.

 

윤 대통령의 현실인식은 그의 정치적 신조를 드러내는 언어에서 읽힌다. 갈수록 농도를 더해가고 있는 ‘실용과 가치동맹에 기반한 선한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이권·부패 카르텔을 형성한 악한 종북좌익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는 결연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에 국민의힘과 보수단체들은 과거 더불어민주당 집권 시기 뿌리내린 각 분야의 악성 종양을 도려내자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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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관 지명자의 첫 출근 당시 YTN 보도 갈무리 ©YTN

 

“공산당의 신문이나 방송을 우리가 언론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한 8월 1일 이동관 지명자도 같은 인식이다. 기자가 “그런 언론이 지금 있나? 어떤 언론이 그런 언론이냐?”고 묻자, 그는“그것은 국민들이 판단하시고 본인들이 잘 아시리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후보자의 발언은 지금 이 순간 우리나라에 척결해야 할 공산당 언론이 실제로 있으며, 종북좌익 언론을 척결하는 프로세스가 임박했다는 예고다.

 

이는 과거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군대와 언론을 통해 국민을 억압하던 군부독재 시절 현실인식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인식에 대해서는 더 말할 거리도 없다. 그 시절 독재자는 낮은 수준의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좌익·용공으로 몰았는데, 윤 대통령과 이동관 지명자의 발언이 딱 그에 해당한다.

 

윤 정권의 방송장악, 과거 수구·보수 정권의 언론장악

 

지금까지 과정은 과거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과정과 그대로 겹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국정원과 경찰 등을 동원해 언론계를 대대적으로 사찰하고, 부당하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경영진을 교체했다. 언론장악에 항의하는 언론인들과 저널리즘의 정도를 가는 프로그램들은 대대적으로 탄압·축출됐다. 이러한 반민주 퇴행은 친정부 여론몰이와 종북위기 조성의 일상화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은 언론구조 개악으로 직결됐다. 글로벌 미디어를 양성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대규모로 창출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조·중·동·매경의 종편 TV를 출범시켰다. 국내 언론지형(시 청취구독점유율 구조)을 수구 권위주의 정부와 그 기반인 수구 기득권층의 이익 보장을 위해 인위적으로 재편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인터넷·모바일 공론장 탄압과 축소도 추진했다. 비판적 의견을 올린 네티즌들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 방송·통신 심의를 빙자한 유사 검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이버 모욕죄 도입 추진, 통신사업자 감청장치 설치를 의무화한 통신비밀보호법과 전기통신사업법 개악,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모니터링 강화·강제 등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공론장을 길들이려는 온갖 퇴행의 시도가 이어졌다.

 

그러한 시도는 이명박 정부가 처음이 아니다. 노태우 정부도 전두환 시절의 ‘보도지침’과 유사한 구조의 ‘보도협조’라는 언론통제 시스템을 운영했다. 전두환 정부를 계승한 기존 방송장악의 해소를 요구하는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탄압과 기만으로 대응했고, 대기업·거대종교가 발행하는 신문과 건설자본의 사영 상업방송(SBS)을 언론시장에 새로 진입시킴으로써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기울어뜨리는 ‘권경언 수평유착’의 구조 개악을 단행했다.

 

우리 사회에서 방송장악과 권위주의로의 퇴행이 수구보수 세력 집권 때마다 반복되는 것은 우리 가 절차적 민주주의, 즉 ‘국민적 합의를 모색하고 존중하는 정치’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미완성의 반쪽짜리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형해화돼 파시즘으로 퇴행하는 위기가 임계점에 달할 때마다 시민저항과 선거를 통해 숨이 꺼져가던 ‘절반의 민주주의’ 숨결을 돌려놓곤 했다.

 

방송장악의 후과(後果)와 해법

 

윤 대통령은 방송장악 외에도 KBS 수신료 폐지, MBC 민영화, YTN 매각 등 방송구조 개편도 예고한 바 있다. 그의 뜻대로 가면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거세된 정권의 나팔수 관영 미디어와 돈 버는 시청률(또는 클릭수) 경쟁에 몰두하는 사영 미디어의 비극적 합주만 남게 될 것이다.

 

주권자인 시민이 설 자리는 없어지고 윤 대통령과 이 지명자의 발언이 향할 미래는 ‘종북좌익 척결’의 잣대로 검열되는 언론장악, 그리고 국민주권을 현실에서는 볼 수 없고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게 되는 ‘민주주의의 사멸’, 소수 수구 특권층이 안정적으로 국민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한국형 파시즘의 부활’을 향하고 있다. 과거 박정희 정부는 이 같은 퇴행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전두환 정부는 ‘선진조국 창조’로 치장한 바 있다.

 

우리 사회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작금의 방송장악 행보를 멈춰 세우고, 반쪽짜리일망정 훼손된 절차적 민주주의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 시작은 이동관 후보의 지명을 철회하고, 법에 규정된 대로 방송통신위원회 운영의 독립성과 위원의 중립성에 걸맞은, 결격사유 없는 인사를 다시 지명하는 것이다. 미디어의 자유와 공공성 보장을 위한 국민참여형 사회적 협의기구(또는 공론화기구)를 구성·운영한다면,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윤 정부가 추진하는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도 함께 다루면 더욱 어울릴 것이다.

 

‘진짜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안정화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1987년 이후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우리 시대의 숙원이다. 이 숙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든 야든, 상대가 누구든, 상대를 악마시하는 광신(狂信)에서 벗어나 자신과 상대에 대해 합리적인 안목과 자세를 갖추는 것, 그런 상태에서 상대를 대화와 타협의 상대로서 대하고, 나에 대해 상대도 그렇게 대해 달라고 엄중히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비로소 완성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내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언젠가 그것을 해낼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처한 현실은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중론을 법과 정책으로 모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다행히도 우리는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가꾸어 온 소중한 경험과 뜨거운 열망만큼은 확실하게 간직하고 있다. 폭압과 기만의 독재를 무너뜨리고, 각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확장해온 진심과 실천의 경험도 적지 않다. 우리 국민은 남용하는 권력을 보면 화를 내고 정권을 끌어내리는 힘을 가졌다. 제도정치권이 그 숙제 이행에 계속 역행하거나(여당), 태만하다면(야당) ‘진짜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 민언련 특별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 탄압과 언론장악 실태를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특별칼럼’을 마련했습니다. 첫 번째로 신태섭 민언련 정책자문위원·전 동의대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해당 칼럼은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