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넷플릭스 코리아
며칠 전 공개된 <더 글로리 파트2>가 화제입니다. 저도 공개 날짜를 체크해두고 주말에 빈지워치(Binge Watch 단기간에 TV 프로그램 등 콘텐츠를 몰아서 보는 행위를 일컫는 말)를 했는데요. 예고편에서부터 귀에 쏙 들어온 대사가 있습니다.
“남의 아픔을 기뻐하는 자, 사탄일지어다.”
극 중에서는 본인의 아픔에 기뻐하는 친구에게 분노하는 대사로 쓰였는데요. 이렇게 고쳐 써볼까 합니다.
“남의 아픔에 무감한 자, 사탄이 될지어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는 행위를 흔히 ‘공감’이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도덕 수업에서부터 공감의 중요성을 배우지만, 요즘엔 공감이 일종의 ‘능력’이 된 것 같아 씁쓸합니다. 공감이 결여된 사람의 생각과 언행은 악의가 없을지언정, 타인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기 일쑤니까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악인만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언제든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골자였죠.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는 이런 말이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저는 민언련에서 일하기 전부터 세상살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시끄럽고 혼란한 세상이지만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고 싶다는 고민을 하던 중 민언련을 만났습니다. 어느덧 회원 여러분과 함께한 지 석 달이 되어 가네요. 여러 일을 했지만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여러 활동을 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민언련은 참사 이후 온오프라인 상에 만연한 2차 가해를 멈추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일원으로서 유가족협의회와 연대하고 있습니다.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미디어 2차 가해 방지 모색 토론회를 열었고, 양대 포털을 비롯해 주요 언론사에 주요 추모행사가 열리는 날만이라도 관련 보도 댓글창을 막아달라는 요청하는 활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오늘 민언련 활동가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주관한 김미나 창원시의원 손해배상청구 기자회견에서 연대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타인의 아픔, 우리 사회가 막지 못한 참사에 공감하고 더 이상의 고통을 막자는 민언련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결과입니다.
지난 달에는 동료 활동가들과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지킴이 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언론은 합동분향소를 두고 서울시청과 유가족협의회 간 갈등이 격화되는 추세를 중심으로 보도했습니다. 다툼은 가장 쉬운 ‘뉴스거리’가 되니까요. 분향소를 둘러싼 갈등을 중계한 기사엔 여지없이 2차 가해 댓글이 달렸습니다. ‘지겨우니 그만하라’, ‘나라 구한 영웅이냐’, ‘작전세력이 유가족협의회에 붙었다’ 등등…. 유가족은 물론 기사를 읽는 시민의 마음마저 다치게 하는 평범하고도 악한 말입니다. 기사에도, 댓글에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영정사진 하나하나 정성스레 닦고, 국화 다발을 곱게 정리하고, 사진 속 희생자에게 인사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갑니다. 이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으며 참사 후 일상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분향소를 정돈하고 조문객을 맞이하는 그들은 여전히 합동분향소를 지키고 있을 겁니다. 제가 뉴스를 통해 보고 싶은 모습은 이런 것입니다. 건조하게 ‘갈등이 예상됩니다’며 끝내는 기사가 아니라 함께 참사의 상흔을 치유해나가는 우리의 모습 말입니다.
출근 후 뉴스를 훑다 보면 동료 시민의 부고를 어렵지 않게 마주합니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일가족, 스토킹에 시달리다 살해당한 여성, 공사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노동자…. 이들의 부고를 화면 너머로 마주할 때마다 저는 침잠합니다. 이런 사건의 댓글에도 ‘공감 무능력자’들은 활개 치고 있습니다.
나쁜 보도와 나쁜 댓글을 끊임없이 마주하면 지치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뉴스를 읽고, 비판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무시하는 이들보다 귀 기울이는 이들을 찾아 나설 힘이 남아 있으니까요. 민언련을 단단히 지탱해 주시는 회원 여러분과 서로의 손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동료들 덕분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종종 참담한 마음을 쓸어내리실 것을 압니다. 시끄러운 세상사에 지쳐 외면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으실 겁니다. 그럴 때, 민언련 사람들이 여기 있음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늘 이곳 서촌에서 언론과 세상사를 살피고 여러분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겠습니다. 남의 아픔에 무감하고 때로는 기뻐하는 사탄들의 실낱같은 언행을 단단한 공감과 연대의 힘으로 물리치는 그날까지 말이죠.
교육콘텐츠팀 활동가 원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