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건폭?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의 ‘언폭’이다
김영훈(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록 2023.02.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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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과 ‘건폭(?)’의 기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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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노조, 노란봉투법 등을 강하게 비난한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윤석열 대통령,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발언 ⓒ민주언론시민연합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자 정부 여당과 보수언론의 노조 때리기 공세가 도를 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노조를 빗대어 건설현장의 폭력조직 ‘건폭’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 내면서 혐오 발언을 쏟아내자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노란봉투법은 헌법 위배”라고 주장했다. “노조 비리가 분양가 상승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건설노조로부터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상태다.

 

보수언론은 노란봉투법과 건설현장 월례비 문제를 엮어 관련 기사와 사설을 경쟁적으로 내보내고 있지만, 노동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노란봉투법 논의 초기부터 법이 제안된 배경보다 불법파업 조장법이니 기업투자 위축법이니 하며 정치적 낙인찍기에 몰두했는데 이제는 여당 대표가 대통령 발언에 한 술 얹을 요량인지 “노란봉투법은 건폭 날개법”이라는 막말까지 내뱉고 있다. 민주노총과 건설노조에 대한 혐오는 가히 ‘언폭(言暴)’ 수준이다.

 

동아일보는 2월 21일 1면 머리기사 <타워크레인 노조 ‘그들만의 리그’ 10년간 현장에 비노조원 딱 1명>(2월 20일 최동수·송진호·이축복 기자)과 3면 <노조 가입해도 6개월은 ‘현장장악 집회’ 참석해야 일감 줘>(2월 20일 최동수·송진호·이축복 기자)를 통해 “노조가 사실상의 인력사무소 역할을 하면서 이들은(비노조원) 택배 아르바이트나 퀵서비스 등을 전전하고 있다”고 썼다. 노조가 일감을 독점하고 비노조원에 대한 취업을 막으면서, 현장 장악력을 무기로 건설사로부터 급여 외에 월례비를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타워크레인 노조, LH공사장서도 연116억원씩 뜯어…국토부, 사법경찰권 갖는다>(2월 20일 주형식 기자)에서 “골조 공사와 자재·장비 운송을 담당하는 타워크레인은 공사 현장의 핵심 장비”라며 “이들 노조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작업 속도를 늦추는 방식으로 태업하면 공사 진행이 힘들어지는 탓에 건설사들은 그동안 많게는 월 1000만원에 달하는 월례비를 지급해 왔다”고 썼다.

 

하지만 두 기사 모두 오늘날 건폭(?)의 기원이 되는 핵심 질문은 던지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대로 건설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장비를 조종하는 타워크레인 노동자는 어디 소속이며 누구의 지시를 받는가? 노조가 인력사무소 역할을 한다면 어떤 구조적 문제 때문인가? 이 질문에 답을 찾아야만 건설현장 먹이사슬이 드러나고 ‘진짜 건폭’의 실체를 알게 된다.

 

진짜 ‘건폭’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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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월 11일 HDC 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던 광주 서구 화정동 화정아이파크 신축공사 현장에서 아파트 23~38층 외벽이 붕괴했다. ⓒ오마이뉴스

 

아파트 분양가 공개를 거부하고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 최상위 포식자 대기업 건설사에 고용된 타워크레인 노동자는 몇 명일까? 단 한 명도 없다. 건설법상 원청 대기업으로부터 1차 하청이 가능한 전문건설업체에 고용된 타워크레인 노동자 역시 한 명도 없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3종 세트로 불리는 △민영화 △외주화 △노동유연화 결과로 대기업 건설사 중기사업소 소속 정규직이었던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비정규직으로 전락했고, 외주화된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현장에 투입돼 원청 대기업 건설사의 지휘 감독 아래 업무를 수행한다.

 

이때부터 건설현장의 고용관계는 왜곡되고, 외주화된 하청업체들은 최저가로 낙찰받은 도급비용을 벌충하기 위해 불법하도급과 편법을 동원한다. 하청업체들이 공기 단축을 위한 추가 작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시간 외 업무수당인 월례비는 관행이 됐다. 최상위 포식자가 직접고용의무와 안전책임에서 벗어나는 순간 을들의 전쟁은 시작됐기 때문이다.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건설노조는 대형건설사의 외주화, 노동유연화와 함께 출범했다.

 

1년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광주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붕괴사고는 건설현장의 불법다단계 하청구조와 최저낙찰제가 가져온 예정된 인재(人災)였다. 이 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 필요성이 높아졌지만, 원청 현대산업개발은 사고 책임을 하청업체에 미루면서 정작 원청 대기업에 대한 처벌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란봉투법 역시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대우해양조선의 열악한 하청노동자 절규에서 재논의됐다. 건설업과 조선업의 공통점은 높은 외주화 비율로 인한 대규모 비정규직 양산과 이에 비례하는 세계 최고의 산재사망률이다.

관련 칼럼 <‘중대재해’ 이익 사유화에 매몰된 언론, 피해 사회화에 주목하라>(2022년 2월 8일)

 

일찍이 칼 폴라니가 이중운동론을 통해 고삐 풀린 시장의 탐욕에 대항하는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을 설파했듯이 중대재해처벌법과 노란봉투법 제정운동은 시장주의자들이 맹신했던 외주화와 노동유연화로 인한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는 이중운동의 일환 아닌가. 아파트 광고 수익 없이 보수언론이 생존할 수 없다면 토건자본 카르텔에 맞선 이중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 일하는 모든 시민은 노동자라는 연대의식 확산과 노동운동의 중단 없는 자기혁신이 동반돼야 한다. 1930년대 대공황의 반작용으로 등장한 파시즘은 노동운동의 악마화로부터 시작된 이중운동의 또 다른 변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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