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방송장악, 이제 대통령실이 직접 나설 참인가
이채훈(전 MBC PD)
등록 2023.02.02 13:10
조회 319

방통위 감찰 사령탑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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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실이 유시춘 EBS 이사장 선임 관련 방송통신위원회 직접 감찰에 나섰다는 MBC 보도 화면 갈무리 ⓒMBC

 

대통령실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관계자를 직접 불러 감찰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유시춘 EBS 이사장 선임 과정이 적절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공직자 업무태만 등 공직기강을 세워야 하는 부분을 방치한다면 그게 업무태만”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안에 대해 어느 쪽이 옳은지 굳이 시비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먼저, ‘업무태만’을 거론한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묻는다. 물가 상승과 서민들의 생활고, 위기에 처한 남북관계, 순방외교 도중 불거진 부적절한 발언 등 최근 현안에서 대통령실은 ‘업무태만’이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숱한 현안이 산적한 이 상황에서 ‘공영방송 길들이기’에 이토록 많은 인력과 시간을 쏟아붓는 게 국민에게 칭찬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언론과 싸우느라 허송세월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푸념이 나온다는 사실을 대통령실은 모르는 것인가?

 

방송 현안에 대통령실이 직접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방통위와 KBS에 대해 줄기차게 감사를 벌여왔다. TBS 예산지원 중단과 사장 교체는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의 소관이지만 같은 흐름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방통위를 여러 차례 압수수색하고, 실무 국장과 과장을 구속하고, 종편 재허가 심사에 참여한 교수를 범죄 피의자로 취급하는 등 방송 탄압에 앞장서 왔다.

 

이제 대통령실이 직접 감찰에 나선 것은 결국 그동안 검찰과 감사원은 행동대(行動隊)였고, 실제 사령탑은 대통령실이었다는 추론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번 감찰이 EBS 이사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방송장악의 손길이 방통위, KBS, MBC, TBS, YTN을 넘어 EBS까지 확산했음을 보여준다. 이 정부는 사실상 이 나라의 모든 공영방송을 장악하려고 두 팔을 걷어붙였다는 걸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방문진 감사, 새 사장 선임 앞둔 MBC 흔들기

 

새해 들어 이러한 방송 탄압이 하루가 멀다고 이어지고 있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1월 5일 한동훈-채널A 검언유착을 보도한 KBS 기자 기소 ▲1월 11일 종편 재허가 심사의 실무를 맡은 방통위 차모 과장 구속 ▲1월 15일 ‘날리면’ 보도한 MBC에 정정보도 청구 ▲1월 26일 방송문화진흥회 현장 감사 시도 ▲1월 30일 대통령실의 방통위 직접 감찰 ▲2월 1일 방통위 양모 국장 구속까지 비상식적인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 가운데 MBC 방송문화진흥회 감사는 국민감사청구를 받아들인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2월 새 사장 선임을 앞둔 MBC 흔들기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법원은 방통위 양모 국장에 대해서는 1월 11일 “구속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는데, 검찰은 1월 29일 다시 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여 결국 21일 만인 2월 1일 구속영장을 받아내는 집요함을 과시했다. 방통위 간부에 대한 구속 수사의 종착점은 결국 한상혁 방통위원장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공영방송에 대해 이 정도이니, 작은 매체에 대한 탄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더탐사’와 ‘민들레’ 등 정부에 밉보인 시민언론에 대한 압수수색과 기자 소환조사가 백주에 일어났다. 1월 18일 통일TV의 갑작스러운 송출중단은 “30년 케이블TV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 직후에 벌어진 천공법사 KT IPTV 진출은 통일TV 송출중단과 인과관계가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고 일단 그의 강연 편성이 제외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듯 했지만, 실제로 그가 주관하는 행사 중계는 여전히 살아있다. 정말 해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최고 권력자와 그 일가의 심기를 거스르면 공영방송이든 인터넷 언론이든, 아무도 무사할 수 없다는 게 드러났다. 오죽하면 1월 30일 대통령 부인의 과거 주가조작 관여 의혹을 다룬 KBS 1TV <더라이브> 게시판에 “이제 더라이브 압수수색?”이라는 댓글이 달렸을까. 이는 많은 사람이 우려해온 ‘검찰 공화국’의 맨얼굴이며, 국민 겁박이자 독재 회귀가 아닐 수 없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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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 대통령실의 모습 ⓒ오마이뉴스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이 모든 일의 배후에 대통령실이 존재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권력은 원래 욕먹고 비판받으며 일하는 것이다. 듣기 좋은 말만 듣겠다고 고집하면 정치권력은 귀가 먹고 눈이 멀어 필연적으로 부패하게 된다. 정치권력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비판하는 것이 언론이고, 특히 공영방송이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던 최승호 뉴스타파 PD의 절규를 굳이 인용해야 하는가?

 

정부는 물론 이 모든 조치를 법에 따라 실시하는 모양새를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처럼 적나라한 폭력으로 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세력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법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면 그건 법이 아니라 사회적 흉기가 될 수 있다. 검찰과 감사원이 방송사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조사하는 행태는 군부독재 시절 경찰병력이 군홧발로 방송사를 짓밟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대통령실이 방통위를 직접 감찰하는 것은 과거 ‘청와대 쪼인트’와 무엇이 다른가?

 

평범한 한 사람의 국민인 나는 이 정부의 브레이크 풀린 질주에 제동을 걸 힘이 없다. 멈추라고 아무리 외쳐도 ‘소귀에 경 읽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정부가 추구하는 방송장악, 그 종착점이 어디일지 내 머리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방송장악 기도는 결국 국민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며, 필연적으로 이 정부의 불행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간곡히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실은 방통위에 대한 부당한 감찰을 중단하라!

검찰과 감사원은 방송장악의 하수인 노릇을 중단하라!

정부는 일체의 방송장악 기도를 중단하라!

 

<편집자 주> 방송통신위원회를 겨냥한 윤석열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6월 감사원 감사를 시작으로 검찰 수사, 국무조정실 감찰에 이어 최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까지 감찰에 나섰다. 유례없는 탄압으로 법이 보장한 방송통신위원회 독립성까지 훼손하고 있다. 이채훈 전 MBC 다큐멘터리 PD가 윤석열 정부의 방송장악 행태를 비판하는 개인 성명을 냈다. 필자 동의를 얻어 민언련 언론포커스 칼럼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