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를 가질 자격 I 조선희 미디어감시팀 활동가
등록 2022.11.0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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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료와 ‘키보드를 가질 자격’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태원 참사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태원 참사 이후, 타인의 고통과 애도의 마음을 고려하기보다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이러쿵저러쿵 논평을 내놓는다거나 개똥철학을 바탕으로 이상한 훈계질 또는 원인 분석을 해대는 SNS 속 글들 때문이었다.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바깥으로 꺼내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일종의 ‘자격증’을 만들어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했다. 물론 현실에서 불가능한 걸 안다. ‘증서’ 같은 걸 만들어 단번에 누군가를 재단하는 일이 비인간적이라는 것도. 하지만 키보드를 가질 권리, 말과 글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권리는 취하면서도 그에 맞는 책임은 지지 않는 경우를 자주 봐왔다보니, 마음 깊은 곳 답답함의 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격 검사’가 필요한 곳이 비단 SNS 뿐만은 아니다. 이번 참사를 대하는 언론 보도를 보며 여기서도 자격에 대해 떠올렸다. 이번 보도에서 특히 문제로 여겨진 참사 현장 사진과 영상을, 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처음 봤다. 그날 자정쯤 속보 한 줄로 소식을 접하곤 ‘큰일은 아니기를’하고 생각한 뒤 자연스레 SNS를 켰는데, 그때 사고 현장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다수 보게된 것이다. 그땐 언론 보도보다 플랫폼사업자의 방치를 걱정했던 것 같다. 이런 사진과 영상이 마구 돌아다녀도 되나? 인스타그램(메타), 유튜브(구글)에서 막아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러나 현장 사진·영상 적극 유포에 나선 것은 언론이었다. 포털에서 뉴스를 켜니 기사 여기저기서 내가 SNS에서 본 것과 같은 사진을 쓰고 있었다. 또 일부는 내가 보지 못한 사진을 어딘가에서 퍼와 기사와 함께 올려두었다. gif 파일이나 영상을 쓴 경우도 있었는데, 저절로 재생되는 gif 파일은 어쩔 수 없이 봐야했지만 영상은 굳이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를 ‘복붙’하는 인터넷 기사들과 결은 좀 다르지만, TV에서도 계속해서 사고 당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제보 영상을 받고 있다’는 앵커의 말이 ‘참사 당시 상황을 더 멀리, 더 빨리 유포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언론이 사건사고를 전하며 충격적이고 참혹한 사진·영상을 쓴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라 현장을 찍은 사진과 영상이 넘쳐났고, 이미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엔 다 퍼져 있었다. 그런데 그 사진과 영상을 인터넷에서 마주했을 때, 이를 기사로 쓸 것인가 말 것인가는 기자와 언론사가 선택할 수 있다. 보도할 것과 보도하지 않을 것을 구분할 수만 있다면, 보도하지 않을 것을 보도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당시 참혹한 현장이 언론 보도를 통해 더 멀리, 더 빨리 퍼져나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먼훗날 ‘키보드를 가질 자격’ 자격증이 나오게 된다면, 어떤 분야 중에서도 언론에 꼭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부적으로는 ‘기사로 쓸 것과 쓰지 않아야 하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 ‘시민자치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해로운지 구분하는 능력’, ‘보도윤리를 지키려는 의지’ 같은 걸 평가해야 한다고도. 이 또한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공상에 불과한 것임을 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영향력의 무게를 모르고 아무렇게나 키보드를 사용하는 언론을 자주 봐왔다보니, 마음 깊은 곳 절망감의 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조선희 미디어감시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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