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칼럼_
깊고 푸른 강, 성유보 이사장을 기리며
김시창(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
등록 2021.10.12 15:16
조회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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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시민단체 관계자들은 10월 9일 성유보 선생 7주기를 맞아 마석모란공원을 찾았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2014년은 서럽고 아픈 해로 기억된다. 그해 4월 세월호 참사라는 믿을 수 없는 비극을 겪었다. 떠올릴수록 아픔은 커지지만, 아파도 기억해야 한다. 우리들 몫이다. 그리고 그해 10월 성유보 이사장이 우리 곁을 떠났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기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이사장이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니 목이 메어온다. 

 

세상 모든 일이 서럽고, 부끄럽다. 그래서 이번 추모 글도 마다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추모한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지만 언론개혁운동의 어른이자 통일운동의 스승이자 삶을 지탱하는 마음가짐의 중심이었던 ‘이사장님’을 추모하는 글을 쓴다는 건 죄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행복했던 민언련 활동가 시절

 

민언련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했을 때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좋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한국 언론운동의 산 역사인 해직언론인 선생님들이 있었고, 그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후배 현직언론인들이 함께했고, 학자의 양심을 걸고 동참한 교수들과 다양한 각계 원로들과 리더들이 지원군처럼 있었다. 특히 저마다 생업을 가진 뜻 있는 많은 시민회원이 몸과 마음을 다해 언론개혁운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젊음을 바쳐 열정적으로 일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상근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런 분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뜻으로 함께 일했으니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겠는가.

 

당시 민언련의 하루하루는 언론개혁운동의 역사였고 감동의 나날이었다. 시민회원들은 교육이나 행사가 있을 땐 기다렸다는 듯 자원봉사로 손을 내밀었다. 서로가 서로를 도왔고 의지했다. 교수와 현업인들은 물심양면으로 강의와 글쓰기, 토론이나 정책 제안을 했고 힘을 보태면서도 더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함을 미안해했다. 모두 큰 일꾼이었지만 겸손했다. 그 장대한 시민언론운동의 큰 흐름 속에 성유보(이룰태림) 이사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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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월 성유보 당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이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언론사 과징금 취소 결정 철회와 신문고시 개정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평생을 언론개혁과 우리 사회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살아온 분. 자리와 직위, 나이를 앞세워 말씀한 적이 한 번도 없던 분. 겉과 속, 말과 행동, 눈빛과 마음이 한결같았고, 배려와 이해심은 누구보다 컸지만 사심과 이익 추구 따위는 멀리했던 분. 그렇게 민언련에는 성유보 이사장이 ‘깊고 푸른 강’처럼 있었다. 

 

성유보 이사장은 1998년부터 5년간 민언련 이사장을 역임했다. 당시는 민언협(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서 사단법인 민언련으로 전환하던 때였다. 그때 성유보 이사장과 5년간 상근활동가로 일했기에 내겐 언제나 ‘이사장님’이다. 그래서 민언련에 대한 추억은 그의 눈빛처럼 깊고 한결같다. 상근활동가 시절이 특별히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도 성유보 이사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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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1월 21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시국회의 제안 기자회견’이 열렸다. 오른쪽에 자리한 성유보 이사장. ⓒ 민주언론시민연합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

 

2014년 10월 8일, 성유보 이사장이 타계했다. 그날 부고 문자를 본 이후 아직도 내 핸드폰에는 성유보 이사장 번호가 그대로 남아있다. 언젠가 한 번 눌러보면 변함없이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해줄 것 같다. “어, 나여. 오랜만일세” 하며….

 

지금 성유보 이사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언론개혁도 민주주의도 평화통일도 훨씬 나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부분도 그때보다 나아진 구석이 없다. 특히 언론은 2003년 강금실 전 장관이 정치현장에서 ‘코미디야 코미디’라고 했던 상황보다 더 참담하다. ‘코미디야 코미디’가 아니라 생생한 블랙코미디 자체다.

 

성유보 이사장은 타계하기 직전까지도 한반도 통일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새로운 꿈을 꿨다. 평생을 한국 언론민주화 운동을 위해 살아온 분이 언론개혁과 평화통일이 다른 꿈이 아니란 걸 몸소 알려줬다. 언제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하나의 꿈’이라는 걸.

 

우리 곁에 있다면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는 원풍모방 해고노동자 박순희 씨 말을 듣고 그 길로 <원풍모방 노동운동사>(삶창, 2010)를 구해 읽어봤다는 성유보 이사장. 안타까움과 비참함을 넘어 비관적이기까지 한 언론 현실 앞에서 부끄러운 우리에게 다시 그 말씀을 하는 듯하다. “어, 괜찮소.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다운 거야.”

 

※ 이 칼럼은 한평생 언론민주화에 헌신한 성유보 선생 7주기를 맞이해 발표하는 민언련 칼럼입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