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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는 경제지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⑧] 경제지엔 없는 ‘하루 200kg, 5만 보’ 죽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
주식·코인·부동산 등 재테크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경제지 구독이 크게 늘었고, 특히 198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사람들을 뜻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비중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당신이 보는 경제지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은 이런 현상 속에서 과연 경제지를 보면 경제를 제대로 알 수 있는가, 경제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경제지들이 알리지 않거나 혹은 알리지 못한 우리 사회 이야기를 MZ세대 관점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나눠볼 예정이다. |
추석 연휴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해 많은 사람들이 거리두기는 지키되 가족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안전한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보는 경제지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 8회는 지난번에 이어 고향에 가지 못하는 우리를 대신해 선물을 전해줄 택배 노동자가 처한 노동환경 현실과 이를 다루는 경제지 보도를 살펴봅니다.
7회 <한달 3명 노동자 사망한 쿠팡, 노동환경 '천국'이라는 한국경제>에서 민언련은 쿠팡 물류·택배노동을 두고 "다른 물류센터와 비교하면 천국"이라며 치켜세우고, "쿠팡 노동환경 정도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된다"며 열악한 노동환경을 가리거나 절반의 사실을 전한 경제지 보도를 전해드렸습니다.
올해 3월은 이런 보도 행태가 두드러졌습니다. 대부분 언론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쿠팡 소식은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한 달 새 숨진 노동자 세 명의 죽음은 단건 보도 혹은 무보도로 일관했기 때문입니다.
택배노동자 21명 사망, 경제지 3명만 단건 보도
쿠팡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6월 3일까지 사망한 택배노동자는 21명입니다. 사람이 사망하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어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1년 반 만에 비슷한 노동을 하던 노동자들이 수십 명 사망하고 과도한 업무량에 힘듦을 호소했습니다. 언론은 마땅히 택배노동자의 업무환경을 살피고 구조 문제를 따져보는 보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경제지는 무관심했습니다. 2020년 1월 13일, 33살이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우체국 택배노동자부터, 2021년 3월 24일 택배차량 근처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한 쿠팡 택배노동자까지. 민언련은 매일경제, 서울경제, 한국경제 3개 경제일간지의 택배노동자 사망사건 관련 지면기사 보도량과 보도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택배노동자 사망 다음날을 기준으로 3일간 21번의 사망사건 언론 보도를 살펴본 결과, 21명 노동자 중 3명의 사망 소식만 경제지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마저도 단순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거나 물류센터 집단감염 소식을 전하며 추가된 정보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 2020년 1월 1부터 2021년 3월까지 택배노동자 21명이 숨졌지만, 3개 경제지 지면에 실린 사망사건은 3건에 불과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자료 ⓒ 민주언론시민연합
지난해 10월 20일, 택배 간선차량을 몰던 CJ대한통운 노동자가 A씨가 일터에서 쓰러져 병원에 옮겨졌지만 끝내 숨진 사건이 있습니다. 숨지기 직전 30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하다 사망한 A씨의 죽음은 <매일경제> "고개숙인 CJ대한통운 택배분류 4천명 확충"(2020년 10월 22일)에선 'CJ대한통운 대표 대국민 사과'를 전하며 추가로 한 줄 실린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사망사건 소식이 매일경제에 실렸으나 박근희 대표 기자회견에 덧붙여 보도됐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경제지가 택배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 또 있습니다. 지난해 8월 16일, 경북 예천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택배노동자 B씨가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사망 원인을 단정할 순 없지만, 택배노조에 따르면 B씨는 평소 한 달에 1만 개를 배달했고 매일 밤 10~11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B씨가 사망한 날은 정부와 택배업계가 지정한 '택배 없는 날'이었습니다. 택배 없는 날 택배노동자가 사망한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지는 단 한 건도, 그의 죽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택배비 인상, 배송지연 집중... 열악한 노동환경엔 침묵
경제지는 외면하고 있지만,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28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출범했고, 택배 노사·정부·더불어민주당·시민단체가 모여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마련해 올해 1월과 6월, 두 차례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경제지는 이런 변화조차 제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대신 관심을 가진 것은 택배비 인상과 배송지연 혹은 을과 을 사이 갈등입니다. 더 나아가 택배노조가 파업하면 '생떼를 부린다'는 프레임에 그치기도 했습니다. 택배노조가 왜 파업에 나서는지, 근본 해결책은 무엇인지 원인을 짚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보도는 찾기 힘듭니다.
△ 당신이 보는 경제지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 8회 영상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그래서 경제지를 보는 많은 이들은 택배노동자들의 과도한 노동, 심야노동 문제를 알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2020년 안전보건공단에서 발표한 연구보고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건강장해 및 과로사 예방 방안'을 살펴보죠. 연구팀이 참여관찰을 통해 택배기사 업무활동 소요시간을 측정한 결과, 택배사별 차이는 있으나 일일 업무시간은 평균 11시간 54분, 업무시간에 포함하지 않은 점심시간을 포함한 휴게시간은 평균 35분이라고 말합니다.
택배기사는 업무 중 음료를 거의 섭취하지 않고, 화장실은 1회 정도 이용하는 정도였습니다. 즉, 택배기사 노동시간은 1일 약 12시간 30분, 주당 71.3시간으로 대한민국 주당 평균 노동시간 40.7시간의 두 배에 달했습니다
야간노동의 심각성도 경제지를 읽어선 알 수 없습니다. 2007년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교대근무를 발암물질 등급 중 두 번째로 높은 '2A급' 발암물질로 분류한 바 있습니다. 관련 연구에서는 야간작업을 포함한 교대근무군은 낮 근무군보다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1.4배 높고, 근무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위험도 2.8배까지 증가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사회 문제로 대두된 2020년부터 현재까지, 해당 내용을 실은 경제지 보도는 한 건도 없습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에 참여해 택배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해온 이조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는 "사회적 합의엔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노동자 노동시간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 분명 들어가 있다"면서도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원인으로 많이 지목되는 야간노동 규제까지 충분하게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조은 간사는 "야간노동이 2급 발암물질로 분류되긴 하나, 우리나라는 유럽 나라들과 달리 야간노동에 대한 가산임금 정도만 마련돼 있을 뿐 실질적 규제방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가산임금이 오히려 야간노동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조은 간사의 지적처럼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 제56조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 3항에서 야간근로에 대해 통상임금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해 근로자에게 지급하라는 내용 정도만 명시돼 있습니다.
반면 영국은 야간 노동자 통상 근로시간이 24시간 단위로 평균 8시간을 넘지 않을 것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야간노동자 배치 전과 근무 중 고용주가 무료 건강진단을 제공해야 하기도 합니다. 벨기에는 원칙적으로 야간노동을 금지하며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핀란드나 스페인은 야간노동을 시키려면 인가를 얻어야 합니다.
진보한 시민의식, 언론도 변화에 함께 나서야
그럼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시민들이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시민들에게 택배노동자 근로환경 개선에 관해 물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온라인 국민정책참여 플랫폼 '국민생각함'에서 2020년 10월 29일부터 11월 5일까지 8일간 진행된 '택배종사자의 근로환경 개선에 대한 국민의견 조사'를 살펴보죠.
'택배노동자의 과도한 근로시간을 줄여야 하는가' 질문에 95.6%가 동의했고, 이런 변화가 일어나 '배송 일정이 늦어질 수도 있는데 괜찮은가'란 질문에는 87.2%가 동의했습니다. 택배비 일부 인상이 이뤄져도 인상액이 택배 종사자 처우개선에 사용된다면 동의한다는 답변도 73.9%였습니다.
△ ‘택배 종사자 근로환경 개선’ 국민의견 조사 결과 갈무리 ⓒ 국민생각함 홈페이지 갈무리
시민 의식이 진보한 만큼, 사회 의제를 환기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 또한 변화의 물결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조은 참여연대 간사는 경북 칠곡 쿠팡 물류센터에서 택배 분류작업을 담당한 20대 노동자 장덕준씨 과로사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고인은 하루 200kg 짐을 짊어지고 5만 보를 걸었다"며 "우리는 건강을 위해 하루 1만 보를 걸어도 많이 걸었다고 말하는데, 택배노동자에게 5만 보는 죽음을 향하는 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를 끊고 멈추기 위해선 택배노동자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동참해 사회적 합의 이행 여부를 감시해달라"고 강조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당신이 보는 경제지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 8회 "경제지엔 없는 '하루 200kg, 5만 보' 죽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함께한 이조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 인터뷰 풀버전 영상은 9월 17일 공개됩니다.
※ 9월 15일 공개한 <당신이 보는 경제지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 8회를 갈무리한 특별모니터입니다.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 https://youtu.be/36GabTpB80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