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조민 재판, 기억과 영상 자료
김동민(민주화운동기념공원 소장)
등록 2021.08.0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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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입시비리'혐의를 받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7월 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 뉴스1

 

지난 7월 23일 조국 교수 관련 공판에 딸 조민의 고등학교 친구 2명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날 쟁점은 조민이 2009년 5월 서울대에서 열린 사형제 폐지 세미나에 참석했느냐에 대한 증언이었다. 구체적으로 두 증인이 ‘세미나에서 조민을 보았느냐’와 ‘세미나 현장 동영상 속 인물이 조민이 맞느냐’는 것이었다.

 

7월 23일 기사 제목이다. 조선일보 <“학술대회서 조민 본 기억 없다” 고교 친구 재판서 증언>, 중앙일보 <“조국 딸, 세미나서 본 적 없다” 조민 고교 친구의 법정증언>, 경향신문 <조국 딸 친구들 “서울대 세미나서 본 기억 없다”...정경심 “기억해달라” 울먹>, 연합뉴스 <조국 딸 고교 친구 “세미나서 조민 본 기억 없어”> 등이다.

 

모든 매체가 약속이나 한 듯 동영상 속 인물은 조민이 맞다는 증언은 빼먹고 본 기억이 없다는 증언에만 신빙성을 두고 강조한 것이다. 이건 어떤가? 한겨레 <조국 딸 친구 “조 씨 본 기억 없다…동영상 속 여학생은 조 씨 맞아”> 기억과 동영상 증언을 나란히 배치해 공정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건 균형을 가장한 책임회피이자 기회주의다. 기사에서는 오후 증인이 1심에서 조민을 부정했던 내용을 부각해놓았다.

 

두 증인 중 한 명인 장 모씨는 재판 후 7월 25일 페이스북에 과거 자신의 증언에 대해 사과하면서 조민이 사형제도 세미나에 분명히 참석했다고 밝힘으로써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더불어 “대한민국 언론은 정말 문제가 많은 것 같다”면서 “언론의 과장된 헤드라인, 진실에 부합되지 않는 거짓 본문 때문에 생긴 피해자가 엄청 많았을 것”이라는 점과 검언유착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 지경이면 처음부터 조국 교수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며 공격했던 언론은 반성하는 사설이라도 실어야 하지 않나? 적어도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그래야 하지 않나?

 

수사와 재판, 그리고 취재보도 과학화를 위하여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2년이나 지난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뇌는 한번 보고 들은 내용을 일일이 자동으로 기억창고에 저장하지 않는다. 우리 뇌는 진화 과정에서 말을 하고 생각을 하게 되면서 기억용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좁은 머리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접고 또 접고 해서 면적을 최대한 넓혔지만 무한대는 아니다.

 

보통 인상적으로 읽은 글이나 주의 깊게 들은 말이 아니고는 하루가 지나면 거의 기억에 남지 못 한다. 자주 상기해보며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장기 기억장치에 저장되는 법이다. 보고들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인생이 매우 피곤할 것이다. 우리 뇌는 필요한 것만 기억되도록 저장하고 대다수는 지워버리거나 잠재의식에 가둬둔다.

 

증인 장 모씨의 경우 섭섭한 마음으로 1심 재판에서 조민을 본 기억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 밝혀진 그 사실과 관계없이 증인이 12년 전 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동영상 속 인물은 조민이 맞다고 했으면 기억 증언은 폐기하고 동영상 증언을 채택하는 게 상식이고 과학이다. 상식이 없으면 과학적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나?

 

사람이 어떤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하는 데는 전두엽의 피질에 기억되어 있는 심적 모델에 의존한다. 복숭아를 보고 복숭아라고 인식하는 데는 피질에 기억된 복숭아 모델에 의존하는 것이다. 만지거나 냄새를 맡는 것으로도 대상을 알아낼 수 있다.

 

장 모씨는 세미나에 참석해 조민과 나란히 앉아 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동영상 인물이 조민이라는 사실은 심적 모델로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증인들이 동영상에서 조민을 찾아 확인하려고 할 때, 전두엽의 피질은 집안끼리도 잘 알고 고등학교 친구로서 잘 알고 있는 조민의 표상을 떠올린 후 감각 영역인 시각 피질에서의 처리 과정에서 그 목표에 맞춰 편향되도록 제어한다. 시각 피질은 조민과 관련이 없는 특징은 배제하면서 조민의 특징으로 생각되는 외모에 집중하면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니라고 했다. 눈으로 본 것과 기억에 차이가 발생하면 전두엽의 피질에 변화가 생긴다. 때에 따라서는 기억된 정보를 수정하기도 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거짓말로 합리화하기도 한다.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뇌에서 정보가 수렴돼 저장되는 핵심 장소인 전두엽의 피질은 감각별 정보와 저장된 기억 또는 고도로 추상화된 개념적 표상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행동을 제어한다. 인간의 행동은 이처럼 모두 뇌의 명령에 따른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때, 동영상 속 인물이 조민이라고 증언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써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도 언론이 ‘세미나에서 본 기억이 없다’는 증언만 부각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기억은 부정확하지만, 동영상 자료는 명징하다. 과학수사라는 게 꼭 유전자 검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사와 재판, 그리고 취재도 좀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안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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