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실종 고교생 사망사건’, 제발 자살보도 권고기준이라도 지키자‘실종 고교생 사망사건’, 제발 자살보도 권고기준이라도 지키자
반인권적 보도로 비판 받아온 자살보도가 또 다시 비윤리적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실종 신고 사흘 만에 사망한 채 발견된 고교생 고 김휘성 씨에 대한 언론보도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무색하게 할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 오죽하면 유가족이 언론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겠다면서, 강력한 비공개 의사를 밝혔겠는가. 하지만 언론은 유가족의 당부마저도 시시각각 기사화하며 문 닫힌 빈소 오열까지 중계하고 있다.
구체적 도구·방법 등 묘사, 시신 운구도 재등장
6월 28일 아침 실종된 고 김휘성 씨가 사망한 채 발견되자 언론은 앞다퉈 속보로 보도했다. 그런데 언론은 경찰 측 발표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와 발견 당시 상태를 고스란히 옮겨 보도했다. 연합뉴스, SBS, 한국경제TV, 조선비즈, 아시아경제 등이 똑같은 표현으로 이를 보도했고, 상당수 언론이 유사한 보도를 이어갔다. 한 언론이 보도하면 나머지 언론이 아무 의식 없이 따라 쓰거나 베껴대는 구태에 다름 아니다.
어떤 사건보다 신중해야 할 이번 보도에서 언론은 자살보도 권고기준의 기본부터 지키지 않았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5가지 원칙 중 하나로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언론이 경찰 발표 내용을 그대로 받아쓴 것이라고 주장해도 변명이 될 수 없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목격자의 인터뷰 내용이나 경찰·소방 등 관련 기관의 발표라도 신중하게 보도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유명인 사망이나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마다 반복된 ‘시신 운구’ 장면도 재등장했다. 뉴시스는 경찰이 고 김휘성씨 시신을 운반하는 장면을 사진자료로 남겼다. 시신 운구 장면은 블러 처리가 되었더라도 이미지 자체가 자극적이며,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때론 블러 처리가 더 시선을 유인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해당 사진은 뉴시스 <경찰 “고교생 유족 사망경위 알리지 말라 요청했다”>는 기사에 사용됐다. 이번 사건에서도 아무 근거 없이 ‘타살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한 보도지만, 음모론보다 뉴시스 자신의 비윤리적 사진기사 차단이 시급하다. 이밖에도 뉴스핌, 더팩트, 경기매일 등이 시신 운구 장면을 사용했다.
무분별한 자살보도, 이제 그만하자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언론이 극단적 선택 또는 추정된 관련 보도를 할 때 구체적 방법, 도구, 장소 등을 묘사하거나 시신 운구 장면을 찍어서 내보내는 비윤리적 보도를 하지 말 것을 지적해왔다. 특히 유명인의 경우 고인의 죽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말 것을 당부해왔다. 하지만 언론 보도행태는 도무지 바뀌지 않고 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단순한 보도윤리를 위해 제안된 게 아니다. 미디어 자살보도가 자살 빈도와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국내외 많은 연구결과에서 비롯됐다. 유명인들의 잇단 사망 이후 모방 자살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2004년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자살예방협회 등은 언론보도가 자살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해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발표했다. 두 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 ‘자살보도 권고기준3.0’이 언론현장에서 시행되고 있다.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생긴 지 17년, 기자들이 아직도 모른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지키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한국 사회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률은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늘기 시작해 매년 10만 명 당 25명에 이를 정도다. 언론의 자살보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누구의 죽음이든 ‘팔리는’ 상품이라면, 일단 쓰고 보자는 얄팍한 상업성의 끝은 ‘클릭의 늪’일 뿐이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대상인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를 포함한 모든 미디어와 경찰과 소방 등 국가기관, 그리고 SNS, 블로그, 온라인 커뮤니티 등”은 “자살을 예방하려면 자살 사건은 되도록이면 보도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1년 6월 2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