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낯부끄러운 ‘삼성찬가’, ‘이재용 구하기’ 보도를 멈춰라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삼성공화국인가. 삼성전자가 4월 28일 고 이건희 회장 유산의 상속세 납부 및 기부 계획을 밝히자 ‘사회환원’ ‘초일류 아름다움’ ‘울림’ ‘선물’ 기부역사 새로 쓰다’ 등 낯뜨거운 찬양일색 보도가 넘쳐나고 있다. 보수언론과 경제지 등은 또다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론을 띄우고 있다. 그야말로 저널리즘의 실종이다.
“진실을 추구한다, 공정하게 보도한다, 독립적으로 보도한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1월 19일 선포한 언론윤리헌장의 일부다. “모든 정보를 성실하게 검증하고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보도할 것”과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오로지 시민과 공익의 관점에서 자율적이고 전문적으로 판단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 언론은 삼성과 고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 관련 보도에서 언론윤리헌장 핵심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가? 삼성에 대한 비판기능 상실을 넘어 우리 사회 근간인 법치주의 원칙과 경제정의 가치마저 훼손할 정도로 노골적인 편들기를 하고 있다. 저널리즘 정신을 외면한 언론의 무분별한 ‘이건희 찬가’ 보도, 일방적인 ‘이재용 구하기’ 사면론 주장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
당연한 세금납부, ‘통큰 결단’ ‘선물’로 미화
상속세 납부는 국민 누구나 지켜야 할 납세 의무다. 기업과 기업인의 기부를 포함한 사회공헌은 분명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그 자체가 특별한 행위는 아니다. 그럼에도 중앙일보 <이건희의 선물, 기부 역사 새로 쓰다>, 세계일보 <이건희 ‘마지막 보국’…재산 60% 사회환원>, 한국경제 <생전엔 사업보국, 사후엔 통큰 나눔…‘진짜 기업가 정신’ 남기다>, 매일경제 <이건희 재산 60% 국민에게…의료·예술 통큰 기부>, 서울경제 <재산 60% 사회에…이건희의 ‘마지막 울림’>, 머니투데이 <‘작은 거인’의 위대한 유산…“60% 이상 사회환원”>, 아주경제 <삼성家 위대한 유산-초일류, 그 아름다움이 열리다> 등 삼성 일가의 당연한 상속세 납부와 사회기부를 과도하게 미화한 언론 보도는 삼성 대변인을 방불케 했다.
이들 언론은 삼성일가가 법에 따라 납부하는 상속세를 제외하면, 기부금액은 3~4조원으로 고 이건희 회장 재산 26조원대의 11~15% 수준이지만 ‘60% 이상 사회환원’으로 부풀리고 있다. 여기에 상속세 정상 납부와 의료분야 및 미술품 기부를 구분하지 않고 보도하며, 삼성일가가 마치 고 이건희 회장 전 재산의 상당액을 자발적으로 내놓고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거액 기부 뒤에 드리워진 대형범죄, 편법적인 사전상속과 불투명한 상속내용, 지연된 사회환원 약속 이행과 줄어든 기부규모 등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특히 삼성그룹 총수 일가가 재산을 형성해온 과정부터 고 이병철 회장에서 고 이건희 회장과 현재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세습과정의 불법·편법 경영권 승계는 조세포탈죄 등으로 이미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언론의 기억엔 없는 과거인 듯싶다.
1996년부터 본격화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활용한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은 물론이고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당시 드러난 고 이건희 회장의 4조 5천억원대 차명재산 및 사회환원 미이행, 2017년부터 뇌물·분식회계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합병 및 편법승계 의혹, 정경유착과 노동자 탄압·인권침해 등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를 언론은 외면하고 있다.
2008년 고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 사회헌납 약속에 따르면 6조원 정도를 기부해야 하지만,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의료분야 1조원 대 기부를 13년이 지나서야 발표한 것을 두곤 ‘통큰 결단’, ‘선물’ 등으로 포장해 호도할 뿐이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주식·부동산 등 상속재산의 구체적 배분금액과 미술품 기증목록, 차명재산과 관련된 미술품 구입 재원 출처를 명확하게 밝힐 것을 촉구하고 있으나 이를 취재·보도하는 언론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툭하면 ‘이재용 사면론’, 누구를 위한 언론인가
언론의 도를 넘은 ‘삼성 찬양’은 ‘이건희 찬가’에 그치지 않았다. 유산 상속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언론은 이재용 부회장 사면론을 또다시 꺼내 들었다. 2009년 고 이건희 회장이 배임·조세포탈로 유죄를 선고받은 직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국제올림픽위원인 이 회장을 사면하자면서 언론이 ‘국익론’을 들고나온 모습과 판박이다. ‘이재용 구하기’ 사면론은 처음이 아니다. 이재용 백신 특사론, 반도체 위기 사면론, 광복절 특별사면론 등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특정 단체나 인물이 사면론을 제기하면 그대로 받아 대서특필한다. 서울경제 <“이재용 사면해 반도체 살리고, 백신 ‘민간외교’ 맡겨야”> <조계종, 이재용 사면 탄원서>, 한국경제 <손경식 “반도체 전쟁 격화 이재용 사면해야”>, 중앙일보 <성균관, 문 대통령에게 이재용 부회장 사면 요청 청원> <이재용 부회장에게 나라 위해 기여할 기회를 주자>, 이데일리 <법무부, 모범수형자 가석방 문턱 낮춘다…이재용 사면설 맞물려 이목> 등 다양하다. 문화일보 <사설/‘반도체 세계 1위 잃을 수 있다’는 재계의 일치된 우려>, 매일경제 <사설/이재용 풀어줘 경제헌신 기회 주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조선일보 <사설/‘반도체 전쟁’ 지휘할 사령관이 감옥서 상속세 대출 상담 받는 나라>, 국민일보 <역대급 사회환원 ‘사면론’에 힘 싣나> 등은 더욱 노골적이다.
이재용 사면론을 주장한 보도 중 매일경제 <文대통령 이재용 특별사면할까> 칼럼은 현재 언론과 삼성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재용 부회장 특별사면을 촉구하고 있는 해당 칼럼은 김세영 매일경제 고문이 썼다. 그는 2018년 공개된 이른바 ‘장충기 문자’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로 삼성에 우호적인 글을 쓴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17년 2월에도 <삼성 이재용 구속의 3가지 관점>에서 “구속재판은 위헌적”이라며 “현행 상속세율은 50%로 전 세계 최고다. 3, 4세로 경영권이 승계될 때쯤이면 지분율은 재벌해체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당시 장충기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이 각 언론인에게 받은 문자 내용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언론이 감시대상인 삼성에게 스스럼없이 지원받고, 삼성과 “혈맹”이라며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다”던 언론인들의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 재벌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이 광고·협찬시장을 쥐락펴락하면서 위험수위에 다다른 삼성 종속화는 언론 스스로의 충성을 불러오는 단계에 들어선 지 오래다.
이재용 부회장은 4월 22일 건강상 이유로 삼성 지배권 불법승계 의혹 재판을 연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복하여 등장하고 있는 언론의 ‘이재용 사면론’ 보도는 재판부 판결에 영향을 끼칠 우려도 매우 크다. 언론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하는 부끄러운 ‘이건희 찬가’, ‘이재용 구하기’ 보도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 언론의 비판기능 상실과 신뢰도 하락을 넘어 민주주의적 정의마저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