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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천박한 유명인 사망 보도, 제발 멈춰라
어떤 죽음도 언론의 ‘돈벌이 상품’이 될 수 없다
등록 2020.11.05 21:11
조회 2809

유명인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할 때마다 언론은 앞다퉈 관련 기사를 쏟아냅니다. 대다수 언론은 고인의 인격 혹은 고인의 소식이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내며 이른바 ‘단독보도’ ‘특종’ 터뜨리기에만 열을 올립니다.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가 대표적입니다. 11월 5일 21시 기준으로, 조선일보 홈페이지에는 개그맨 박지선 씨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된 기사가 196건이나 올라와 있습니다.

 

무책임하고 천박한 ‘클릭장사’

11월 2일 개그맨 박지선 씨가 숨졌습니다. 이튿날 조선일보는 박지선 씨 유가족이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박지선 씨 어머니의 메모 내용을 ‘단독’을 붙여 보도했습니다.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을 함부로 추측한 조선일보는 각종 기사에서 슬픔에 잠긴 고인의 지인들을 언급하고 당시 모습을 사진으로 첨부했습니다.

 

일부 유튜버들은 고인의 지인들이 갑작스러운 비보에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만 편집하고 이를 반복하여 보여주었는데요. 조선일보는 ‘클릭 수’에 혈안이 된 일부 유튜버들과 같았습니다. 고인과 유가족은 물론이고 고인의 지인에게도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보인 겁니다. 또한 문제기사 4~5건을 홈페이지 상단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독자들을 상대로 ‘클릭 수’ 장사를 한 것이죠.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그동안 조선일보가 박지선 씨 외에도 설리, 구하라 씨와 같은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을 전하면서 언론으로서 파급력과 책임감을 염두에 둔 보도를 해왔는지 살펴봤습니다. 최근 몇 년간 언론이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을 전할 때, 특히 설리 씨 보도에서 잘못된 보도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구하라 씨 보도는 설리 씨 보도 이후 비교적 얼마 지나지 않은 42일 만에 이뤄졌습니다. 설리 씨 보도로 숱한 질타를 받았기에 분명 달라진 태도를 보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언론은 잘못을 반복했습니다. 언론의 잘못을 비판하기 위해 다시 문제보도를 꺼내드는 것이 오히려 문제보도를 확산시키는 역효과를 낳지 않을까 고민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문제보도에 대한 언급 없이 언론의 반복되는 잘못을 비판하고 바로잡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부득이하게 다시금 문제보도를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보고서가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을 전하는 언론의 잘못을 비판하는 마지막 보고서이기를 바라봅니다.

 

자살보도 윤리강령은 휴지조각인가

2019년 10월 14일, 연예인 설리 씨가 숨졌습니다. 조선일보는 온라인판 기사 <속보/연예인 설리, 자택서 숨진 채 발견…경찰 “극단적 선택한 듯”>(박소정 기자)에서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2013년 발표한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암시하는 표현 대신 사망 사실을 알리는 표현을 선택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자살’, ‘스스로 목숨 끊다’, ‘극단적 선택’, ‘목매 숨져’, ‘투신 사망’ 등과 같은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과 같이 객관적 사실에 초점을 둔 표현을 사용하라는 것이죠.

 

그런데 해당 기사는 제목에 “경찰 ‘극단적 선택한 듯’”이라고 버젓이 써놓았습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에서 5가지 원칙을 밝히며 강조한 것은 “유명인 자살보도를 할 때 이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였습니다. 조선일보 보도는 이런 기준을 전혀 지키지 않은 겁니다.

 

같은 날 온라인판 기사 <경찰 “고 설리 자택서 심경 담은 메모 발견”>(백윤미 기자)도 문제였습니다. 극단적 선택의 동기를 함부로 추측하는 기사였는데요. 조선일보는 “경찰은 설리의 집 안에서 설리가 사용하던 다이어리에 심경을 적은 메모를 발견했다. 유서로 보이는 이 메모는 작성 날짜는 따로 표시돼 있지 않지만 다이어리의 맨 마지막 장에 심경을 적어 내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메모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고 서술한 뒤, 곧바로 “경찰은 설리가 평소 우울증 증상을 보였는지 등도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메모의 구체적 내용은 알려줄 수 없다’는 경찰 입장을 밝힌 뒤에 ‘우울증 증상을 보였는지 추가 조사 중’이라는 사실을 이은 겁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극단적 선택의 동기를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악의적인 구성의 기사였는데요.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자살예방협회가 2004년 발표한 ‘자살보도 윤리강령’은 “언론은 자살 동기에 대한 단편적이고 단정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이를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에서도 “유서와 관련된 사항을 보도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죠.

 

악성댓글 처벌 강화하자며 악성댓글 기사화

10월 15일, 조선일보는 지면기사 <악플 시달린 연예인 설리, 숨진 채 발견>(권상은‧김수경 기자)을 통해 설리 씨 소식을 알렸습니다. 부제목은 “매니저가 신고, 극단적 선택한 듯… 공개연애‧노출 등으로 수년간 구설”이었습니다.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말 그대로 제목에만 적용될 뿐, 부제목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조선일보는 기사 부제목에 버젓이 ‘극단적 선택한 듯’을 포함시켰습니다. 또한 ‘공개연애‧노출 등으로 수년간 구설’이라 쓴 뒤, 본문에서도 설리 씨 연예활동 이력을 언급하며 “열애를 공개한 뒤부터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논란을 불렀다”, “구설에 올랐다”고 서술했습니다. 대중과 언론의 편견 어린 시선으로 인해 논란이 되지 않을 만한 사안임에도 설리 씨에게는 ‘논란’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붙곤 했는데요. 조선일보는 고인의 안타까운 선택 뒤에도 여전히 고인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보도를 한 것입니다.

 

또한 설리 씨의 자택 위치까지 비교적 상세히 언급했는데요.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하고 “고인의 인격과 비밀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거주지 노출 역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조선일보 보도 앞에서는 보도기준마저 무색해졌습니다.

 

10월 16일에는 지면기사 <악플 시달린 설리 추모글에… “너도 죽고 싶냐” 또 악플>(윤수정‧조유미 기자)을 통해 반복되는 악성댓글 문제를 비판하며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기사 시작부터 고인에게 모욕적인 연관검색어를 나열하고, 설리 씨와 설리 씨를 추모하는 지인 SNS에 달린 악성댓글을 전했습니다. 설리 씨를 향한 악성댓글을 그래픽 이미지로 첨부하기도 했습니다. 악성댓글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데도 조선일보는 “설리 스스로 논란을 자초했다”는 악성댓글 작성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싣기도 했습니다. 기사 취지는 악성댓글을 비판하고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를 전하려는 것이었지만, 기사 내용은 ‘악성 댓글’을 반복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습니다.

 

다른 언론의 ‘타살설’ 그대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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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누리꾼 주장 그대로 전한 다른 언론 그대로 인용한 조선일보(2019/10/18)


10월 18일 온라인판 기사 <“설리 사망 하루 전 신선식품 주문…우울증 사인 의심케 해”>(심민관 기자)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사인이 의심스럽다’는 뉴데일리 보도를 그대로 전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날 뉴데일리는 ‘극단적 선택 하루 전 새벽배송이 가능한 신선식품을 시키고 SNS 활동을 한 것으로 보아 극단적 선택이라는 사인이 의심스럽다’는 일부 누리꾼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일부 누리꾼의 주장만을 바탕으로 사실상 ‘타살설’을 주장한 것인데요. 그러나 해당 보도가 나오기 전인 10월 16일,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없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견을 밝혔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책임하게 다른 언론의 ‘타살설’ 보도를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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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 언급하며 질환 정보 안내한 조선일보(2019/10/26)

 

10월 26일 온라인판 기사 <헬스톡/설리 ‘극단적 선택’ 이르게 한 우울증…주변에 보내는 시그널은>(장윤서 기자)는 고인을 언급하며 질환 정보를 안내했습니다.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을 기사 제목에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동기를 함부로 추측하지 말며, 고인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는 보도준칙을 모두 어긴 것입니다. 기사 제목과 본문 앞부분에서 유명인을 잠깐 언급한 뒤 질환 정보를 안내하는 방식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대다수 언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기사 작성 이유는 단순합니다. 질환 정보만 담은 기사보다 유명인 이름까지 넣은 기사가 누리꾼의 선택을 더 쉽게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가 박지선 씨 모친의 메모를 유가족의 뜻에 반하여 보도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는데요. 헬스조선은 <박지선 사망… 지병 ‘햇빛 알레르기’ 어떤 질환이길래>(11월 3일, 이해나 기자)를, 여성조선은 <고 박지선 괴롭혔던 ‘햇빛 알레르기’ 증상은?>(11월 3일, 이태연 기자)을 온라인판 기사로 냈습니다.

 

구하라 죽음에도 달라지지 않은 조선일보

2019년 11월 24일에는 연예인 구하라 씨가 숨졌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 보도태도는 전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조선일보는 지면기사 <절친 설리 떠난 지 42일 만에… 가수 구하라, 자택서 숨진 채 발견>(표태준 기자)을 통해 구하라 씨 소식을 전했습니다. 부제목에서는 “경찰 ‘극단적인 선택 가능성’”이라며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구 씨는 올해 5월 한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었다”며 극단적 선택의 방법을 암시하듯 서술하기도 했는데요.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자살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거나 묘사하면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살에 관한 정보나 암시를 제공하는 결과”를 낳는다며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윤리규범 가이드라인도 “자살 방법, 자살 장면, 자살 지역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죠.

 

같은 날 온라인판 기사 <“망자 팔아 인스타 홍보하냐” “관종이네”…구하라는 끝까지 악플 시달렸다>(이정민‧민서연 기자)에서는 구하라 씨를 향한 악성댓글을 비판하며 위헌 판결을 받은 ‘인터넷 실명제’의 재도입 필요성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설리 씨 소식을 전할 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구하라 씨에게 달렸던 악성댓글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데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입니다.

 

극단적 선택 동기에 대한 관심도 이어졌습니다. 10월 26일, 조선일보는 지면기사 <구하라, 숨지기 전 처지 비관 메모 남겨>(표태준 기자)에서 이용표 서울지방경찰청장 발언을 인용하여 “구하라 씨가 숨지기 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내용의 메모를 남긴 것”이 확인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고인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자살의 미화를 방지하려면 유서와 관련된 사항은 최대한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남긴 메모는 유서라고 보기엔 내용이 워낙 짧다”는 경찰 관계자 발언까지 인용하며 구하라 씨가 남긴 메모에 대해 보도한 겁니다.

 

‘언론도 문제’라는 조선일보, 스스로를 돌아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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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을 보도하는 언론도 문제라고 비판한 조선일보(2019/11/26)


2019년 11월 26일, 조선일보 지면에는 <만물상/너무 많은 ‘유명인 자살’>(한현우 논설위원)이란 칼럼이 실렸습니다. 해당 칼럼에서 조선일보는 “유명인의 자살을 두고 ‘안타깝다’는 뉴스만 경쟁하듯 쏟아내는 언론도 문제”라고 했는데요. 언론이 문제라고 비판하면서도 “(설리 씨와 구하라 씨) 둘 다 악성댓글에 시달렸고 사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다고 하지만 공개된 유서가 없어 실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며 극단적 선택 동기에 대한 관심을 여전히 이어갔습니다. “(극단적 선택) 전날까지 멀쩡히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글을 올리던 젊은 연예인의 느닷없는 최후가 놀랍고 당혹스럽다”며 고인을 깎아내리는 듯한 서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을 보도하는 언론이 문제라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던 조선일보는 박지선 씨에 대한 보도에서도 같은 문제를 반복했습니다.

 

천박하다 싶을 정도의 조선일보 문제 보도는 유명인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할 때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단독과 특종을 좇는 언론과 그에 속한 기자의 특성상 잘못된 줄도 모르고 잘못된 보도를 내놓는 경우가 더러 있기에 마련된 것이 ‘자살보도 윤리강령’과 ‘자살보도 권고기준’이겠죠.

 

그러나 언론이 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기사 제목과 본문에서 단순히 ‘자살’이라는 표현만 기계처럼 걸러내고, 기사 끝에 자살예방 상담전화를 안내하는 말을 붙일 뿐입니다. 다른 기준은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고 봐도 될 수준인데요. 조선일보가 정말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 보도에서 언론도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의 보도태도부터 되돌아보고 올바른 윤리의식을 정립해야 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10월 14일~2020년 11월 5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설리’, ‘구하라’, ‘박지선’으로 검색하여 나온 조선일보 기사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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