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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경제 3법 vs 기업규제 3법, 언론의 ‘불공정한’ 프레임 전쟁경제지 등 재계 편들기, 근거 없는 불안 조장 보도 심각
9월 초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 대표의 회동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동아일보는 9월 2일 <사설/이낙연-김종인 회동, 입법 독주 없는 협치국회 시발점되길>에서 “협치 복원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은 편”이라며 기대감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보름 뒤 동아일보는 <사설/상법개정 찬성 김종인, ‘반시장’에 힘 실어선 안 돼>(9/16)를 냈습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동아일보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반면 경향신문은 <사설/첫 회동서 뜻 맞춘 여야 대표, 실질적 협치로 나아가야>(9/11)에서 “협치 실마리를 풀자는데 공감한 결과로 평가한다”며 환영했습니다. 언론들이 ‘협치’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가 사실상 ‘내 맘에 안 들면 하지 마’와 동의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희극적 장면이었습니다. 모처럼 여야 대표의 뜻이 일치했는데도 어떤 언론은 ‘실질적 협치’라고 하고, 어떤 언론은 ‘반시장’이라며 반발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언론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경제 3법’ 뭐길래
8월 25일 국무회의에서는 일명 ‘공정경제 3법’이 의결되었습니다. 공정경제 3법이란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말합니다. 기업 지배구조를 손보는 내용과 일감 몰아주기 방지 관련 방안을 골자로 합니다.
상법 개정안에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와 ‘다중대표소송제도’가 담겼습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는 보통 이사에서 선출되는 기업 감사위원 중 한 명 이상을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도록 하고, 선출 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입니다. 다중대표소송제도는 모회사에 손해를 끼친 자회사의 임원을 상대로 모회사의 주주가 주주대표소송 제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현재 주주대표소송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손해를 본 바로 그 회사의 주식 1% 이상을 보유해야 합니다.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에는 담합행위에 대한 전속고발제 폐지, 담합 및 불공정거래행위 등에 과징금 상한 2배 상향, 일감 몰아주기 행위규제 대상 확대 등이 담겼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현재 담합행위는 공정거래위원회만 고발할 수 있으나 검찰도 자체 고발을 할 수 있게 되며, 과징금도 미국 수준인 20%(유럽연합 30%)로 상향됩니다. 현재는 ‘자신 또는 친족이 30% 이상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을 때 적용되는 일감 몰아주기 행위규제 범위도 ‘자신 또는 친족이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회사’로 넓어집니다.
금융그룹감독법은 비지주금융회사 6곳을 관리감독하는 근거를 마련하려는 법안입니다. 비지주금융회사는 금융업을 하는 회사를 거느리지만 금융지주회사는 복합금융그룹으로 현재 6곳이 있습니다. 지금도 비지주금융회사들은 금융위원회 차원에서 모범규준을 만들어 감독하고 있지만, 법제화를 통해 정식으로 감독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정부는 9월 25일 ‘공정경제 3법’에 더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안을 추가했습니다. 현재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주가조작이나 일부 법으로 명확히 나열된 대상에만 적용할 수 있는데, 이런 제한을 해제하는 법안입니다. 일부 언론과 기업단체들은 이 법에 ‘소송이 남발된다’, ‘경영권을 위협한다’며 극구 반대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동아일보 사설은 이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들 언론은 기업 입장에서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상황을 가정한 문제가 있습니다.
공정경제냐, 기업규제냐…명칭부터 다른 언론
민언련은 9월 한 달간 경제 3법 및 집단소송·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추진 관련 기사 총 297건을 분석했습니다. ‘공정경제’, ‘기업규제’, ‘3법’ 등 키워드와 ‘상법’, ‘공정거래법’ 등 개정안 명칭이 언급된 기사 중에서 경제 3법 추진과 거리가 먼 일부 기사는 집계에서 제외했습니다. 모니터 대상인 6개 종합일간지 중 한겨레가 34건으로 보도량이 가장 많았고, 경향신문은 13건으로 가장 적었습니다. 특히 경제일간지들은 경제 3법 추진 내용을 종합일간지에 비해 2~3배 가까이 보도하면서 상당한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구분 |
일간지 |
경제지 |
합계 |
||||||
신문사 |
경향신문 |
동아일보 |
조선일보 |
중앙일보 |
한겨레 |
한국일보 |
매일경제 |
한국경제 |
|
기사 건수 |
13 |
27 |
28 |
20 |
34 |
20 |
66 |
89 |
297 |
‘공정경제’ 키워드 |
6 (46.2%) |
20 (74.1%) |
12 (42.9%) |
4 (20%) |
23 (67.6%) |
17 (85%) |
24 (36.4%) |
30 (33.7%) |
136 |
‘기업규제’ 키워드 |
0 (0%) |
5 (18.5%) |
13 (46.4%) |
18 (90%) |
2 (5.9%) |
3 (15%) |
36 (54.5%) |
44 (49.4%) |
121 |
△ 9월 한 달간 경제 법안 추진 관련 기사 건수(9/1~30) ©민주언론시민연합
(*공정경제, 기업규제, 3법, 개정안 명칭 등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 중 일부 관련 없는 기사 제외)
언론사에 따라 이번 법안을 뭐라고 부르는지부터 차이가 났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관련 기사 중 ‘기업규제’ 키워드가 들어간 비율이 10% 미만이었고, 대부분 정부의 명명법을 따라 ‘공정경제 3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는 ‘기업규제’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 비율이 20% 가량을 차지했지만, ‘공정경제’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도 많았습니다. 조선일보는 두 키워드의 비율이 비슷했습니다. 반면,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경제일간지는 ‘기업규제’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가 ‘공정경제’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보다 10%가량 많았습니다. 중앙일보의 경우 ‘기업규제’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는 90%를 차지한 반면, ‘공정경제’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의 비율은 20%로 가장 적었습니다.
기업 옥죄기 vs 개혁입법 통과 vs 보완 필요
정부가 경제 3법에 대해 강한 추진 의지를 보이고, 기업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강대강 대치구도가 이어지면서 언론도 사설/칼럼 등 의견기사를 통해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언론의 입장은 찬성, 반대, 보완 필요성 제기 등 대략 세 갈래로 갈렸습니다.
한겨레는 가장 강하게 찬성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한겨레는 <사설/‘공정경제 3법’, 보수야당 변화의 시금석이다>(9/21)에서 “(국민의힘이) 공정경제 3법을 반대하고 나선다면 자기모순이며, 변화와 혁신의 약속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내부와 경제계의 반발을 비판했습니다.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 대해서도 <사설/집단소송·징벌적 손배 반대하는 ‘우물 안 개구리’>(9/25)에서 “기업들은 무조건 반대만 하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모습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는 방향은 다소 다르지만 일부 보완 필요성을 제기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경향신문은 <사설/국민의힘, ‘공정 3법 재·개정’ 책임있게 논의하라>(9/17)에서 경제 3법에 대해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들로 진작 법제화가 됐어야 할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서는 <사설/집단소송제·징벌적 손배, 대의 살리되 부작용 최소화해야>(9/25)에서 “소비자의 권익이 신장되기를 기대한다”면서도 집단소송은 ‘블랙 컨슈머’ 우려가 있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기준이 모호하다며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한국일보는 <사설/‘공정경제 3법’ 첫 협치 입법 기대한다>(9/19)에서 “이들 법안이 모처럼의 여·야 협치 모범 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평하면서도 감사위원 분리 선임제 반대 목소리는 타당성이 있다며 “재계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반면, 다른 일간지는 반대 입장을 표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사설/상법개정 찬성 김종인, ‘반시장’에 힘 실어선 안돼>(9/16)에서 경제 3법을 ‘반시장’으로 규정하며, “반기업적 반시장적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 여당을 견제하는 것이 야당의 역할”이라며 경제 3법에 찬성 입장을 보인 김종인 국민의힘 대표를 비판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사설/외국자본 투기와 소송 조장하면서 경제 활성화 바라나>(9/21)에서 “현재 법안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급진성을 띠고 있다”며 “기업이 설 자리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조선일보의 경우는 사설에서 강하게 주장을 내놓지는 않았으나 일반기사 대부분이 재계의 우려나 정치권의 입장을 전달하는 ‘따옴표 보도’였습니다.
경제일간지는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기업 옥죄기’, ‘폭탄’ 등의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매일경제는 <사설/규제 3법에 집단소송제 폭탄까지, 기업을 얼마나 더 옥죌 셈인가>(9/25)에서 “기업들은 공황상태”라며,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을 지나치게 옥죄는 입법 폭탄을 남발할 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경제는 <사설/‘기업은 우리 사회의 적인가’ 묻게 하는 규제 쓰나미>(9/26)에서 경제 관련 법안을 “규제 쓰나미”로 표현하면서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는 희망이 없다”고 썼습니다.
새로운 제도로 소송 남발? 현실은 이용을 너무 안 해서 문제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킬 때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맞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언론의 반대 입장은 ‘충분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대부분 이해당사자인 재계의 반대 입장을 거의 그대로 전하면서, 똑같은 논리적 허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중대표소송제도나 소비자집단소송제 등 특정 소송 유형이 가능한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에 대해 언론과 경제계는 ‘소송남발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문제는 다중대표소송, 집단소송이 이번에 새로 도입된 소송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사용된 사례가 극히 적고 소송과정이 어려워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우선 다중대표소송의 경우 주주대표소송제가 가능한 범위를 자회사로 확장하는 내용인데, 경제개혁연구소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12년 말까지 각급 법원에 제기된 주주대표소송 중 판결이 내려진 사건은 총 58건으로 확인되었습니다. 1년에 3.86건으로 ‘소송이 남발’됐다고 보기 어려운 수치입니다. 그나마도 원고가 승소(일부승소 포함)한 경우는 24건(53.5%)이었습니다. 주주대표소송제는 1962년 상법이 제정될 때부터 도입되었지만,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서막을 알린 ‘한보사태’ 때였습니다. 참여연대는 당시 한보그룹에 부실 대출을 내준 제일은행에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상법 제정 이후 35년 만이었습니다.
집단소송제 역시 상황은 비슷합니다. 집단소송제는 2005년 회계조작·주가조작 등 사건에서 피해구제를 쉽게 하려는 목적에서 도입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겨레 <증권집단소송 12년간 9건 ‘유명무실’…소송허가에만 51개월>(2017/1/22)에 따르면, 2017년 기준 12년간 집단소송이 제기된 횟수는 9건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집단소송을 제기하려면 법원의 허가결정이 필요한데, 9건 중 소송허가 결정이 내려진 사건은 5건이었으며 법원이 소송허가를 내주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4년이었습니다. 이 중 2011년 제기된 DB금융(구 동부증권) 사건소송에 대한 대법원 결론이 나온 것은 2020년 2월이었습니다. 소송에만 9년이 걸린 것입니다.
집단소송에 드는 비용도 문제입니다. 법률신문 <사설/소송인지대의 전면적 개선이 필요하다>(2017/7/3)에 따르면, 대한변협은 2017년 “집단소송의 경우 인지대(소송 접수 비용)만 수억원 또는 수십억원이 되어 원고들이 인지대를 준비하지 못해 소송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며 인지대 제도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미국은 인지대가 고정되어 있지만, 한국은 인지대가 소송 가액(청구액)의 일정 비율로 결정되다 보니 소송 가액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집단소송의 경우 인지대만 수억원이 들게 됩니다.
2004년 참여정부가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려고 한 당시에도 중앙일보 <사설/봇물 이룰 집단소송 사태 막아야>(2004/12/2), 동아일보 <오늘과 내일/수만 명의 밥그릇 걷어차기>(2005/1/14 천광암 논설위원), 한국경제 <사설/위헌적 경제규제 무척 많다는데>(2005/2/21) 등 언론은 ‘소송 남발’, ‘위헌적’ 등을 내세우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모두 황당무계한 주장이었던 셈입니다.
100억이면 기업 공격 가능?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
경제 3법 개정안 중 소수주주권 확대 등 주주권을 강화하는 법안에도 경제계와 언론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경영권이 침해된다’는 주장입니다. 주주권 확대 법안에 반대하는 언론의 논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100억이면 경영권 공격이 가능하다’는 식의 기사입니다.
△ 소수주주권 행사를 ‘경영권 공격’이라고 규정한 한국경제(9/23)
한국경제는 9월 23일 1면에 <상법 개정안, 코스닥 기업에 더 위협적>(조미현 기자)와 이어진 기사 <중기도 떨고 있다… 100억이면 코스닥 1169사 어디든 ‘경영권 공격’>(조미현 기자)에서 “상법 개정안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주식을 매입한 뒤 단 사흘 만에 상장회사에 대한 경영권 공격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조항이 신설된 것으로 드러났다”며 “100억원만 있으면 코스닥에 상장한 1380개사 가운데 1169개사에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통한 이사·감사해임 요구, 주주제안 등 소수 주주권을 당장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다음 날인 9월 24일 <사설/100억이면 코스닥 기업 어디든 공격 가능, 이게 ‘공정경제’는 아닐 것>을 통해 한국경제와 같은 주장을 펼쳤습니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상법 개정안을 둘러싼 맥락 중 일부를 생략해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경제 기사에서 문제 삼은 것은 개정안에서 소수주주권 행사 요건 중 ‘6개월 의무 보유 조항’을 회피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한국경제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법 전문가들은 이 조항이 상장기업 경영권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시간마저 허용하지 않는 ‘독소조항’이라고 꼽는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장회사 소수주주권의 경우 6개월 의무 보유 규정을 우선 적용한다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일반회사(비상장사)의 소수주주권 행사와는 별개라는 의미”라며 “이는 곧 소수주주가 상장회사 규정과 비상장회사 규정 중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소수주주권 행사 요건은 세 종류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선 일반기업에서는 일정 비율 이상의 주식을 소유한 주주는 소수주주권 행사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상장회사에서는 일반기업 대비 ‘일정 비율’ 요건이 크게 낮은 대신 6개월 이상 보유기간을 두어야 합니다. 자본금이 1천억원 이상인 대규모 상장회사에서는 상장회사 대비 지분 보유 요건이 절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6개월 보유기간을 갖추지 못한 주주가 일반기업에 요구되는 요건을 충족했을 경우 발생합니다. 상장회사에 요구되는 지분율보다 훨씬 더 큰 지분율을 확보한 상태에서도 6개월 보유기간 요건을 만족해야 하는지 해석상 다툼이 있는 것입니다.
법원의 입장도 혼란스럽습니다. 한국경제가 기사에서 예로 든 ‘삼성물산 vs 엘리엇 사건’처럼 6개월 보유기간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주주제안을 할 수 없다고 한 판결이 있는가 하면, ‘대한항공 vs 강성부펀드 사건’ 당시 강성부 펀드측의 주장처럼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고 한 판결(2003다41715)도 있습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자료 <소수주주권에 대한 이해>에 따르면 “일부 부정하는 판례가 있지만 최근 판례는 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여 주주제안권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가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 설명하듯 ‘해석상 논란을 해소’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 사안인데, 한국경제와 조선일보는 상법 개정안의 맥락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불안감만 조성한 것입니다.
주총 안건 상정조차 ‘공격’이면 주식회사 왜 하나
굳이 이같은 내용을 살펴보지 않더라도, 언론의 근거 없는 불안 조장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소수주주권은 주주총회에 안건을 제안할 수 있는 요건에 불과할 뿐 그것만으로 곧바로 회사가 다른 사람, 특히 행동주의 펀드에 넘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경영권을 위협하기 위해 누군가가 이사 해임안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하고, 임시주주총회까지 열었다고 하더라도 의결권 있는 주식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안건은 부결되기 때문입니다. 한국경제가 “6개월 의무 보유 조항은 기업 경영권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예로 든 ‘삼성물산 vs 엘리엇 사건’만 봐도 그렇습니다. 한국경제의 주장과는 달리 엘리엇의 주주제안 안건은 6개월 의무 보유 조항에도 주주총회까지 상정됐습니다. 그러나 주주총회에서 엘리엇이 표 대결에서 밀렸기 때문에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안을 관철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을 노릴 수 있던 것은 삼성물산이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고의로 주식을 저평가시켰다는 논란이 있었고, 엘리엇이 주주들을 설득할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삼성물산 스스로 부른 화일 뿐 제도 문제가 있던 게 아닙니다. ‘코스닥 아무 회사나 경영권 공격을 받게 된다’는 한국경제와 조선일보의 우려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통과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주주제안과 임시주총 소집을 요구해야 합니다. 누가 100억씩이나 들고 그런 일을 할지 의문입니다.
기업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주식회사는 책임이 분산되어 자본금을 쉽게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주주총회 의결을 거친 이사회를 통해 회사를 지배하게 되어 개인이 전권을 휘두를 수 없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 좋은 것만 갖겠다는 재계의 태도를 언론은 ‘투기자본에 맞선 경영권 방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시켜주고 있습니다. 주식회사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일들이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리스크(위험)을 감내하며 살지만, 어떤 사람들은 리스크 해소에 언론과 정당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불공정이란 바로 이런 세태의 이름일 것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9/1~30,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별지섹션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