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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두순 사건’ 피해자 이름만 43번 언급
언론이 아직도 성폭행 사건 피해자 부각하는 이유
등록 2020.09.2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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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행범 조두순 씨가 오는 12월 12년 형기를 마치고, 경기도 안산 집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우려와 항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재범방지 대책 등 시민 불안을 해소할 실질적 방안이 부족하다는 건데요. 이제야 ‘조두순 방지법’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불만뿐 아니라 언론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안산시는 9월 11일 이례적으로 입장을 냈습니다. 조두순 씨 출소 소식이 알려진 후 언론의 과도한 취재경쟁으로 "피해자와 그 가족, 74만 안산시민 전체를 불안에 떨게 하는 2차 가해에 준하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최소한의 배려를 해달라"는 내용입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조두순 석방’ 관련 보도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9월 1일부터 26일까지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의 지면 및 온라인 보도를 분석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피해자 상황, 거주형태, 아버지 직업까지 노출한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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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현재 상황 등이 담긴 조선일보의 피해자 아버지 인터뷰 기사(9/22)

조선일보는 9월 22일, 23일 ‘조두순 사건’ 피해자 주변인을 인터뷰해 이틀 연속 신문 1면에 게재했는데요. 출소 이후 조두순이 피해자에 접근할 수 없도록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요청이 담겼습니다. 피해자 목소리에 주목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부적절한 내용이 적지 않았습니다. 피해자 사생활을 노출시켰기 때문인데요.

 

조선일보는 9월 22일 <○○○ 아버지 인터뷰/빚내서라도 조두순에게 이사비 주고싶다, 안산 떠나라고”>(권상은·조철오 기자)에서 피해자의 건강상태를 포함한 현재 상황, 주거형태 등을 언급했습니다. 기사에 나온 단서로 피해자가 현재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뿐 아니라 조선일보는 피해자 측이 요구하는 대책을 설명하면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피해자로서 학창시절 겪어야 했던 일 등 사적인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심리치료 주치의와 인터뷰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피해자 주치의 신의진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 회장(19대 국회 새누리당 의원)은 2016년 총선에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마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치료과정을 찍은 사진을 선거사무소 개소식 홍보영상에 이용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선거 현수막에도 피해자 가명 이름을 넣어 ‘OOO 주치의’라고 홍보한 것이 문제가 돼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조두순 보고서_ 피해자아버지_주치의 인터뷰.png

△피해자 아버지 인터뷰(9/22), 피해자 주치의 인터뷰(9/23)를 이틀 연달아 1면에 실은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9월 23일 주치의 신 씨를 인터뷰한 <○○○ 치료한 신의진 “나라가 조두순 못 막아주면, 모금 나설 것”>(권순안 기자) 기사를 1면에 실었는데요. 피해자 아버지 직업은 물론 다른 자녀의 취업여부 등이 주치의를 통해 소개됐고, 매달 얼마의 돈을 버는지도 포함됐습니다. 피해자 가족이 조두순 씨를 피해 이사 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취지겠지만, 가족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내용까지 꼭 필요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부모와 주치의, 피해자 피해사실 공개할 자격 있는가

 

1. 언론은 취재와 보도과정에서 성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의 2차 피해를 유발하지 않도록 피해자의 신상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2. 언론은 성범죄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피해자의 사생활 등을 보도함으로써 피해자에게 범죄 유발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인식되도록 하지 않는다.

 

피해자 신상정보를 드러내는 보도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든 ‘성폭력범죄보도 세부 권고기준’에서 명시한 기본적인 실천요강입니다. 따라서 언론은 성범죄사건을 보도할 때 피해자의 사생활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언론이 노출한 피해자 정보가 2차 피해를 유발하거나 성범죄 해결과 예방이라는 본질적 내용을 흐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가족이 취재에서 진술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제정한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실천요강’은 “피해자 보호에 부적절한 내용이 그대로 보도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언론에 당부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아버지가 말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피해자 사생활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은 기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론은 부모나 주치의와 같은 인물이 피해자가 당한 피해 사실을 피해자 동의 없이 말할 자격이 있는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겨레는 2016년 <친절한 기자들/‘○○○’를 선거 현수막에 함부로 써도 될까요?>(2월 26일 박수지 기자)에서 조두순 사건 피해자 정보를 언급하는 것과 관련해 부모와 주치의의 권한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피해자 주치의 신 씨가 선거출마 당시 홍보 현수막에 피해자 가명을 쓰고, 그것을 부모가 허락한 것을 두고 2차 가해에 해당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전했는데요. 어떤 상황에서도 피해자 의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이름 43번 언급한 조선일보

 

조두순_중앙일보 가해자 명명.png

△ 피해자 이름이 아닌 가해자 이름으로 사건명을 부르겠다고 발표한 중앙일보(2009/10/06)

 

‘조두순 사건’이 일어난 2009년 피해자 이름으로 사건명을 부르지 말자는 사회적 목소리가 크게 나왔습니다. 당시 인터넷 토론공간 ‘다음 아고라’에서 가해자 이름으로 사건을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중앙일보는 그해 10월 6일 1면을 통해 피해 아동 이름이 붙은 사건 대신 ‘조두순 사건’으로 고쳐 부르겠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 이름으로 명명된 사건이 피해 아동과 그 가족에게 2차 피해를 줄 수 있고, 같은 이름을 가진 아동과 부모가 입는 피해도 고려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상당수 언론도 이런 흐름에 동참했습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피해 아동 이름을 부각하거나 ‘조두순 사건’ 대신 피해 아동 이름을 붙여 ‘○○○ 사건’이라 부르는 언론은 여전히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앞서 언급한 피해자 부모와 주치의 인터뷰에서 총 43번 피해 아동 이름을 언급했고, 기사 내용도 피해자의 현재 심리나 건강상태 등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조두순 사건’을 다룬 영화 <소원>에서 소녀와 한 남성이 마주보는 장면을 실어 피해자와 조두순이 만날 당시를 떠오르게 하는 사진도 실었습니다. 중앙일보는 <조두순 집밖 200m 이내 묶나, 피해자와 거리 1km 띄우나>(9월 21일 이상언 기자)에서 “피해자(‘○○’이라는 가명으로 언론에 보도)”로 설명하면서 한 차례 언급했습니다.

 

온라인판에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를 포함해 매일경제, 한국일보, 한국경제가 피해 아동 이름을 제목과 내용에 포함했습니다. 반면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겨레신문은 모니터링 기간 동안 지면과 온라인판 모두에서 피해 아동 이름을 쓰지 않았습니다.

 

현재 ‘조두순 사건’을 피해 아동 이름을 붙인 사건으로 부르는 언론사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 사건’으로 검색한 결과 9월 한 달 간 총 8개 매체가 10건의 기사에서 피해자 이름이 붙은 사건명을 언급했습니다. 서울경제 온라인판 <12월 출소 앞둔 조두순 "죄 뉘우치고 있다, 비난 달게 받겠다">(2020년 9월 10일 김진선 기자), 아주경제 온라인판 <[조두순 출소 D-100 ①] 2008년 12월 그날 무슨 일이>(9월 4일 이승요 기자) 등이 대표적입니다. 서울경제는 ‘조두순 사건’이라는 말은 쓰지 않고, ‘○○○ 사건’이라고만 한 차례 언급했고, 아주경제는 피해 아동 이름을 붙인 사건명을 10차례 반복했습니다.

 

아직도 피해자 이름으로 사건 부르는 언론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이름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가장 먼저 ‘근황’이 따라 붙습니다. 피해자를 특정하며 명명했을 때 대중의 관심이 피해자에게 쏠리기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와 사건 재발방지 등 공익적 이유로 정보를 공개한다고 하지만, 대중의 잘못된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012년 나주에서 일어난 ‘고종석 사건’도 초기 피해 아동을 부각한 사건명으로 불렸는데요. 당시에도 언론은 피해자에 집중했습니다. 피해자 집 위치를 위성사진으로 공개하고, 가족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피해자 측은 도망치듯 이사해야 했고, 죄인처럼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2019년 체육계 ‘미투 사건’ 때도 언론은 피해 사실을 폭로한 선수의 사진 등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며 2차 가해를 유발했습니다. 한국기자협회 등이 나서서 제정한 보도준칙 등이 있고, 피해자가 피해를 겪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지만, 똑같은 문제를 되풀이하는 것은 언론의 고의라고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조두순 씨 출소 소식에 시민 불안감이 커지자 여야는 경쟁적으로 ‘조두순 방지법’을 쏟아내고 있지만 대부분 이중처벌 금지 원칙 등에 위배돼 통과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2의 조두순을 막을 실질적 대안 마련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언론이 계속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당장 조두순씨 출소로 피해자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막을 대책도 중요합니다. 다만, 근본적 해결에 한 발짝 더 다가서기 위해서는 성폭력 피해 회복과 성폭력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 및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왜곡된 성인식이 팽배한 우리 사회 구조적 환경변화를 이끌어낼 보도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09/01~09/26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및 온라인 보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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