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조주빈이 전부였던 N번방 보도, 발전은 없었다
등록 2020.05.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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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디지털 성 착취 범죄’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3월 19일 ‘박사’ 조주빈이 구속된 이후 주요 가해자들이 검거되고 있으며, 5월 11일에는 ‘텔레그램 N번방’을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갓갓’이 검거되었습니다. 국회에서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관련 범죄 형량 강화 법안이 통과되는 등의 긍정적인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수사망을 피해 검거되지 않은 가해자들이 많고 불법 촬영물은 온라인상에서 계속 거래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성 착취 완벽 근절을 위해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지난 7일 모니터 보고서 <무대만 바뀌고 더욱 악화된 디지털 성폭력’, 언론은 무엇을 했나>(5/7)에서 디지털 성 착취 관련에 대해 언론이 얼마나 소홀했는지 짚었습니다. 그나마 텔레그램 성 착취 실태를 공론화 한 데는 분명 언론의 기여가 있습니다. 특히 이 사안을 처음 발견한 ‘추적단 불꽃’, 그들과 함께 특집 기사를 연재한 한겨레와 국민일보는 이 사건을 수면 위로 올렸습니다. 디지털 성범죄를 끝장내자는 국민적 의지가 모여 국민청원에도 화력이 붙고, 피의자 신상 공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국민의 성범죄 문제 해결에 대한 인식은 진일보하고 있지만 여전히 언론의 ‘디지털 성 착취 범죄’ 보도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언론은 유력 용의자가 검거되고 범죄 수법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보도를 양산하는 데 그쳤고, 가해자 서사에 과하게 몰입하며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이미 많이 지났지만 기록을 위해서 디지털 성 착취 범죄 관련 종합일간지 보도를 모니터했습니다. 모니터 기간은 조주빈 검거 하루 전인 3월 18일부터 공범 강훈이 검거된 다음 날인 4월 18일까지로 한정했습니다. 모니터 대상은 국민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연합뉴스,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한국일보입니다. 모니터 대상 기사는 네이버에서 해당 매체를 대상으로 ‘텔레그램’, ‘n번방’, ‘박사’, ‘조주빈’, ‘갓갓’, ‘강훈’, ‘부따’, ‘공익’, ‘성착취’, ‘디지털성범죄’ 이라는 10가지 키워드를 검색어로 했을 때 추출되는 기사로 한정했습니다.

 

성범죄 보도 시 피해자 보호는 저널리즘의 기본 중 기본

성범죄 보도에서 피해자 보호는 언론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든 ‘성폭력범죄보도 세부 권고 기준’ 실천 요강 1번에는 피해자 보호가 가장 먼저 명시되어 있습니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와 민주언론실천위원회(이하 민실위)가 발표한 <N번방 보도,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3/24) 지침의 1번 역시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합니다”라고 적시되어 있습니다.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거나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입힐 수 있는 내용은 절대 보도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단독/조주빈 폰엔, 여성 연예인 2충성사진있었다>(4/13, 조백건,류재민 기자)에서 “본지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경찰은 압수 수색을 통해 조씨의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에서 대중에게 알려진 직업군의 A씨와 B씨의 사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사진 속 A씨와 B씨는 조씨가 ‘박사방’의 여러 피해 여성에게 요구했던 왼손의 엄지와 새끼손가락 2개를 펴고 있는 특유의 포즈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고 전했습니다. 본문에서는 “대중에게 알려진”이라고 피해자 A씨와 B씨의 직업군에 대해 다소 뭉뚱그려 표현했지만, 이미 기사 제목에서 “여성 연예인의 ‘충성 사진’”이라고 적시한 것입니다.

언론이 피해자에 대해서 작은 단서라도 언급하는 순간, 사실상 2차 가해는 시작됩니다. 조선일보는 언론이 지켜야 할 가장 첫 번째 원칙을 깨뜨린 것이며, 실제로 이후 네이버 자동검색어에는 ‘N번방 연예인 피해자’ 등의 단어가 생성되기 시작합니다.

 

조선일보의 단독보도 이후 중앙일보와 국민일보는 해당 기사를 받아썼습니다. 중앙일보는 <조주빈 폰엔 특정 손가락 포즈여연예인들 사진 있었다>(4/13, 김민욱 기자), 국민일보는 <“조주빈, 걸그룹 개인정보 털었다...여연예인 충성사진도”>(4/14, 권남영 기자)를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는 “경찰 등에 따르면 조씨는 자신의 휴대전화 등에 여가수와 여배우의 사진도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직업군을 더욱 자세히 특정했고, 국민일보는 여성 연예인 사진에 대해 “다만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다운로드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지만, 조선일보의 기사를 그대로 받아썼다는 점에서는 문제적 보도 행태를 반복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언론은 그간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보호에 소홀한 태도를 취해왔습니다. 채널A는 연예인 정준영의 불법 촬영물과 관련한 보도에서 여성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일부 노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21조(인권보호) 제1항 위반으로 ‘주의’ 조치를 받았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정보 노출이 제재받을 만한 사항이라는 것을 인지하고서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겁니다.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 수준은 높아지는데 언론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모양새입니다.

 

범행 때만 돌변하는 악마로 묘사했다

이번 디지털 성 착취 보도에서는 주요 가해자인 박사 조주빈의 신상과 관련된 기사들이 많았습니다. 신상 정보가 공개되자 언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조주빈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조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주빈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악마’로 그려졌습니다. 조주빈이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학보사 기자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은 마치 조주빈이 내면에 악마를 감춘 듯 ‘두 얼굴의 조주빈’이라는 제목을 뽑아내기에 급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국민일보는 <직접 피해여성 건들지 않은 조주빈, 그렇게 악마를 숨겼다>(3/24, 강보현 기자)에서 “조주빈은 두 얼굴을 가진 악마였다. 텔레그램에서 ‘박사’로 불린 그는 보육원에선 ‘주빈쌤’이라 불렸다”고 말했습니다. 중앙일보는 <'박사' 추종한 직원, 성착취 영상 즐긴 회원'n번방 악마'는 또 있다>(3/20, 이후연 기자), <단독/"사진 더 보내면 지워줄게" 그 악마, 잡고보니 지인>(3/30, 정진호 기자)에서 성 착취에 가담한 가해자들을 악마로 표현했습니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와 민실위는 “성범죄는 비정상적인 특정인에 의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가해자 악마화에 반대했습니다. 언론이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하고 예외적인 사건으로 인식하게 한다면, 성범죄는 ‘악마’, ‘늑대’, ‘짐승’과 같은 비정상적 특정인에 의해서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으로 인식된다는 뜻입니다.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은 “언론은 성범죄의 원인으로 개인의 정신질환이나 억제할 수 없는 성욕 등의 문제만 부각하지 말고 그 근본 원인이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에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성범죄의 원인을 개인으로 돌려버리는 순간, 범죄 예방과 근절을 위한 담론과 오히려 멀어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보도 행태, 한 마디로 ‘조주빈의 모든 것’

범죄자의 일상, 가족 등 모든 삶을 다 파헤쳐서 서사를 부여하는 것 역시 언론의 나쁜 관습 중 하나입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언론은 가해자로 특정된 조주빈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캐내며 가해자에 과몰입했습니다. 조주빈의 신상 공개가 이뤄지기 3일 전, 한겨레는 <단독/앞에선 학보사 기자…n번방 ‘박사’ 두 얼굴 공범들도 몰랐다>(3/21, 오연서 기자)에서 조주빈이 학보사 기자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신상 공개가 이뤄진 직후에는 연합뉴스 <조주빈, 학보사 기자 시절 성폭력 예방 촉구기사 작성(종합)>(3/24, 손현규 기자), 동아일보 <“배신감 느껴진다”...‘박사방운영하며 봉사활동한 조주빈>(3/24, 김진하 기자), 한국일보 <“조주빈, 구속 일주일 전에도 봉사단체 방문...꾸준히 활동해”>(3/24, 김영훈 기자), 연합뉴스 <“‘박사방운영자 조주빈, 전문대 다닐 때 평점 4.17 우등생”>(3/24, 신민재 기자) 등 불필요한 조주빈의 신상정보가 줄을 이어 보도됐습니다.

 

급기야 국민일보는 <“착한 여자 망치고 싶다”...조주빈이 남긴 디시 음담패설글>(3/29, 권남영 기자)에서 조주빈의 포털 아이디를 검색해 과거 이력을 기사화했습니다. 국민일보는 “전 연령대 이용자가 볼 수 있는 게시판에 성관계와 관련한 음담패설을 숱하게 남겼다”라며 매우 자극적이고 불필요한 언어를 일일이 기사로 옮겼습니다. 전체 내용을 캡처해서 이미지로 첨부하기도 했습니다. 연합뉴스 역시 <조주빈의 이중생활’...인터넷서 성폭력·음란물 상담사 노릇>(3/24, 권선미 기자)에서 조주빈의 네이버 지식in 아이디를 검색해 조주빈이 과거에 달았던 글들을 열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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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지식in 활동 내용 보도한 연합뉴스(3/24)

 

가해자의 신상 정보를 낱낱이 파헤치는 보도는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물론 피의자 신상 공개는 적법한 절차이며 피의자 신상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해 범죄의 심각성을 고취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 보도할 것인지 그 ‘수위’를 조절하는 것 역시 언론의 몫입니다. 조주빈의 학창 시절 성적이, 온라인 활동 기록이 과연 시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만한 사안일까요?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더라면 알 필요도 없었고,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사안들입니다. 조주빈 신상털기 기사가 그저 클릭 유도성 기사에 지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불필요한 조주빈 ‘단독’ 모음

조주빈의 행적을 불필요하게 단독 보도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국일보는 <단독/“조주빈, ‘홍어’ 등 비하용어 스스럼 없이 써...대학 때 탈바꿈”>(3/24, 신지후 기자)에서 조주빈이 고교 시절 수학여행 때 친구와 다투다 이가 부러졌다는 이야기를 단독으로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단독/“내가 n번방을 평정한건..”조주빈, 무협지식 자서전 썼다>(4/2, 김아사,류재민 기자)에서 “누군가의 구술을 받아 적는 형태로 작성된 자서전에는 국내 정치인들도 여럿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조씨가 이 정치인들과 실제 교류한 것이라기보다 허구에 의해 쓰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라며 불필요한 정보를 나열했습니다.

 

조주빈이 구속 수감되자 국민일보는 조주빈의 일거수일투족을 단독으로 보도했습니다. 국민일보는 <단독/조주빈이 가장 많이 한 말은 “변호사님, 사임 안 하실 거죠?”>(4/12, 구승은 기자)에서 조주빈의 말과 행동을 다음과 같은 기사로 나열했습니다.

 

“그는 강도 높은 피의자 신문을 받으면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잠도 잘 이루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씨는 검찰 조사를 받던 중에도 그의 변호인을 민원실 등지에서 틈틈이 접견했다. 이때에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또 국민일보는 <단독/조주빈 사람들이 열광해 제어 못했다”>(4/13, 구승은 기자)에서 “12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조씨는 검찰에서 “이제 와 돌이켜보면 너무 큰 잘못을 했다.”라고 받아쓰거나 “사람들이 열광하기에 제어를 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라며 조주빈에게 자칫 면죄부를 줄 수 있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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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이유 구체적으로 단독 보도한 국민일보(4/13)

 

조주빈과 같이 사회적으로 이목이 쏠린 피의자에게 언론이 계속해서 발언권을 부여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언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범죄 사건에서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보도입니다. 조주빈의 한마디를 계속해서 조명하는 것은 본질을 가릴 뿐 아니라 가해자에게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범행 사실을 명확하게 적시하라

범행 사실을 제대로 쓰지 않고 뭉뚱그리는 것은 가해자의 책임을 가볍게 인식되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범죄 사실을 ‘몹쓸 짓’이라고 표현하는 경우입니다. 이번 디지털 성 착취 보도에도 여전히 이와 같은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조주빈 악마짓 함께한 '태평양', 16세 청소년이었다>(3/26, 이영빈 기자)에서 성 착취물 유포 공유방을 운영한 범행 사실을 ‘악마짓’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조선일보는 <9살 여자아이에게 몹쓸짓 시키고 텔레그램 유포한 20대 구속기소>(4/16, 김준호 기자)에서 아동에게 음란행위를 지시하고 이를 녹화해 텔레그램 단체방에 공유한 20대 남성의 범죄 행위를 ‘몹쓸 짓’이라고 썼습니다.

 

언론노조 성평등 위원회와 민실위 지침은 “‘몹쓸 짓’, ‘검은 손’ 등 가해행위에 대한 모호한 표현으로 심각한 인권 침해 문제를 가볍게 인식되게 하거나, 행위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명시했습니다.

 

남성 커뮤니티 반응 굳이?

국민일보는 <“26만명? ‘언냐들선동 아님?” n번방 조롱하는 남자들>(3/23, 이홍근 기자)에서 해당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축소시키려는 남성들의 반응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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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 커뮤니티 반응 기사화한 국민일보(3/23) 캡처

 

국민일보는 n번방 참여자 수로 알려진 26만 명이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부풀려진 숫자이며, 여성들이 일부러 사건을 과장하고 있다는 의견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남초 커뮤니티의 조롱이 담긴 글을 발췌하고 캡처해 기사화했습니다. 이와 같은 기사는 성별 갈등만 불러일으킬 뿐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을 주는 기사가 아닙니다. 만일 국민일보가 남성 커뮤니티 글을 인격 모독성으로 간주해 커뮤니티의 문제점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었더라면, 남성 커뮤니티 글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점이 문제인지 지적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일보는 남성 커뮤니티 글을 그대로 옮겨와서 오히려 조롱성 글을 확산시켰습니다.

 

검증 없이 조주빈 진술 보도한 조선일보

조주빈이 검찰 송치 과정에서 손석희 JTBC 전 사장, 윤장현 전 광주 시장과 김웅 프리랜서 기자를 언급하자, 이들 사이의 관계를 추측하는 온갖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손석희와 조주빈의 관계를 매일같이 추측했습니다. 정확한 근거가 있는 합리적인 기사였다면 수사 과정에 도움이 되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조주빈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쓴 보도에 불과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단독/조주빈 손석희 JTBC 사장이 윤장현·김웅 전화번호 알려줬다”>(4/11, 조백건 기자,류재민 기자)에서 손석희 JTBC 사장과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장, 김웅 프리랜서 기자를 속여 수천만 원을 가로챈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씨가 최근 경찰 조사 등에서 "윤 전 시장과 김 기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가르쳐 준 사람은 손 사장"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10일 알려졌다”고 썼습니다. 조선일보는 조주빈의 진술이 JTBC 측의 해명과 차이점이 있다며 조주빈의 진술에 무게를 더 실었습니다. 하지만 조주빈의 진술이 신뢰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근거는 없었습니다. 조주빈의 진술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손석희 사장의 입장도 실어줬지만 제목에서 조주빈의 진술을 따옴표 처리해 강조 효과를 주었습니다.

 

조선일보는 <김광일의 입/수갑 찬 조주빈이 손석희를 갖고 놀다>(3/26)에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정보를 조합해 영상 기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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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과 손석희 사장 관계 추측하는 조선일보의 김광일 논설위원 영상 기사(3/26) 캡처

 

“고위공직자나 유명인사들 중에 ‘구린 데가 많은 사람’일수록 사기 협박범에게 잘 걸려든다는 뜻이다. 특히 ‘몰래 카메라로 찍었다는 협박’이 제대로 먹혀든다고 한다”, “손 사장 측이 숨기고 싶은, ‘어떤 사생활을 몰래 촬영한 영상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근거가 있다. 조주빈은 김웅 기자에게 접근해서 “손석희 관련 제보 영상 있다”면서 현금 1500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뺑소니 영상’인지, 아니면 ‘동승 여성 관련 영상’인지, 그 부분은 앞으로 더 가려내야 한다”

  김광일 논설위원이 ‘합리적’이라고 언급한 근거는 근거의 기본 조건조차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본인의 추정일 뿐입니다. 해당 기사는 조주빈을 엮어 손석희를 공격하려는 조선일보의 의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작 조주빈에게 이용을 당한 것은 조선일보였는지도 모릅니다. 조선일보는 계속해서 조주빈에게 마이크를 쥐여 주면서 불필요한 정보들을 과대 해석해 음모론을 생성했습니다. 조선일보 발 보도는 가해자인 조주빈의 진술을 확산시키고 되풀이하는 꼴입니다.

 

정쟁의 도구가 된 n번방 사건, 언론이 확산했다

조주빈의 신상 공개가 이뤄지자 조주빈이 극우 보수 성향을 가졌다거나 문재인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라는 소문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됐습니다. 전혀 생산성 없는 소문을 받아 쓴 언론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일보입니다. 조선일보는 <조주빈의 정체는 일베냐 대깨문이냐...네티즌들 난타전>(3/24, 최아리 기자)에서 “명확한 증거가 없는 가운데, 친문 네티즌들은 “조씨는 일베 이용자이자 미래통합당 지지자”라고, 반문 네티즌들은 “조씨는 대깨문(극성 대통령 지지자)”이라고 서로 주장하는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기사에서 밝혔듯 명확한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조 씨의 정치 성향과 같은 이야기는 비본질적인 가십일 뿐입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커뮤니티 발 가십을 기사로 옮겨 해당 내용을 강조했습니다.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문제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소환됐습니다. 조주빈의 신상 공개를 요청하는 국민청원이 2백만에 달하자, 보수 신문들은 포토라인을 폐지한 검찰의 결정이 오히려 조주빈을 도와주는 꼴이 되었다고 말하는 미래통합당의 입장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미래통합당이 n번방 이슈를 정치적인 공격 도구로 사용하자 보수 언론이 이를 확산시킨 겁니다.

 

동아일보는 <이준석, n번방 사건에 포토라인, 누가 폐지했는가”>(3/23, 서한길 기자)에서 “인권보호 수사규칙을 제정하자고 주장한 장관이 누구이고, 누구에 대한 수사를 하다가 압박으로 포토라인이 폐지됐냐”고 쓴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의 SNS 글을 복사했습니다. 중앙일보 역시 <‘n번방에 분노한 여의도..."포토라인 폐지 수혜자 누구인가">(3/23, 오원석 기자)에서 “인권보호수사규칙을 제정하자고 주장한 장관이 누구인가”라고 말한 통합당의 입장을 옮겼습니다. 급기야 조선일보는 조국이 ‘n번방 범죄자들의 영웅’이라고 표현한 미래통합당의 논평을 제목으로 내걸었습니다. 조선일보는 <통합당 조국은 n번방 범죄자들 영웅”>(3/23, 윤형준 기자)에서 ‘n번방 운영자와 같은 사람을 포토라인에 세우기 위해서는 똑바로 투표해야 한다’는 이준석의 글을 게시했습니다.

 

디지털 성 착취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디지털 성 착취 채팅방의 운영자들이 줄줄이 검거되고 있지만, 아직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비롯해 온라인상에서 성을 착취하는 범죄들은 근절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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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기간별 보도량(3/17~4/18, ‘n번방’ 키워드로 검색, 중복포함) ©민주언론시민연합

 

텔레그램 수사가 이뤄지자 더 은밀한 플랫폼으로 자취를 감췄다는 기사들도 여럿 등장했습니다. 또한 조주빈을 비롯한 가해자들이 죗값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만한 형량이 선고될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주안점 중 하나입니다. 여론의 힘이 더 모여야 하고 언론의 관심이 지속되어야 마땅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n번방 사건이 잊히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3~4월의 디지털 성 착취 보도는 조주빈이 전부였습니다. 조주빈의 신상 공개가 임박한 3월 23일부터 신상 공개가 결정된 24일 무렵에 하루 150건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검찰이 아동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 14개 혐의로 조주빈을 구속기소하고, 강훈 및 공범들도 추가로 기소했지만 보도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를 비롯한 성범죄 근절을 위해 언론은 꾸준히 본질을 짚을 수 있는 기사들을 써야 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끝까지 잘 이뤄지는지 감시하고, 가해자가 제 죗값을 받을 수 있도록 논의를 이끌어야 합니다. 언론은 좋은 보도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 나쁜 관습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 모니터 대상 : 3/17~4/18 국민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연합뉴스,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온라인 뉴스 포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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