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차명진의 세월호에 대한 ‘막말 혐오표현’, 이렇게 보도합시다4월 8일 OBS 경인TV가 주최한 선거방송 토론회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이틀 전 열린 토론회 중계방송이었는데 해당 토론회에서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차명진 미래통합당 후보의 과거 세월호 막말 논란을 지적하자 차 후보는 성적 은어를 섞어가며 세월호 유가족을 모욕하는 발언을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먼저 이번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종합편성채널(종편)에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종편 시사토크쇼를 꾸준하게 모니터링해온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그동안 종편이 그동안 막말, 폭언, 왜곡·편파, 선정적 발언의 온상지였음을 꾸준하게 지적했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훼손하는 발언을 일삼는 부적절한 종편 출연자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중 차명진 씨는 타인에 대한 조롱과 막말이 도를 넘는 사례가 많았기에 방송 출연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이런 자격의 적절성 논란에도 차명진 씨는 결국 미래통합당 지역구 후보자로 공천되었다. 여기에는 종편 출연을 통해 넓힌 그의 대중적 인지도가 큰 영향을 끼쳤다. 한마디로 차명진이란 인물은 종편이 낳고 키운 ‘괴물’인 셈이다. 이런 차명진 씨가 선거방송 토론회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명백한 혐오 발언을 하고, 심지어는 중계방송에서 그대로 송출되어서는 안 될 반인륜적 표현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종편은 시사토크쇼를 남발하면서 차명진 씨처럼 막말로 먹고사는 부적절한 인사들의 방송 진출을 열어줬고, 이들이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거듭 출연시켜 주면서 그들의 사회적 입지를 넓혀줬다. 종편은 이번 사태에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하며, 차명진 씨의 고향과도 같은 MBN <뉴스와이드>를 비롯해 그를 키워준 TV조선 <박종진의 라이브쇼>, MBN <판도라>팀은 책임을 통감해야 마땅하다.
다음으로 현행 선거방송토론위원회 규정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이번 방송은 사전에 녹화된 것임에도 한마디도 편집하지 못한 채 방송되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 제27조(토론회 등의 중계방송)에 따라 해당 방송 녹화분을 ‘편집 없이’ 그대로 방송하도록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후보자에게 주어진 귀중한 선거방송 토론회에서 근거 없는 흑색선전을 하거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내뱉거나, 방송에서 도저히 사용해서는 안 될 표현을 사용했을 경우에도 국민은 그 내용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선거방송 토론회는 대부분 황금 시간대에 편성된다.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가족시청 시간대나 청소년보호 시간대에 방송된다는 뜻이다. 모든 국민에게 고스란히 노출되는 방송에서 이처럼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 은어를 섞어가며 세월호 유가족에게 독설과 조롱을 퍼붓는 모습을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한 국민이 어쩔 수 없이 시청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새로운 준거 틀을 만들고 규정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한국아나운서연합회, 한국방송작가협회, 인플루언서경제산업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월 16일 ‘혐오표현반대 미디어실천선언’을 한 바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뿐만 아니라 5․18민주화운동 왜곡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모욕까지 혐오표현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달라는 유가족의 목숨을 건 단식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였던 일베 등 극우적 집단의 행태를 포함한 세월호 유가족을 향한 혐오표현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미디어는 이런 발언과 행동, 퍼포먼스 등을 분명한 혐오표현으로 규정하고, 사회적 확대재생산을 방지하기 위해 나서야 했다. 언론은 시민 인권의식을 높임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천선언 4항에서 “주요 정치인, 고위 공무원, 종교 지도자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 하는 혐오표현은 더욱 엄격하게 비판적으로 바라보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유력 정치인이나 종교 지도자, 유명인 등 영향력이 큰 사람이 혐오표현을 하는 경우 대중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사회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지지층 결집과 정치적 이익을 노리고 일부러 더 강한 표현을 써가며 혐오표현을 이용하기도 한다. 언론은 이런 정치인들의 의도적인 혐오표현을 그대로 중계할 게 아니라 그 배경과 맥락을 파악하여 비판적으로 전달하고, 강력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종편과 같은 일부 미디어가 혐오표현의 복제, 유포, 확산의 적극적 매개체가 되어 사회 분열과 대립을 증폭시켜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차명진 씨의 ‘막말 혐오’ 발언을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혐오표현’으로 규정하고, 언론인을 비롯한 유튜버 등 미디어 종사자에게 아래와 같이 당부한다.
- 막말 혐오표현을 무책임하게 여과 없이 중계하지 말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라.
- 이번 발언이 매우 위험한 혐오표현임을 분명히 하고, 부적절한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라.
- 노골적인 발언을 그대로 옮겨 선정적으로 소비하지 말고, 특히 ‘세월호와 ◯◯◯’란 표현을 함께 사용하지 말라.
- 헛소문이나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근거로 기사가 나가지 않도록 하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라.
- 막말 혐오표현을 감싸려는 목적으로 진상규명을 하자는 등의 프레임을 만들어 소모적 논쟁을 야기하지 말라.
- 미디어를 통해 막말 혐오표현이 무차별로 확산되지 않도록 책임감 있게 보도하라.
세월호 유가족은 이미 수많은 정신적 질환과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다. 언론이 이번 사태를 흥미 위주의 선정적 보도로 접근하고, 사건의 본질을 외면하는 보도를 하게 된다면 또다시 세월호 유가족을 모독하는 행위가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세월호 사태 당시 언론 보도를 지켜보며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크게 떨어졌다.
다시 ‘416’이 돌아온다. 세월호 유가족은 언론으로 인해 너무 큰 상처를 받아왔다. 또 다시 몸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유가족 앞에서 우리 언론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막말 혐오표현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차명진’이라는 괴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는 역할이야말로 2020년 한국 언론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다.
2020년 4월 9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