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음악이야기] 비발디와 모차르트의 ‘봄’
등록 2020.04.0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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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와 모차르트의 ‘봄’

  “드디어 봄이 왔다! 새들은 매우 기뻐하며 즐거운 노래로 인사를 나눈다. 산들바람의 부드러운 숨결에 시냇물은 정답게 속삭이며 흐른다. 하늘은 갑자기 검은 망토로 뒤덮이고 천둥과 번개가 몰려온다. 잠시 후 하늘은 다시 파랗게 개고 새들은 또다시 즐거운 노래를 부른다.”

봄이 온 건 분명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다들 위축된 탓인지 봄 같지 않다. 코로나19가 수그러들기를 기대하면서 어깨를 활짝 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누구나 좋아하는 비발디 <사계> 중 ‘봄’, 원래 바이올린 협주곡이지만 아카펠라(Acappella ‘악단의 반주 없이’란 뜻으로사람 목소리만의 앙상블) 노래로 들어보자. 이스라엘의 5인조 여성 앙상블 ‘카르멜’이 선사하는 ‘봄’, 사람 목소리로 노래하니 더욱 친근하다.

 

비발디 <사계> 중 ‘봄’ 1악장 (노래 카르멜 아카펠라)  

https://youtu.be/Uxs5O6hMBvg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은 핸드폰의 통화대기음으로 나오며 광고에서도 자주 들려온다.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를 묘사한 4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비발디는 각 계절마다 직접 소네트를 써넣어서 음악을 설명했다. 앞에 인용한 소네트는 ‘봄’의 1악장으로 “봄이 왔다”고 외치는 대목, 새들의 노래, 산들바람과 시냇물의 속삭임, 봄을 시샘하는 천둥과 번개, 맑게 갠 하늘과 만물이 소생하는 장면을 차례차례 상상하며 들어보면 재미있다.

‘빨강머리 신부님’이란 별명으로 불린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는 베네치아의 피에타 자선원(Ospedale de la Pieta)에서 일하며 500곡 가량의 아름다운 협주곡을 썼는데, 그 중 <사계>(1725)는 비발디 자신에게도 각별했다. 그는 악보의 속표지에 이렇게 써 넣었다. “소네트에 의해 매우 사실적으로, 명확하게 묘사된 작품들로, 새로운 작품다운 의미와 가치를 지닐 것으로 믿습니다.”

비발디는 3개의 악장으로 된 협주곡의 틀을 확립했고 특히 ‘리토르넬로’(ritornello) 형식을 개발하여 음악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리토르넬로’는 영어로 ‘리턴(return)’ 즉 ‘돌아온다’는 뜻으로, 주제가 여러 차례 되풀이 등장하고 그 사이사이에 색다른 에피소드들이 삽입되어 변화와 재미를 선사한다. 비발디의 ‘봄’ 1악장은 A(봄이 왔다)-B(새들이 노래한다)-A(봄이 왔으니)-C(산들바람과 시냇물이 흐른다)-A(봄이 오나 했더니)-D(폭풍우가 몰아친다)-A(그래도 봄이 왔다), 이런 스토리를 갖고 있다. 대체로 A-B-A-C-A-D-A의 구조인데 변화와 갈등을 겪은 뒤 원래 자리로 돌아와서 듣는 이에게 만족감을 준다.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인간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발디 협주곡들을 세상에서 제일 먼저 연주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25살 때 사제 서품을 받은 비발디는 기관지가 나빠서 미사 집전을 힘겨워했다. 사실 그는 미사보다 음악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미사 중에도 틈만 나면 작곡을 했다고 한다. 그는 5년 만에 미사 집전을 포기하고 고아 소녀들을 보호하는 피에타 자선원(Ospedale de la Pieta)에서 음악을 가르쳤는데, 그의 음악을 세계 최초로 연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자선원의 소녀들이었다.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 베네치아는 일 년의 절반 가량 떠들썩한 축제가 벌어졌는데 몰래 낳은 아이를 자선원에 맡기는 일이 많았다. 피에타 자선원은 800여 명의 소녀들을 수용했고, 그 중 40명을 엄선하여 노래와 연주를 맡겼는데 비발디는 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쳤고 이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협주곡을 작곡했다. 이 소녀들은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베네치아 최고의 관광 상품이 됐다고 한다. 당시 베네치아 주재 프랑스 영사의 비서로 일하던 장 자크 루소는 이 소녀들을 직접 만난 뒤 “이 불우한 소녀들 중에는 애꾸도 있고, 천연두로 망가진 얼굴도 있었지만 천사처럼 노래했고, 어떤 악기도 두려움 없이 척척 연주했으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우아함과 정확성으로 박자를 맞추었다”고 증언했다.

(롤랑 드 캉트 <비발디>, p.19) 피에타의 소녀들에게는 비발디 음악을 연주하러 나가는 시간이야말로 햇살을 보는 해방의 시간이었고, 그의 음악이야말로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해주는 기쁨과 축복이 아니었을까.

 

세상살이가 무척 힘들다. 음악은 이 시대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 모차르트(1756~1791)가 세상을 떠난 해인 1791년 1월 작곡한 동요 <봄을 기다림>은 KBS 클래식FM의 로고 음악으로 귀에 익은 선율이다. 가사는 5절로 돼 있는데 일부만 보자.

(1절) 아름다운 5월아, 다시 돌아와 수풀을 푸르게 해주렴. 시냇가에 나가서 작은 제비꽃 피는 걸 보게 해주렴. 얼마나 제비꽃을 다시 보고 싶었는지! 아름다운 5월아, 얼마나 다시 산책을 나가고 싶었는지! (4절) 무엇보다 로트헨이 마음 아픈 게 나는 제일 슬퍼. 불쌍한 이 소녀는 꽃이 필 날만 기다리고 있지. 나는 걔가 심심하지 말라고 장난감을 갖다 줬지만 소용이 없어. 걔는 알을 품은 암탉처럼 조그만 자기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지. (5절) 아, 바깥이 조금만 더 따뜻하고 푸르렀으면! 아름다운 오월아, 우리 어린이들에게 어서 와주길 간절히 기도할게. 누구보다도 우리들에게 먼저 와주렴. 제비꽃이 많이많이 피게 해주고, 나이팅게일도 많이 데리고 오렴. 예쁜 뻐꾸기도 데리고 오렴.

엘리 아멜링, 바바라 보니 등 클래식 성악가들의 노래도 좋지만, 팝 가수 나나 무스쿠리도 이 노래를 사랑하여 아름다운 녹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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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봄을 기다림>(노래 나나 무스쿠리)  

https://youtu.be/9URYugPt1RU

노래의 주인공은 가난한 집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돈 안 들이고 그저 밖에서 뛰노는 것 밖에 모르는 어린이 같다. 어린이는 이웃 소녀 로트헨이 아파서 슬프다. 꽃이 필 날만 기다리며 ‘알을 품은 암탉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로트헨…. 어린이는 이 소녀에게 장난감을 갖다 주었는데, 자기 물건 중 제일 소중한 게 아니었나 싶다. 로트헨이 어서 낫기를 바라는 이 4절이야말로 이 노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어린이는 봄이 “우리 어린이들에게 제일 먼저 와달라”고 간절히 노래한다. 예쁜 꽃들과 새들이 모두 로트헨에게, 그리고 모든 어린이들에게 성큼 달려와주기를 기도한다.

진정한 봄은 무엇일까? 아픈 사람들의 상처가 치유되고, 모든 사람들이 웃으며 평화를 누리는 게 봄 아닐까? 어린이의 마음이 되어 봄을 그리워한 35살 모차르트…. 1791년에도 봄은 어김없이 돌아왔고, 그해 봄은 모차르트에게 마지막 봄이 되고 말았다.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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