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영화이야기] 대한민국 국민이 알아야 할 금융비리, <블랙 머니>
등록 2020.04.0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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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 (BLACK MONEY, 2019)

개봉 2019년, 한국

감독 정지영

대한민국 국민이 알아야 할 금융비리, <블랙 머니>

 

<남영동1985>(2012)와 <부러진 화살>(2011)의 정지영 감독이 2019년에 또 한 편의 사회고발영화를 완성시켰다. 론스타라는 미국부동산투자전문 헤지펀드가 2003년에 대한민국의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2012년에 하나은행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감춰져있던 비리를 고발하는 <블랙머니>가 그것이다. 2012년 끝난 일을 2019년에 영화화한 이유는 사실은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매각하고 떠난 론스타는 매각 지연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면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라는 국제기관에 한국정부를 상대로 2015년 제소했고 2020년 현재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패소할 경우 국민의 세금으로 5조5천억을 론스타에 배상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불법인수 증명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 한국은, 대한민국 국민은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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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시작에서 자막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모든 사건과 인물은 영화적으로 창작’되었다면서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들을 어느 정도, 어떤 지점, 어떤 범위에서 현실로 보거나 판타지로 보거나는 오로지 관객의 몫이라고 알리는 작업이다. 예를 들면 극중에서 주인공이 들리는 MBS건물이나 탐사보도프그램 취재수첩, 뉴스탐사를 관객에 따라서는 그냥 가상의 무엇으로 인지할 수도 있고, 혹은 MBC, PD수첩, 뉴스타파겠거니 할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 양민혁검사가 자신의 검사직을 버리면서까지 수사결과를 공표한다는 서사를 그냥 픽션으로 보거나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거나 하는 일은 관객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이 영화에서 리얼리티가 판타지를 위한 그저 하나의 작은 출발점으로 축소될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 같다. 혹은 리얼리티가 판타지를 보강해주는 수준으로 전락할 것을 걱정한 것 같다. 관객이 판타지에 취해 그 묵직한 현실을 인식해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감독은 끝까지 감추지 못하고 마침내 엔딩 자막을 통해 판타지를 벗어나 리얼리티에 눈길을 주도록 유인한다. “2012년 스타펀드는 대한은행을 매각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들은 매각 지연을 이유로 한국정부에 5조원 대의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현재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고 우리 정부가 패소할 경우, 그 배상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물어야 한다.” 관객들은 다양한 보도 매체를 통해 그간 축적한 정보를 통해서 스타펀드-론스타펀드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은 이름-와 대한은행-대한민국 외환은행을 줄였구나 싶은 이름- 만이 가명임을 알아챈다.

영화의 중심 이야기는 대한민국 경제를 크게 흔들 수 있는 스타펀드의 대한은행 인수 비리가 금융 경제와 무관해보이는 서울지검 평검사 양민혁(조진웅)의 삶과 사소한 계기로 얽히면서 출발한다. 어느 날 연쇄충돌뺑소니 사건이 배당되고, 합의를 권하는데도 감옥에 보내달라고 매달리는 피의자를 애써 타일러 내보냈을 뿐이다. 그런데 피의자 박씨가 난데없이 담당검사로부터 강압적 수사와 성추행을 당했다는 문자를 남긴 채 자살하면서, 양검사는 꼼짝없이 한 사람을 죽게 만든 성추행범이 되어버렸다. 남긴 문자는 타인이 작성한 것이 분명해지고, 타살을 증명해야 누명을 벗을 수 있다. 양검사는 박씨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다. 누가 왜 박씨를 죽인 것일까? 박씨가 스타펀드에 매각된 대한은행의 직원이었고, 대한은행의 BIS(자기자본비율) 수치를 하향 왜곡한 서류를 금감원(금융감독원)에 보낸 당사자였으며, 그 때문에 중수부(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조사를 받던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양검사는 누가 왜 BIS를 조작했는지로 질문을 확대하게 된다. 이렇게해서 그는 점차 복잡한 금융 범죄의 실체에 다가간다. 수사 결과 미국 사모펀드인 스타펀드, 스타펀드와 결탁한 한국의 정재계 인사들, 금감원, 대한은행, 그리고 그들을 돕는 거대 법률사무소로 이루어진 특정 모피아(Mopia) 세력을 발견한다. 모피아의 환유인 전총리(이경영), 금감원장 등이 공모하여 대한은행의 BIS 수치를 낮게 조작한 것이고 부실은행으로 분류되면서 은행업계가 아닌 다른 성격의 자본(여기서는 스타펀드 등)이 헐값에 인수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양검사는 판단한다. 은행의 인수는 은행업계에서만 참여할 수 있고, 1/3이상의 소유는 금지되어 있는데, 부실한 은행의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은행법을 점을 이용하여 대한은행을 부실한 듯 서류 상 만들었기에, 은행업과는 무관한 스타펀드가 헐값에 대주주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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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금융사건의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양검사는 실체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세력에 의해 동료 수사관(강신일)이 부상 당하고, 노동인권변호사를 하는 선배(최덕문)가 탈세 의혹으로 구속되는 등의 정신적 타격을 받는다. 동시에 대형 법률사무소 대표(문성근)가 양검사의 성추행 딱지를 떼주고, 선배 구속문제도 해결해주고, 20억원 연봉을 줄테니 하던 수사 중단하고 이직하라는 유혹도 받는다.

영화에서 양민혁이 대한은행 불법 매각/인수를 계속 수사하게 만드는 요인은 ‘누명 벗기’라는 사적 욕망이다. 누명을 벗으려는 이유 중에는 생존의 문제도 중요했는데, 성추행 검사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한 변호사로 개업할 수 없고, 그것은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어디에서도 그가 스타펀드 사건에 매진하는 이유에 정의나 가치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누명 벗기’라는 욕망을 대형 로펌이 해결해주겠다고 하는 순간, 자신의 노력으로 해결이 될 것이 확실하지 않다면 그는 그 제안을 받아야 마땅하다. 진실도 밝히지 못했고 제안도 거절한다면, 욕망은 전이되어야 서사가 자연스레 진행될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 금융위원회가 스타펀드의 대한은행 매각을 징벌매각이 아닌 단순매각으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린 날, 그것을 규탄하는 노동자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양검사는 그들이 불법으로 인수했다는 증거 자료가 있다고 보고하면서, 공무원이라면 마땅히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는 공무원의 의무조항을 바탕으로 부장검사의 수사 중지 지시를 어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부장검사를 비난한다. 범죄 고발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공무원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검사는 더 이상 검사가 아닌 것이다.

대한은행을 매각하는 스타펀드에게 적격성을 부여하면서 나라를 구하려고 그러는 것이라느니, 차명으로 투자를 한 자신들의 행위를 국부 유출을 막는 거라느니 하는 명분을 대는 모피아들을 보면서, ‘이들의 나라’는 어쩌면 번번히도 ‘국민의 나라’와 그렇게 다른지, 기가 찬다.


염찬희(회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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