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책·영화속 언론이야기] 가짜뉴스 방지법은 가짜뉴스를 막을 수 있을까?
등록 2020.03.0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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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방지법은 가짜뉴스를 막을 수 있을까?

- 케일린 오코너, 제임스 오언 웨더럴 저 <가짜뉴스의 시대: 잘못된 믿음은 어떻게 퍼져나가는가>

 

┃ 표지 그림의 의미: 진짜와 가짜 사이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 감각적인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FACT라는 단어 위에 페인트 스프레이로 FAKE라고 덧썼구나 싶었는데 보다 보니 어떤 부분은 FACT라는 글자가 페인트 위로 나타난다. 잠시 생각하다 무릎을 탁 쳤다. 하긴, 가짜뉴스라도 신빙성을 얻으려면 일부는 사실로 구성되어 있기 마련이다.

 

지난해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이 화제가 됐다. 우리가 서로의 입장과 경험을 미처 다 헤아릴 수 없기에 선량한 의도를 가지고도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실제 사회에서 선과 악이라는 것의 경계는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진짜와 가짜의 문제는 다를까. <가짜뉴스의 시대>를 읽다 보면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구분하기란 어쩌면 선과 악의 경계를 가르는 것 이상의 정교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학자 네트워크에서 어떤 의제가 선택되고 연구되어 하나의 지식이 되고, 다시 그 지식이 선택적으로 유통되어 대중에게 수용되기까지 ‘가짜뉴스’가 될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이 책은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뉴스를 믿어야 할까? 개별 주체에게 그것이 믿을 만하다고 판단할 능력이 있기는 한 걸까? 불만 어린 의구심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서 책을 읽어나갔다.

 

┃ 잘못된 믿음이 퍼져나가는 방식들

실제로 이 책은 (물론 개개인의 목소리와 노력이 모여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겠으나) 개인 차원에서보다는 전문가 네트워크, 공적인 지위를 확보한 언론 등 보다 큰 사회단위에서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혹은 취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 책에서는 가짜뉴스가 만들어질 수 있는 몇 가지 메커니즘에 대해 날카롭게 짚어낸다.

 

1) 과학자도 ‘사회적 동물’이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증거를 조직적으로 수집하고 평가하는 데 최상의 위치에 있는’ 과학자들도 인간이다. 그렇기에 그들도 개인 차원에서 확증편향을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 네트워크에서 지식을 공유하고 그중 일부가 인정받는 과정에서 동조효과, 정보폭포현상 따위의 사회적 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자나 과학의 권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증거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개개인에게 그럴 능력(판가름할 수 있는 기반지식)이 얼마나 있겠냐 싶지마는 표본이 충분한지,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나왔는지 등 최소한의 필터는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2) 그들은 생각보다 ‘과학’에 개입하지 않는다

선전가라고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특정한 이해관계자가 과학이 만들어지고 공유되는 과정에 개입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젠틀하다. ‘편향된 산출’이라는 노골적인 개입에 비해 ‘선택적 공유’나 ‘산업적 선택’의 메커니즘이 비용상으로도 효율적이고 위험성도 적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말 그대로 가짜를 생산하는 가짜뉴스 생산 및 유포자들은 하수다. 진짜 위험한 가짜뉴스 생산자는 가짜를 생산하지 않는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연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완료된 연구들 중에 자신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을 열성적으로 퍼트릴 뿐이다. 가짜뉴스를 가려낸다는 것이 말로 뱉어내는 일에 비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인지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쯤 읽으면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절망감에 휩싸일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말한다. 지구를 중심으로 한 태양계 모형은 항성과 행성의 위치를 정확히 예측했고, 우리는 지금도 뉴턴의 중력 법칙을 사용해 위성의 궤적을 계산하며, 뉴턴의 이론은 인류를 달에 보내는 데도 충분했다고. 폐기된 이론이라도 다음 이론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고, 인류는 더디더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걸어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까.

 

3) 공정의 원칙은 평평한 운동장의 룰이다

우리는 흔히 신문에서 어떤 사안에 관한 찬반 입장을 동시에 담으려고 하는 모습이나, TV 토론프로그램에서 소위 좌우 진영의 패널이 양적인 균형을 이루어 앉아있는 모습을 마주한다. 하지만 이책의 저자는 한때 담배회사에서 공정의 원칙을 동력 삼아 담배광고 규제에 관한 입법을 수십 년이나 지연시킨 것을 지적하면서, 이런 식으로는 대중이 올바른 방향으로 신념을 구성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일대일 대립구도로는 실제 전문가 네트워크의 중론이나 지형도(얼마만큼의 비율이 찬성 의견을 가지는지 등)를 반영하지 못하며, 나아가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때 당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여러 단위에서 ‘가짜뉴스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메커니즘을 고민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더 많은 이야기는 책을 통해 확인하자.)

 

가짜뉴스 방지법, 가짜뉴스 막을 수 있나?

모바일 미디어를 통해 가짜뉴스의 생산과 확산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활발해지자, 일각에서는 ‘가짜뉴스 방지법’과 같은 강경책을 들고 나섰다. 가짜뉴스가 미치는 영향력이 결코 사소하지 않으므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가짜뉴스 방지법’만으로 ‘가짜뉴스의 시대’에서 민주주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염된 정보가 영향력을 작동하는 방식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교묘하게 이루어진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가 말하는 대안들은 꽤나 파격적이라서 조금 비현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지적하는 가짜뉴스의 몇 가지 메커니즘은 선명하고, 따라서 단위별로 구체적인 대응책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방향성은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가짜뉴스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사후적 대처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는 당파주의나 연고주의 문화에서부터 따옴표저널리즘이나 발표저널리즘이라 불리는 구체적인 관행까지, 어떤 사안에 대해 오롯이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일련의 메커니즘을 직시하고 그들에게 안녕을 고하는 것이 對가짜뉴스 전쟁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정소영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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