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좋은 보도상_
기술 결정론에 가려진 노동 의제 발굴한 경향신문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2020년 1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신문 부문 수상자로 경향신문 신년 기획보도 <녹아내리는 노동>을 선정했다.
2020년 1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신문 부문 심사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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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
경향신문 기획 <녹아내리는 노동> 매체: 경향신문, 취재: 경향신문 정치부 손제민 기자, 정책사회부 정대연 기자, 전국사회부 최미랑 기자, 사회부 심윤지 기자 보도일자: 1/1~ |
선정위원 |
공시형(민언련 활동가),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민동기(고발뉴스 미디어전문기자), 박영흠(협성대학교 초빙교수), 박진솔(민언련 활동가), 엄재희(민언련 활동가), 이광호(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 임동준(민언련 활동가), 조선희(민언련 활동가) |
심사 대상 |
1월 1일부터 31일까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신문, 한국일보 지면에 게재된 보도, 그리고 자천, 타천한 신문보도(지면보도에 한함) |
선정 사유 경향신문은 1월 1일부터 신년기획으로 정보기술 발달에 따라 변하는 노동형태를 조명하여 4차 산업혁명의 명암을 보여주고 있다. 경향신문은 노동자를 전통적 고용관계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는 긱 경제가 노동자에게 자율성은 주었지만 그 비용이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는 점을 보였다. 다음으로 자동화된 공장과 IT기업의 다중 하청 구조에서 열악해지는 노동 환경을 지적했다. 특히, AI나 자동화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 모니터하는 노동을 취재한 것은 쉽게 발굴하기 어려운 의제였다. ‘데이터로 얻는 이익은 누가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경향신문은 이 기획연재를 통해 궁극적으로 기술이 발전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술결정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4차 산업혁명을 국정과제로 내건 정부가 성장·경쟁이 아닌 신기술로 인해 변하는 삶과 노동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 ‘긱 경제’는 최근 새로운 노동의 형태로 떠오른 불안정 노동의 이름이다. 과연 이런 노동으로 생활하는 것은 가능한 것인지, 법적인 보호는 충분한지 모든 것이 미궁 속이다. 경향신문은 새로운 불안정 노동을 ‘녹아내리는 노동’으로 비유하고 플랫폼 노동, 공장 자동화, 데이터의 가치 등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의제들을 취재를 통해 넓고 깊게 짚어냈다. 총선이 있는 올해, 많은 정치인들이 내세울 4차 산업혁명의 명암을 폭넓게 다뤄준 이번 보도는 신년기획이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기획보도였다. 경향신문은 지난 ‘11월 이달의 좋은 보도’ 수상작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에서와 같이, 이번 보도에서도 노동 의제에 대한 경향신문의 꾸준한 관심과 노동 의제를 다루는 기자들의 높은 안목을 보여주었다. 이에 민언련은 경향신문 <녹아내리는 노동>을 2020년 1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신문 부문에 선정했다. |
경향신문은 1월 1일부터 신년기획 <녹아내리는 노동>을 통해 4차 산업혁명으로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이중구조 밑에 더 불안정한 ‘비정형 노동’이 생기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비정형 노동을 노동이 고체에서 액체로 녹아내리는 것에 비유하며, “작업장과 작업장 아닌 공간의 경계, 생산과 휴식 시간의 경계, 고용주와 노동자 및 소비자의 경계가 흐려진다. 과거 표준적 고용관계 속에서 보호받는 노동의 모습이 분명했다면, 이제는 어떤 것을 노동이라 부를지조차 불분명하다”고 운을 뗐다.
각자도생 만드는 일감노동
경향신문은 첫 연재 <근무 장소 시간 소득 일정치 않음…자유롭게 일하지만 불안한 내일을 산다>(1/1)에서 플랫폼 노동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일감단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프리랜서 개발자는 과거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나 노동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경험 때문에 국가의 역할을 불신했고, IT노조 움직임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크라우드소싱 플랫폼 노동자는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플랫폼 노동을 선택했으나 일과 여가의 구분이 없어지고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웹소설 작가는 두 명 중 한명이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작업에 매달리지만, 단행본까지 낼 수 있는 작가조차 일반 회사 월급만큼 벌고 작품을 내지 않을 때는 건보료와 국민연금까지 연체되는 처지가 됐다. 창작자들의 권익단체는 극히 최근에서야 설립됐다. 다수의 부업을 가지는 ‘N잡’ 노동자는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졌고 심리적으로도 여유로워졌으나 출근과 운동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전부를 자기계발에 쓰고 있다. 플랫폼에 고용되어 일하는 가사노동자들은 서로 만날 기회가 없고 회사와 1:1로 계약하기 때문에 회사가 어떤 불리한 결정을 해도 의사표시를 할 방법이 없었다. 플랫폼 배달노동자들은 일을 찾기 쉬워져 수입은 늘어났으나 수입만큼 노동 강도도 비할 바 없이 강해졌다.
△ 비정형 노동 종사자들을 심층 인터뷰한 경향신문 기사(1/1)
경향신문은 이들의 공통점을 “더 나은 대안이 이들에게 없었다는 점에서 각자의 선택은 100% 자발적으로 보기 어려웠다”는 점과 “삶의 의지를 불태우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숨기지 못한다”는 점을 들었으나 공통된 키워드는 ‘각자도생’에 가까웠다. 인터뷰에서 플랫폼 배달노동자 권익단체 ‘라이더유니온’에 가입했다고 밝힌 배달노동자는 “장기근속이 사라지고 투잡, 스리잡을 하는 ‘긱노동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사회보장제도도 이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이 지적한 ‘무인화의 허구’
경향신문이 13일 두 번째 연재에서 보도한 기사들의 키워드는 ‘무인화’이다. <“기회” 아닌 “불안”…6배 높았다>(1/13)에서 경향신문은 신기술 도입으로 인해 임금이 감소하고,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불안 심리를 짚었다. <잠들지 않는 온라인 플랫폼 뒤…잠들지 못하는 ‘유령 노동자’>(1/13)는 주목할 만한 기사이다. 경향신문은 이 기사에서 AI 유해컨텐츠 선별 알고리즘의 정밀성을 높이기 위해 모니터링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했다. 모니터링 작업자들은 유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보기 때문에 정신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하청구조에 따른 불안정-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향신문은 이와 비슷한 모니터링 노동자들과 대형 IT기업들의 데이터센터 등지에서 일하는 관리자들을 ‘디지털 막노동’에 비유했다.
△ ‘무인화의 허구’ 꼬집은 경향신문 기획기사(1/13)
<사람 대신 로봇…일자리 없어지진 않겠지만 ‘노동 양극화’ 우려>(1/13)는 앞선 두 기사를 연결시켜주는 기사로 평가할 수 있다. 자동화로 일자리는 없어지지 않고 다른 일자리로 대체된다. 그러나 없어지는 일자리는 이미 법의 테두리 내에서 보호받는 일인 반면,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는 비용절감이라는 욕망에 의해 하청과 재하청에 맡겨지고 이윽고 불안정 최저임금 노동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상자에 구멍 하나 뚫기가 이렇게 힘이 듭니다>(1/13)에서 알 수 있듯, 자동화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비용 절감을 할 수 있는 일에 우선적으로 도입될 뿐, 정작 노동자의 일을 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는 절대로 도입되지 않는다. 경향신문은 <AI 빅데이터로 전 과정 자동화…인력 80명 줄이고도 생산량 2배 이상 증가>(1/13)에서 “문제는 한국의 경우 새 기술 도입이 유난히 노동배제적으로 이뤄져 왔다는 점이다. 제조업 노동자 1만명당 로봇 수를 의미하는 로봇 밀집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631로 세계 평균(74)을 크게 웃돈다.(중략) 이 같은 상황은 갈등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어 스마트공장의 미래에도 부정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생산자와 수익자가 분리된 ‘데이터 산업’, 분배 의제 짚은 경향신문
데이터는 새로운 정보기술을 개발하고 기업들의 사업 모델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자원이 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는 절대 기업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들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기업에 제공할 때 만들어진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데이터 경제는 IT기업들이 이용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무료 플랫폼을 만들면, 이용자들이 몰려 만들어낸 데이터를 기업들이 활용하는 형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IT 기업들은 데이터를 활용한 사업모델로, 때로는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기업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렇듯 데이터를 만드는 사람과 데이터로 수익을 얻는 사람이 분리되어 있는 현실은 자연스럽게 데이터로 얻는 이익이 누구에게 얼마나 귀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IT기업가 출신 정치인 앤드루 양이 도입을 주장하는 기본소득이 이런 맥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 국회에서 기업들의 데이터 이용을 용이하게 하는 ‘데이터 3법’이 통과될 때, 이런 의제들은 전혀 사회에서 다뤄지지 않았었다.
경향신문은 22일 세 번째 연재에서 바로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잘 다루었다. 경향신문은 <‘21세기 자본’ 데이터…생산은 우리 모두가, 이윤은 기업이>(1/22)에서 “인터넷 이용자들이 부지불식간에 하는 활동은 ‘노동’…인식 못하는 사이 기업의 ‘기술 농노’로 데이터 생산 노동에 참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기술 농노’들을 많이 확보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이익이 늘어나는 데이터 경제의 특성은 플랫폼 기업들이 시장 독점을 위해 출혈경쟁을 하게 만든다. 경향신문은 이명호 여시재 솔루션디자이너를 인용해 “플랫폼 기업들이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 데이터를 장악하고 오프라인 시장을 통제하면 저렴한 서비스 이용비용 등 과거 소비자들이 누린 편의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향신문은 이어지는 기사 <데이터가 법적으로 ‘물건’이라면, 활용 기업에 대가 물을수도>(1/22)에서는 작년 통과된 ‘데이터 3법’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전하고 국회에서 데이터 소유권을 입법화하려는 움직임을 전했다. <“데이터, 총합으로 모여야 비로소 가치…개인 협상보다 국가가 나서야”>(1/22)에서는 데이터 기반 기본소득 정책을 주장하는 호주의 정치철학자 팀 던럽을 인터뷰하여 데이터로 얻는 이득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 의견을 들었다.
노동 의제 다루는 기자들의 높은 안목 보여준 경향신문 기사
경향신문은 1월 이후에도 ‘녹아내리는 노동’이라는 주제로 기획기사를 계속 내고 있다. 2월 5일 연재에서는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기술 결정론’을 비판하고, 4차 산업혁명을 당면과제로 내세운 정부가 ‘성장·경쟁’에만 관심이 있고 노동과 사람의 삶을 돌보는 정책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고 지적했다. 2월 12일에는 돌봄 노동을 주제로 보도했고, 2월 18일에는 국내외의 변화하는 노조의 활동, 2월 26일에는 각종 정책 제언들을 담았다.
2019년 11월 민언련 선정 이달의 좋은 보도에 선정된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도 ‘노동’을 주제로 한 다시 보기 힘든 좋은 기사였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에 이어, 경향신문이 총선이 있는 올해의 신년 기획기사의 주제를 ‘노동’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기획기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맞아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노동 의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보통 이런 기사들은 ‘단순 정리기사’로 흐르기 쉬운데, 넓이와 깊이를 모두 잡은 이번 기획기사는 노동 의제를 다루는 경향신문의 꾸준한 관심과 기자들의 높은 안목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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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공시형 활동가(02-39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