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보도_
유권자의 개별 특성만으로 표심을 제멋대로 재단한 보도들2월 3주차, 이주의 나쁜 신문 선거보도
* 선정 위원 총평, “이 주의 나쁜 보도는 없다. 정말 나쁜 글만 있을 뿐”
1. 중앙일보의 <이정재의 시시각각>과 <선데이칼럼>
중앙일보가 최근, 언론보도라고 하기 민망한 수준의 공상을 칼럼으로 연속 게재하면서 정파성을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이건 그냥 상상이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 한 달 후 미국이 한국에게 알리지 않고 북한을 폭격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써 빈축을 샀던 이정재 논설위원은 총선을 맞아 후속편을 냈습니다. 지난 2월 21일 <이정재의 시시각각>에서 4·15총선에서 민주당이 이긴다면 “한국을 위대하게 했던 모든 인프라가 파괴될 것”, “경제 둔화, 일자리 감소, 실업 증가, 기업의 해외 탈출, 빈곤층의 소득 감소도 가속할 것”, “자유를 빼고 민주만 남긴 전체주의 헌법은 ‘토지 공개념’ ‘주택거래 허가제’를 가능하게 할 것”, “한 걸음만 더 나가면 ‘대출 허가제’ ‘이사 허가제’ ‘여행 허가제’”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 상상한 겁니다.
칼럼을 마무리하며 “지난 3년간 내 칼럼에 좌표를 찍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e메일·SNS를 융단 폭격한 문빠들의 세상, 생각이 다른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그 세상이 영원할 것이다”라고 한 대목에서는 이정재 논설위원이 왜 이런 칼럼을 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 칼럼의 제목은 <민주당만 빼고>인데, 민주당의 경향신문 칼럼 고발 논란까지 이용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가 권력의 횡포로부터 언론을 지켜줄 수는 있어도, 시민들의 자유로운 비판까지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중앙일보 이정재 논설위원이 깨우쳤으면 합니다.
△ 중앙일보 토요판에 <박근혜 옥중서신>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이훈범 대기자 칼럼(2/22)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중앙일보는 바로 다음날인 2월 22일에는 <선데이 칼럼/박근혜 옥중서신>(2/22, 이훈범 대기자)라는 칼럼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편지’를 대신 쓰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국정농단은 다 거짓이고 보수 통합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친박 계열 의원들이 희생하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는 진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이 아닌 ‘낚시성 기사’입니다. 온라인판 기사에서는 <(대신 쓰는)박근혜 옥중서신>이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어 혼동의 여지를 피하고 있지만, 지면에서는 ‘대신 썼다’는 사실을 독자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표심을 가짜 편지로 흔들어 보려는 시도일까요? 허위조작정보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한 이런 칼럼은 대단히 부적절합니다.
선정 위원 한마디 * 주장과 사실을 교묘히 뒤섞고, 우려와 선동을 섞어 쓴 나쁜 글입니다. |
2. 도 넘은 ‘여당 지지자’ 비난, ‘바퀴벌레’까지 꺼내든 조선일보
최근 ‘임미리 칼럼 고발 사건’, ‘소상공인의 경기 거지같다는 비판 논란’, ‘금태섭 지역구 경선 추가 공모 사건’ 등 더불어민주당에 악재가 된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언론들은 이런 ‘정치 팬덤’ 현상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당에 불리한 이슈를 빌미로 지면에 욕설이나 다름없는 감정적 기사를 낸 언론도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괴물이 된 ‘문빠’>(2/21, 최보식 선임기자)가 대표적입니다. 지난 19일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경기가 거지같아서 너무 장사가 안 된다’고 했다가 ‘무례하다’는 이유로 신상이 털리고 악플을 받은 상인에 대해 “그 분이 공격받는 게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최보식 기자는 이에 대해 “반찬 가게 주인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 것인지 문빠의 행태를 변명해주는 것인지 헷갈린다”고 했고요. “반찬 가게 주인에게까지 집단 린치를 가하는 것은 ‘오해가 아니라 미친 행태’라고 지적”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청와대 대변인 입에서 ‘미친 행태’라는 말이 나왔다면 조선일보가 또 가만히 있었을까요? 최보식 기자는 점점 언어 사용이 격해지는데요. 칼럼 말미에 “나는 개인적으로 문빠를 어둠 속 바퀴벌레로 본다”고까지 썼습니다.
△ 극단적 대통령 지지층을 상대로 ‘미친 행태’, ‘바퀴벌레 같다’고 비난한 조선일보 칼럼(2/21)
물론 이렇게 격한 비판을 하는 최보식 기자도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는 세력에는 따듯한 시선을 보냅니다. <최보식 칼럼/김문수와 전광훈은 발을 잘못 내디디고 있다>(1/31, 최보식 선임기자)에서 최보식 기자는 소위 ‘태극기 세력’에 대해 “이들의 신념은 존중받아야 한다”면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전광훈 목사에게 “작년 가을 광화문에 끝없이 모여들던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헤아려봐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만 바라보지 말고 ‘보수 통합’에 동참하라는 완곡한 권유인데요. 이렇게 두 사람을 비판하면서 ‘미친 행태’, ‘바퀴벌레 같다’는 식의 비방은 하지 않았습니다.
선정 위원 한마디 * 기자가 쓰는 칼럼 역시 공적인 글이자 하나의 기사입니다. 감정과 표현 모두 절제해야 합니다. 감정을 넘어 혐오감까지 서슴없이 드러낸 표현이라니 기가 막힙니다. |
3. 정당 대표 연설에서 ‘재앙’ 몇 번 나왔나 세는 언론들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2월 19일 국회에서“4월 총선은 문재인 정권 3대 재앙을 심판하는 핑크혁명이 될 것”이라는 요지의 대표연설을 했습니다. 꼭 바람직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누군가의 주요한 연설을 보도할 때 주요한 키워드를 뽑아 몇 번 언급했는지 세어보는 것은 기자들의 흔한 보도 행태입니다. 문제는 어떤 발언에 주목했는지, 그 발언으로 하여금 어떤 비판점이나 쟁점을 제시했는지 여부인데요. 심 대표가 북한을 27번 언급하고, 코로나19를 ‘우한폐렴’이라고 6번 불렀다는 점에 착안해 해묵은 반북 대결의식을 부추기고, 중국혐오를 조장했다고 비판한 민플러스 보도는 바람직한 사례입니다.
△ 심재철 대표 연설에서 ‘재앙’이 몇 번 나왔는지를 제목으로 뽑은 조선일보(2/20)
그러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재앙’이 몇 번 들어갔는지가 중요했나 봅니다. 딱 그 횟수만 세어보고 심 대표 발언을 받아쓰기만 했습니다. 제1야당 원내대표의 대표연설에 대한 그 어떤 문제의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는 아예 제목부터 <“문정권 3년은 재앙”…재앙 18차례 언급>(2/20, 김형원 기자)으로 뽑았습니다. 중앙일보도 <심재철 “문 대통령 코로나 낙관론 펴다 환자 쏟아져”>(2/20, 현일훈·김홍범 기자)에서 ‘재앙’이 몇 번 나왔는지 세었습니다. 그 와중에 조선일보는 18회, 중앙일보는 16회로 횟수가 다릅니다. “문재인 정권 3년은 그야말로 재앙의 시대였다”고 비판한 심 대표의 연설은 대통령을 ‘문재앙’이라 멸칭하는 사람들의 표심을 집결시키기 위한 전략입니다. 조선과 중앙은 이런 심 대표의 전략을 지적하기는커녕 그의 의중을 가장 충실히 살려 전한 것이죠.
선정 위원 한마디 * 평할 가치가 없는, 도대체 이게 왜 기사가 되는지 물어보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
4. 유권자의 개별 특성만으로 표심을 제멋대로 재단한 보도들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종로 출마가 확정되면서 언론들의 선거 판세 분석 보도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판세 분석’을 빌미로 지역주의를 부추기거나 유권자의 성향을 제멋대로 재단하면서 민심을 왜곡한 보도가 많다는 겁니다.
중앙일보는 <반으로 나뉜 종로구…이낙연 서쪽, 황교안은 동쪽 훑는다>(2/17, 박해리·정진우·하준호 기자)에서 종로구의 일부 지역을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으로 묘사하면서 “종로는 서울에서도 묘한 곳이다. 빈부 격차가 심하고 성향도 크게 엇갈린다”, “호남 출신 인구가 많은 데다 서민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이라서”라는 이유를 댔습니다.
한국일보 <고민정 vs 오세훈, 광진을이 뜨거워진다>(2/20, 김현빈 기자)역시 서울 광진을 지역구 판세를 분석하면서 “광진을은 유권자의 약 30%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광진을 표밭 자체는 고 전 대변인에게 유리하다”고 보도했습니다.
‘빈부격차’, ‘서민’이 특정 정당에 유리한 시민들의 특성이라니, 대체 그 근거는 무엇인가요? 특정 지역에 호남 출신 인구가 많다는 것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산정한 것인지,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특정 정당에 유리한 특징이라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유권자의 특성이 특정 정당의 선택으로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면 구체적인 근거로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더불어 그런 현상이 있다고 해도 유권자는 정당과 후보의 비전, 정책으로 투표하는 것임을 언론이 명확하게 주지시켜줘야 합니다. 앞선 보도 사례들은 ‘출신 지역’ 등 유권자마다 가진 다양한 배경을 표심에 악용해왔던 정치 관행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중앙일보와 한국일보의 기사는 한겨레의 판세 분석 기사 <빅뱅 종로, 초접전 4곳 ‘골목민심’에 답이 있다>(2/17, 황금비 기자)와 이어지는 기사 <“이 불경기에 여당 찍겠나” “황, 등 떠밀려 출마 우유부단”>(2/17, 황금비 기자)와 대조적입니다. 한겨레의 종로 판세 분석은 결과적으로는 중앙일보의 분석 내용과 차이는 없었지만, 영·호남 지역주의를 연상시키는 표현이 없었습니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와 협력해 역대 선거 결과와 해당 지역 인구 데이터를 결합하여 조금 더 과학적이고 자세한 여론 동향을 보도하려 노력했습니다. 다만, 제목에서 ‘초접전’과 같이 전쟁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쓴 것은 아쉽네요.
선정 위원 한마디 * 2020 총선보도준칙 ‘8. 경마식 보도, 지역주의·정치혐오 조장 보도를 하지 않는다’를 지킵시다. 유권자와 정책 중심의 차별화된 기사를 기대합니다. |
2월 3주차, 좋은 선거 보도
안타깝게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 2020총선미디어감시연대가 시민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올바른 선거 보도 문화를 위한 길에 함께 하세요. 링크를 통해 기부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it.ly/2SZHdYn
* 부적절한 선거 보도나 방송을 제보해주세요. 2020총선미디어연대가 확인하여 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링크를 통해 제보를 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it.ly/2HY31NC |
* 썸네일 : 중앙일보 <반으로 나뉜 종로구…이낙연 서쪽, 황교안은 동쪽 훑는다>(2/17) 캡쳐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2/17~2/22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지면보도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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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공시형 활동가(02-392-0181) 정리 유하빈·주영은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