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호] [영화이야기] ‘아세아’최고 영화 《천녀유혼》과 왕조현
등록 2020.02.0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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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청계광장을 출발해 청계천을 따라 걸었다.

발길은 청계3가 관수교를 지나 배오개다리로 향했다. 관수교를 넘은 적이 드물다. 근처에 서울에서 호박전을 가장 잘하는 가맥집 <서울식품>과 천 원짜리 노가리 안주를 파는 <뮌헨호프>가 있다. N극에 끌린 S극처럼 둘 중 한 집으로 새곤 했다.

배오개다리 100m 전에 <아세아 전자상가>를 만났다. 2002년까지 <아세아 극장>이 있던 자리다. 서울 대표 개봉관 <대한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 <허리우드>, <국도극장>, <명보극장> 등엔 밀렸지만 1,115석을 갖춘 명실상부 개봉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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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5일 토요일 <아세아 극장>에서 훗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천녀유혼 A Chinese Ghost Story, 倩女幽魂》이다. 홍콩느와르를 창시한 서극 제작, 정소동 연출, 왕조현, 장국영이 주연한 로맨틱액션 고전 판타지 영화다. 1959년 이한상 감독이 연출한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1766년 중국 청나라 소설가 포송령이 쓴 괴담집 요제지이(聊齋誌異) 에피소드 중‘섭소천(聶少倩)’이 영화 모티브였다,

 

 

《천녀유혼》제작자이자 일부 장면을 직접 연출한 서극(徐克) 감독은 당시 영화 월간지 「로드쇼」인터뷰에서 관객이 영화를‘판타지 호러’장르로 받아들이는 걸 경계했다.

“우리는 로맨티시즘 영화를 원했습니다. 로맨틱하면서도 화려한 귀신의 이야기, 거기엔 삶과 죽음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결코 공상과학 영화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많은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만일 이 영화에서 괴기스러운 면에 지나치게 중점을 두고 있는 관객이 있다면 그는 ‘천녀유혼’의 진짜 주제 곁을 그저 스쳐 지나간 셈입니다.”

 

 

극 중 귀신‘섭소천’을 연기한 왕조현은 당대 최고 스타에 올랐다. 아시아, 아니 ‘아세아가 낳은 스타’였다. 순진한 세금 수금원 '영채신' 역 장국영은 귀신‘섭소천’을 향해 무한 순정을 쏟았다. 엽천문이 부른 주제가 "黎明不來(여명불요래), 새벽이여 오지 말아요"는 귀신과 인간이 애틋하게 사랑하는 심정을 잘 그렸다. 한국에서는 영채신, 장국영이 직접 부른 "路隨人茫茫(노수인망망), 인생길처럼 아득하여라"가 인기 많았다.

 

 

《천녀유혼》인기는 1987년 12월이 아니라 1988년 여름, 가을에 절정을 맞이했다. <아세아 극장>에서 간판을 내린 영화는 서울 곳곳 재개봉관에 걸렸다. 웬만한 동네 재개봉 소극장에 왕조현을 보러 온 고등학생들이 넘쳤다. 요즘 말로 입소문이 영화를 살렸다.

 

 

고등학교 2학년 다니던 10월 서울 불광동 <스타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1988년 10월 3일부터 7일까지 5일 동안 《천녀유혼》은 정소동 감독, 주윤발 주연 《기연출사》와 동시 상영했는데, 그날 《기연출사》를 건너뛰고《천녀유혼》을 두 번 봤다. 불광역 바로 앞 건물 2층에 있던 극장 좌석은 150석, 나처럼 죽 때리고 있던 아이들이 많았다. 극장 밖으로 나가면 다시 입장료를 내야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비좁은 로비에서 초조하게 왕조현을 기다렸다.

‘개봉관에서 1주일 걸었다 망한 후, 재개봉관을 돌고 돌며 어떤 데서는 12주 장기 상영을 했는데, 입소문이 영화를 확실하게 살렸다!’정도로 영화 흥행은 알려졌다.

정확하지 않은 사실이다. 《천녀유혼》최초 개봉관은 <아세아 극장>인데(*부산 대영극장, 서울 영등포 다모아극장 동시 개봉), 1987년 12월 5일 개봉해 마지막 날 30일까지 상영했다. 관객 수 31,639명.

그해 <아세아 극장>은 영화 17편을 상영해 관객 445,315명을 모았다. 마틴 쉰 주연 《7일간의 사랑》이 174,146명으로 1위, 안소니 마이클 주연 《런 어웨이》가 55,711명 2위, 홍콩 액션 스타 원표가 축구선수로 등장한 《파우》가 49,355명 3위,《천녀유혼》이 뒤를 따랐다.

이 정도면 <아세아 극장>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한 셈이다.

※ 1987년 국내에서 개봉한 외화 흥행 전체 1위는 국도극장, 호암아트홀에서 개봉한 《플래툰》이다. 관객 수 576,924명. 영화 한 편 관객이 <아세아 극장> 일 년 전체 관객 수를 넘었다. 2위 《미션, 서울극장/호암아트홀 525, 630명》, 5위 《빽 투 더 퓨처, 대한극장 343,292명》, 9위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 《코브라, 피카디리 257,28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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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유혼》인기는 1988년 지나 1989년으로 이어졌다. 그해 6월 왕조현이 해태제과 '크리미' CF를 찍기 위해 한국에 왔다. 헬리콥터에 탄 록가수 왕조현이 팬들이 환호하는 공연 무대장에 내린다. 무대에 올라 신나게 노래하는 왕조현,

"크리미 좋아좋아 크리미 크리미 크리미 띵요하와"

크리미를 들고 외친다. "반했어요 크리미"

 

 

왕조현은 1990년 7월《천녀유혼2_인간도》개봉에 맞춰 다시 한국에 왔다.

공식적으론 1993년 5월《수호전지 영웅본색》홍보차 한국에 온 게 마지막이었다. 1994년 왕조현은 은퇴를 선언했다.

 

 

1988년부터 93년까지 영화 48편에 출연했다.

《천녀유혼》시리즈는 1990년 2편 《인간도》, 1991년 3편 《도도도》까지 그가 주연했다.

《화중선》,《대장부일기》,《도신》,《시티헌터》,《동성서취》,《청사》등이 흥했지만, 《천녀유혼》을 넘을 순 없었다. '섭소천'같은 독보적 캐릭터는 전무후무했다.

1997년 일본 SF영화 《북경원인》에 출연하며 복귀를 알렸던 그는 2001년, 2004년 은퇴와 재기를 반복하다 2005년 다시 은퇴를 선언하고 캐나다로 떠났다. 현재까지 2004년 출연한 《미려상해-상하이 스토리》가 최신작이다. 한국에선 개봉하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왕조현'을 치면, 최근 캐나다 토론토 파파라치 사진이 전성기 수많은 이미지와 쏟아진다. 당장 인스타그램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팔로우할까.' 아니다. 난 그냥 1988년 가을 열일곱 아직 소년이었던 내 마음을 사로잡은 ‘섭소천’으로 그를 간직하고 싶다. 섭소천과 영채신, 삶과 죽음을 넘나든 사랑 이야기는 30년이 지나도록 잊을 수 없다.

 

김현식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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