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부르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마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아도
내 가장 가까운 곳
나와 함께 숨 쉬는
공기여
•정희성 <너를 부르마>
우리가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를 뭐라고 부르는가? 이런 질문이 가능한 것은 ‘부르다’가 가진 중의성 때문이다. 시인 정희성이 나와 함께 숨 쉬는 공기라 부르는 ‘너’의 정체는 시의 마지막 구절 ‘자유여’에서 구체화된다. 그런데 2018년 간행한 <노래의 언어>를 집필하면서 ‘너를 부르마’란 구절이 묘하게 변형되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와 함께 숨 쉬는’ 그것인 공기를 아닌 노래로 치환해도 자연스럽다. ‘부르다’의 목적어 또한 이름이 아닌 노래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다. 우리말에서는 하나의 동사로 쓰지만 영어에서는 각각 ‘call’과 ‘sing’이 되니 비슷하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가?’ 혹은 ‘노래 속에서 노래는 어떻게 불리는가?’란 질문이 중의적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래’가 가리키는 대상이 너무 넓으니 노래를 한정시킬 필요가 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만 켜면 들려오는 것, 기쁠 땐 한 곡, 슬플 땐 두 곡도 부르는 그것, 우리의 삶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함께 숨 쉬는 그런 공기 같은 노래에도 이름이 있어야 한다.‘ 흔히 ‘가요(歌謠)’라고도 하는데 한자의 뜻을 따르자면‘부르는 노래’정도의 의미다. ‘대중(大衆)’을 앞에 붙인 ‘대중가요’란 말도 흔히 쓰인다. 그런데 이 말은 공부깨나 한 사람들이 폄하와 무시를 담아 쓰는 말이기도 한다. 적어도 이것이 지시하는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나 즐기는 이들이 스스로 ‘대중가요’라고 일컫지는 않는다.
연극장 근방과 기생촌 이외 료리점, 주점, 노리터가 갓가이 잇는 동리에서는 류행가
그중에서도 잡가가 아이들의 입에 옴겨저 때 업시 부르고들 잇습니다.
•‘순진한 심정을 기르기 위하야 아이에게 조흔 음악을’,〈 동아일보〉, 1931. 10. 20.
1930년대의 이 신문기사는 혀를 끌끌 차며 비판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부르는 노래의 이름을 ‘유행가’라 명확하게 알려준다. 사전에서는 유행가를 특정한 시기에 대중의 인기를 얻어서 많은 사람들이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하는 노래라고 정의한다. 우리 노래의 역사로 치자면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아 1920년대 이후에 만들어져 함께 즐기고 불러온 노래를 가리킨다. 음악적으로 더 깊이 따지자면 수없이 많은 갈래의 노래가 유행가라는 말로 뭉뚱그려진다. 기원도 제각각, 내용과 형식도 제각각이지만 이른 시기의 신민요부터 오늘날 힙합 곡까지 어쨌든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결국은 유행가인 것이다.
사랑한단 말을 마오 유행가 가산 줄 아오
갈래면 가지 왜 돌아봅니까
•윤항기 작사, 윤복희 노래,〈 왜 돌아보오〉, 1984
1984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사랑타령이 노래의 본질인 것을, 그리고 그 사랑타령이 바로‘유행가’임을 명확히 한다. 유행가는 1930년대부터 흔히 쓰인 말이지만 그것을 노랫말 속에 그대로 담아낸 것은 처음이다. 겉으로 보면 싸구려 노래에 값싼 사랑을 싸잡아 폄하하는 듯하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큰 인기를 누린 ‘유행가 가수’ 스스로 이름을 인정한유행가를 부르고 있다. 노래를 부르며 노래를 유행가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유행가 노래 가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
그 시절 그 노래 가슴에 와 닿는 당신의 노래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
유행가 유행가 서글픈 노래 가슴 치며 불러본다
•송애린 작사, 송대관 노래,〈 유행가〉, 2003
송대관이 2003년에 발표한 노래 속에서도 우리가 늘 부르는 노래가 곧 ‘유행가’인데 그 정체마저도 더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가사가 담아내는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이다. ‘세속적’이라 폄훼되지만 그래서 모두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 일이고 느낌이다 보니 모두의 가슴에 와 닿는다. 신날 때도 부르고 서글플 때도 부른다. 우리의 삶을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 표현하니 노래 또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다 담아낸다. 유행가가 음반이나 음원이 아닌 우리의 삶속에서 불려지며 흐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행가는 흔히 흘러간 노래로 인식된다. ‘유행流行’이란 말 자체가‘흐르다[流]’와‘가다[行]’란 말이 결합된 것인데 이를 ‘흘러가는’으로 보는 것과 ‘흘러간’으로 보는 것은 인식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유행가’란 말 자체가 구닥다리의 말이요, 그것이 지시하는 노래 또한 과거의 노래이니 많은 사람들이 유행가를‘흘러간 노래’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시간의 연속성을 고려해 보면 지금 유행하는, 아니 인기를 얻고 있는 곡도 곧 흘러가 버린다. ‘지금’의 시기를 확대해서 잡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흘러가 버린다. 결국 모든 노래는 흘러간 노래가 된다.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그대 내 곁에 있어요 떠나가지 말아요 나는 아직 그대 사랑해요
•이영훈 작사, 이문세 노래,〈 난 아직 모르잖아요〉, 1985
세월이 흘러가면서 노래도 흘러간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노래가 바뀌어도 우리가 삶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마음속에 흐르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는 흘러간 노래에서 슬픔을, 누군가는 지금 흐르고 있는 노래에서 기쁨을 찾는다. 흘러간 노래를 찾는 이들은 한창 젊었을 때의 노래를 부르며 그 시절로 돌아간다. 흐르는 노래를 즐기는 이들은 먼 훗날 다시 부를 그 노래를 가슴속에 담아둔다. 세월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이문세의 노래 속 ‘그대’는 유행가로 치환되어 우리 곁에 늘 남아서 사랑을 받을 것이다.
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