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EBS <보니하니>로 불거진 아동‧청소년 출연자 인권 실태, 대책 시급해
등록 2019.12.1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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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방송 EBS TV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이하 <보니하니>)에서 불거진 폭행과 폭언, 성희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 사안을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되며, 며칠 동안의 소란으로만 그치게 해서도 안 된다. 방송사에서 어린이·청소년 출연자를 어떤 존재로 대하고 있는지 조사해야하고, EBS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명명백백하게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린이·청소년 출연자의 인권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번 사건은 어른들이 진심으로 부끄러워해야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EBS 유튜브에 나왔다는 문제의 방송들

문제의 발단은 지난 10일 <보니하니> 유튜브 라이브 영상이었다. 방송에서 ‘당당맨’으로 역을 맡은 35세 남성 개그맨 최영수 씨가 진행자 ‘하니’ 역을 맡은 15세 여성 김채연 씨를 폭행하는 듯한 모습이 방송된 것이었다. 김채연 씨는 아이돌 그룹 버스터즈의 멤버로 채연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채연 씨가 카메라 밖으로 나가려는 최영수 씨를 붙잡자, 최영수 씨가 채연의 팔을 휙 뿌리치면서 화가 나서 때리는 것 같은 동작을 취했다. 이후 실제로 때리는 장면은 영상에 잡히지 않았다.

 

또 다른 논란은 언어폭력이다. 다른 날 방송한 유튜브 라이브 영상에서는 ‘먹니’ 역의 38세 남성 개그맨 박동근 씨가 김채연 씨를 향해 비아냥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리스테린 소, 독한 X”이라고 말했다. 김채연 씨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독한 뭐라고요?”라고 묻자 “독한 X”이라고 두번이나 거듭 확인해줬다. 심지어 김채연 씨가 “X?”이라고 묻자 그의 말투를 따라하며 “녀언~ 녀안”이라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과거 박동근 씨가 김채연 씨에게 먹을 것을 주는 척 하다가 자신의 손가락을 입에 넣는 행동, 김채연 씨의 목을 거세게 잡는 장면, 김채연 씨 이전의 다른 ‘하니’ 역의 10대 여성 출연자의 얼굴에 물을 세게 퍼붓는 장면이 담긴 영상에 대해서도 분노를 표하고 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 못하는 제작진의 낮은 인권의식

<보니하니> 성인 출연자의 청소년 출연자에 대한 행동과 발언, 태도 등은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성인 남성이 청소년 여성을 상대로 폭력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고, 비교육적인 수준을 넘어서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과 행위, 그리고 욕설을 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제작진은 문제의식조차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터진 바로 다음날인 11일, EBS 측이 즉각 내놓은 SNS 게시글은 제작진의 낮은 인권 감수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당시 제작진은 “폭력은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매일 생방송을 진행하며 출연자들끼리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심한 장난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최영수 씨도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폭력은 없었다면서 “어깨를 잡고 밀었다. 맹세코 때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과 입장은 모두 실제적으로 때리지 않았다면 폭력도 아니고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안일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 <보니하니> 제작진은 SNS 게시글에서 “(장난치는) 과정에서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 이는 분명한 잘못이다”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친한 사이에 이뤄진 장난이었다. 놀이였다’는 식의 변명은 폭력이 발생하는 현장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또한 실제 상대방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았어도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행동을 했다면, 또한 욕설이나 모욕적 비방을 가했다면 그것은 분명 폭력이다. EBS 제작진은 방송은 물론 일상적인 제작 현장에서 이런 행동이 나타났을 때, 빠르게 개입하고 분명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이런 내용을 버젓이 방송에 내놓고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시청자의 항의를 받은 후에도 ‘심한 장난이었다’는 식의 입장 표명만으로 무마할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내더라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안이한 생각을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리어 더 큰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수준이다.

 

늦었지만 진정성 있는 경영진의 사과와 대응, 그러나 끝까지 지켜봐야

그럼에도 논란이 계속되자 제작진은 12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로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깊은 상처를 드린 점 거듭 사과드린다”며 “청소년 출연자가 감당해야 할 부담을 덜어주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오는 29일까지 프로그램을 잠정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한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EBS 김명중 사장은 EBS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과문에서는 “유튜브 인터넷 방송에서 폭력적인 장면과 언어 성희롱 장면이 가감 없이 방송되어 주요 시청자인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심한 불쾌감과 상처를 드렸습니다”, “EBS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데 충격과 함께 큰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했다.

 

더불어 EBS는 문제의 출연자 2명을 즉각 출연 정지시키고, 유튜브에서 관련 콘텐츠를 삭제 조치하고, 프로그램 제작진을 전면 교체했다. 기존 프로그램 제작 책임자 2인을 보직 해임하고 프로그램 관계자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도 했다. EBS는 △모든 프로그램의 출연자 선정 과정 전면 재검토 △프로그램 관련자 책임 묻는 후속 조치 △제작 시스템 정비 △29일까지 방송 잠정 중단 등을 내걸며 어린이 청소년 출연자 보호를 위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EBS는 제작 가이드라인의 어린이·청소년 출연자 인권보호와 관련된 부분을 대폭 보강하고 구체적인 보호 규정을 만들어 제작에 활용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뒤늦었지만, 이 정도의 입장을 내놓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며, EBS의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끝까지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아동 청소년 출연자에 대한 반인권적 대우, 비단 EBS만의 문제일까?

그러나 이는 비단 EBS만의 문제는 아니다. EBS뿐만 아니라 여러 방송사 여러 프로그램에서 아동과 청소년 출연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마땅한 규정은 없다. 지난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김성수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아동 보호를 위한 방송사별 제작 가이드라인’을 분석한 결과 KBS, MBC, EBS 등 공영방송 3사는 아동 출연자의 노동시간 및 휴게시간 등에 관한 규정은 별도로 갖추고 있지 않았다. 방송심의 규정에서도 아동 출연자와 관련해 ‘품성과 정서를 해치는 배역에 출연시켜서는 아니 된다’, ‘흡연‧음주하는 장면을 묘사하여서는 아니 된다’, ‘지나치게 선정적인 장면을 연출하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정도의 내용만 있을 뿐 구체적인 노동권 보장 방안이나 인권 보장 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

 

한편 해외에서는 아동‧청소년들의 방송 출연과 관련된 논의가 이미 진행돼 가이드라인 등이 제정돼 있다. 미디어스 기사에 따르면 영국의 방송통신 규제기구인 오프콤은 △18세 미만인 자가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경우, 그들의 신체적‧정서적 안녕과 존엄성에 대한 적절한 보호를 취해야 한다 △18세 미만인 자가 프로그램의 출연이나 그 프로그램의 방송으로 인해 불필요한 정신적 고통이나 불안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호주 공영방송사 ABC도 아동 출연자의 존엄성과 신체적 복지를 명문화해뒀고, 미국 또한 2015년 <어린이 연기자 보호법>을 입안했다. 2008년 UN은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어린이들을 과도하게 착취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방송사나 제작사가 이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아동‧청소년의 방송 출연 자체는 물론 그들을 신체적‧정신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대응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방송 정책이나 규제의 사각지대인 것이 현실이다. 교육 전문 공영방송인 EBS에서 반교육적이고 반인권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큰 충격이지만, 이후 제대로 된 조치를 마련해놓지 않는다면 이는 이후에 일어날 수 있는 방송 제작 환경에서의 아동‧청소년들의 노동권‧인권 침해 문제를 방관하는 것이다. EBS는 물론 방송계 모두가 방송에 출연하는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고민하고 합의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다. <끝>

 

2019년 12월 1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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