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남성혐오 다룬 언론들, 익명 커뮤니티와 차이점 있나?대학 내에서 일어난 사고가 커뮤니티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여학생이 남학생과 싸우다 흉기를 휘두른 것입니다. 해당 대학 총학생회는 입장문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혔고, 이 소식은 언론을 통해 기사화됐습니다. 그런데 기사 내용은 과연 취재를 거쳐서 나온 기사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허술했습니다. 대학 익명 커뮤니티 글을 그대로 베껴 쓰는 수준의 기사를 쓰는가 하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로 단정 짓기도 했습니다.
대학 익명커뮤니티 베끼는 수준의 기사들
처음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대학교 내 익명 커뮤니티의 글입니다. 커뮤니티에는 ‘칼부림 팩트 정리’라는 제목으로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담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자세하게 쓰였다고 하지만, 이 글은 익명의 사용자가 쓴 글이었습니다. 언론이 이 글을 기사화하고자 했다면 사실관계를 먼저 파악하고 기사를 썼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사는 커뮤니티 글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쓰는 수준이었습니다.
매일신문은 <‘선문대학교 칼부림 사건’ 남성 혐오 논란도 가중>(10/15 16:59, 황재현 기자)에서 “한편 사건 속 여성이 남성혐오증이라는 추측이 불거지면서, 사건의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경찰에 신고된 후, 자세한 내막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는 실정이다”라고 썼습니다. 자세한 내막에 대해 정확히 알려야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언론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는 정보를 그대로 기사에 옮기는 일은 언론이 커뮤니티와 다르지 않음을 나타내는 꼴입니다. 기자가 새롭게 취재한 팩트는 없었습니다.
매일신문 뿐 아니라 이 소식을 받아쓴 대부분의 언론은 같은 말을 반복하기만 했습니다. 서울와이어는 취재를 하지 않았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충남 모 대학 여 칼부림vs남 얼굴 가격 논란..진짜일까>(10/15 17:23, 장지영 기자)라는 제목을 사용했습니다. 이 기사에서도 익명 글 이상의 새롭게 확인된 팩트는 없었습니다.
10월 15일 해당 사건이 일어난 후 네이버 뉴스로 송고된 기사는 총 35건이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익명 커뮤니티의 글과 동어 반복이었고, 몇몇 언론은 해당 학교 총학생회의 입장문을 적어주는 정도로 기사를 마무리했습니다. 화제성 있는 커뮤니티 글이 기사화되고 있지만, 이들 기사는 대부분 커뮤니티 글을 베끼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남성혐오 사건인데 왜 이슈화되지 않냐는 지적에 대해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개인적이며 개별적인 것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태도입니다. 특정 사건이 어떤 사회 문화적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2014년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전 재산인 현금 70만 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내놓은 채 숨진 ‘세 모녀 사건’은 단순히 사망 소식으로 치부될 만한 사건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 언론은 한국의 사회적 안전망의 부실함과 함께 복지제도의 허점을 짚어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도 이런 식의 의미를 부여하고 성찰해야 할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명백한 ‘남성 혐오 사건’인데, 2016년 강남역 살인사고보다 이슈화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에는 ‘여성혐오 사건’의 하나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우리 사회의 여성 혐오에 대한 지적이 나왔는데, 왜 이번에는 그렇지 않냐는 것이죠. 이러나 이번 사건과 강남역 살인사건을 대등하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일단 강남역 살인사건 직후 체포된 범인은 경찰 진술에서 “여자들이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으며, 피해자와는 모르는 사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경찰은 범인이 조현병에 의한 범죄라고 밝혔으나,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인식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신병력 거론, 가해자에게 면죄부 주는 것”>(2016/5/19)에서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는 "그냥 ‘아무 사람’이 아니라 ‘여성 중 아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건이기 때문에 여성혐오 사건으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비해서 현재 이 사건은 강남역 살인사건과 같이 제대로 된 수사결과를 토대로 한 사실관계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28일 현재까지도 관련된 내용에 대한 후속보도 자체도 없습니다. 따라서 ‘남성혐오 사건’ 운운하며 논쟁을 펼칠만한 정보 자체가 매우 부족합니다.
‘남성 혐오증을 앓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에서는 ‘남성혐오증을 앓고 있는 여학생의 묻지마 칼부림 사건’으로 처리되어 남혐 사건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남성 혐오증 여학생’ 남학생에게 흉기 휘둘러>(10/15 17:35, 이준호 기자)에 제목에서부터 ‘남성 혐오증 여학생’이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했으며, 기사에서도 “가해 여학생은 평소에도 갑자기 주변 남성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소위 남성 혐오증에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아주경제 <선문대 여대생 칼부림..‘묻지마 폭행’ 불안감 확산>(10/15 16:52, 조득균 기자)에서는 “지난 2일 발생한 선문대 여대생 칼부림 사건에 이목이 집중된다. 해당 여성은 남성 혐오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연합뉴스 <강의실서 여대생이 남학생에게 흉기 상처…대학 “남성혐오 추정”>(10/15, 18:04 이은중 기자)에서는 “경찰은 조만간 가해자와 피해자를 불러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라고 전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연합뉴스는 최소한 경찰에 확인을 했는데, 조사계획만 가지고 있을 뿐임을 확인한 것이 전부였던 것이죠. 그러나 연합뉴스는 ‘남성혐오증을 앓는’다고 표현한 한국일보나 아주경제에 비하면 조심스러운 표현을 한 것이지만, 남성혐오를 언급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연합뉴스는 “이 여학생은 평소에도 주변 남성들을 공격하는 등 남성 혐오 성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고, 제목에서도 <대학 “남성혐오 추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과연 남성혐오증이라는 것이 정말 ‘병을 앓다’라고 말할 수 있는 증상일까요? 정신질환을 다룬 WHO 질병 목록(ICD-10 ChapterV)에서는 ‘기타 특정 상황에 대한 공포증’의 일환으로 남성공포증(Androphobia)을 다루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인해서 남성에 대한 극단적 공포와 기피를 느끼는 병리학적 증상이 아닌, ‘여성 혐오’에 대한 대칭적인 말로 사용하는 말로 ‘남성혐오증을 앓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현재로서 가해 학생을 ‘남성혐오증을 앓는’ 사람으로 단정할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이들 기사에 등장하는 근거는 없거나, 익명의 ‘대학 측’ 관계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 기사가 말하는 ‘남성 혐오증을 앓다’는 표현은 아주 섣부른 단정입니다.
정신질환자의 범죄라고 하는 것도 부적절
한강타임즈 <선문대학교서 여학생 주변 남성에 칼 휘둘러.. 가해자 정신질환 현재 입원>(10/15, 이지연 기자)에서는 가해 학생을 정신질환로 몰아가기도 했습니다. 이 보도는 제목에서도 정신질환 경력을 언급했고, 기사 내용에서도 “취재 결과 가해학생은 평소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학생이 평소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현재 입원한 상태”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가해 학생이 만일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것 또한, 아직까지는 정확하게 확인된 사실이 아닙니다. 이 또한 근거는 대학 측의 코멘트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해자가 실제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해도, 언론이 이런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이처럼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확한 진단도, 인과성에 대한 근거도 없이 단편적으로 ‘정신질환을 앓았었다’는 점만을 언급하는 보도들은 정신질환자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느끼게 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정신질환을 가진 분들이 함께 살고 있으며, 환자 본인은 물론, 보호자와 의료진들은 증상을 호전시키고 질환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은 범죄 등 사건 사고 가해자의 정신질환 여부를 함부로 언급하지 말아야 하며, 정신질환 경력이 있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 경우에도 해당 사건과 정신질환과 사이에 인과성을 상세히 제시할 수 있을 때에만 병력을 언급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또한 이와 같은 내용을 보도할 때에는 정신과 전문의의 코멘트를 받는 등 책임감 있는 보도태도가 필요합니다.
아주경제의 최초보도, 황당하게도 선문대 홍보기사로 변신
이번 모니터 과정에서 가장 황당한 모습을 보여준 언론은 아주경제입니다. 아주경제는 이 사건을 가장 먼저 보도했습니다. 제목도 ‘여대생 칼부림’으로 뽑아서 학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준 이 보도는, 이후 황당하게도 <선문대 “1만명 전 학부생 해외연수 지원”>(10/15, 조득균 기자)로 바뀐 상태입니다.
△제목은 그대로지만 내용은 달라진 채로 검색되는 아주경제 기사
해당 기사는 현재 네이버에서는 찾을 수 없으나, 구글 검색으로는 기사가 바뀐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구글 검색에 걸린 제목은 <선문대 여대생 칼부림…>인데, 링크로 들어가면 바뀐 제목과 내용이 나옵니다. 선문대 입장에서 매우 불리한 기사가, 완벽하게 유리한 기사로 둔갑한 셈입니다. 기사가 부적절했다면, 최소한 그 기사를 수정하거나 삭제를 했어야지, 기사의 링크는 그대로 남기고, 수정시간조차 남기지 않은 채, 기사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꿨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것은 선문대로부터 압박이나 로비를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무엇이든 이번 보도는 아주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썸네일 : 서울와이어 기사 본문 캡쳐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10/15~16 해당 사건을 다룬 인터넷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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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공시형 활동가(02-392-0181) 정리 주영은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