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언론은 ‘기무사 계엄 문건’의 진상을 추적하고 적극 보도하라
등록 2019.10.2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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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이 청산하지 못한 군사 독재 시절의 유산을 노출했던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 계엄령 문건’이 추가로 공개됐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를 빌미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집회를 군대로 진압하려 했던 추악한 계획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기무사가 언론 통제를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도 더 세부적인 내용이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렇게 엄중한 사안임에도 관련 보도가 부실하여 국민에게 그 심각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기무사 계엄령 추가 문건’, 더 치밀하고 조직적인 ‘언론통제’ 획책

지난 21일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현 시국 관련 대비 계획’이라는 문건은 박근혜 탄핵 직전인 2017년 2월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것으로서 지난해 7월 공개됐던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의 원본이라고 한다. 기무사의 ‘계엄 계획’의 초기 틀, 세부적인 시행안들이 담겨 있다.

 

특히 기무사의 언론통제 계획은 간담을 서늘케 한다. 군대가 자국민을 학살한 전두환 신군부보다 더 치밀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나왔던 문건의 언론통제 계획은 △언론·출판·공연·전시물에 대한 사전검열 △각 언론사별 계엄사 요원 파견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집회와 단체행동, 유언비어 날조와 유포 행위 금지 포고 △필요시 KBS 1TV 및 라디오로 ‘전국 단일방송’ 체계로 전환 △보도검열 지침을 위반한 매체 처벌 등으로서 기무사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민·관·군 합동 대응반을 설치해 이러한 검열 및 통제를 맡도록 했다.

 

전반적으로 큰 차이는 없으나 추가 공개된 원본 문건에서 더 구체화된 부분들이 눈에 띈다. 기무사가 ‘보수언론’만을 자기편으로 생각해 선전 도구로 이용하려 한 부분이 노골적으로 나타났고 방통위 언급이 두드러져 방통위를 언론통제의 핵심 기구로 운용한다는 의도가 뚜렷이 드러났다.

 

‘보수언론’은 선전도구로, 나머지 언론은 ‘탄압’하려 한 기무사

기무사는 ‘계엄 준비 단계’에서 “보수언론에서 계엄 선포 필요성 제언”을 강조했고 ‘계엄 시행 단계’에서는 “보도검열단, 인터넷 등 모든 언론매체 대상 보도지침 하달 및 검열 시행”을 계획했는데 여기서 “계엄사, 방송특별심의회를 운영하여 보도창구 단일화 및 계엄 당위성 홍보” “방통위 주관 ‘유언비어 대응반’ 구성, 포털사이트·SNS 게시글 실시간 관리” “시위·선동 등 포고령 위반자 가입 포털사이트·SNS·유튜브 등 계정 폐쇄” 등 구체적 계획도 명시했다. 전두환 신군부가 시행한 대표적 ‘보도 통제 수단’인 ‘보도지침’과 ‘보도창구 단일화’가 모두 언급됐다. ‘보수언론’에는 계엄 필요성을 전달하겠다는 계획으로 볼 때 기무사가 일부 ‘길들인 언론’을 선전기구로 이용하고 나머지 언론은 모두 탄압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속내는 문건 곳곳에 드러난다. 기무사는 촛불집회 당시 상황을 파악하는 대목에서 “일부 언론에서 공권력의 폭력대응 등 편파보도”, “외신기자들이 국내 언론의 편파보도를 그대로 인용”, “보도 매체, 탄핵 결정 내용을 보도하면서 시위대 입장을 편파적으로 보도”, “인터넷 및 SNS를 이용하여 정부경찰 관련 부정적인 편파보도 지속”과 같은 내용을 반복 명시했다. 당시 국정농단 여러 의혹을 보도하던 매체들을 터부시한 것이다. 동시에 ‘언론 통제 방안’에서는 “보수언론 대상 정부 입장 홍보 및 시위대 폭력성 부각 보도(문체부·방통위)”한다고 명시했다. 탄핵의 불가피성을 보도하던 대다수 언론을 통제, 억압하면서 반대로 박근혜 정부에 유리한 보도를 하던 일부 ‘보수언론’을 선전 도구이자 ‘유일한 보도창구’로 쓰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당시 실제로 그러한 일부 ‘보수언론’이 존재했음을 감안할 때 기무사의 계획은 매우 현실적이고 치밀했다고 볼 수 있다.

 

‘언론사 이념 파악’부터 ‘인터넷 통제’까지 모두 ‘방통위’ 기재

이렇게 언론을 이념적으로 나눠 ‘보수언론’만 이용하겠다는 기무사의 복안은 방통위 운용 계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무사는 탄핵 이후 계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언론통제 방안에서 매체들의 성향을 분석해 놨는데 그 제목을 “언론 매체·인터넷 성향 및 보도 동향 분석(기무사·방통위)”라 표기했다. 심지어 매체별 성향을 보수·중도·진보로 구분한 표 아래에는 “계엄 발령 시 방송통신위원회에 매체별 성향을 재분석토록 협조”라고도 덧붙였다. 언론과 인터넷을 이념으로 재단해 구분지어 통제하겠다는 계획에도 ‘방통위’가 기재되어 있다. 계엄을 준비할 때도, 계엄 이후에도 방통위가 꾸준히 매체들의 성향을 파악하라는 사실상 사찰 지시에 가까운 계획이다.

 

또한 문건에서 방통위는 “보도매체 통제를 위한 조직 편성·운영”, “보도매체 검열 시행, 불필요 내용 보도 및 유언비어 확산 차단”, “정부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보도창구 단일화 및 기자단 운용”, “인터넷 주요 포털사이트 및 SNS 차단, 유언비어 유포 통제” 등 언론과 인터넷 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항목들에서 모두 담당 기관으로 기재되어 있다. 여기에는 전두환 독재를 쏙 빼닮은 “보도 금지사항”, “확대 보도사항”까지 세세하게 포함되어 있다.

 

기무사의 ‘계엄 시 언론통제 방안’, 언론관련기관은 늘 경각심 가져야

이번 ‘기무사 계엄 문건’의 ‘언론통제 방안’은 꼭 기무사가 가정한 비상 사태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언론 및 언론 관련 기관이 군, 정보기관과 얼마나 냉철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 당시에는 방통위와 같은 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문건에서 드러난 기무사의 언론통제 방안은 훨씬 더 조직적이고 치밀해진 것으로 보인다. 비록 기무사의 계획이 실행되지 않았으나 계엄이 아닌 평시에도 정보기관·경찰·군은 언제나 언론을 악용할 우려가 있다. 이른바 ‘피의사실 공표’로 여론을 수사 당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끈다는 최근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은 촛불집회를 짓밟은 후 여론을 유리하게 돌린다는 기무사 계획의 문제점과 뼈대가 비슷하다. 평소에 유착을 끊지 않으면 군의 쿠데타 시 언론은 기무사 계획대로 모든 자유를 빼앗긴 채 선전도구로 전락해야 할지도 모른다. 방통위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경찰이나 군, 국정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인터넷 게시물 삭제를 요청하는 등 ‘관제 심의’ 의혹을 낳았던 사례가 공공연히 있었다. 방통위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은 사안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관련 의혹을 추적 탐사하고 보도하라

이렇듯 ‘기무사 계엄령 문건’은 군의 국민을 향한 반란 계획과 다름없었으나 지난해 시작된 군검 합동 수사는 용두사미로 끝나는 모양새다. 수사 당국은 핵심 피의자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해외 도주로 수사를 더 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 중이다. 누가 문건 생산을 지시하고 주도했는지 찾지도, 처벌하지도 못했다. 문건 생산 당시 국가 수반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황교안 대통령 대행은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이번 문건을 보면 일각의 주장처럼 단순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보기 어렵다. 섬뜩할 정도로 시행착수 날짜까지 잡아 부대 배치까지 촘촘하게 짠 구체적 실행 계획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언론 자유를 원천적으로 빼앗으려 한 치밀하고 조직적인 실행 방안까지 드러났다. 우리 사회가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투옥과 고문 그리고 탄압을 이기고 일구어온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뻔한 사안으로 보인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관련 의혹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조용하다. 6개 주요 일간지(경향‧동아‧조선‧중앙‧한겨레‧한국)는 10월 22일과 23일 이틀간 경향‧동아‧조선일보가 1건, 한겨레‧한국일보가 2건 보도했을 뿐이다. 중앙일보는 아예 보도가 없다. 8개 방송사(지상파 3사‧종편 4사‧YTN) 저녁종합뉴스 역시 10월 21~22일 이틀 간 KBS‧SBS 2건, MBC 3건, JTBC 2.5건, MBN 1건, YTN 3.5건으로 문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헤쳤다고 보기 어렵다. 채널A와 TV조선은 아예 보도가 없다. 신문, 방송뉴스를 통틀어 기무사의 ‘언론통제 방안’을 따로 다룬 보도는 그 어느 곳에서도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중한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언론자유를 탄압하려는 계획이 공개되었는데도 그저 수사 당국이 흘리는 정보만 쳐다보고 있을텐가? <끝>

 

2019년 10월 2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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