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언론 ILO협약 반영 법안 보도로 ‘경총에 기울어진 운동장’ 보여줘
등록 2019.08.08 15:38
조회 277

UN산하 국제노동기구(이하 ILO)에서는 8가지 협약을 ‘핵심협약’으로 정해 놓고 모든 회원국에 비준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법체계에서 비준된 국제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집니다.

분류

조항

주요내용

ILO회원국

비준 상황

결사의

자유

제 87호

노동자 및 사용자에게 사전 인가 없이 단체, 연합단체를 설립하고 자유롭게 운영할 권리 보장(경찰, 군대는 예외)

155(83%)

제 98호

부당노동행위 중 불이익취급과 반조합계약은 특별히 금지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지배·개입행위 금지

166(89%)

강제노동

금지

제 29호

몇몇 예외사항을 제외한 강제노동의 금지

178(95%)

제 105호

특정 목적을 위한 강제노동은 특별히 금지하고 이를 이용하지 않을 것을 약속함.

175(94%)

△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ILO핵심협약과 내용 ⓒ민주언론시민연합

결사의 자유에 관한 핵심협약(제 87·98호)을 비준하지 않고 있는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ILO에 가입한 187개국 중 80%이상의 국가들은 해당 협약을 비준하고 있습니다. 특히, OECD 국가로 범위를 좁히면 두 조항 중 하나도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한국과 미국뿐입니다. ILO는 이에 지속적으로 시정요구를 하며 한국을 비판해 왔습니다. 7월 4일에는 유럽연합이 한-EU FTA에 ILO핵심협약 체결 노력 조항이 있는 것을 근거로 무역제재의 첫 단계인 ‘전문가 패널 소집 절차’에 착수한 상황입니다.

이렇듯 ILO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고, 협약 비준이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었던 만큼 정부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에서 ILO협약과 충돌하는 국내법을 어떻게 개정해야 할지 논의해 오고 있었지만 합의에 실패했었습니다.

 

정부 개정안에 노측, 사측 모두 반발…노측 의견 한줄도 싣지 않은 중앙일보

정부의 이번 ILO협약 반영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양대 노총은 단결권의 핵심 내용을 위협하는 경총의 일부 요구안이 반영됐다는 이유로, 경총은 노동 편향이라는 이유로 각각 반발했습니다. 민언련이 5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지의 관련 보도를 살펴보니,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모두 보도했으나 노사 양측의 반발 입장에 대한 보도 비중이 달랐으며, 보도내용에서도 차이가 컸습니다.

분류

주요일간지

경제지

신문사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

보도량

4(1)

5(1)

2

2(1)

3(1)

4(1)

4

노측입장만 보도

2

-

1

-

-

-

-

사측입장만 보도

-

2

1

1

-

1

2

양측입장 보도

2

1

-

-

2

2

1

△ 정부 노동관계법 개정안 입법예고 관련 보도량과 노사 양측 반발 입장 비중(7/31) ⓒ민주언론시민연합

(* 괄호 안은 사설/칼럼 보도량. 보도량에는 사설/칼럼보도량도 포함되어 있음. 사진기사는 제외했음)

한겨레는 기사에서 전반적으로 노측 입장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양측의 반발 입장 자체는 같은 비중으로 소개했습니다. 경향신문은 4건의 기사 중 노측 반발 의견만 실은 기사를 2건 게재하고 양측 반발 입장을 나란히 소개한 기사를 두건 게재하여 노측 입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반면, 다른 언론들은 경총의 입장만 자세히 다룬 기사를 내는 등 사측 입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특히, 중앙일보는 양대 노총의 반대 입장을 한 줄도 싣지 않았습니다.

 

정부 개정안에 언론들 해석 갈려

노사 양측의 반발 입장에 대한 보도 비중이 차이가 난 것은 이번 입법예고안을 바라보는 언론들의 해석 차이 때문입니다.

경향신문은 <사설/이제야 ILO협약 비준 본격 추진 나선 정부>(7/31)에서 ILO핵심협약의 취지를 들며 “당연히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원칙을 존중하고 실현하는 방향으로 노동관계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정부 입법안은 여러모로 불충분하다. 그래도 사업장 내 민주주의와 노동인권 보장을 위해 ILO핵심협약 비준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겨레는 <사설/국제기준 끼워맞춘 노동법 개정, 국회서 보완하길>(7/31)에서 “정부가 법 개정에 나선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정부 출범 2년여가 지난 뒤에야, 그것도 유럽연합이 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한 뒤에야 움직인 것은 ‘노동 존중 사회’를 내세워온 현 정부로서는 면목 없는 일이다”면서, “국제 기준에 간신히 턱걸이할 수준의 이번 법안마저 누더기가 되지 않도록 국회에서라도 신중하고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주장했습니다. ILO협약은 기본적으로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협약이므로, 당연히 이를 반영한 법 개정은 노동인권을 향상시켜야 하며, 오히려 이제야 핵심협약을 비준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입니다.

신문사

기사제목

주요내용

경향신문

<사설/이제야 ILO협약 비준 본격 추진 나선 정부>

ILO핵심협약은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도록 회원국 노사관계의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자는게 취지다. 당연히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원칙을 존중하고 실현하는 방향으로 노동관계법이 개정돼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ILO비준 노동법 입법예고, 노사관계 더 악화시킬 작정인가>

대폭 강화된 근로자 단결권에 상응해 이를 견제할 사측의 조업권과 방어권은 거의 보완되지 않았다.(중략) 먼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기업과 노동 문화가 유럽과 다른 우리 현실에 맞춰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선일보

<해직자 조합원 둔 전교조 합법화될 듯>

개정안은 노동계의 요구를 대부분 반영한 것이라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역대 셋째로 낮게 결정되면서 불만이 커진 노동계를 달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일보

<노조가 회사와 무관한 파업해도 합법…경총 “수용 못해”>

정부 관계자는 “국회 통과가 어렵겠지만 이렇게라도 비준 작업을 추진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ILO와 유럽연합(EU)등의 비준 압박이 지속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가시적인 노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한겨레

<사설/국제기준 끼워맞춘 노동법 개정, 국회서 보완하길>

국제 기준에 간신히 턱걸이할 수준의 이번 법안마저 누더기가 되지 않도록 국회에서라도 신중하고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중략) 기존의 노동권에 제약을 가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크다.

서울경제

<사설/말많은 ILO협약 비준 끝내 밀어붙이겠다는 건가>

기업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불합리한 조항들이 가득한 노동법 개정안에 채찍질을 하니 기업들이 어찌 정부를 믿고 투자와 기술개발에 선뜻 나설 수 있겠는가. 정부는 수정이 필요한 조항에 대해서는 즉각 보완작업에 나서야 한다. 만일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한다면 국회가 나서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한국경제

<해고자가 임금협상, 노조 전임자도 급여 받아…‘노동권력’ 날개 단다>

정부가 31일 입법예고한 노동법 개정안은 노동계의 숙원을 대거 반영했다. (중략)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시작부터 ‘노동계 편향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 정부 노동관련법 개정안 입법예고에 대한 언론의 주요 입장을 담은 기사 내용(7/31) ⓒ민주언론시민연합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보수언론·경제지의 현실인식

반면, 조선일보는 <해직자 조합원 둔 전교조 합법화될 듯>(7/31, 곽창렬 기자)에서 “개정안은 노동계의 요구를 대부분 반영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역대 셋째로 낮게 결정되면서 불만이 커진 노동계를 달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제지를 포함한 모든 언론들이 유럽연합의 무역제재 움직임을 배경 중 하나로 들었는데,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이 특징적이었습니다.

중앙일보는 <노조가 회사와 무관한 파업해도 합법경총 수용 못해”>(7/31, 김기찬 기자)에서 “국회 통과가 어렵겠지만 이렇게라도 비준 작업을 추진할 수 밖에 없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ILO와 유럽연합(EU)등의 비준 압박이 지속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가시적인 노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부가 개정안이 ‘노동계 편향적’이라 통과가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국제사회의 압박에 대한 면피용으로 이번 개정안을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31일 가장 많은 기사를 낸 동아일보는 <사설/ILO비준 노동법 입법예고, 노사관계 더 악화시킬 작정인가>(7/31)에서 “대폭 강화된 근로자 단결권에 상응해 이를 견제할 사측의 조업권과 방어권은 거의 보완되지 않았다”며, 이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과 노동 문화가 유럽과 다른 우리 현실에 맞춰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울경제와 한국경제 등 경제지는 경총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했다는 점에서는 같았습니다. 약간 달랐던 점은, 서울경제는 <사설/말많은 ILO협약 비준 끝내 밀어붙이겠다는 건가>(7/31)에서 “정부는 수정이 필요한 조항에 대해서는 즉각 보완작업에 나서야 한다. 만일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한다면 국회가 나서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며 국회에서 법안 통과를 막을 것을 주문했지만, 한국경제는 의견기사 없이 경영계 입장을 전하는 데 치중했다는 점입니다.

 

신문사와 기자의 입장에 맞춰 사실왜곡은 하지 말아야

이렇듯 일부 언론들은 진심으로 한국의 노동인권이 선진국 못지않아 ILO협약을 반영해 국내법을 개정하는 것은 ‘노동 편향’이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보고 있는 듯합니다. 언론사의 사시나 기자 시각 차이를 나무랄 수는 없겠지만, 이를 전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개정안 내용을 왜곡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단순 일반기사만 낸 조선일보를 제외하면, 각 언론에서는 이번 정부개정안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는 보도들을 냈습니다. 민언련은 법제처 입법예고란에 올라온 <노조법 일부개정법률안>, <공무원노조법 일부개정법률안>, <교원노조법 일부개정법률안> 3건의 내용을 분석하여 언론사들의 설명과 해석이 타당한지 체크해 보았습니다.

신문사

기사제목

경향신문

<실업·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특고노동자 제외…단협 ‘3년 유효’>

동아일보

<불법파업 해고자도 계속 노조 활동…노조 정치투쟁 거세질 우려>

중앙일보

<노조가 회사와 무관한 파업해도 합법…경총 “수용 못해”>

한겨레

<전교조 합법화 길 열리지만…특수고용노동자 단결권은 빠져>

서울경제

<‘친노 ILO협약’ 강행…기업 목소리 끝내 외면>

한국경제

<해고자가 임금협상, 노조 전임자도 급여 받아…‘노동권력’ 날개 단다>

△ 정부 노동관련법 개정안 입법예고에 대한 언론의 설명기사 목록(7/31) ⓒ민주언론시민연합

그 결과, 동아일보 <불법파업 해고자도 계속 노조 활동노조 정치투쟁 거세질 우려>(7/31, 송혜미·유성열 기자)와 중앙일보 <뉴스분석/노조가 회사와 무관한 파업해도 합법경총 수용 못해”>(7/31, 김기찬 기자), 한국경제 <해고자가 임금협상, 노조 전임자도 급여 받아노동권력날개 단다>(7/31, 최종석 기자)의 설명보도들은 왜곡의 정도가 심했습니다.

 

① 해고자·실직자 노조 가입 허용 관련 왜곡

노조법 제 2조 제 4항 라목 단서는 ‘근로자’가 아닌 사람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 자체를 없앨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 정부개정안에서는 이 항목을 삭제하여 누구든지 노동조합 규약에 따라 노동조합에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불법파업으로 해고돼 자격을 잃은 조합원도 별다른 제약 없이 노조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중략) 외부 단체 활동가가 개별 기업의 노조원으로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원래 노조법 제 2조 제 4항 라목 단서를 ‘기업별 노조’에 한정하여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고자와 실직자는 원래도 기업단위 노조가 아닌 지역단위 노동조합이나 연합단체인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를 언급하지 않은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설명은 처음부터 틀린 설명입니다.

한국경제는 “정부안대로라면 실직자, 해고자도 기업단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고 임원도 될 수 있다. 회사 직원 대신 해고자가 노조 대표로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안은 노조 가입 대상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기업노조에서는 종업원이 아닐 경우 근로시간면제제도, 쟁의행위투표,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에서 조합원 수 산정에서 제외하기로 했고, 대의원 등 임원에도 출마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실직자, 해고자가 임원이 될 수 있다’고 보도한 한국경제의 기사는 명백한 오보입니다.

게다가, 동아일보는 ‘해고자가 별다른 제약 없이 노조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고 했고, 이어서 “다만 정부는 해고자와 실직자가 노조 임원이 되는 것은 금지하기로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임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별다른 제약’이 아니라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한 문단 안에서 기사가 반박되는 것입니다.

한편, 중앙일보와 한국경제는 이번 개정안으로 교섭 시 해고자나 실직자가 교섭대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노조법 제 29조 제 3항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로부터 교섭 또는 단체협약의 체결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은 자는 그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를 위하여 위임받은 범위안에서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②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관련 왜곡

현행 노조법 제 24조는 제 2항에서 노조원 중 노동조합의 일상업무를 담당하는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대신, 제 4항에서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를 두어 법으로 정해진 시간 한도 내에서 노조 전임자가 임금 손실 없이 노조활동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제 2항을 삭제하여 노조 전임자에게도 임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제 5항에서 전임자 임금 지급을 목적으로 한 파업을 금지한 조항도 삭제했습니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삭제하기로 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가 전임자 임금을 위해 쟁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라는 얘기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도 “면제한도를 초과하는 임금을 달라며 벌이는 파업에 대한 처벌 규정을 삭제했다. ‘떼쓰면 주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정부는 무효라고 하지만 실제로 주면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 뾰족한 수도 없다. ‘면제한도 초과 급여 무효’ 조항은 사족인 셈이다”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전임자 임금 지급을 목적으로 한 파업에 대한 처벌 규정’을 삭제한 것이 문제라는 주장은 비논리적입니다. 우선, 노조전임자가 받는 보수가 ‘임금’으로 명확히 규정된 이상, 처벌 규정을 삭제하지 않으면 임금인상을 목적으로 한 모든 파업이 처벌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처벌 규정 삭제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는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초과하는 내용을 정한 단체협약 또는 사용자의 동의는 그 부분에 한하여 무효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는데, 중앙일보는 이를 애써 ‘실제로 주면 제어할 수가 없다’며 깎아내렸습니다. 법률상 ‘무효’라는 것은 법적으로 중대한 하자가 있어 ‘처음부터 효력이 없다’는 것을 뜻하고, 제 3자를 포함한 누구라도 언제든지 무효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와 대립하는 노동조합은 현실적으로 애초부터 무효인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조차 없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근로시간 면제 제도를 위반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은 판례 201833050를 보면,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민주노총 측이 사용자가 다른 노조 위원장에게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지급했다고 소송을 건 경우였습니다. 다른 판례들은 대부분 근로시간 면제제도 도입 전 이미 체결되어 있던 전임자 관련 조항과 관련된 쟁점이었습니다.

 

③ 사용자 측의 요구사항이 ‘고작’?

이번 정부 개정안에는 사용자 측 요구도 반영됐습니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은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났고, 사업장을 점거하는 형태의 ‘직장점거’도 금지됐습니다. 그런데 위 신문들은 경영계 요구가 ‘찔끔’ 반영됐다며 비판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정부는 경영계가 방어권으로 요구한 △파업 중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등은 수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영국 일본 등은 대체근로 금지 규정을 아예 두지 않고 있다. 부당노동행위로 사용자를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정부가 수용한 사용자 측 요구는 ▶단체협약 유효기간 2년→3년 연장▶직장점거 금지가 고작이다”, 한국경제는 “경영계 요구는 찔끔 반영”이라고 소제목을 붙인 문단에서 경영계 요구들을 나열하며 “하지만 정부 입법예고안은 단협 유효기간과 사업장 점거행위 금지만을 담았다”라고 보도했습니다.

ILO협약 비준 관련 경사노위 논의에서 경영계 측 요구는 크게 넷이었는데, 이번 개정안에 반영된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과 직장점거 금지 외에도 파업 중 대체근로 허용과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요구들은 어느 하나도 ‘고작’이라고 볼 수 없는 요구들입니다.

이 요구들은 모두 헌법상 권리인 노동 3권의 본질적인 내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선, 단체협약 유효기간 1년 연장은 언뜻 보면 짧아 보입니다. 그러나 종전 2년에 비하면 1.5배나 늘어나는 것으로, 그만큼 노동조합이 불합리한 노동조건들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또한, 직장점거는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이라는 점에서 직장점거와 대체근로 허용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당노동행위 역시 노조활동을 했다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을 처벌하는 조항이므로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경영계의 요구는 결코 ‘고작’이나 ‘찔끔’이라는 말로 치부할 수준이 아니라 노조가 파업하면 파업참가자들을 모두 해고하고 대체인력으로 채우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④ 대체근로 허용과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 삭제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은 억지

이 신문들은 정부 입법안이 경영계 요구를 너무 적게 담았다고 비판하면서,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을 금지하고 부당노동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한국경제 <경영계가 요구한 대체근로한국·말라위만 전면금지>(4/15, 김익환 기자)에 따르면,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 문제에 대한 경영계의 정확한 주장은 ‘파업 시 해당 사업과 무관한 근로자 또는 파견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현재도 노조법 43조 제 1항에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다”고 되어 있어 사내에서 인력을 조정하거나 같은 회사의 다른 공장에서 대체인력을 충원하는 경우는 허용되어 있으므로, 우리나라 법이 대체인력 투입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경총식 대체인력 투입 허용이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주장에는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국가에서도 대체인력 투입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을 뿐이지 대체인력 투입으로 파업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들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는 파견노동자를 대체인력으로 채용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파견노동자를 대체인력으로 채용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주장하는 경제계의 요구사항입니다.

부당노동행위를 형사처벌하지 않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주장은, 해외의 경우 명시적으로 부당노동행위로 범주화하지 않을 뿐이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각각의 행위들을 형사처벌하는 조항이 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거짓입니다. 부당노동행위는 ‘불이익취급’, ‘반조합계약’, ‘지배·개입’, ‘단체교섭 거부·해태’의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당장 ILO핵심협약 내용부터 부당노동행위 유형 중 ‘불이익취급’과 ‘반조합계약’은 특별히 금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불이익취급이란 노동조합 활동을 근거로 불리한 처우를 하는 것을 말하고, 반조합계약은 특정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을 조건으로 노동자를 취업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 자료이긴 하지만 비교법학 교수 4명이 발간한 한국노동연구원의 <부당노동행위제도 연구>에서는 “유럽 국가들에 부당노동행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해서조차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다”며, “(유럽은)부당노동행위 제도를 법제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실질에 들어가서 보면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와 유사한 법제를 마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75p)”고 지적합니다.

보고서표1.jpg

△ 연구보고서에서 제시한 유럽의 부당노동행위 처벌제도(75p)

연구보고서에 실린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고서가 검토한 유럽 6개국에서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사법심사를 합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프랑스에서는 ‘불이익취급’ 유형의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되면 1년의 구금형과 3,750유로의 벌금형(362p)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직접 형사처벌을 하지는 않지만,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명령을 위반하는 경우 3개월 이하의 구금 또는 40만리라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389p). 스페인에서는 노동법을 위반한 정도에 따라 3단계로 나누어 처벌하는데, 부당노동행위로 분류할 수 있는 조항들은 ‘중대한 위반’이나 ‘매우 중대한 위반’으로 규정되어 있어 벌금형에 처해집니다.(404p)

 

언론들이 ‘중세의 노동관’에서 빠져나올 때는 언제일까?

전세계 151개국 305개 노동조합의 노동자 1억 7500만명이 가입되어 있는 국제노총(ITUC)에서 발간한 연례보고서 <세계 권리 지수 2018>에서는 한국을 ‘노동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나라’인 5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 체제 붕괴로 권리 보장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나라’인 5+등급의 바로 위입니다. 여기에는 진짜 기초적인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할 수 있는 ILO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것도 분명히 일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정부 개정안은 저번 경사노위 ILO협약 관련 공익위원안을 반영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이미 몇몇 노동법 판례로 개별적으로 인정되어 오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가입 문제조차 반영하지 못하는 등 한계가 많습니다. 일부 언론들의 주장대로 과연 이 개정안을 ‘노동계 편향적’이라고만 볼 수 있을지 의심이 됩니다.

이런 현실에서 일부 언론들이 정부 입법안 내용을 왜곡해 가면서까지 경영계의 노동3권 무력화 시도를 ‘방어권’으로 포장하고, 법안의 통과를 막기 위해 여론전을 펼치는 것은 반인권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이 정도의 개정안을 두고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언론들이 평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그 ‘기울어진 운동장’에는 언론환경 역시 포함되어 있고, 언론환경은 명백히 ‘경총에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7월 31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별지섹션은 제외)

<끝>

문의 공시형 활동가(02-392-0181)

 

monitor_20190808_268.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