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그녀가 떠날 때 (2013년 11호)
등록 2013.12.02 18:02
조회 587

그녀가 떠날 때

그녀가 떠날 때 : 페오 알라다그 감독 l 독일 l 2012 l 드라마 l 119분

 

권우정 회원 l madcat2000@hanmail.net

 

 

2010년 ‘땅의 여자’라는 작품으로 서울 국제 여성 영화제에 초청 받았을 때 나는 내 작품이 상영된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지만, 감독에게 주어지는 특권(아이디 카드) 덕분에 예매와 현장 판매라는 번거로움과 매진이라는 슬픈 소식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무척이나 반갑기도 했다. 그런 내게 첫 선물처럼 다가온 영화가 있었다. 바로 ‘그녀가 떠날 때’다.


영화는 마치 스릴러 장르처럼 시작된다. 환한 햇살 속에 어린 청년이 앞에 가는 여인에게 총구를 겨눈다. 그가 왜 총을 들었는지, 또 총을 쏜 대상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뭔지 모를 불안감으로 영화는 시작되고, 결국  총구를 겨눈 여인이 바로 청년의 친누나이며 이슬람 문화에서 종종 뉴스로 듣게 되는 ‘명예살인’이라는 것을 알 때는 영화 광고 문구처럼 아픈 현실에 통렬히 가슴을 뒤흔들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우마이’ 터키계 독일인으로 이스탄불로 시집을 간다. 애초부터 결혼에 있어 그녀의 선택은 없었다. 가족과 가족의 약속 안에서 가부장적인 이슬람 가정으로 편입된 그녀, 남편의 일상적인 폭력으로 결혼생활은 불행하기까지 하다. 그런 그녀가 낙태수술을 핑계로 잠시 친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독일로 돌아온 그녀, 아들 챔과 함께 다시 이스탄불로 갈 것인지 아니면 독일에 남을지 고민하지만 불행한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은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가출’뿐이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결혼생활이 극단적인 남편(배우자)의 폭력이 아니더라도 마냥 핑크빛만은 아님을 신혼의 단꿈이 지나면 곧 알 수 있다. 그러나 쉽게 결혼생활을 끊을 수 없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 부모, 자식, 사회적 위치 등 자신에게 불려지는 여러 이름들을 쉽게 벗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보다 클 것이다. 이렇듯 일반적인 결혼생활에서도 이혼이나 가출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할진대 이슬람 사회 안에서 이혼과 독립(가출)이라니... 우마이의 선택이 가져올 엄청난 희생은 불 보듯 뻔하다. 이혼을 하면 양육권이 당연히 남편에게 가는 이슬람 사회 안에서 아들 챔과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우마이. 더욱더 아픈 현실은 우마이의 새로운 삶의 선택의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야 할 가족이 그녀에게 가장 큰 적이 된다는 것이다.


명예가 무엇보다 중요시 되는 이슬람 사회에서 가족 중에 이혼녀가 있다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 치욕적이고 사회적 비난거리가 된다. 잠시 친정에 있을 줄 알았던 그녀가 이혼을 선택했을 때 그녀의 가족들은 무척이다 당황해한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분열하는 가족들... 우마이 여동생을 덮친 일방적 파혼과 함께 두 남동생은 독일 이슬람 사회 안에서 놀림감이 돼 버리고 영화의 시작부분에서 보여줬듯이, 결국 두 남동생은 가족의 이름을 더럽힌(?) 그녀에게 ‘명예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총구를 겨누게 된다.


 

독일 사회가 은근히 선진국(?)이라는 기대감 속에, 정말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 너무 과장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영화 보는 내내 맴돌았지만 이 영화는 2005년 독일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현실이 영화화 된 것, 다큐멘터리스트로 단언하건데 현실만큼 극적인 것은 없다. 아무리 독일 사회가 안정된 사회문화를 갖고 있다 하더래도 이민사회-디아스포라들에게까지 안정된 제도와 사회적 성숙도가 보장되지는 못한다. 독일에 살아도 그들은 터키인, 아니 여전히 이슬람인인것이다. 그것이 무엇보다 이 영화가 잔인하고 슬픈 이유일 것이다.


사회, 종교, 제도를 떠나 인간, 개인이 행복하고자 하는 욕망마저 무참히 깨어질 때,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은 단순히 이슬람 문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곳 한국사회에서도 존재하는 일이고 작고 크든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더욱더 사회적 이름을 떠나 나 자신이 먼저 행복해 질 수 있는 권리를 선언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


갑자기 글의 엔딩이 계몽적으로 끝나는 누를 범하고 있으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슬픈 영화와 현실을 자꾸 혼동하면서 한숨만 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잊힌 그녀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예상 외의 엔딩을 갖고 있으니 보지 못했던 회원들은 영화를 찾아보는 수고스러움(?)을 갖길 작게나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