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인터뷰] 임자운 회원 (2013년 11호)
등록 2013.12.0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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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분명 재밌고 신나는 일이 있다"

 

 

5년을 공부해 지난 2010년 사법고시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거쳐 올해 초부터 반도체 노동자 인권 모임 ‘반올림’의 상근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임자운 회원. 연수원 동기 선후배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해 지금의 삶을 살고 있는 그는 단지 자유롭고 즐겁게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딱딱한 법조문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만 같은 친근한 인상의 그를 반올림 사무실에서 만나 반올림 식구들과는 어떻게 함께 하게 되었는지, 민언련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들어보았다.

 

 

길을 찾던 시간들

지겨운 사법고시 공부에 파묻혀 있던 어느 날 인생에 길잡이가 될 인연과 만나게 된다.

“어느 해인가 2차 시험을 보고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넉 달쯤 시간이 비었어요. 그때 우연히 공익변호사 단체 ‘공감’에서 자원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자유롭고 즐거워 보일 수 없는 거예요. 그곳에 자원 활동이 아닌 상근 활동가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선 변호사 자격증이 필요했어요. 결국 그게 강한 동기 부여가 돼 지긋지긋한 고시 공부를 끝까지 버텨 낼 수 있었습니다.”

‘자유롭고 즐겁게 산다는 건 뭘까?’ 임자운 회원은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그런 물음을 던지며 지냈다. 그리고 연수원의 인권법학회 회장을 맡아 활동하며 42기 연수생 동기들과 함께 ‘낭만펀드’를 만들었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 동기들을 위해 조금씩 돈을 모아 후원으로 활동비를 지원하는 지극히 ‘낭만적인’ 펀드라고 한다. 낭만펀드에서 매달 활동비를 지급받는 그는 낭만펀드 사무국장이기도 하다.

“올해 초 연수원을 마치고 진로를 찾으려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세상엔 법률가들이 있어야 하는 분야가 많지만 저는 노동, 그중에서도 산재 분야에 마음이 끌렸죠. 반올림이라는 모임은 평소에도 알고 있었고 마음으로만 연대하는 중이었는데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다가 반올림 식구들과 만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여기 상근 활동가로 일하게 됐어요.”

 

반올림에서 길을 찾다

반올림은 2007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어느 노동자의 유족이 지역의 노동•시민단체들과 함께 조직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뿌리로 하는 모임이다. 삼성에 맞서 싸움을 이어 가던 대책위는 이것이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전자산업 노동자의 건강권과 인권을 위한 모임’으로 품을 넓혔고 그때부터 ‘반올림’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삼성을 상대로 싸운다고 주목을 받긴 하지만 반올림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뿐만이 아닌 모든 전자산업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만들어진 모임이에요.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의 공장도 열악한 환경에 있어서는 비슷하거든요.”

하지만 삼성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노동조합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고 임자운 회원은 강조한다. 무노조 경영을 내세우는 삼성에는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갖가지 질병을 일상적으로 몸에 달고 살아도 그러한 일상을 모아 사측에게 전달하는 창구가 전혀 없다. 게다가 생산량과 효율성을 극도로 높이기 위한 조별 경쟁 유도는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앞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많이 쌓여 있어요. 우선 반도체뿐만 아니라 휴대폰 등 다른 전자산업 분야로 반올림의 활동을 확장해야겠죠. 그리고 아픈 노동자들을 위한 보상을 얻어 내는 것 말고도 노동자들을 아프지 않게 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해요. 물론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스스로의 힘으로 건강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임자운 회원은 반올림에서 생활하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날마다 처리해야 하는 업무도 많은데다 복잡한 반도체 공정을 파악해야 하고 노동자들이 앓는 백혈병이나 난소암 같은 질병이 구체적으로 어떤 병인지도 따로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의 본심은 따로 있었다.

“이래저래 부담이 많은 일이긴 하지만, 저는 이곳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 직장에 매여 상사에게 치이고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변호사 동기들에 비해 저는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거든요. 늦게까지 야근을 해도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힘들지 않아요.”

 

인생의 전환점, 민언련

“고만고만하게 살던 제가 언제부터 세상을 삐딱하게 살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아마 민언련과 처음 인연을 맺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한때 기자가 되고 싶었다는 임자운 회원은 대학 2학년 때 언론학교 포스터에 적힌 유명한 언론인들의 이름을 보고 무턱대고 민언련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언론학교를 통해 시작된 민언련과의 인연은 신문 분과 활동으로 이어졌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들에게 이상한 후배로 찍히게 된다.

“한번은 분과 활동에서 '나쁜 칼럼'으로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동아일보 칼럼을 뽑았는데 제가 딴죽을 걸었죠. ‘글의 논지가 우리와 안 맞는다고 해도 칼럼에 거짓말이나 왜곡이 없으면 좋은 칼럼 아닌가요?’ 분과 활동 기간 매번 그런 식이었으니 당연히 분과 선배들은 저를 못마땅해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선배들은 모임에서 절 쳐내지 않고 제가 하는 말을 다 들어줬죠. 민언련은 토론이 되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때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다그치지 않고 자신을 늘 한식구처럼 대해 준 분과 선배들이 지금도 고맙다고 한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을 따돌리거나 내몰았다면 언론운동이라는 것에 아마 거부감을 느꼈을 테고 결국 지금처럼 사회운동을 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민언련의 좋은 선배들과 계속해서 만나고 함께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삐딱해지게 된 거죠. 집에서도 점점 부모님이 싫어하는 자식이 됐고. 그렇게 살다가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민언련과의 만남이 제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한편 임자운 회원은 고시 공부를 시작하기 전부터 신문 분과 OB 모임인 ‘뭉클’에 몸담기도 했다. 아직도 만나는 뭉클 회원들 중에 기자가 된 친구들이 있어서인지 요즈음도 언론 보도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고 말한다.

“민언련에서 활동해서 그런지 신문에 삼성 문제나 노조 문제가 나오면 아무래도 남들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됩니다. 애초에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싸움이 널리 알려지게 된 데에도 언론 보도가 큰 역할을 했잖아요. 언론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반올림 활동을 하며 더 많이 느끼게 돼요.”

 

세상에는 분명 재밌고 신나는 일이 있다

만 오천 명이 넘는다는 한국의 변호사들 가운데 공익전담 변호사는 스무 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그 숫자로는 억울하게 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돼 줄 수 없다. 때문에 임자운 회원은 공익전담 변호사가 아닌 일반 변호사들도 공익 관련 소송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물적 기반을 만들고 싶어 한다.

“제가 낭만펀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세상엔 재밌고 신나는 일이 분명 있다는 메시지였거든요. 공익 변호사도 그런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공익 변호 활동에 다른 변호사들이 더 많이 참여하게 하는 게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돈을 많이 주지는 못하겠지만 낭만펀드에서 나오는 기금으로 실비 정도는 지원해 줄 수 있으니까요.”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일하는 활동가답게 임자운 회원은 민언련 활동가들을 위한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우리가 먼저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의 고민은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부터 반올림 상근 변호사로 있는 지금까지 단 하나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세상에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찾아서 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자유로운 삶이라는 것.
내가 만나 본 임자운 회원은 변호사이기 이전에 반올림 활동가이고, 반올림 활동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자유인이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노동자들 곁에 있게 될 그의 삶에 지금보다도 더 많은 즐거움과 자유가 함께 하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