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라는 이름의 욕망
「외투」 (니콜라이 고골 지음 / 문학동네, 2011)
김연지 회원 l shine0925@naver.com
영화 <피에타>에서 주인공 강도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의 존재에 혼란을 겪는다. 강도는 어머니가 나타나기 전에는 외로움이 외로움인지도 모른 채 살아왔지만, 모성의 따뜻함을 한 번 맛보고 나자 더는 그 따뜻함 없이 살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를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피에타>가 떠올랐다. <외투>의 주인공 아까끼는 강도와는 여러모로 성격이 다른 인물이지만, 평생을 ‘없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소유’하게 된 무언가를 ‘죽도록’ 욕망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외투>는 제정 말기 러시아의 권위적이고 비인간적인 관료 제도를 신랄하게 풍자한 소설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이 무엇보다도 인간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아까끼는 가난해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인물이었다.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는 말단 관료이지만 그는 그 나름대로 직업적인 행복감을 느끼며 살았다. 남들이 아무리 자신을 비웃고 놀려도 신경 쓰지 않았으며, 남들이 ‘싸개’라고 부르는 누더기 같은 외투를 입고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남들의 기준이나 시선, 욕망에 초연했다.
그러나 아까끼는 새 외투를 장만하게 되면서 다른 인물이 된다. 너무 기워 입은 탓에 ‘싸개’가 더 이상 수선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자 그는 거금을 들여 새 외투를 구입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욕망에 초연한 인물이 아니게 된다. 아까끼가 헌 외투와 새 외투를 나란히 걸어놓고 비교하는 장면은 그가 더 이상 이전의 아까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싸개’ 소리를 들어도 개의치 않고 소중히 입어온 헌 외투 옆에 새 외투가 놓이자, 그 누더기 같은 헌 외투는 한순간에 너무나도 초라해져서 아까끼에게 조차 외투가 아닌 ‘싸개’가 되고 만다.
반면, 새 외투는 어느새 그에게 단순한 외투가 아닌 삶의 중심이 된다. 외투 덕분에 생전 처음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을 받고, 파티에 초대받는 즐거움도 누린다. 모든 것에 초연한 채로 삶에 만족을 느껴왔던 그는 새 외투를 얻은 기점으로 세속적 욕망에 편입된다. 예전엔 없이도 잘 살았는데, 한순간에 외투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아까끼는 그 소중한 외투를 강탈당하자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아까끼는 외투를 얻어 ‘인생 최고의 기쁨’을 맛보았고, 이를 잃자 상심해서 죽어 버렸다. 아까끼를 죽게 만든 건 추위가 아니라 욕망이다. 그 기쁨과 욕망을 아예 모르는 채로 살았다면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 고통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행복지수 세계 1위를 차지해 한 때 ‘부와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부탄에서도 위성 TV가 들어오면서 행복지수가 급감했다고 한다. TV를 통해 부유하고 화려한 삶을 접하게 된 부탄 국민은 자신들의 삶을 초라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은 상처가 된다. 이후 부탄에서는 절도와 강도사건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라고 하지만 따져보면 우리 대부분은 욕망을 충족함으로써 행복을 얻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그 욕망은 대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데서 나온다. 자신의 기준을 잃고 세속의 기준에 편입되는 순간 ‘나의 행복’은 욕망에 좌우된다. 좋은 집, 좋은 차, 그리고 명품. 남들이 인정해 주는 어떤 것을 나도 지녀야 한다는 욕망을 충족하려 우리는 끊임없이 애쓴다.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아마도 니콜라이 고골이 그만큼 러시아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뜻일 테다. 하지만 나는 자꾸 이렇게 해석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