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읽는책] 웃을 수 없었던 부조리 (2014년 8호)
등록 2014.09.0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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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을 수 없었던 부조리


박병학 활동가 l ccdm1984@hanmail.net




군대란 무엇일까?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고, 겪어 본 사람도 결코 알 수 없는 곳이 군대다. 군대라는 곳의 본질은 ‘감금과 계급’이지만 정작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그것에 시달리다가 시간만 채우고 쫓기듯 제대할 뿐 군대의 본질을 고민하느라 골치를 썩이진 않는다. 그곳에서 지내던 나날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들은 남아 있다. 군대 시절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제 밥집에 들어가서 무엇을 시켜 먹었는지 기억하는 것과는 다르다. 무엇을 뱃속에 집어넣었는지는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지만 군대 시절은 비록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기억하게 된다. 군대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삶과 모든 면에서 어긋나는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보다 기억하기 쉽고, 어쩔 때는 기억 속에 깊게 새겨지기도 한다. 


조지프 헬러의 <캐치-22>는 소설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어수선하고 소설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끝내주게 재미있다. 이 소설엔 딱히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아무데나 펴서 내키는 곳에서부터 읽기 시작해도 된다. ‘요사리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공군 폭격수로 복무하면서 보고 듣는 수많은 일들을 작가는 뒤죽박죽으로 반죽해 소설 곳곳에 아무렇게나 어질러 놓는다. 문장은 흐트러져 있고 사건들은 뒤섞여 있다. 마치 세탁기에 넣고 몇 시간 동안 빙빙 돌린 소설 같다. 그리고 그런 글쓰기 방식을 통해 작가는 지금껏 군대를 배경으로 해서 나온 그 어떤 소설 중에서도 군대를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보충대와 훈련소를 거쳐 ‘자대’에 배치될 때, 신병은 어느 날 갑자기 낯선 곳에 뚝 떨어진다. 그를 위해 일부러 마중 나오는 사람도 없고 그를 그때껏 기다린 사람도 없다. 온종일 정신없이 돌아가는 군대 한복판에 운석처럼 떨어진 신병은 마음보다 몸이 먼저 그곳에 적응해야 한다. 일단 자대에 떨어진 그날부터 자신의 모든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곳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신병이 이해하고 있는가 못하고 있는가는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다. <캐치-22>를 읽는다는 것도 그와 비슷하다. 밤하늘 이쪽저쪽에서 터지는 불꽃놀이처럼 아무런 규칙도 흐름도 없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사건들을 좇다 보면 느닷없이 군대 한가운데로 떨어진 그날을 떠올리게 된다.


군대에 적응한다는 것은 군대 속 숱한 부조리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계급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명령과 복종이지 자유와 진실이 아니다. ‘나는 왜 이곳에 감금돼 있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은 제쳐둔다고 해도 군대는 정말 많은 고민거리들을 병사들에게 안겨 주는 신기한 곳이다. 왜 사람 죽이는 법을 배워야 하는가. 왜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가. 왜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잠들어야 하는가. 왜 저 사람은 내게 명령을 내리는가. 왜 나는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가. 왜 북한은 우리의 주적인가. 이등병 때 그렇게 당했으면서 왜 고참이 되니 후임병을 괴롭히는가. 수도 없이 많은 그런 고민들은 한 번에 하나씩 찾아오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십 번씩 부조리와 맞닥뜨리면서 점점 그것에 몸과 마음이 길들여지는 것이 바로 군대 생활이다. 


<캐치-22>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채우고 있는 사건들은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다. 특히 앞부분에 나오는 군사재판 장면은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소설인지  헛소리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이 자리에서 짤막하게나마 간추려 보려고 해도 차마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직접 읽어 보는 수밖에. 가뜩이나 부조리한 곳에서 온갖 부조리한 사건들이 순서도 없이 벌어진다. 한 겹 한 겹 쌓이는 부조리들은 뒤집힌 벌집에서 튀어 나와 달려드는 벌 떼처럼 읽는 이들을 몹시 당황스럽게 만든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고 그 어처구니없음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 하나하나가 군대 생활 내내 보고 들었던 것들이라는 사실이 맨 마지막에 뒤통수를 친다. 소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웃게 되는데도 그 웃음을 제대로 웃을 수 없다. 부조리들에 젖어 가며 조금씩 미쳐 가는 것만 같았던 군대 시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지만 또한 정말 슬프게 읽었던 소설이기도 하다. 막 지은 뜨거운 밥에서 김이 오르듯 쉴 새 없이 머릿속에서 솟는 군대 시절 기억들 때문에 끝까지 읽기 힘들기도 했다. 제정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내용이 한결같이 펼쳐지지만 이렇게까지 군대 생활을 ‘리얼’하게 그려낸 소설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부조리들로 만들어지는 군대 시절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거대한 무의미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진정 무엇을 위해 총을 드는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 시간들이라는 것을 이 소설 <캐치-22>는 눈물 나도록 웃긴 방식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은 안다. 언론에 보도가 되지 않을 뿐 하루에도 적잖은 병사들이 갖가지 이유로 죽어 간다. 사고로 죽기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리고 감금과 계급이라는 본질이 사라지지 않는 한 군대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역시 군대 다녀온 사람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감금과 계급이 없이는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부조리다. 그 부조리가 수많은 죽음들을 낳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