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외면한 채 국가 주도 ‘사이버 검열’ 두둔 언론
강선일 신문모니터위원회 위원장 duperduke@naver.com
9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사이버상 국론을 분열시키는 아니면 말고 식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법무부와 검찰이 이런 행위에 대해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발언 직후 검찰이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수사전담팀’ 운영을 발표하면서, ‘사이버 검열’ 논란이 불거졌다.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는 9월 16일부터 10월 21일까지 소위 ‘사이버 검열’ 논란을 다룬 신문기사를 모니터했다.
<경향신문> 10월 2일자 6면 스크랩
검찰의 ‘사이버 검열 필요성’ 주장한 조중동
한겨레 <사설/대통령 한마디에 ‘사이버 긴급조치’ 내린 검찰>(9/26)은 “허위사실 유포를 앞세운 여론 봉쇄는 진작에 위헌으로 판정됐다”며 검찰이 대통령의 한 마디에 법리나 판례, 절차를 모두 내팽개친 꼴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사생활과 통신 비밀 침해하는 ‘사이버 사찰’ 안된다>(10/1)에서 SNS나 모바일 메신저에 대한 압수수색이 혐의와 무관한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 정보까지 검찰과 경찰에 제공되는 등 광범위한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검찰 조치의 ‘의도성’을 강조한 반면, 조중동은 검찰의 해당조치가 ‘실수’란 입장이다. 조선일보 <사설/괜한 엄포로 ‘사이버 亡命 소동’ 불러온 검찰의 헛발질>(10/4)는 사이버 명예훼손 문제가 ‘심각한 범죄’라며 검찰이 사이버상의 인권 침해 행위를 신속히 수사해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이어 검찰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카카오톡 실시간 감시’를 엄포하는 바람에 쓸데없이 시민들의 공포감만 확산시켰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사이버 검열의 필요성을 긍정한 것이다. 중앙일보 <취재일기/오해 부른 검찰의 ‘사이버 입단속’>(9/26)는 “그 동안 익명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악성 네티즌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아온 게 사실”이나 “불필요한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좀 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검찰이 논란 없이 사이버 검열을 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 검열 자체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동아일보는 <사설/카톡 검열 논란 부른 ‘정치 검찰’, 언제까지 헛발질할 건가>(10/15)에서 한 발 더 나가 ‘세월호 정국’이 가라앉자 새 투쟁동력을 만들려는 정치적 공세로 보인다”며 검찰의 사이버 검열 논란을 정쟁·이념 투쟁으로 호도했다.
조중동, 검찰 논리에 힘 실어줘
검열 논란이 계속될수록 사이버 검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조중동의 논리도 점점 강해졌다. 조선일보 <카카오톡 監聽 봉쇄의 함정>(10/18)은 “일부에서는 오해가 진실처럼 둔갑하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표현 자유와 통신 비밀을 운운하면서 감청 자체를 아예 봉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도 <2014년 감청영장, 122건 중 101건이 국보법 관련>(10/15)에서 감청을 “수사기관이 내란·외환 등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나 유괴·인신매매·마약매매 등을 저지른 강력범 등 중대한 범죄 피의자에 한해 통신 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검찰청이 올해 8월 말까지 감청 영장을 발부한 122건 중 국가보안법 관련이 101건으로 가장 많았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에게 해당될 뿐 ‘일반 시민’과는 상관 없다고 주장하며 검찰 논리에 힘을 실었다.
조중동이 이야기하지 않은 ‘실제 사례’
그러나 조중동은 같은 시기에 카카오톡 내역 압수수색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한겨레 <경찰, ‘세월호 집회’ 주최자 카카오톡 내역 압수수색>(10/1)은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를 주최했던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9월 16일 종로경찰서가 압수수색한 소식을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관련 사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보도했다. <부인과 대화하며 오고간 카드 비밀번호 등 사생활.개인정보 다 털렸다>(10/2)는 “정 부대표가 공개한 압수수색 범위 내 카카오톡엔(중략) 대출에 필요한 신용카드 번호와 비밀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도 들어갔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 기사는 세월호 집회에서 연행된 대학생인 용혜인 씨 또한 카카오톡을 압수수색 당했음을 언급하며, 용 씨의 “경찰이 대화 내용뿐만 아니라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위치까지 맥 어드레스(MAC address. 통신을 위해 랜카드 등에 부여된 일종의 주소)도 수집했다”는 발언을 인용했다.
이와 같은 실제 검열사례가 있음에도 조중동은 정부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 정진우, 용혜인 씨는 국보법위반자도 유괴·인신매매·마약매매를 저지른 강력범도 아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거나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자는 목소리를 냈을 뿐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카카오톡과 밴드 등 사이버 공간에서 그들이 한 사적인 이야기까지 ‘검열’하고자 한 것이다. 정부에 대한 정당한 비판마저도 ‘범죄’로 취급하는 사법부와 이런 태도를 두둔하는 언론의 태도 모두가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집단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