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파이팅!
이근주 회원 jjoojjoo2001@hanmail.net
신입 회원 글을 쓰려니 민언련에 가입하게 된 동기부터 되돌아보게 된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돈 만원이면 아이 한자 학습지에 잡지까지 준다는 말에 혹한 나는 ‘조중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때만 해도 내가 중심만 잡으면 보수 언론에 길들여 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른 신문과 비교해 가며 사실관계를 어떻게 보도했는지 나름 평가도 했다. 스스로 객관적이라 자부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 ‘논두렁 고가의 시계’는 실체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조중동’이라 할지라도 과장을 하지만 없는 얘기를 지어내진 않았겠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유력언론 ‘조중동’이 없는 얘기를 지어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 버린 뒤였다. 서너 달 무료로 보게 되었다고 좋아했던 금액의 몇 배를 위약금으로 내고도 자책이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후 내 안의 자책과 두려움은 여느 인간들처럼 서서히 사그라졌고, 세상은 어찌어찌 흘러갈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쉬이 흘러가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것이다. 한 달을 매일 울면서 뉴스를 보고 기사를 읽었다. 안 보면 나만 너무 편안하게 지내는 것 같다는 미안함이, 어차피 해도 안 될 거 같아 눈 감아버린 수많은 부조리들에 아이들이 희생된 거 같은 생각이 들어 자책감이 더 크게 몰려왔다. 분노를 넘어선 무기력감이 들다가, 당장 자원봉사나 일인 시위라도 해야 할 것 같은 혼란스러움에 마음만 답답했다.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세월호 사건 이후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선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자원봉사라도 시켜달라고. 선배는 며칠 후 KBS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날은 KBS의 세월호 보도를 규탄하는 첫 집회였다. 많은 분들이 모인 집회는 아니었지만, KBS의 세월호 보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특히 많은 어르신들이 공영방송의 보도가 ‘참사’ 수준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며 언론문제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며칠 뒤 MBC 앞에서 다시 촛불집회를 할 예정이니 나오라는 선배의 ‘지침’을 받았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이날은 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가 대학동아리 카페에 민언련에 가입해달라는 글을 올렸고 나는 흔쾌히 가입을 결심했다.
이렇게 알게 된 민언련은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었고 일깨움이었다. 민언련을 통해 그동안 해 봤자 안 된다고 포기했던 건, 제대로 안 해 봤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지만 힘든 일이기에 민언련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있다. '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언론에 대한 두려움과 부지불식간에 스며드는 거대한 영향력을 그 누가 견제·감시·비판할 수 있을까' 하는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민언련을 가입한 것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다. 정규직이 되면 더 많은 회비를 납부하리라.